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은 지지 않기로 했다. 편견, 두려움, 자기 자신에게도.
오늘은 평소 설현이 찍어온 화보와는 좀 다르게, 중성적으로 찍었어요. 시안을 받은 순간부터 너무 설렜어요. 되게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오기 전부터 들떠 있었고, 찍을 때도 엄청 신났어요. 남들이 볼 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 정말 좋았어요.
남들은 설현을 어떻게 보는데요? 아무래도 저는 주로 드레시하고 예쁜 화보를 많이 찍었잖아요. 사실 전 오늘 같은 스타일에 가까운데, 대중 분들이 보시기엔 이런 게 저랑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걸까요?
아직 설현을 다 모르는 거겠죠. 평소에도 스커트보다 팬츠를 선호하나요? 학교 다닐 땐 교복이 치마여서 그랬는지, 스스로 긴 바지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교복을 벗어나 여러 옷을 입어보니, 긴 바지가 되게 편한 거더라고요. 활동성도 좋고, 저한테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건 힘든 일이죠? 오늘은 내 얼굴, 내 몸이 어떻게 보이는지 덜 의식하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너무 편했어요. 왜 진작 이런 화보를 안 찍어봤을까 싶을 정도로. 불특정 다수 앞에 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중의 시선은 직업인으로서 제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들이 “넌 이런 건 별로야”, “이게 예뻐” 하고 판단하는 걸 제가 자꾸 따라가게 되는 것만큼은 경계해요. 싫은 게 있다면, 깨려고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내 모습이 싫은 거죠.
대중에게 설현을 각인시킨 건 늘씬한 뒷모습으로 손짓하는 등신대 광고였어요. 이 광고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서 설현은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매혹적인 아이콘이 됐죠. 그걸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요? 처음엔 사람들이 절 알아준 계기라 마냥 신기하고 신났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계속 같은 모습만 원하시는 거예요. 너무너무 같은 것만요. 한동안 딜레마였어요. 왜 계속 크롭티만 입으라고 하지? 다른 것도 해보고 싶은데…. 물론 그것도 제 모습이지만, 저한텐 다른 모습도 많거든요.
이를테면 설현은 날씬한 몸매로 사랑받았지만, 실은 먹는 걸 정말로 사랑하죠. 맞아요. 전 먹는 게 좋아요. 먹는 건 빠르고 확실하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잖아요. 맛있는 걸 먹으면 이렇게 행복한데, 그걸 하루에 세 번이나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먹방’들 보면 저는 뭐, 잘 먹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요즘 ‘먹방’ 콘텐츠가 유행하는 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으니 그런 데서 즉각적인 행복을 찾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루 세 번의 행복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죠? SNS에 ‘고구마 다이어트’라며 고구마 피자 한 판을, ‘감자 다이어트’라면서 트레이 한가득 담긴 프렌치 프라이를 찍어 올린 데서 다이어터의 해학이 느껴졌어요. 그래도 즐기면서 하고 있구나, 미디어의 욕망과 스스로의 욕망 사이에서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구나 싶어 다행스럽기도 했고요. 데뷔 초에는 48킬로그램이 넘어가면 안됐어요. 그러니까 식탐이 더 생기더라고요. 지금은 마음대로 먹으니 오히려 식탐이 줄었고, 균형 있게 챙겨 먹어요.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프렌치 프라이지만 감자니까, 채소잖아요! 몸에 좋은 거죠. 이건 비빔밥이지만, 열무라는 채소가 들어 있고 달걀이 두 개나 들어갔으니 완전식품이죠! 하하하. 원래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마른 비만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건강해요. 제 2018년 목표가 건강해지기였는데 달성한 거죠.
운동은 뭘 잘해요? 저 운동 잘하는 이미지잖아요? 건강하고 뭐 그런?
아닌가요? 네. 의외로 못해요. 승마는 빨리 배우긴 했는데, 다른 건 그냥 그래요. 운동에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어쨌거나, 남들이 생각하는 자기 이미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맞아요. 제가 바꾸려 해도, 대중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모습이니까. 그 고정된 이미지라는 게, 내 가치관을 잊어버리게 한다고 할까요? 그게 나인 것 같아요. 대중이 판단하는 모습이 진짜 저 같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판단하기 전에 남들이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판단해주니까 스스로의 생각을 놓치면, 그 방향대로 흘러가게 되는 거예요. 그걸 알고 있다 해도, 다르게 가기란 어렵고요.
