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무례, 무감, 무심

2014.08.25GQ

무턱대고 무례한 소릴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 닳고 닳아서, 이젠 감정이란 게 아예 사라진 것 같다. 한국은 무심하기라도 해야 나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제각각의 나라일까?

Society판형

광화문 광장 분수대는 여름 놀이터의 역할에 충실했다. 아이들은 시원하게 젖어서 신났고, 어른들은 옷을 갈아입히거나 수건으로 닦아 주거나 했다.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 왕 사이를 거닐면서 지하보도로 들어가거나 광화문으로 향했다. 광화문을 등지고는 무대 공사가 한창이었다. 노란색 리본이 바람에 날리는 사이로, 피켓을 들고 혼자 걷는 사람들이 세 명 정도 보였다. 이름을 묻지 않았지만 알 것 같은 얼굴도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씩 거르지 않고 피켓을 들었던 그 사람이었다. 2014년 늦여름, 입추가 지난 며칠 후, 봄에 일어난 일이 여름을 지나 가을로 향해가던 주말 광화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짓일 것이다. 그들은 무표정하거나 결연한 얼굴로 피켓을 들 고 천천히 걸었다. 경찰 두 명이 몇 걸음 뒤에서 그들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남자 시위자에게는 남자 경찰, 여자 시위자에게는 여자 경찰이. 한 사람당 두 사람이 따라 붙는 건 경찰의 공식 같았다. 경찰들은 청와대 앞에서 지팡이와 피켓을 들고 서 있으려는 유민 아빠 김영오를 취재하려는 기자들의 카메라를 막았다. 버스에서 내리려는 유족들은 에워쌌다. 요즘 1인 시위는 이런 식으로 막힌다. 여러 명의 경찰이 둥글게 에워싼다. 어쩔 방도가 없어서 거리에 나온 사람을 다시 고립시키는 식이다. 김영오 씨는 그날로 단식 26일째였다. 지금 한국은 위험과 안전의 기준이 이미 다 흐트러진 나라.

4월 28일 이후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이어왔던 여러 어머니 중 한 명인 오지숙 씨는 새 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일갈했다. 8월 5일 열린 ‘야당, 어디로 가야 하는 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였다. 지금 새정연은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정당이니까…. 그녀는 마이크를 잡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민주당과 새 정치민주연합에 투표하지 않은 적 없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권자로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표명이었다. 마음은 있지만 다수가 미처 못하는 일을 거기서 오지숙 씨가 대신하고 있었다. 원래 다수를 대표하는 건 국 회의원의 일 아니었나? 이젠 누가 누구를 대표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그녀에게는 아무런 직함이나 권력이 없다 해도, 누군가에겐 고마운 목소리였을 것이다.

jtbc <뉴스9>에서 김영오 씨를 인터뷰했던 건 단식 22일째였다. 그의 초점은 또렷했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단식 27일째,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화제 무대 위에 서서 “허리를 숙이면 갈비뼈가 장기를 찌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사람한테 “제대로 단식을 하면 그 시 간을 견딜 수 있어? 벌써 실려 갔어야 되는 거 아냐” 말했던 건 새누리당 국회의원 안홍준이었다. 이후 김영오 씨는 물, 소금, 효소, 진료를 거부했다. 안홍준 의원은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라고 했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그는 “상처 됐다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말도. 모든 말에는 의도가 있다는 걸 모르고, 사과의 방법조차 모르는 국회의원의 말. 8월 11일에는 다시 한 번 공식 사과했다. “제 발 언 이후 의료진의 진료마저 거부하신 김영오 선생님과 유경근 선생님께 사과드리며 하루빨리 의사 진료를 재개하시기를 간청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영오 씨는 8월 15일까지 단식을 이어 갈 수 있을까? 그가 단식을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단식을 이어갈 수 있길 바라는 지금을 어떤 시대라고 이해하면 좋을까? 8월 16일 현재 그는 단식 34일째였다.

말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단숨에 뒤바꾸기도 한다. 알 만한 사람의 말은 언론을 거쳐 글이 된다. 글에는 사람의 사고를 정리하고 지배하는 힘이 있다. 세월호를 두고 ‘해상 교통사고’ 운운 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말, 유족들을 ‘노숙자’라 표현한 김태흠 의원의 말은 그대로 글이 되어 분노를 유발하거나 심지어 공감을 사기도 했다. 무례를 위한 무례, 공격을 위한 공격이었다. 4월 16일과 그 이후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이제 어떤 프레임으로 작용한다. 어떤 종편은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강화한다. ‘지겹다’, ‘힘들다’는 건 아주 개인적인 차원의 토로일 수 있다. 하지만 침체된 경제를 그 탓으로 돌리는 건 무슨 뜻일까? 아무것도 아닌 말의 덩치를 천박한 언론이 키워준다.

