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해 첫날, 서점에서 자기계발서를 들추고 있는 사람들에게

2013.12.31GQ

대가라는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만고불변의 자기계발 메시지는 딱 하나로 수렴됐다. 우리 모두 중학교 교과서에 배운 것. 그 한 줄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다.

자기계발서가 최대 호황을 누리는 서점은 흡사 부적을 파는 점집과 같다. 3분 만에 상대를 설득하고, 7가지 습관으로 승자가 되며, 수세기 동안 단 1퍼센트만 알고 있는 부와 성공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책들이 사람들의 분별을 잠재우고 지갑을 열게 한다. 계획해야 할 미래가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에 집요한 불안이 피어 오른다. ‘성공하고 싶지 않아? 지금 그 꼴로는 턱도 없어.’ 자기계발서의 불안 마케팅이 승리하는 순간이다.

1월은 생에 대한 의지가 가장 맹렬히 타오르는 때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사람들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새해 첫 달이니 무언가를 욕망하고 계획해야 할 것 같은데 정작 원하는 게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욕망을 찾아 배회한다. 그래서 지나치게 예민하다. 1월에 자기계발서가 많이 팔리는 건, 새해에는 뭘 원해야 좋을지까지 지시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를 맹렬히 소비하는 사람들의 ‘더 나아지고 싶다’는 동기까지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누구고, 뭘 원하는가’에 대한 주제파악이 선행되지 않으면, 자기계발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는 자기부정으로 이어져 인생은 더 피곤해진다. 맞지도 않는 옷을 브랜드에 혹해 사놓고, 우격다짐으로 입고 다니며 본전 못 건지는 꼴이다. 게다가 책 한 권 사놓았을 뿐인데, TV 채널 돌리듯 신속한 ‘자아 변신’까지 꿈꾼다면 자기계발의 메시지는 옥석을 가릴 틈도 없이 심각하게 오역된다.

그중 하나가 인맥이라는 주제다. 연말을 맞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임과 파티 일정들로 달력 빈 칸을 무 채 치듯 채운다. 그로 인한 시간과 에너지 소모는 ‘인맥 형성을 위한 투자’로 합리화된다. 여기서 질문 하나. 그 인맥으로 뭘 할 텐가? 그 인맥이 정말 기회를 열어준다면, 그 기회를 알아채고 받아먹을 준비는 돼 있는가? 인맥은 사교와 동일어가 아니다. 놀고 싶으면 그냥 놀면 된다. 인맥은 찾아간 파티의 수, 수집한 명함의 총합, 페이스북의 ‘좋아요’ 개수로 환산되지 않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맥의 황제로 통하는 리드 호프만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인맥은 단순한 네트워킹이 아니라, 관계 형성relation-building이다. 관계는 어린아이 같아서 먹이고, 양육하고, 보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시들어 죽는다.” 인맥은 각기 다른 이름표가 달린 화초처럼 정성스럽게 가꾸고 키워야 한다. 물도 잘 주고 상태도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화초를 살찌우는 것은 신뢰다. 신뢰는 번지르르한 말과 요란한 치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력과 헌신으로 탁월한 성과를 만들어낼 때 나온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나 자신이다.

자기계발의 또 다른 오역은 리더십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은 리더십을 일종의 제스처, 혹은 스타일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누군가의 평전을 읽고, 리더십 조언을 아침마다 암송하면 없던 리더십이 생길 거라 믿는다. 심약한 상사가 갑자기 현실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잡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을 가리킴)을 발산하는가 하면, 멀쩡하던 팀장이 감성 리더십, 서번트 리더십이 대세라며 부담스럽게 자꾸 소통하자고 덤빈다. 리더십은 그 사람의 캐릭터와 실력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다. 내가 가진 요철과 부하직원들이 가진 요철을 요리조리 잘 조합해, 일이 굴러가도록 하는 게 리더십이다. 이때, 리더의 요철에 따라 부하들의 요철이 주조된다. 때문에 리더는 스스로가 탁월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좋은 리더는 대개 멋진 사람인 경우가 많다. 리더십 역시 나의 문제로 귀결된다.
10년간 기자로 일하며 대가라는 사람들을 만나본 결과 만고불변의 자기계발 메시지는 딱 하나로 수렴됐다. 우리 모두 중학교 교과서에 배운 것. 그 한 줄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다. 내가 누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자기가 확립되지 못하면, 자신만의 관점 없이 늘 누군가의 인생 주변부를 배회한다. 언제까지 남의 성공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명사들의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며, 자기계발서의 지령을 기다릴 텐가.

아인슈타인은 E=mc²뿐 아니라 성공의 방정식도 고안해냈다. a=x+y+z에서 a가 성공이라면 x는 일, y는 놀이, z는 입 다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나와 만나는 것. 이것이 새해에 학원을 등록하고, 느닷없이 옷장을 정리하며, 다이어리에 새해 계획을 빼곡하게 적기 전에 해야 할 일이다.

최근 일본의 방송국 TBS에서 ‘쿠마무시를 찾아서’라는 라디오 방송을 내보냈다. 참깨보다 작은 생명체 쿠마무시(우리말로 완보동물의 일종)는 영하 273도에서도, 인간 치사량의 천 배에 달하는 방사능을 덮어써도 안 죽는다. 완전 건조 상태에서는 거의 반영구적으로 가수면 상태를 취하다가 물에 담그면 다시 살아난다. 우주선에서 열흘 정도를 우주 공간에 내놨다가 다시 물을 줬더니 깨어났을 정도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 말미에는 ‘인간 컵라면’(인간도 반건조 상태로 보존됐다가 물을 부으면 부활)이라는 영생불사의 아이디어가 나온다. 황당하긴 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둔감력.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강한가. 올해 1월엔 세상의 온갖 자극에 몸을 웅크리고 ‘나 자신을 알자’.

    에디터
    글 / 김남인(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