그 속에서 자기만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겠네요. 그랬죠. 작년까지 저는 되게 갇혀 있었어요. 깨려고 해도 깰 수 없는 벽이 내 앞에 있는 것 같았고, 스스로가 되게 실패한 것처럼, 별로인 사람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한계에 부딪혔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도 ‘나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나 더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에 가까웠죠. 그러다 어느 순간 딱,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내가 뭘 무서워하고 있지? 아직 스물넷밖에 안 됐는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지?’
그 두려움을 어떻게 떨칠 수 있었어요? 괜찮다, 실패해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부터요. 생각해보면 그래요. 여태까지 쌓아온 게 다 무너질까봐 두려워서 안전한 길로만 가니까, 계속 똑같은 것만 나왔던 거예요. 이제는 두려워 하지 않고, 시도하고, 나아가고 싶어요. 스스로를 고정된 틀에 가두어두지 않으려고요.
어디로 갈 진 몰라도, 확실한 한 발을 내딛었군요. 저는 더 탐험하고 싶어요. 설사 대중 분들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다양한 모습을 탐구하고 보여줘야 하는 게 배우이기도 하고요.
<안시성>의 장수 백하도 그런 탐험 중 하나였겠네요. 이전에 맡았던 배역들은 주로 누군가의 딸이거나 여동생, 지켜줘야 할 지고지순한 존재들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끌렸죠. 대본을 읽으면서 백하가 제 이상형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추구하는 것과 닮은 면이 많거든요. 꼬아서 생각하지 않고, 직선적이고, 단순하면서도 솔직 담백하죠. 무엇보다, 자기 목소리를 똑바로 내는 점이 제일 멋졌어요.
예전에 <비밀은 없다>의 주인공, 연홍을 비슷한 이유로 좋아한다고 꼽은 적이 있었죠? 맞아요. 멋지잖아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돌진하고, 성장하고,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줄 아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줄 안다는 건 뭘까요? ‘나는 이거 아닌데, 말은 못 하겠어…’라고 주저앉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설현에게서도 그런 면이 보일 때가 있어요. 예능에서 남자 연예인들과 엮일 때마다 보이는 칼 같은 태도가 재미있는 포인트가 되거든요. 정말이지 무관심한 얼굴로 “난 별로 관심 없어”라고 한다거나, “응, 나도 너 내 스타일 아니야” 하고 딱 자를 때. 저는 호불호가 강해서 관심 없는 건 이래도 상관없고, 저래도 상관없거든요. 기억도 못 하고 무심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죠. 그런데 어떤 것 하나에 딱 꽂혀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 그건 안 돼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하죠. 얘기를 해야 직성이 풀려요. 하하.
어떤 거에 관심이 없어요? 남 일. “누가 누구랑 만난다더라, 뭐 어쨌다더라” 이런 거 맨날 까먹고 들을 때마다 “아 그랬어?” 해요.
‘남 이사’인 거군요. 그럼 관심 있는 건 뭐예요? 지금의 나 자신.
설현도 이제 자기 목소리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뭇매를 맞은 적도 있고, 가십에 오르내린 적도 있지만, 점점 단호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최근 합성사진을 유포하고 음란 메시지를 보낸 악플러를 선처 없이 고소했죠? 저에게는 그런 믿음이 있어요. 나는 어떤 역경이 와도 잘 이겨내왔고 잘 이겨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힘든 일을 겪는 모습을 보면 되게…, 끌어주고 싶어요. 선처 없이 고소한 것도 ‘이 사람들이 내게 수치심을 줬으니 고소해야지’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이런 범법 행위를 저지르면 큰 벌을 받는다는 선례를 보여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동료와 후배들을 지키려는 거였군요. 제가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어요. 데뷔 초에는 신체 일부분만 집요하게 확대한 ‘움짤’이라든지, 말할 수 없는 것도 되게 많았어요. 우리,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친구들이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겪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들도 그런 일들이 불합리하고 불쾌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바꿔나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비록 그런 일을 겪었지만, 앞으로 활동할 친구들을 위해서.
든든하네요. 그 마음은 어떤 방향으로 향할까요? 내 목소리를 내는 걸로 시작해서,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사회적 약자일 수도 있을 거고, 목소리를 내고 싶지만 낼 수 없는 사람들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게 선한 영향력이 된다면 좋겠어요. 소속사에서 기부와 봉사를 자주 해서 그 문화에 익숙해진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평소에도 강단 있는 편이에요? 진짜 저는 무른 사람이에요. 겁도 많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겁 없어 보이려고, 강해 보이려고 노력했어요. 약해 보이는 게 너무 싫었거든요.