지금 대다수의 언론은 예의와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 버려진 듯 황폐하다. 수준, 권위, 정의 같은 말은 외국어 같다. 언론이 그러니 한국이야말로 여기와 거기를 가릴 바 없이 염치도 없는 저잣거리가 되었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도 사라졌다. “광화문에서 그만하라고 말하는 어르신 말씀에 칼로 찌르는 듯 아팠지만, 나 역시 천안함 사고가 난 몇 개월 이후 ‘아직도 하느냐’는 생각을 했다. ‘이제 와 죄를 받는구나’ 한다.” <시사in>을 통해, 한 유족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유경근 세월호 가족 대책위 대변인이 트위터에 쓴 맨션이었다.

슬픔은 달래질 기미가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다른 누군가의 무덤덤함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주변에선 “우리가 슬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서울역 앞 고가 도로에서의 분신, 광주에서 추락했던 소방 헬 기, 임 병장과 윤일병으로 통칭하는 그 가혹한 일도.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지하철이 멈추고 잠실 땅이 꺼지는 순간에도. 미처 보도되지 않는 무수한 슬픔에 대해서도. 심지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계속하고 있는 일방적인 폭격에 대해서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불신은 그대로인 채 누군가는 이런 말을 반복했다. “아니, 생면부지의 사람들한테 왜 그렇게 관심을 가져” 어떤 식으로든 힘을 보태고 싶은 사람에게 던지는 무심하고 무례한 말. 

공감의 대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슬픔일 때, 타인의 삶은 그것을 외면해야만 유지 되는 걸까? 어쩌면 그럴 것도 같다. 지금은 애써 무관심해야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까. 여기는 아주 기본적인 공감마저 사라진 나라, 그런 말이 원칙도 없는 언론에 의해 글이 되는 나라, 그걸 의심도 없이 사실로 믿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나라다. 불문학자 황현산 교수 는 <경향신문> 칼럼 ‘밤이 선생이다’에 차분하게 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두운 바닷물 속에 다시 돌아올 길 없이 잠긴 생령들을 생각하며, 뭇사람들의 인정이 그에 대한 슬픔과 안타까움과 죄의식을 어떤 방식으로건 표현하고 싶어할 때, 다른 한편에는 그 애도의 마음을 의심하고 우려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 감정까지 차단하려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그 언저리를 맴도는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생각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보도를 반복하는 매체의 속내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거나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 기꺼이 봉사하기 위한 보도인 것이다. 가진 사람은 가진 것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잔인할 정도로 무례해진다. 없는 사람은 그저 버티거나, 어떻게든 가진 자의 곁에서 승리하려 애쓴다. 감정을 차단하고, 무심한 채 무례를 거부하지 않는다. 자기 것이 없으면 누릴 것도 없는 황폐한 시대라서. 없는 자가 억울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도는 모조리 희미해졌다.

불안이야말로 2014년의 한국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었다. 피해자와 피의자의 위치는 언제 바뀔지 모른다. 지금 피해자가 아니라고 영원히 안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라도, 지면 죽을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것이다. 예의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이다. 약한 상대에게 마음껏 무례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언젠가 이 모든 무례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판에 도덕과 상식이 다 무슨 소용일까?

기댈 곳 없는 개인이 광장에 있었다. 그 옆을 지나가는 건 무수히 많은 자동차, 관광객, 까르르 웃는 소리와 누가 마주 잡은 손이 한 공간 에 있었다. 삶과 죽음이 첨예했고, 여흥과 감시가 뒤섞여 있었다. 그가 마주한 삶과 죽음이야 말로 철저히 개인적이라서 잔인했다. 우리는 그 절박함이 실은 절대 다수를 대표하고 있다는 걸 모르면 안 된다. 그래서, 주말의 광화문은 그 대로 현실이었다. 외면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무감, 무심, 무례의 끊임없는 악순환 속에, 기댈 곳 없는 개인이 우뚝 서 있었다.

    에디터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