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박훈정이 찾은 멋진 신세계

2013.12.04GQ

박훈정은 <신세계>를 쓰고, 찍었다. 결국 새로운 세계를 찾았다.

꽃샘추위가 한창일 때 <신세계>를 봤는데 다시 추워졌다. 개봉 후에 해외 영화제를 바쁘게 다녔다.
올해는 정말 정신없었다. 최근 시체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이번 청룡 영화제에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예전엔 그곳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그 영화제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박훈정이란 이름은 여전히 영화감독보다 <악마를 보았다>, <부당거래>를 쓴 시나리오 작가에 가까워 보인다.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쓰는.
올해는 뭘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한번에 열댓 권씩 사서 몰아치듯 읽는 편인데, 서점에도 자주 못 갔다.

그럼에도 올해 읽었던 것 중에 제일 좋았던 책은 뭔가?
<오디세이아>를 자주 읽었다. 호메로스 전집 같은 것. 고전에 모든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 누군가 박찬욱 감독에게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했냐고 물었더니, 그런 건 잘 모른다면서, 대신 발자크와 같은 고전을 자주 읽는다고 답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로 옮기고, 결말도 바꾸는 훈련을 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는 놀이라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직 ‘재미’로 이야기를 만드는 편인가?
항상 이야기가 떠오른다. 내게 공상하고, 상상하고, 이야기를 읽고 쓰는 건 노는 거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결말이 궁금하니까 계속 쓰게 된다. 캐릭터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은 재미있는 캐릭터다. 말이 많고, 까불거린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남자들에게 지지 받는 캐릭터는 과묵한 편인데, 정반대다.
과묵한 사람은 멋있지 않다. 평상시에도 말수가 적은 사람을 보면, 뭔가 숨기려는 게 있거나, 혹은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편이다.

정청은 유일하게 경찰에게 존댓말을 한다.
정청은 화교 출신으로 소수자 중 소수자다. 그런 와중에 조직의 2인자까지 올라갔으니 어렸을 때부터 생존 본능이 굉장히 강하다. 반대로 이중구(박성웅)는 무서운 게 없다. 처음부터 암흑가의 주류였다. 그러니 경찰도 안 무섭다. 사실, <신세계>는 그런 겁 없는 조폭을 경찰이 인정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커다란 조직폭력배를 사라지게 만들려고 노력해봤자 또 다른 악이 나타나 차지하려고 할 테고, 결국 혼란만 생길 거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강 과장(최민식)은 “달라지는 건 없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정말 달라지는 건 없을까?
요즘 한국영화가 유례없는 호황이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슬픈 현실이다. 사람들이 영화 보는 것 외엔 낙이 없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잊고 싶은 것 아닐까? 항상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면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흥한다. 현실을 보면 짜증만 나니까 차라리 영화 보고, 노래 듣고, 야구 보러 다니는 것 같다.

몇 년 사이에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내게 영화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 하지만 상황을 외면하고 싶다고 영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한다면, 영화는 마약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한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지금 발 딛고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는 건 불편한 지점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난 대체로 그런 의도에서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 같다. <부당거래>를 쓸 땐 대놓고 부조리를 담았다면 <악마를 보았다>는 복수가 과연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짐승 같은 연쇄 살인범 장경철(최민식)에게 엘리트 김수현(이병헌)이 복수하면서 얻는것이 뭘까? 수현이 폭력을 실행하는 과정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 똑같이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쓸 때의 의도와는 달리 작품 자체가 너무 세게 만들어져서 관객들이 그런 부분들을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사람들이 폭력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워야 한다.

<신세계>에서 폭력은 잔인하지만 주인공들은 인간적이다.
누구나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문제지 선과 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그런 선택을 관조하고 싶다. 사실 완벽하게 관조적으로 만든 건 이전 작 <혈투>다. 시나리오도 연출도 완전히 관조적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비평과 흥행 모두 안 좋았다. 우리나라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에게 동화되려고 노력하고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신세계> 같은 경우엔 그 부분을 감안해 한국식으로 맞췄다. 정청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즉 인간적인 캐릭터로, 이자성은 측은하지만 나중에는 멋있게 변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하지만 항상 한발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취재를 할 때도 관조하려고 노력한다.

관조적인 취재라고?
취재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만약 취재원을 소개 받으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 때 하는 취재는 관찰이다. 왜냐하면 조폭하고 이야기해봐야 폼 잡았던 얘기만 한다. 그런 얘기 듣고 영화 찍으면 진짜 조폭 미화 영화가 되는 거다. 어디 가면 조폭을 많이 볼 수 있다고 소개 받으면 그냥 그곳에 가서 앉아 있는다.

무섭진 않나?
아무것도 안 하는데 뭐가 무섭나? 가서 정말 가만히 있는 게 전부다. 아, 조폭 사무실을 가거나 그러진 않는다. 골프 연습장 같은 데 가서 한쪽에서 가만히 본다. 그들끼리 얘기하는 거 듣고, 노는 거 보고, 어떤 차 타는지 본다.

다른 영화를 보는 건 어떤가? 올해 꼽을 만하다거나, 부러운 한국영화가 있을까?
한국영화 중에? 고백하자면 한국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다. 친한 사람들 작품이나 잘 나왔다 하는 작품들은 보지만 굳이 찾아보진 않는다.

최근에 잘 나왔다고 생각한 영화가 있을까?
<살인의 추억>이 가장 최근….

그 영화는 10년 전 영화 ….
<살인의 추억>만 한 한국영화가 아직 안 나온 것 같다.

<설국열차>는 봤나?
봤다. 난 재미있었다. 원작을 아주 좋아한다. 만약 내가 <설국열차> 시나리오를 썼으면 그렇게 못 썼을 것 같다. 원작과 봉준호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 상업적인 지점을 절묘하게 타협을 잘한 것 같다. 더 짧게 자르라는 권유도 있었을 것 같은데, 자신의 고집도 지키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했으니까 투자사도 불만을 가질 순 없지 않을까?

올해 당신의 가장 큰 불만은 뭘까?
여러모로 불만이 커질까 봐 뉴스를 잘 안 본다. 우리나라 뉴스는 자꾸 가공을 하니까, 보면 머리가 아프다. 팩트가 있으면 팩트만 전달하면 되는데 자꾸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가공을 한다.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또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다. 사람들이 좀 똑똑하고 독해졌으면 좋겠다.

정청이 말한 대로 독하게 살고 있나?
그러려고 노력한다. 노력은 하는데 …. 독하게 산다기보단 세상과 단절을 하려고 하는 것 같다.

단절하며 사는 게 독한 걸까?
비겁하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에디터
    양승철
    포토그래퍼
    신웅재
    스탭
    어시스턴트 / 이채원
    기타
    장소 협찬/ 카메라 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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