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부터 올라왔다. 실패를 이야기하며 성공했다. 잃을 게 많이 늘었지만, 리쌍의 두 남자는 여전히 자신 있게 볼륨을 높인다.
앨범 발매 당일, 새 앨범 수록곡이 몇몇 주요 음원 차트에서 1위부터 10위까지를 독식했다. 이 정도일 거라 예상했나?
개리 진짜 말도 안 되게…. 예상 못했다. 기대는 좀 했지만. 매니저가 캡처해서 보여줬는데, 장난치는 건 줄 알았다. 합성한 줄 알고.
길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많이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두 사람 다 주말 예능에 출연 중인데, 음반 작업하면서“ 변하는지 두고 보자” 같은 시선이 부담되진 않았나?
개리 대놓고 얘기는 못하니까. 난 예능 나간 지 1년 정도 됐는데, 작업하면서 절대 음악을 게을리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예능 때문에 가사가 바뀌었네, 색깔이 바뀌었네 같은 얘기를 듣기 싫어서 스스로 더 깐깐히 검열했던 것 같다.
길 같이 일하는 분들이 10년 전 1집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작업하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음반 나오면 피드백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인가?
길 앨범 나오기 전의 피드백을 중요시 여긴다. 오늘 뭘 만들면 그날 만나는 친구, 형, 동생한테 다 물어본다. 가이드만 되어 있는 것도 다 들려준다. 그리고 그 사람의 반응을 관찰한다. 앨범 나오고 나서의 피드백은 별로 신경 안 쓴다. 다 나오고 나서 이 부분 이상해요, 이 가사 좀 그래요, 이 사운드 별로예요 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료 뮤지션이나 전문가의 반응보단 대중의 반응이 더 중요한 건가?
길 더 중요하다. 듣는 사람의 눈빛이 제일 중요하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 오늘 처음 만나서 우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다 들려준다. 그게 어렸을 때는‘ 쪽팔렸다’. 지금은 무조건 한다. 물론 우리 생각이 제일 중요하다. 우리가 듣기에 좋은 노래면 술자리 가서 더 자신 있게 볼륨을 키운다.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음악이 지난 음반과 비슷하다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길 비슷하겠지. 한 사람이 만드는데. 도자기 장인이 도자기를 만들 때, 우리가 보기엔 똑같아도 다 부순다. 이런 예를 들기 좀 민망한데, 어쨌든 음악도 똑같은 것 같다. 상대방이 듣기엔 똑같지만 내가 듣기엔 예전보다 발전되니까 내놓는 거다. 비슷하다고 평가를 하시면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개리 가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좋고 나쁘고하는‘ 퀄리티’의 문제라기보단 작법의 문제에 가깝다고 본다. 여성 보컬의 참여, 따뜻한 샘플링 위주의 사운드처럼 리쌍이 오랫동안 지켜온 것들.
길 그런 걸 쓰면 꼭 타이틀이 된다. 그 분야에선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 난 오히려 이번 앨범에서‘ 강남 사짜’를 타이틀로 하고 싶었다. 외국의 특정 음악과도 닮지 않은 새로운 곡이라고 생각했고,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 TV를 껐네’보다 더 먼저 가고 싶었다. 그런데 스태프들의 의견은 좀 달랐다. 식구들 생각을 배제할 순 없으니까. 그래도 내 나름대로는 국카스텐 같은 색다른 장르의 뮤지션들이랑 작업하면서, 기존의 리쌍표 음악과 다른 것도 만들고 있다. 어느 날 그런 곡이 타이틀로 선정되고 사랑을 받으면 비로소 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엔 망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걸 한번 해볼까 하다. 그룹 갱스타Gangstarr의 구루Guru가 갱스타의 색깔과는 좀 다른 〈Jazzmatazz〉시리즈를 만들었듯이. 언플러그드가 될 수도 있고, 일렉트로니카가 될 수도 있다.
개리 그래도 자기 색깔이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리쌍 하면 떠오르는 색깔이 진한 편이고, 벌써 7집까지 왔으니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예전에 한 번 신경 쓴 적이 있는데, 주변에서“ 야, 이런 음악은 너희밖에 못하는 건데 그냥 해”라고 했다. 개인적으론 다르게 가사를 써본 적도 있는데, 안 맞는다. 안 어울린다. 색깔을 가꾸고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든 작업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신곡‘ 독기’의 가사를 보면, 10억을 채우는 게 목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쨌든, 리쌍은 밑바닥부터 올라와 성공했다.
개리 성공의 기준이 좀 애매한 게, 물론 옛날처럼 맨땅에 헤딩할 때보다야 잘산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대한민국 상위 몇 프로 수입 같은 거 나오면 읽어보는데, 그 안에는 드는 것 같다. 너무 행복한 일이다. 그래도 아직 외국 뮤지션들의 사이즈에 비하면 뭐….
주로 자랑하거나, 뽐내는 이야기보단 좀 더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가사를 쓴다. 진솔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돈 번 사람이 돈 벌었다고 하는 것도 어떤 측면에선 솔직한 것 아닐까? 오늘 사진 콘셉트에 돈이나 금붙이를 등장시킨 건, 그런 맥락이다.
개리 요즘 스웨거, 스웨거 얘기 많이 하는데 물론 스웨거란 말의 뜻처럼 실력을 자랑하는 건 좋다. 뛰어난 친구도 많고. 그런데 물질적이고 금전적으로 의미 없는 자랑은 좀 별로인 것 같다“. 정말 나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차 한 대 샀어. 이제 여자친구 태울 수 있어” 같은 건 진짜 멋있지. 그런데 내가 들어도 허무맹랑한 자랑들이 있다. 써본 적이 있긴 한데, 영 안 어울린다.
