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랄프 로렌’이라는 거대한 왕국

2018.10.19GQ

랄프 로렌이 지난 50년간 보여준 건 단순히 옷이 아니라 스타일에 대한 철학이자 삶의 양식이었다. 그는 패션으로 결코 무너지지 않는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

“만약 누군가 ‘랄프 로렌스럽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92년 랄프 로렌에게 CFDA 평생 공로상을 건네며 오드리 헵번은 이렇게 말했다. 랄프 로렌이 보여주는 스타일과 이미지는 너무나도 분명하니까. 올해는 브랜드를 설립한 지 50주년 되는 해. 랄프 로렌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뚜렷하고 공고하다. 면면을 살펴보면 더 놀랍다. 아이비리그풍 재킷과 셔츠,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개츠비가 입을 법한 글래머러스한 턱시도, 테니스 스웨터와 스포티한 윈드브레이커, 색색깔의 폴로 셔츠까지. 결코 한데 묶일 수 없을 것 같은 아이템들이 랄프 로렌이라는 이름 아래 이렇듯 정연하다. 이토록 방대한 스타일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디자이너가 또 있던가? 랄프 로렌이 패션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만큼 독보적이다. 1939년 브롱크스의 유태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랄프 로렌은 1968년 5만 달러를 대출 받아 폴로를 시작했고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코티상 다섯 개 부문을 모두 석권한 최초의 디자이너, 전 세계에 466개의 매장을 거느린 거대 기업의 수장, 미국 패션의 신화적인 아이콘. 그를 수식하는 타이틀은 많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랄프 로렌이 이룬 업적은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랄프 로렌을 가장 미국적인 디자이너라고 평한다. 니트 위에 성조기를 얹거나 올림픽 국가 대표의 유니폼을 디자인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문화와 양식을 패션으로 구체화했기 때문에. 그는 영국의 귀족주의와 미국의 합리주의를 섞고, 개척 시대의 웨스턴 스타일, 프레피 룩, 할리우드 문화, 스포츠 같은 다양한 요소를 융합해 실용적이면서 근사한 옷을 만들어냈다. 또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단순히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유한 아이디어와 해석을 더해 새로운 문법을 썼다. 전통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기성세대부터 부유한 상류층, 전문직 종사자와 혈기 넘치는 십 대까지, 나이와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랄프 로렌의 옷을 입었다. 그는 한결같은 비전과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으로 브랜드의 철학과 영속성을 제시했다. 랄프 로렌은 미국의 클래식을 대표했고, 이들이 만드는 것이 곧 미국적인 것이 되었다. 게다가 랄프 로렌의 관심은 옷에 국한되지 않았다. “통합적이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성시키는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랄프 로렌은 세련되고 우아한 삶의 양식을 디자인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그는 남성복과 여성복, 아동복, 액세서리, 향수, 시계, 홈 퍼니싱, 심지어 레스토랑과 바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으로 손을 뻗었다. 사람들은 그의 셔츠를 입고 폴로 향수를 뿌리며, 랄프 로렌 이불 속에서 잠을 잤다. 그가 제시한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옷을 입는 사람들의 변화를 디자인한다”는 그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진실되게 들린다. 랄프 로렌을 그저 패션 디자이너라고만 부를 수 없는 이유다.

