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열은 연기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서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당신을 처음 본 건 TV 단막극 <신파를 위하여>에서였다. 처음 보는 배우라 신인 인줄 알았다.그런데 신인이 보일 만한 급의 연기는 아니었다. 재연배우일까 생각했었다. 찾아보니 이미 뮤지컬계에선 스타였다. 신인 맞다. 뮤지컬 쪽에서도 아직 신인이고.
경력이 대충 따져도 7년인데. 멀었다. 오래 연기 할 거라 지금도 신인이라고 생각한다.그래도 신문에서 ‘7년 만에 무명시절을 벗어나’ 같은 기사를 보면 속이 끓지 않나? 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배우는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도마 위의 생선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보니까 객관적인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가짐은 무슨 일을 하든 좋긴 하지만, 너무 엄격해지면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맞다. 그래도 휘둘리기보다 확실한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된다.
당신은 뮤지컬에서는 주연이었다. 그런데 영역을 확장하면서 조연 탤런트로 알려지고 있다. 뮤지컬에서 계속 주연의 경력을 쌓아갈 수 있는데 굳이 TV로 갈 이유는 뭔가? 이것저것 많이 해보고 싶다. 그건 내 욕심이다. 당신처럼 말하는 팬들도 많다. 왜 굳이 거기가서 별로 나오지도 못하는데 고생하냐고. 그런데 나는 영화도 해보고 싶고 연극도 해보고 싶다. 케이블에서 했던 <별순검>이나 지금 출연하고 있는 <일지매>를 하고 나서, 뮤지컬 <쓰릴 미> 무대에 다시 섰을 때 분명히 달라졌다.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무대는 잊지 않겠지만,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럼 왜 처음엔 굳이 뮤지컬이었나? 처음엔 영화나 드라마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대연기가 다인 줄 알았다. 고등학교 때, 어린 마음에 드라마나 영화는 연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경욱 선생님 만나 뮤지컬을 배웠고 이후 <지하철 1호선>이란 작품을 하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신파를 위하여>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런데 하고 나니까 너무 달랐다. 무대연기하고. 평범한 캐릭터들이 가진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내는것.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욕심이 생겼다. 영화도 해보고 싶다.
따지고 보면 <일지매>로 다시 <지하철 1호선>때와 비슷한 상황이 됐다. 또 이래야 되나란 생각은 안 드나? 그때는 마냥 좋았고 지금은 좀 더 치열해진 것 같다.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작품 보는 눈도 달라지고 프로필도 생각하게 된다. 자꾸 욕심을 안 가지려고 노력한다. 입버릇처럼 생각한다. ‘평생 이 짓 할 테니 당장 욕심 부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라고. 굵고 길게 가고 싶다.
그래도 결국엔 하나를 선택해야 될 텐데. 다 한다는 건 힘들고. 그런 사례도 거의 없고. 연극을 하다가 드라마도 하고 영화도 하시는 분이 있긴 하다. 외국은 사례가 더 많고. 그래도 간판이 하나는 걸려 있지 않나. 영화배우, 뮤지컬배우, 탤런트 등. 뭐가 되고 싶나? 영화, 드라마, 뮤지컬 세 개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걸어주는 간판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최수종 선배 같은 경우 영화를 해도 탤런트 아닌가.
최수종은 압도적으로 드라마를 많이 했으니까…. 그럼 전광렬 선배로 하자. 반대로 류승범 선배는 TV에 나와도 영화배우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그런 게 만들어지는지.
자신의 의지가 반 이상 작용하는 거 아닐까? 그런 것 같다. 나는 당신이 힘들다고 말하는 걸 진짜 하고 싶다. 세 개 다 하고 싶다. 무대, 영화, 드라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주인공을 하기 더 힘들지 않을까? 시나리오나 역할을 보다 보면 주인공이 아니라도 욕심이 확 날 때가 있다. 어쨌든 이야기의 중심축은 주인공이지만, 조연도 사람이기 때문에 나름의 축이 있다. 앞으로도 주인공보다는 배우가 되려고 할 거다.
무대의 연기와 카메라 앞에서의 연기는 다르다. 왔다 갔다 혼란스럽지 않나?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인물의 진실을 알리면 되니까. 다만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에서는 잘못된 연기를 하면 ‘이게 아니구나’를 바로 알 때가 있다. 즉각적이다. 영상은 연출자의 관점이 크다. 연출자와 같이 가야 된다. 무대는 죽어라 연습을 해서 올라가야 되고, 영상은 여러 방면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배우의 상상력을 좁은 프레임 안에 꽉 차도록 채워 넣어야 하니까.
아직 연기 별로라는 이야기는 없으니 당신의 생각이 맞나 보다. 내가 볼 때는 참 별론데. 많이 헤맨다. 연극하다 영화하던 사람이 오랜만에 연극으로 돌아오면 힘들다고 한다. 호흡만 해도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쭉 가지고 가는데 드라마나 영화는 끊어서 간다. 그게 반복되다 보면 연극으로 돌아와서도 막 끊긴다. 이번에 <일지매> 찍다가 오랜만에 <쓰릴 미> 하니까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었다.
