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누가 뭐래도 멜빌 푸포

2015.03.03GQ

멜빌 푸포는 촬영장에 도착하자마자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촬영 중엔 콜라 한 잔, 점심엔 스시와 화이트 와인 한 병, 그리고 인터뷰 땐 샴페인 한 병을 다 마셨다. 누가 뭐래도 그는 멜빌 푸포였다.

카프 스킨 보머 재킷, 캐시미어 저지 스웨터, 턴업 장식의 블랙 팬츠, 덴버 캡토 슈즈,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스터럽 컬렉션 워치, 랄프 로렌 워치 앤 주얼리.

캐시미어, 실크, 리넨이 섞인 숄 카디건, 검정색 코튼 티셔츠, 얼룩말 프린트 해리슨 팬츠, 에스파드류,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캐시미어 저지 라운드넥 스웨터, 브라운 몽크 스트랩,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스터럽 컬렉션 워치, 랄프 로렌 워치 앤 주얼리. 회색 진 팬츠, 버클이 큰 가죽 벨트, 모두 RRL.

오랜만에 해가 났다. 춥고 어둡고 눅눅한 파리의 겨울 날씨 때문에, 축 처진 어깨가 발에 닿을 참이었다. 플라자 아테네 스위트룸엔 커피와 뜨거운 물이 각각 담긴 은주전자와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인 찻잔들이 테이블 가득 차려졌다. 음악은 제법 크게 울렸고, 촬영팀은 각자의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배우 멜빌 푸포가 룸에 도착했을 때, 그는 혼자였고, 선글라스도 하나 없이 빈손이었다.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한 후, 검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만지며 긴 소파에 앉았다. 큰 창으로 들어온 해가 호텔방 깊은 곳까지 길게 닿았을 때, 스피커 볼륨을 낮췄다. 분위기를 돋우는 데 그의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음악보다 나았다.

혼자 왔어요? 네, 택시 타고 왔어요. 근데 수염은 어떡하죠? 영화가 끝나서 이젠 밀어도 괜찮은데.

수염 있는 게 더 좋아요. 약간만 다듬으면 돼요. 영화 촬영은 어땠어요? 이틀 전에 끝나서, 사실 지금은 약간 피곤해요. 다음 달엔 딸과 휴가 가려고요. 여자친구가 패션 에디터라 밀라노 패션쇼에 갔다가, 다 같이 이탈리아 휴양지에 가기로 했어요.

아시아 휴양지엔 가봤어요? 제주도나 부산도 좋아요. 오래전에 부산영화제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 참 좋더라고요. 칸이나 베니스처럼 큰 영화제는 아니지만 한국인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람들도 화끈하더라고요. 덕분에 노점에서 파는 소주도 마시고, 노래방까지 갔어요. 대부분의 식당이 24시간 문을 열어서 새벽 4시에 아침을 먹은 기억이 나요.

일본에선 당신의 인기가 굉장하던데요? 중국에선 영화 촬영도 했고. 아시아를 좋아하게 됐을 것 같아요. 내가 출연한 영화가 일본에서 많이 개봉돼요. 일본인들이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거기 자주 가요. 작은 집과 빌딩과 새로운 환경들이 다 섞여 있는 매력적인 나라죠. 베이징은 다른 이유로 좋아해요. 차와 매연 속에 있으면 꼭 미래 도시에 있는 것 같아요. 옆에선 끊임없이 건물이 올라가고 있죠. 클럽은 더 대단해요. 모델과 갱스터와 보디가드와 총이 뒤엉켜 있어요. 레이저와 남자 댄서들이 동시에 무대에서 나오고, 비키니를 입고 기계체조를 하는 여자들도 있어요. 홍콩과 베트남, 태국에도 가봤고요.

중국에서 촬영한 후엔 어떻게 지냈나요? 신인 여자감독이랑 <피델리오>란 영화를 찍었어요. 난 선장 역이고 여주인공은 선박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예요. 러브 스토리죠. 모든 작업이 배 위에서 진행됐는데, 실제로 두 달 동안 배 위에서 지냈어요. 한국에서도 개봉했는지는 모르겠네요.

미안한데, 호텔 담당자가 점심 메뉴를 재촉하네요. 뭘 드시겠어요? 우선 콜라 한 잔 주세요. 점심은 새우 스시 세 개랑 참치 스시 세 개면 돼요. 콩드류 와인도요.

콩드류는 뭐죠? 처음 들어보는 와인이에요. 프랑스 와인인데 너무 드라이하지도 달지도 않은 게 딱 좋아요. 지금 시킨 건 비싸지 않지만 아주 비싼 것도 있어요. 내추럴 와인도 많이 마셔요. Vin Nature. 모든 와인에는 상하지 않게 유황을 넣는데, 이건 화학 성분을 넣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요. 맛도 다르고 색도 탁한데 정말 묘하게 맛있어요. 바이오다이내믹이라는 와인도 있어요. 달과 지구와 에너지에 대한 와인이에요. 달과 태양계 주기에 맞춰 포도를 재배하는, 우주와 와인에 대한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어요.

