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사인의 청년기는 유신 시절이었다. 지금 그는 예순이 지났고 올해 겨우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발표했다. 과작이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비바람을 피하지 않은 결과였다. 이제 그는 구호를 외치지도 앞장서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의 시대다.
심우장에서 뵈었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좀 얄궂은 그림이었다. 심우장은 성북동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의 유택이다. 김사인은 올해 9년 만의 신작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출간했고, 이 시집으로 만해문학상 최종 수상자로 결정됐다. 하지만 결정은 결정이고 수상은 수상이었다. 김사인은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 과정에 관여한 사실”과 “(창비의) 시집 간행 업무에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수상을 사양했다. 예심에서 직접 자신의 시집을 뺐으나, 본선 심사위원의 추천으로 나중에 추가된 사연이 있었다. 그만하면 할 만큼 한 노릇이었다. 창비에서 책을 냈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하는 것도 차별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너만 생각 있는 사람이냐”는 핀잔이 들려왔다. 그에게 익숙한 핀잔이었다. 김사인은 <노동해방문학>의 발행인이었으며, 긴급조치, 개헌, 국보법 위반으로 세 차례 감옥을 다녀왔고, 2년간 수배를 피해 살기도 했다. “잘났다고 나와서 차 막히게 한다”는 욕을 다반사로 들으며 광장에 선 사람들이 곧 김사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온화한 얼굴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김사인은 말했다. “얼굴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저랑 있으면 다들 긴장했거든요. 하하.” 얼굴만 괜히 바뀌는 법은 없었다. “이제는 그 핀잔을 무시하지 않는 것도 사람살이에 필요한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거부가 아니라 충정이었어요.” 그는 ‘사양의 말’에도 같은 표현을 썼다. “만해문학상에 대한 제 충정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동시에 제 시쓰기에 호의를 표해주신 심사위원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서,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상을 사양하는 쪽을 선택하려 합니다.” 거부가 아닌 충정으로서 자신의 사랑을 증명했고, 거절이 아닌 사양으로서 다른 사람의 사랑까지 이해했다. 김사인이 덧붙였다. “돌이켜보면 땡볕만으로는 뭔가를 살려낼 수 없었어요. 물기가 필요했어요.” <어린 당나귀 곁에서>는 사회적 신분이 완전히 삭제되는 지경까지 갔던 인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사랑을 놓지 않았을 때 만들어지는 풍경을 보여준다. 정직한 삶으로부터 정직한 작품이 나온다는 낡은 믿음을 회복시킨다. 이 시집이 올해 발표된 시집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거나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해내는 전위뿐만 아니라 안 해야 할 것을 안 하는 윤리를 간절하게 바랐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총독부를 보지 않기 위해 햇볕이 잘 들어 살기 편한 남향집의 장점을 버리고 심우장이라는 북향집을 지었다. 북향집에 사는 듯했던 올해, 그의 시집이 편액처럼 있었다.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김참
- 장소협조
- 원예가 박기철의 작업실, 식물의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