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의 드러나지 않는 것

2020.02.19GQ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한다.

다니엘 보이드는 자주 침묵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말하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눈꺼풀을 반쯤 내리고 침묵 속에서 자신이 할 말들을 헤아렸다. 입을 열었을 땐 혀 위에 굴러다니는 말들을 재점검하는 듯 조심스러웠다. 대화는 즉각즉각 이어지지 않았고 그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길어 올린 말들은 거추장스럽지 않았고 진실에 닿았다. 다니엘 보이드가 말하는 방식은 자신의 작품과도 닮았다. 그는 유럽 중심적 사고로 기록된 호주의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호주 식민 시절 원주민이 남긴 모래 드로잉과 식민 지배자들이 기록한 인물들의 초상들을 차용해 검은색 바탕 위에 하얀 점들을 반복적으로 찍어 이를 새롭게 복원한다. 역사는 결국 주관적으로 규범화된 서사라는 의미. 다니엘 보이드의 작품은 하얀 점으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까만 공간들. 이 여백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공간이자,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그의 화법처럼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도 침묵 속에서 명확히 성립된다. 이어지는 인터뷰는 다니엘 보이드의 말과 생각을 옮겨 적었지만 어쩔 수 없이 에디터의 관점으로 서술했다. 그의 작업관과 메시지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개인전 <항명하는 광휘>가 마련된 국제갤러리 부산점을 찾길 추천한다. 전시는 2월 29일까지 이어진다.

당신의 작품은 흑백의 대비가 강렬하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공들여 들여다보게 만들어요. 또 그 안에 담긴 의미도 곱씹게 되고요. 사람들이 작품의 비주얼과 서사 중 어떤 부분에 더 끌리는 것 같나요? 글쎄요, 제 입장에서 시각적인 해석은 관객을 이끄는 장치예요. 작품이 담고 있는 콘텐츠와 소통하게 만드는 유인책인 거죠.

작업의 시작점이 된 근원적인 동기나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타인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라는 자문에서 시작했어요.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제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인식하기 위해 작품을 그렸어요. 제 문화적 뿌리는 특정 국가와 종교적 행위에 의해 규범화된 산물이라 할 수 있어요. 과거 침략을 당했고 문화의 소유권을 빼앗겼어요. 또 영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당했어요. 그 뒤로 호주의 역사는 영국 점령 이후에 시작된 것처럼 여겨지고 있어요. 이전의 역사가 존재하지만 언급되지 않죠. 그런 식으로 소실된 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작업의 시발점이 됐어요. 작품에서 각 점은 세상과 역사를 바라보는 렌즈를 상징해요. 그 사이의 검은 공간은 미지의 역사, 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의미하고요. 사람들의 일방적인 인식을 바꾸고, 규범화된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제 작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호주 식민지 시기에 영국인들이 촬영한 원주민 지도자 ‘샌디 왕 King Sandy’의 사진이나 원주민이 남긴 모래 드로잉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 소개했어요.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자료들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감정은 남다를 것 같아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해요. 당시 선조들은 식민 지배자들에 의해 사진에 담겨 사료로 남게 됐으니까요. 자료 조사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기도 해요. 샌디 왕이 제 선조이며 저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어요. 아까 말했듯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문에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단서를 찾은 거죠. 사실 유색인종이나 원주민은 미술사에서 다루지 않거나 변두리로 인식됐어요. 저는 그들을 제 커리어의 중심으로 끌어왔어요. 이것 또한 의미가 있어요.

초기작인 ‘We Call Them Pirates Out Here’는 1770년 호주의 보터니만에 상륙한 제임스 쿡을 해적으로 묘사한 작품이에요. 유럽의 탐험 정신을 상징하는 장면을 침략과 약탈의 순간으로 재해석하면서 이를 전형적인 회화 기법으로 그렸어요. 지금의 표현 방식으로 넘어올 때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회화라는 시각적 언어가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이전의 회화는 서구에서 규범화된 기법이에요. 그래서 그보다 더 자유롭고, 다양한 관점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게 바로 지금의 도트 기법이에요.

점들의 반복은 호주 원주민들의 전통 회화 기법이라고 들었어요. 그건 의도하지 않았어요. 오래 전 호주 사막에서 흰 점을 반복적으로 찍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어요. 이처럼 사람들이 제 작업과 전통 기법을 연결해서 이야기하는 게 흥미롭게 느껴져요.

이번 전시의 제목인 <항명하는 광휘>에 대해서 묻고 싶어요. 누구에게나 반항심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의 작품은 무엇과 대립하고 있나요? ‘항명’이란 단어는 제 작업이 일반적인 규칙, 규범,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단순히 기록된 역사를 다루는 게 아니라 제 전시에는 역사성과 시공간을 접합하거나 확장하는 개념이 담겨 있어요. 예를 들어 주로 차용하는 선조들의 이미지는 사진이란 물질적 속성을 지녔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사진이기도 하죠. 기록물로 머물던 사진이 저와 관계를 맺고, 새로운 역사적 의미가 더해지면서 발생하는 미학성을 사람들이 봐줬으면 해요.

한국에서 열리는 첫 전시예요. 호주 역사의 재해석이란 서사를 넘어 이번 전시가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작품이 지닌 특정 서사나 내레이션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제 작품은 시의 성격을 띤다고 생각해요. 열린 해석이 가능하고 시상과 같이 어떤 대상과 사람을 떠올리게 해요. 사람들이 시각적 언어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서사를 이해하면 좋겠어요. 야자수를 이야기할 때, 어떤 사람에겐 집 앞에 심은 나무가 야자수일 수 있고, 누군가는 휴양지에서 본 나무가 야자수일 수 있어요. 이렇듯 하나의 단순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저마다 다른 의미를 둬요. 시공간에 걸쳐 형성된 다양한 레퍼런스가 있을 수 있고요. 우리 앞에 놓인 커피를 예로 들까요? 이 커피도 바리스타, 서버, 마시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서사가 나올 수 있어요. 이렇듯 다양한 경험과 지식, 이해에 기반한 복잡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과거가 아니라 지금 역사를 보는 관점도 궁금해요. 우리가 접하는 역사 중에 사실 그대로의 역사가 존재할까요? 역사는 이해와 관계에 대한 서사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해요. 발전하고 진보하기 위해서는 배우려는 것에 대해 항상 의구심과 의심을 가져야 해요.

흥미로운 작업 소식을 들었어요. 시드니의 광장에 30미터가 넘는 높이의 거대한 캐노피를 선보일 예정이라면서요. 검은색 천장에 무수히 많은 원형의 유리를 장착한 설계 이미지를 봤는데 당신의 회화 작품을 연상케 해요. 회화 작품과 마찬가지로 원형의 유리는 렌즈를 의미해요. 그곳을 통해 광장으로 빛이 투과되기도 하고 사람들은 유리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캐노피의 천장 뒤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상상할 거예요. 또 구름은 계속해서 이동하잖아요. 그 움직임을 유리를 통해 관찰하는 동안 캐노피와 주변 건물들이 움직이는 오브제처럼 느껴지면 좋겠어요.

당신의 인생에서 역사적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바로 지금요. 다른 나라에서 전시를 하고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저는 끊임없는 관계성 속에서 살고 있어요. 가족, 부모님, 친구, 동료 그리고 이번 전시를 준비해준 이들까지, 저와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은 모두 중요한 존재예요.

자신이 누구인지, 본질을 깨닫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는데 실마리를 어느 정도 찾았나요? 아직요. 앞으로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제 뿌리를 이해하게 됐고, 앞으로 가야 할 미래의 방향도 찾았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제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거예요.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김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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