RALPH LAUREN TIMELINE

1967 폴로라는 상표로 넥타이 라인 출시
1968 남성복 라인 폴로 바이 랄프 로렌 론칭
1969 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서 제품 판매 시작
1970 랄프 로렌, 첫 코티 어워드 수상
1971 여성용 테일러드 셔츠 라인 출시, 베벌리힐스 로데오 드라이브에 첫 매장 오픈
1972 스물네 가지 색깔의 폴로 셔츠 출시, 뉴욕 21 클럽에서 첫 남성복 쇼 개최, 폴로 랄프 로렌 여성복 라인 출시
1974 여성복 부문에서 첫 번째 코티상 수상
1976 남성복 부문에서 코티 명예의 전당상 수상
1977 여성복 부문에서 코티 명예의 전당상 수상
1978 첫 번째 향수 폴로 포 맨과 로렌 출시, 미국 서부에서 영감을 받은 웨스턴웨어 소개
1980 가죽 액세서리와 속옷 라인 시작
1981 런던 뉴 본드 스트리트에 첫 해외 매장 오픈
1983 홈 컬렉션 론칭, 라이프스타일 콘셉트 소개
1984 사파리 컬렉션과 잉글랜드 컬렉션 발표
1986 뉴욕 라인랜더 맨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파리 마들렌에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CFDA 선정, 올해의 리테일러상 수상
1989 니나 하이드 유방암 연구 센터 공동 설립
1990 남성과 여성을 위한 폴로 골프 컬렉션 론칭
1992 CFDA로부터 평생 공로상 수상
1993 남성 캐주얼 라인 더블알엘 RRL 론칭, 액티브웨어 라인 폴로 스포츠 론칭, 매디슨가 888번지에 폴로 스포츠 매장 오픈 1994 최상위 라인 랄프 로렌 퍼플 라벨 시작
1995 CFDA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 수상
1996 로렌 바이 랄프 로렌과 폴로 진 라인 론칭, CFDA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 수상, 랄프 로렌 홈 컬렉션에 페인트와 벽지 도입
1997 6월 12일, 뉴욕 증권 거래소에 기업 상장
1998 프로페셔널 애슬레틱웨어 RLX 론칭
1999 시카고에 첫 번째 레스토랑 RL 오픈
2000 뉴욕 컬렉션에서 핑크 포니 캠페인 소개, NBC와의 제휴로 Polo.com 웹사이트 론칭
2001 폴로 랄프 로렌 파운데이션 설립
2002 밀라노에서 첫 남성 퍼플 라벨 패션쇼 개최, 랄프 로렌 블루 라벨과 향수 폴로 블루 론칭
2003 매디슨가 872번지에 아동복 매장 오픈, 맞춤형 폴로 셔츠 CYO 프로그램 시작
2004 럭비 바이 랄프 로렌 론칭
2005 US 오픈 테니스 대회 유니폼 스폰서 계약, 남성을 위한 랄프 로렌 블랙 라벨 론칭
2006 윔블던 테니스 대회 공식 유니폼 스폰서 계약, <타임>지, 랄프 로렌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으로 선정
2007 40주년을 기념하는 책 <랄프 로렌> 발간,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40주년 패션쇼 개최
2009 SIHH에서 랄프 로렌 타임피스 공개
2010 파리 생제르맹에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뉴욕과 런던에서 세계 최초의 4D 패션쇼 개최
2011 파리 장식 미술관에서 랄프 로렌 자동차 전시
2014 US 오픈에서 폴로테크 스마트 셔츠 공개, 런던에 첫 번째 커피숍 Ralph’s Coffee 오픈
2015 프라이빗 럭셔리 클럽 팔라조 랄프 로렌 오픈, 뉴욕에 레스토랑 The Polo Bar 오픈
2016 런던에 폴로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2017 새로운 향수 폴로 레드 익스트림 출시, 폴로 스타디움과 스노 비치 컬렉션 론칭

 

Wimbledon Collection
폴로라는 브랜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우아하고 신사적인 스포츠는 랄프 로렌의 오랜 관심사였다. 그는 2006년부터 윔블던 챔피언십의 공식 유니폼을 제작하며 테니스를 브랜드 아이덴티티 안에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랄프 로렌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윔블던의 공식 의상을 만들고 있으며, 체어 엄파이어와 라인 엄파이어, 볼 보이, 볼 걸 모두 그가 만든 옷을 입는다. 네이비 블레이저와 매치한 화이트 팬츠, 크림색 브이넥 스웨터와 바이어스 커팅 스커트는 테니스 코트 위에서 더 근사해 보인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가 이 옷을 즐길 수 있도록 폴로 랄프 로렌 윔블던 컬렉션을 선보였다. 빈티지 테니스 포스터가 그려진 인타르시아 스웨터와 윈드브레이커, 테니스공에서 영감을 얻은 플리스 스웨터가 특히 눈길을 끈다.

