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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지 마, 죽지 마, 빨리 달리 거야

2012.09.24GQ

이달 가장 유쾌하게 진보한 단 한 대의 차. 9월엔 2013 재규어 XKR-S 컨버터블이다.

엔진 V8 가솔린 배기량 5,000cc 변속기 자동 6단
구동방식 후륜구동 (FR)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9.4kg.m
최고속도 시속 300킬로미터 공인연비 리터당 6.8킬로미터 가격 2억 2천3백50만원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빨리 달리는 차는 많다. 서울 도로가 다 트랙이라면, 좀 더 세세하게 따져봐야 옳다. 배기량과 토크, 접지력과 횡중력, 무게중심과 서스펜션 등. 상상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자동차의 모든 것. 경주에선 무조건 이겨야 하고, 재규어 XKR-S는 딱 그런 자동차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4초다. 포르쉐 911 카레라 S와 비슷한 수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LP550-2보다는 0.2초 느리다. 벤틀리 컨티넨탈 GTC보다는 0.6초 빠르다. 스포츠 모드, 레이싱 모드로 엔진과 서스펜션을 바짝 조여놓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정수리에 피가 몰린다. 인간의 몸은 80퍼센트가 물이라는 걸 격하게 체감할 수 있다. 물구나무 선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면 이런 느낌일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일단 소리와 관련이 있다. 시동을 거는 순간, XKR-S는 가던 사람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엔진 소리를 낸다. 8기통 엔진이 내는 소리는 자극적이다. 여지없이 우렁차긴 마찬가지인데 어딘가 살짝 풀려 있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섹시함이 거기서 나온다. 한 개 더 풀어놓은 단추, 은은하게 비치는 실루엣, 완벽하게 ‘타이트’한 차파오 가운데 칼 같은 옆트임 같은 것들. 달리면, 더 적나라해진다. 후두둑, 단추는 다 떨어진다. 실루엣만 보여주던 천도 찢겨 없어진다. 차파오? 이젠 상상하기 나름이다.

최고속도가 300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최대토크가 70kg.m에 가깝다는 건 거의 모든 주행 영역에서 뒷골이 뻐근하도록 잡아채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패들시프트로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리면서 엔진을 흥분시키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이후의 모든 변속마다 누군가 뒤통수에 지속적으로 잽을 날리는 것 같았다. 습도가 높았던 밤, 경부 고속도로 진입로를 달릴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속도계는 안 봤지만, 다른 모든 차가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았다.

이런 자극을 결국 아름다움으로 수렴한다는 게 재규어 XKR-S의 핵심이다. 얼굴은 좀 퉁명스럽게 생겼다. 엉덩이도 옆으로 퍼져 있다. 전체적으로 양감이 도드라지는데도 공격적이고, 직선도 곡선도 과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절제하는 가운데 빨간색 브레이크, 보닛에 가로세로 선으로 뚫어놓은 숨구멍에서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바우어 앤 윌킨스가 만든 소리는 다른 여느 스피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날 새벽 1시 KBS 1FM은 이제 잊을 수 없게 됐다. 슈베르트 교향곡의 빠르기 그대로 가속페달을 밟다가 비로소 멈췄을 때, 누군가 맑은 목관 악기를 불기 시작했다. 주자의 숨소리가 빗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때, 가만히 지붕을 닫았다. 재규어 XKR-S 운전석에서 온전히 혼자인 새벽의 이런 아름다움.

재규어는 품위와아름다움을 비로소논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회사다.동그랗게 올라오는기어 변속 장치,핸들에 박힌‘귀여운’ 로고를보고 만지다가바우어 앤 윌킨스스피커가 내는소리를 들었을 때의공감각적 쾌락.

1. 벤틀리 컨티넨탈 GTC
엔진 V8 4.0 트윈 터보
배기량 4,000cc
최고출력 507 마력
최대토크 67.3kg.m
공인연비 리터당 7.4킬로미터
가격 2억 6천8백만원
2.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츠

엔진 V8
배기량 4,691cc
최고출력 450 마력
최대토크 52kg.m
공인연비 리터당 5.3킬로미터
가격 2억 4천6백10만원

그래도 다른 차를 사고 싶다면?
2억이 넘는 자동차를 두고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건‘ 취향’ 하나뿐이다. 세 자동차 모두 도로에 있는 다른 모든 차를 한 순간에 정지화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힘과 속도가 있다. 그 와중에 벤틀리의 좌표는 영국적 품위와 고집스런 전통,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츠의 좌표는 이탈리아 특유의 다혈질적 감성과 피를 끓게 하는 배기음에 세밀하게 기울어 찍혀 있다. 지붕을 열고 달릴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해도, 벤틀리와 마세라티의 지향점은 확연히 다르다. 하나 같이 황홀하긴 해도.

    에디터
    정우성
    포토그래퍼
    김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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