리쌍이야말로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개리 정말 그런 가사 쓰려면 전 세계 들쑤시고 다니고, 마이바흐랑 페라리 하나씩 있고, 풀장 있는 주택에 살고 그래야지. 집 하나 차 하나 막창집 하나 있는데…“. 난 오늘도 막창을 팔지. 사람들이 줄서 있어 대기 시간 한 시간.” 이게 뭐야. 웃기다.
인디 신에서도‘ 스웨거’란 단어나 개념이 유행처럼 퍼지면서, 별로 부자도 아닌데 부자 행세하는 뮤지션들은 더 많다.
개리 그런 프라이드는 존중한다. 실력도 좋다. 그런데 좀 더 진솔한 얘기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흐름 따라가기보다 메시지가 좋은 음악.
지난 앨범부터 다른 장르의 뮤지션들과 꾸준히 곡을 함께 만들었다. 장기하, 김바다, 이적, 국카스텐 등 면면도 다양하다. 그러나 간혹 다른 뮤지션과의 협업에서 리쌍의 색이 묻히고 상대 뮤지션의 색이 강하게 난다는 아쉬움이 있다.
길 국카스텐과 함께한‘ 격산타우’는 국카스텐의 느낌에 우리가 피처링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작업하면서 서로 얘기를 많이 했다. 사이키델릭으로 하려다가 다시 먹통으로 갔다가 결국 그런 사운드로 결정했다. 첨엔 드럼도 안 치려고 했고, 기타도 전자음에
가깝게 내려고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좀 안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 보니 결국 국카스텐 쪽으로 많이 흘러갔다.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다. 곡마다 다르다. (이)적이 형이나 (백)지영이 누나, (강)산에 형은 우리 스타일에 맞춰주셨다. 산에 형 스타일로 만들면‘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 같은 노래가 안 나왔을 거다. 어떤 방식이든 좋은 곡이 나오면 된다. 우리 둘의 목소리와 같이 만드는 분의 목소리가 한 곡으로 태어나는 거기 때문에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TV를 껐네’는 리쌍과 다른 뮤지션들이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모범답안 같았다. 윤미래의 랩과 권정열의 보컬, 그리고 길의 작법과 개리의 랩이 각각의 특성을 모두 살리며 절충점을 찾았다. 그래서‘ 격산타우’ 같은 노래가 좀 더 아쉬웠고.
길 정확한 분석이다. 미래도 그런 랩을 하는 애가 아니다. 원래는 굉장히 파워풀하지 않나? 정열이도 리쌍 안의 정열이로 노래했다. 연기해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곡이 우리한테 주는 의미가 굉장히 크다. 그 친구들랑 우리가 힘을 합쳐 전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들었다. 노랫말 역시 예전에도 야한 걸 좀 하긴 했지만, 이것처럼 풋풋하게 흘러간 노래는 없었다. 다 만들고 나서 용기가 생겼다. 다음 앨범에선 좀 더 획기적인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리 좀 다른 말이지만‘, TV를 껐네’처럼 솔직한 노래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같은 낭만적인 노래도 좋지만, 누가 요즘에 여자 꼬실 때 별 따주고 그러나. 그냥 술 마시고 키스하고 그러지. 흔한 얘기, 솔직한 얘기를 많이 했으면 한다.
리쌍의 시작을 생각하면, 지금같이 부드러운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허니패밀리 안에서도 제일 거친 이미지의 멤버 아니었나? 언제가 터닝 포인트였나?
길 ‘TV를 껐네’같이 우리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 곡이 있는데, 바로‘ 리쌍부르쓰’다. 그 때만 해도“ 아니 힙합이 이런 걸 얘기해? 사랑 노래를 해?”하는 생각이 많았다. 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정서가 있었다.
개리 나도 그전부터 랩을 했었지만, 사랑 노래는 한 곡도 안 했었다.
길 그런데 2집 때 둘 다 여자 친구가 생기면서 그걸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당시 그런 시도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좀 놀랐었다. 변절이네, 변심이나 할 만도 한데.
길 말 많았다. 소위 말하는 마니아란 사람들이 리쌍에 대해 분석하고 그런 걸 우리도 보니까. 힙합 뮤지션들은 뭐 사랑 안 하나? 만날 분노, 고민 이런 걸로 맘이 가득 차 있어야 하나‘? 리쌍부르쓰’나‘ Fly High,’ ‘Slow Down’ 같은 걸 부르면서 굉장히 음악에 대해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린 갱스터도 아니었고, 깡패도 아니었다. 그냥 조금 노는 날라리, 양아치, 이런 동네에 있는 애들이었데, 마치 갱스터인 양 가사 쓰면 가짜지. 어쨌든 이제 래퍼들 중에 사랑 노래 이별 노래 안 하는 사람 없다. 다 그렇게 되었다.
개리 힙합적인 가사가 도대체 뭔지, 그런 게 있긴 한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흑인들은 “난 컨테이너에서 태어났어.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우리 아빠는 감방 갔지” 이런 게 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니까. 우리는 그런 경험도 없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다. 그래서 2집 때부터 그런 가사를 쓰면서 이게 내 가사고, 우리 문화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 이런 건 할 수 있겠지“. 난 오늘도 본드를 불었어, 가스는 다 떨어졌고.” 하하.
- 에디터
- 유지성
- 포토그래퍼
- 장윤정
- 스탭
- 스타일리스트/김봉법, 헤어 스타일링/ 홍민(Suave17), 메이크업 / 이가빈, 어시스턴트 / 문동명, 어시스턴트 / 정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