당황스러웠나? 이런 거구나 싶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배우는 만족하면 그 순간 멈춘다. 난 연기생활 끝날 때까지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TV에서는 <신파를 위하여>가 당신이 보여준 연기의 최고치다. 다른 드라마들에서는 에너지를 숨기고 어울려가고 있는데 답답하지 않나? 내 감정이 카메라 앵글에서 벗어나 있으면 답답할 때도 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는 어우러져야 된다. 전체적인 톤이 있더라. 몰랐는데 드라마를 다 찍고 나서 전체를 보니까 알겠더라. 조화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쓰릴 미>의 냉혹함, <신파를 위하여>의 선함, <일지매>의 까불까불함 등 캐릭터가 계속 바뀐다. 어떤 게 몸에 제일 잘 맞나? 처음에 <쓰릴 미> 시나리오 받았을 때 어떻게 동성애자에 살인자 역할을 할까 걱정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때그때 달라졌다. 가장 어려운 건 뮤지컬 <김종욱 찾기>였다. 주인공이 약간 바보스러울 정로도 멍청하고, 착하기도 하면서 얌체 같기도 한 캐릭터다. 그런 캐릭터가 어려웠다. 확실한 뭔가가 있으면 하나를 부각해 던지면 된다. 그러나 복잡미묘한 감정을 가진 주인공은 그게 안된다. 앞으로 다양성을 갖고 있는 캐릭터에 도전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지금 밖에서 술에 취한 사람이 울면서 지나가면 우리가 볼 때 되게 웃길 것 같지 않나?
웃길 것 같진 않다. 웃길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사람에게는 술을 혼자 마시고 울게 되기까지의 드라마가 있을 것 아닌가. 그 장면만으로 드라마가 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런데도 특별해 보이지 않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배우는 누군가? 에드워드 노튼? 지금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좋게 이야기하면 신비감이 있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알 때가 돼도 변화무쌍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계속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다.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은가? 모르겠다. 꼭대기는 아직 안 보인다.
지금 있는 배우들 중 아무도 없나? 이렇게 말하면 선배들에게 죄송하지만, 거쳐가는 관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는 그런 존재들이 후배들이 될지도 모르지.
<별순검>과 <일지매>는 둘 다 ‘퓨전사극’이라고 칭하는 장르다. 우연일지 모르겠지만, 당신의 외모와 닮은 면이 있다. 소년과 어른, 광기와 순진함, 굵은 선과 얇은 선의 모습이 다 보이니까. 배우로서는 좋지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기는 힘들다.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드나? 예전에는 콤플렉스였다. 어디서 본 듯하다, 누구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잘 생겼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좋은 청년 이미지. 멋있게 보이고 싶어 답답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내 외모에 감사한다. 가능성이 많은 얼굴이라 생각한다.
당신이 원하는 연기 스타일에는 잘 맞는다. 사람들은 다 장점을 갖고 있으니까. 배우는 그런 걸 빨리 알아야 된다. 자기한테 어울리는 게 뭔지를.
이제 스물 일곱 살. 요즘은 데뷔 시기도 빨라지고, 빨리 유명해지고 싶어 안달인 이들이 가득한데. 그 속에서 느끼는 스물 일곱 살은 어떤가? 배우로서는 아직 어리고 연예인으로는 많은 나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가끔은 다급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것도 필요하고. 그래도 충분히 둘러보고 뒤도 한번 돌아보며 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나중엔 배우라는 호칭을 듣게 되지 않을까.
애늙은이라는 이야기 안 듣나? 가끔 듣는다. 내 또래 친구들과 있으면, 혼낼 때도 있다. 그래서 나에게 기대는 친구도 있고 떠난 친구도 있다. 그런데 난 그런 거 잘 못 견딘다. 내 사람이 바른 길이 아닌 곳으로 가는 것 같을 때. 물론 나보다 생각이 깊은 이들도 많지만, 이 일을 하려고 하는 친구들과 후배들이 안타까워 보일 때가 많다.
빤히 보이는 거? 맞다. 대중 앞에서 가진 것들을 금방 소진하면 대중들은 돌아서기 마련이다. 자꾸 고민하고 더 넓게 보고 길게 생각해야 되는데. 그래서 친구들 만나면 말이 많아진다.
40~50대 배우와 인터뷰 하는 기분이다. 생각만 많다. 앞으로 잘 해야지.
일만 할 것 같다. 여자친구 있다. 1년 넘었다.
연애할 때는 어떤 스타일인가? 일이 바쁘다 보니 최대한 많이 신경 쓰려고 노력한다. 그게 노력으로 비춰지면 안 되는데, 그렇게 보일까봐 걱정이다.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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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