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놀이터에서 책장을 힘겹게 넘기다 보면, 꼭 아니꼬운 부류를 만난다. 마야 피라미드 꼭대기의 가차없는 사형 집행인처럼, 키 작은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키 큰 친구들.
사실, 좋은 것으로 지칭되는 것들은 키가 크다. 시어즈 타워, 해바라기, 기린. 이상적이라고들 여기는 남자는 키가 크고, 고상해 뵈는 여자도 미류나무 우습게 길쭉한 키를 가졌다. 즉, 현대의 지위를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건 날렵한 체격과 비루한 체격, 딱 두 가지다. 근데 체격의 조건은 체중보다는 키라서, 다리가 젤리처럼 후들거려도, 클리토리스의 위치를 못 찾아도, 아이큐 처져도, 일단 키부터 커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큰 키를 숭상한다. 주인의 다급한 부름에 상관없이 쓰레기차를 쫓는 개와 같이. 평균적인 바보들에겐 그보다 심오한 가치도 없다. 지구 곳곳에 폭탄이 터지고, 마을에 홍수가 나고, 엄마와 아이들이 고문 받고, 그들의 시체가 썩게 버려지는 소식이 만연해도, 적어도 거울 앞에서만큼은 탄력 있는 붉은 근육과 큰 키가 중요하다. 그가 소지한 지갑의 두께나 마음의 깊이보다 농구 골대 같은 키가 우선이다. 그래서 키 작은 이들은 키 큰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몸 둘 곳을 찾지 못한 채 깊은 생물학적 분노를 안고 살아간다.
진화 인류학은, 키 큰 남자들이 더 생산적인 기회를 가진다고 우긴다. 성적 매력에 관한 연구들도 키 큰 사람들의 육체적 어필을 지지한다. 몸 형태에 상관없이 평균보다 5퍼센트 다리가 더 긴 사람이 가장 매력적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다리 길이가 그의 전반적인 매력 정도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매력을 등급화시킬 순 없으되 다만, 그 선호엔 필시 진화론적인 이유가 있다. 긴 다리는 여자의 유아 시기 영양 상태, 그러니까 그녀가 좋은 환경에서 자랐고 그때 먹은 영양이 지금 건강과 상관 있음을 암시하는 미묘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사춘기에 이르면 다리 성장이 멈추는 여자와 달리, 그 시기 이후에도 계속 자라는 남자의 경우 그 영향은 보다 복잡미묘하다.
한편 성에 따른 차별적인 사회 전략은 늘 차이를 만드니, 여자에게 키 크다는 건 꼭 화려한 일만은 아니다. 여자의 세계는 훨씬 협동적인데다 네트워크 중심적이므로 ‘맞춘다’는 건 그들끼린 절대적인 기준이다. 여자가, 힘이 장사라거나 키가 송전선만하다면 뚜렷한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키 큰 여자를 만나면, 그녀가 전에 백 번도 더 들었을 유머를 꺼내는 건가. 위쪽 공기가 어떤지, 혹시 나무 위에서 자는 건 아닌지. 엄청나게 큰 키로 버스 맨 뒤쪽에 남은 한 자리로 걸어가는 동안, 몸을 훑는 사람들의 눈길, 관찰하는 동시에 말을 만드는 이웃의 습성과 맞닥뜨리면 대처 여사라도 자기 키에 예민해질 것이다. 게다가 키 큰 여자가 공공장소에서 그녀보다 작은 남자 손을 잡고 있을 때의 이상한 유머…. 극단적 사회의 냉정함은 여자가 그녀보다 키 작은 남자와 데이트할 때 작열한다. 키 큰 여자 페티시가 아닌 한, 남자보다 키 큰 여자는 성적 매력이 싹 달아날 만큼 ‘거대하다’. 작은 키는 무기력한 것. 키 작은 남자가, 올려다보기 위해 잠망경이 필요하고, 머릿결 쓰다듬자고 사다리가 필요한 여자를 그의 동굴로 끌고 갈 리는 설마 없으리라! 남자를 올려다보길 좋아하건 말건, 키 큰 여자가 그녀보다 더 큰 남자를 찾고, 키가 작다는 이유로 정말 괜찮은 남자를 차버리는 건 그 때문이다.
그래. 근육이라면 뭐, 나도 만들 수 있다. 여가수 옆에 꼭 붙어 있는 용역 직원 같은 지방도 태울 수 있다. 탄수화물 덩어리를 반으로 줄여 먹으라면 그럴 것이다. 구운 치킨이 안 들어간 마른 샐러드를 씹어야 한다면 그냥 삼키고 말 것이다. 그렇게 알량하게 먹고도 더러운 변기를 껴안고 토해야 한다면 당연히 토할 것이다. 이윽고 물리학의 법칙은, 그럴 때 더 굶고 분노를 운동 에너지로 전환시키면 복근이 올 거라고 약속한다. 그러나 무엇으로도 키가 크게 할 순 없다! 필라테스가 몸길이를 늘려준다지만 다 착시 같다. 설사 일리자로프 수술로 무릎 아래뼈를 잘라 늘린다쳐도 그 위 환도뼈는 여전히 짧을 텐데, 그 무슨 우스꽝스러운 비례인가. 설사 수술한다 해도 언젠가 또깍 하고 부러질 날이 오고 말 테다.
나도 지금보다 더 키 컸으면 좋겠다. 그런데, 누구라도 몇 년 곰곰 생각한 끝에 숱 많은 머리카락이나 통통한 입술을 원하진 않는다. 필요하니까 ‘추구’한다. 필요엔 결승선이 없다. 필요는 활기 있으니, 모든 것을 소비한다. 마음은 개입되지 않는다. 필요는 항상, 항상 거기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는 언제나 더 있다. 키 크거나, 더 크거나. 아, 진짜, 바보들의 마라톤, 병신들의 향연이구나.
중간 키인 나의 결론은 질투로 맺는다. 아주 키 큰 남자는 몸에 맞는 자전거를 찾기도 힘들잖아? 샤킬 오닐도 아니고 어디서나 눈에 띈다는 게 뭐 그리 좋겠어? 키 커 봤자 죽고 나서 오래 썩잖아. 어쩌면 180센티미터 넘는 치들은 남들보다 웃자란 1센티미터마다 인생의 짐을 더 얹고 사는지도 몰라. 근데, 키 큰 것과 다리 긴 것은 다른 얘길 텐데, 허리가 아주 길어서 다리가 나보다 짧은 애가 내 앞에서 키 크다고 자랑할 때만큼 흉한 일도 없더라.
- 에디터
- 이충걸 (GQ 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