 

Ralph Lauren Purple Label
모두가 폴로 셔츠와 데님 팬츠, 스니커즈에 열광하던 1990년대 초반, 랄프 로렌은 정교하게 재단한 영국식 수트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고상한 취향과 날카로운 안목을 가진 남자들을 위해 1994년 남성복 최상위 라인인 퍼플 라벨을 론칭했다. 최고급 소재와 정교한 디테일, 완벽에 가까운 마감으로 완성한 퍼플 라벨은 랄프 로렌이 꿈꾸는 남성복의 정수였다. 상체를 부각시키는 장중한 수트와 화려한 턱시도, 드레스 셔츠와 도톰한 보타이는 물론 활동적인 남자를 위한 스포츠 코트와 우아한 가죽 블루종도 곁들였다.

 

Womenswear Collection
랄프 로렌은 1971년부터 고유한 비전을 갖고 여성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성복의 세부에서 힌트를 얻어 테일러드 재킷과 여성용 수트, 남자 셔츠를 변형한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소개했다. 그의 옷을 입은 여자는 우아하면서 당당해 보였고, 이것이 랄프 로렌을 다른 브랜드의 여성복과 확연히 구분 지었다. 랄프 로렌의 세계가 확장되면서 여성 컬렉션도 다양한 색깔과 깊이를 갖게 되었다. 프레피 스타일의 트위드 재킷과 카우 걸을 연상시키는 스웨이드 블루종, 사파리 점퍼와 승마 바지, 에드워드 시대의 문양을 더한 원피스와 하늘거리는 이브닝 드레스 모두 랄프 로렌의 여성복을 정의했다. 지금은 랄프 로렌 컬렉션과 폴로 랄프 로렌, 로렌, 세 라인으로 여성복을 소개하고 있다.

 

Restaurant & Bar
1999년 시카고에 RL을 열어 미식가들에게 호평을 받은 랄프 로렌은 2010년 파리 생제르맹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때도 레스토랑 Ralph’s를 잊지 않았다. 그는 블랙 앵거스 비프와 햄버거, 치즈 케이크처럼 미국적인 음식을 골라 메뉴에 올리고, 콜로라도 개인 목장에서 소고기를 가져오는 등 완벽한 아메리칸 퀴진을 선보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아름다운 인테리어와 고급스러운 식기, 마음을 담은 환대도 이곳에서의 식사를 특별한 경험으로 만드는 데 한몫 했다. 음식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까다로운 파리지앵도 랄프 로렌의 레스토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이어 오픈한 런던의 Ralph’s Coffee와 뉴욕의 The Polo Bar도 금세 도시의 명물이 됐다.

 

Home Collection
패션을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확장시키려는 랄프 로렌의 열정은 1983년 홈 컬렉션 론칭으로 이어졌다. 그는 브랜드의 시그니처 패턴과 색감을 활용해 베딩, 타올, 러그 같은 아이템을 선보였다.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최초의 홈 컬렉션이었다. 뉴욕 업타운 라이프를 반영한 랄프 로렌의 홈 제품은 사람들에게 세련된 취향과 고상한 생활 양식을 제시했다. 섬세한 자수와 프린트로 장식한 침구류부터 벨벳으로 감싼 의자, 로즈우드 테이블, 화려한 커틀러리, 크리스털 디캔터, 액자와 화병 같은 인테리어 소품까지, 모든 아이템이 랄프 로렌의 세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었다.

 

Rheinlander Mansion Store
랄프 로렌의 세계를 한눈에 확인하고 싶다면 뉴욕 매디슨가 867번지에 우뚝 서 있는 라인랜더 맨션 스토어로 간다. 1890년대 킴볼 앤 톰슨 Kimball & Thompson이 설계한 이 맨션은 맨해튼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역사적인 건축물로, 20세기 초 어퍼 이스트의 화려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랄프 로렌은 라인랜더 맨션을 복원하기 위해 1983년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하고, 1986년 1만6천 평방피트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을 브랜드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로 변신시켰다. 마호가니로 만든 가구와 흑단 목조 벽틀, 가죽으로 감싼 선반, 고풍스러운 카펫, 19세기의 초상화로 호사스럽게 장식한 라인랜더 매션은 퍼플 라벨을 비롯, 폴로와 더블알엘, RLX 등 랄프 로렌의 모든 남성 라인을 아우르며 메이드 투 메저와 액세서리 맞춤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에디터
    윤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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