당신을 만나기 전 <여름이야기>를 다시 봤어요. 그때 가스파르는 정말 어렸잖아요. <여름이야기>는 꽤 유명했어요. 전 세계에서 상영됐죠. 전형적인 프랑스 영환데 대사가 아주 많아요. 프랑스 영화가 원래 말이 좀 많잖아요. 촬영할 땐 제 앞에 6명이 전부였어요. 가족 같은 분위기였죠. 옛날 감독들의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거의 20년 전 영화네요. 사실 영화를 시작했을 땐 더 어렸어요. 아홉 살이었으니까요.

울 배라시아 소재의 숄칼라 포멀 드레이크 수트 재킷, 울 개버딘 소재의 크림색 해리슨 팬츠, 포플린 소재 포멀 애스턴 플리티드 드레스 셔츠, 실크 보타이, 콜리스 벨벳 홀스 슬리퍼,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울 배라시아 소재의 포멀 드레이크 디너 재킷, 크림색 해리슨 팬츠, 화이트 셔츠, 실크 도트 타이, 모두 랄프 로렌퍼플 라벨.

솔리드 울 트윌 소재의 네이비 드레이크 스포츠 코트, 코튼 드레스 셔츠, 실크 보타이, 송아지 가죽 소재 다윈 슈즈,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워싱 진 팬츠, RRL.

섬세한 150수 스트라이프 스리피스 드레이크 수트, 클레릭 셔츠, 실크 타이, 실버 타이바, 브라운 몽크 스트랩 슈즈,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다른 애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엄마에게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 영화를 찍었단 얘기네요. 학교 다닐 땐 조용한 편이었어요. 책 읽고 영화 보는 걸 더 좋아했죠. 그러다 방학이 되면 영화를 찍으러 갔어요. 방학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그렇게 라울 루이즈 감독이랑 4년 동안 영화를 찍었어요. 성인이 돼서도 그와 작업을 몇 번 했고요.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에요.

라울 루이즈뿐 아니라 에릭 로메르, 프랑스와 오종, 그리고 자비에 돌란까지, 모든 배우가 원하는 감독들과 작업했잖아요. 어땠어요? 감독마다 성격이 많이 달라요. 전 감독의 의견을 따르는 편이죠. 라울 루이즈는 제 의견을 많이 듣고 싶어 했고, 에릭 로메르는 즉흥적이었죠. 반대로 자비에 돌란은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했어요. 영화 속 의상과 음악, 모두 그가 맡았죠. 실제로 ‘패션 홀릭’이기도 하고요. <로렌스 애니웨이>로 많이 유명해졌잖아요. 나이도 어리고요.

한국에서 <로렌스 애니웨이>가 큰 상영관에서 개봉했지만, 한국인은 아직 당신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어요. 코미디나 블록버스터 같은 상업 영화에 거의 출연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죠. 그랬다면 지금보다 인기도 많고 돈도 많이 벌었을 거예요.

당신처럼 유명한 프랑스 배우가 돈이 없다는 말인가요? 비싼 차와 큰 집은 다 어쩌고요. 몽마르트에 집이 하나 있어요. 그렇게 크지도 않아요. 그게 전부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많이 가긴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 집은 없어요. 물론 차도 없고요.

많이 버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좋은 레스토랑과 택시, 나이트라이프에 쓰는 게 다예요. 예전엔 즐기는 데 시간과 돈을 많이 썼어요. 클럽을 여러 개 가진 친구가 있어서 파티도 많이 열었죠. 이제는 좀 침착해졌달까요?

그럼 지금은 뭐에 관심이 있나요? 함께 사는 딸이요. 딸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죠. 근데 쉽지 않아요. 열네 살, 사춘기거든요. 감정 기복이 심하지만 그건 지극히 정상이죠. 문제는 아이폰이에요. 거기서 딸을 꺼내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친구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고요.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 모두에게 답을 해야 하니까요.

당신도 아이폰이 있잖아요. 아이폰이 있었는데 바다에 빠뜨린 이후로 구식 노키아 휴대전화를 써요. 생각해보니 나는 아는 사람은 많지만 그들의 연락처가 없어도 되는 직업을 가졌더라고요. 아이폰이 없으니까 더 조용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비약하자면 아이폰의 사과와 성경 속 아담의 사과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자, 촬영과 인터뷰는 여기까지예요. 오늘 어땠어요? 재미있었어요. 사진과 의상도 마음에 들고 와인도 좋고요. 생각보다 빨리 끝난 걸 보니 사진가와 에디터, 모두 사진이 마음에 드나 봐요. 원래 확신이 서지 않으면 오래 걸리잖아요. 책 보내줄 수 있나요? 두 권만요. 엄마에게도 한 권 드리고 싶어요.

이탈리아 울 소재 켄트 스포츠 코트, 캐시미어 크루넥 케이블 스웨터, 크림색 해리슨 팬츠, 몽크 스트랩 슈즈,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인디고 리넨 데님 스리피스 수트, 클레릭 셔츠, 네이비 실크 타이, 송아지 가죽 소재 다윈 슈즈, 실크 양말,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에디터
    패션 / 강지영, 박나나(PARK, NA NA)
    포토그래퍼
    목나정
    헤어&메이크업
    프레데릭 켑바비 (FREDEROC KEBBABI @ B AGENCY)
    프로듀서
    박인영
    어시스턴트
    정민혜
    장소
    호텔 프라자 아테네 파리 (HOTEL PLAZA ATHENE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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