CULTURE

마지막 축배는 나와 함께 2

2011.01.05GQ

7개월 동안 이강모로 살았다. 이제, 이범수에겐 자신만의 세리머니를 즐길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생겼다.

"홈런의 희열을 즐기는 타자는 타석을 회피하지 않아요. 홈런 치고 싶어서 미치는 거죠. 나는 카메라 앞에서 몰입하고 울부짖는 순간의 희열을 정말 원해요. 연기의 타석에 서는 거죠." 턱 장식이 있는 흰색 셔츠는 브리오니, 와인색 보타이는 랑방, 시계는 예거 르쿨트르, 검정색 커프스링크는 알프레드 던힐, 감색 턱시도 재킷은 란스미어.

“홈런의 희열을 즐기는 타자는 타석을 회피하지 않아요. 홈런 치고 싶어서 미치는 거죠. 나는 카메라 앞에서 몰입하고 울부짖는 순간의 희열을 정말 원해요. 연기의 타석에 서는 거죠.” 턱 장식이 있는 흰색 셔츠는 브리오니, 와인색 보타이는 랑방, 시계는 예거 르쿨트르, 검정색 커프스링크는 알프레드 던힐, 감색 턱시도 재킷은 란스미어.

<자이언트>에서 당신의 연기에 스스로 A+를 주고 싶다는 말이 그래서 좋게 들렸다. 다들 겸손하기 바쁘니까. 그래서, 스스로에게 선물은 줬나?
마지막 촬영이 일산 세트장이었는데,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점심때 끝났다. 나는 끝까지 있었다. 난 여기 지킴이니까, 혼자 남았을 때의 희열도 있었다. 감독님이 “자, 이 신이 우리 <자이언트> 3만 8천 컷 중에 마지막이다!” 우스개로 그럴 때 눈물이 핑 돌았다. 모두와 작별한 다음에 방송국을 한 바퀴 돌았다.

무슨 생각을 했나?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조연이 못해서 망하는 경우는 없다. 주연은 입장이 다르다. 사명감이 있다. <자이언트>, ‘원톱’ 주인공.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김명민 씨가 거절했던 역할이라는 얘기가 언론에 이미 나왔다. 그럼 ‘김명민이 해야 하는 건데, 이범수가 해가지고 그럴 줄 알았어’ 그런 얘기를 누가 듣고 싶겠나. 부담이 왜 없었겠나. 막 승부욕이 나는 거다. 그만큼 꼼꼼하게 하자 없이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는 거다. 다른 역할들, 죽자 사자 한 놈만 물고 늘어지면 된다. 조필연은 악독한 인물이니까 뭔지 모를 때는 그냥 지랄 맞은 거 하나만 찍으면 된다. 높은 도만 치는 건 쉽다. 장조, 단조, 반음 올리고 내리고 막 이러는 게 들어가면 계산이 복잡해진다. 강모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족들끼리의 따뜻함을 보일 때, “이범수는 힘있게 휘몰아치는 걸 왜 안해? 못하나 봐” 그건 합당치 않다는 거다.

그 감상들이, 당신이 스스로에게 준 선물이었나?
아까 처음에 ‘이범수는 까탈 맞을 거다’라는 말은 나도 종종 듣는다. 듣기 싫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시는 분들은 이유가 있을 거다. 그럼 그분들은 나를 언제 겪어봤다고 그러시는 거지? 라고 반문했다. 늘 일할 때 겪은 거 아닌가? 일하지 않는 이범수는 겪어본 적이 없는 거다. 일할 때는 오차 없는 베스트를 끌어 올려야 하니까 그런 행동들이 나오는 거고. 일하지 않을 때는 가야금 풀어놓듯이 빈둥거리는 걸 좋아한다. 여기서 빈둥이라는 건 상당히 ‘릴렉스’한 순간이다.

2009년엔 영화만 세 편, 2008년엔 영화 두 편과 드라마 한 편을 찍었다. 당신이 빈둥댈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었나?
어느 작품 마치고 집에 있다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편의점에 갔다. 스무 개를 샀다. 하나를 까서 이렇게 깨물면서, 비닐봉투 빙빙 돌리면서 어기적 어기적 걸을 때. 오늘 뭐 하지? 아!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럴 수 있다는 거.

페라리를 탄단 얘기를 듣고, 뻑적지근하게 쇼핑하는 타입일 거라고 생각했다.
나, 웃긴다. 그런 면이 있고 저런 면이 있다.

이미 페라리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닌가? 진짜 수수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게 여유가 아닐 거다.
재밌는 말이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정말 지존은, 저 사람이 롤렉스를 차서 멋진 게 아니라, 플라스틱 장난감을 차고 있어도 시계가 멋지고 뭐 그렇다는 거. 내가 추구하는 건 물질적인 게 아니다. 확신이 있다. 목사님, 스님이 카르티에를 차고 있어서 존경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분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이유는 나 같지 않아서다. 내가 지향하고 있는 것을 한 단계 뛰어넘어 있다는 거다. 그래서 박수 받는 거다. 배우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좋은 옷을 입고 페라리를 타고 프라다를 입어서 박수 받는 게 아니다. 그건 재벌 3세만 돼도 할 수 있다.

속도를 즐기나?
한… 시속 180킬로미터까지 밟아봤나?

아, 그건 페라리가 아깝다.
맞다. 이건 뭐 달리려고 태어난 차라서, 달리려고 들면 달리는데…. 그럴 때 제임스 딘 생각도 나고 그런다.

그러다 죽을까 봐 두려운 건가?
호사다마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목마른 사람한테 물컵에 나뭇잎 띄워 주듯이. 항상 한 템포 쉬어간다. 걸음마 배울 때, 한 번도 넘어져본 적 없다.

대학에서 받았던 환호와 TV에서 스타가 됐을 때의 환호가, 규모를 제외하면 어떻게 다른가?
무명 때,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탯줄을 끊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왔으니까, 그 언저리에서 돌지 말자는 거였다. 나약해 보이니까. 자꾸 뭐 좀 얻어먹으려고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그럼 너는 산골짜기 도공이 되고 싶은 거냐, 마이클 잭슨 같은 화려함이 갖고 싶은 거냐를 생각했다. 그럴 때 솔직해야 한다. 솔직하지 않는 순간, 삐그덕거리게 돼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다. 연극하면서 연극의 순수를 알았다. 동경했다. 훌륭한 건 맞는데, 전부는 아니다. 내가 지향하는 건 이쪽의 화려함이다. 스포트라이트, 선글라스, 환호 그런 거. 아니, 배우는 그런 거 있어야 한다. 없다면 바보다. 그거 사기다. 배우는 주목받고 튀고 싶어 하고 멋을 내고 싶은 동물이다. 그걸 다 초월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도 나는 분명히 예술적인 사치라고 생각한다.

이강모가 말했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결국 가진 게 없었다.” 공감하나?
못한다.

뭐가 더 갖고 싶나? 굉장히 세속적인 것부터, 세간에서 숭고하다고 하는 것들까지.
참 포괄적인다. 일단은…. 건물을 하나 갖고 싶다. 지어 올리든 사든. 건물이라는 것엔 상징이 있다. 물론 안정적인 생활도 가능하겠지. 차는 이거 가지면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은데, 또 안 그렇더라. 최신 차를 사도 몇 년 지나면 ‘뉴’가 나온다. 그걸 사면 또 다른 ‘뉴’가 나온다. 그건 그렇고. 궁극적인 것은, 폴 뉴먼인가 로버트 레드포드가 포도 농장을 사서 거기서 생산되는 포도로 주스든 뭐든 만들어서 좋은 일에 쓴다는 얘기를 들었다. 감명 깊었다. 목돈을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끊임없이 회전하는 거니까.

뭘 기를 건가? 포도 하면 영동 포도다.
구체적으로 생각 안 해봤다. 이 세상은 분명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 직업이 화려하다는 생각도 한다. 그걸 즐기는 거고. 하지만 영원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할 필요도 없다. 골 세리머니는 10초에 끝나니까 빛을 발한다. 그걸 한 20시간 하면 그게 빛나겠나?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우와!” 막 그런다. 3개월 지나면 좀 시들해진다. 그러다 6개월 지나면 ‘아… 뭐. 아, 그… 이범수 씨?’ 그 정도다. <외과의사 봉달희> <온에어> 두 번 다 그랬다. 이번도 그럴 거다. 그것도 세리머니를 즐기는 순간이지만…. 진짜인 줄 알고 ‘오버’하면 정신 못 차리는 사람 되는 거지.

내일, 신혼여행을 간다 들었다.
태국으로 간다. 멀리, 정말 멀리멀리 한 달쯤 가고 싶은데. 아직 그렇게는 안 된다. 아직은 휴식이 아니다. 인터뷰, 행사, 연말 시상식이 촘촘히 있다. 1월쫌 돼야 완전히 자유로울 것 같다.

계획은 있나?
나는 태국이라는 것만 안다. 나머지는 아내가 원하는 대로 정했다. 여행갈 땐 항상 만화책을 몇십 권 가져간다. 헌책방에서 노끈으로 묶인 걸 한 질 사뒀다. 책도 몇 권 가져간다. 요즘은 <조선왕조실록>이 무척 재밌다. 연산군까지 읽었다.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김보성
    스탭
    메이크업/ 이가빈(포레스타), 헤어/ 영석(포레스타), 스타일리스트/ 김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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