왜 약해 보이는 게 싫었어요? 음…, 약한 모습을 많이 보이면 사람들이 떠나더라고요. 내가 이 사람을 의지한다고 생각해서 나의 가장 깊고 약한 모습까지 보여줬는데, 막상 보여주면 떠나요. 그래서 아, 이 정도까지는 내가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구나, 생각하게 됐죠. 반대의 상황도 느껴봐서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게 됐어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남의 약점을 보고 싶지 않은 못된 마음.
가까울수록 그런 거리를 지키기가 어렵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이젠 애써 약점을 감추면서까지 강해 보이려고 하진 않아요. 약해 보이면, 약한 게 난데 뭐, 이런 생각?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했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강해진 거죠.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설현에겐 어떤 사람이 강한 사람이에요?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회복이 빠른 사람.
회복이 빠른가요? 되게 빠른데, 상처도 잘 받아요. 소심하거든요. 아까 사진 보고 별말씀 없으시길래 “별로이신가?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하.
악플 같은 것도 신경 많이 써요? 아뇨. 그분들은 진짜 저를 모르잖아요. 제가 상처받는 건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 제 모습을 진짜로 본 사람들이에요. 날 아는 사람들이 날 안 좋게 말한다면 상처 받겠죠. 하지만 만난 적 없는 분들의 악플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맞아, 나 그런 것 같아’라고 공감되는 댓글에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책하지만. 내가 판단했을 때 ‘아니, 그거 아닌 것 같아’ 싶으면 상처 안 받아요.
방금 한 말, 단단하게 들려서 좋았어요. 나를 모르는 남들의 말들보다 자기 판단을 믿게 된 것. 맞아요. 나를 알아가니까 점점 그렇게 돼요. 내가 나를 알아가고, 나를 사랑해주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에, 이젠 남이 보는 내가 아닌 그냥 나 자신을 많이 생각해요. 이를테면, 옷을 입을 때 남들은 이게 예쁘고 저한테 맞는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다른 게 예뻐요. 그러면 그 판단은 잘 안 바뀌어요.
이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게 됐나요? 조금은. 하지만 다 알게 됐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나는 소심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그렇게 생각하면 그 틀에 갇히더라고요. ‘아니, 소심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닐 수도 있어’라고 하면서, 나 자신을 계속 궁금해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어딘가에 고착되는 것, 틀에 갇히는 걸 굉장히 경계하네요. 요즘 세대는 SNS에서 자기가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정보만 보고 살잖아요. 게다가 전 만나는 사람만 계속 만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시야가 좁아지는 걸 느꼈죠.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말자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나요? SNS에 책 구절을 자주 올리던데. 원래는 소설 위주로만 봤거든요. 그런데 친구가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말하고 쓰려면 많은 책을 읽어봐야 한대서 여러 종류의 책을 읽게 됐어요. 마음에 드는 문장은 따로 메모해두기도 해요.
최근에 메모해둔 건 뭐예요? 휴대전화에 저장해놓은 건데요. “과거의 방식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면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를 얻겠지만, 새로운 시도가 주는 즐거움과 뜻밖의 수확은 얻을 수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그 고민에 한참 허덕일 때,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을 보고 속이 뚫렸죠.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가수 태연의 인스타그램에 자주 댓글을 달던데요? 그건, 제가 나름 용기를 냈죠. 큰 용기였어요. 하하하. 저는 같은 일을 하는 선배님들, 후배님들이랑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이유가 있어요? 제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휴대전화도 없고, 다른 가수들이랑 말도 섞어선 안 됐거든요. 그런데 요즘엔 서로 친하게 지내는 걸 보니 되게 보기 좋더라고요. 동료들끼린 서로 비슷한 고민도 있고, 조언도 구할 수 있고. 특히 선배님들은 그런 걸 다 겪어낸 사람들이잖아요. 대단해 보이죠.
AOA도 이제 7년 차 그룹인데, 멤버들과 여전히 끈끈한 것도 보기 좋아요. 설현처럼 개인 활동이 많은 경우엔 그룹이 오래 가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저흰 진짜, 싸우지도 않아요. 전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엄마한테는 아직도 애기고, 중학교 친구들 만나면 완전 시끌벅적하고, 멤버들은 처음 만났을 때 풋풋하고 열정 넘치던 시절이 떠오르죠. 시간이 흘렀어도 서로를 보면 그런 모습이 여전히 보여요.
굉장히 사랑스러운 이야기네요. 하하. 저한텐 그런 추억이 되게 소중한가 봐요. 제가 마음이 불편할 때 찾는 게 있어요. 어릴 때 쓰던 애착 이불인데, 지방이나 해외 일정이 있을 때마다 챙겨서 덮고 자요. 그 이불만 있으면 어디든 익숙한 공간이 돼버리거든요.
어린이 김설현은 어땠나요? 완전 막내.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죠. 이것도 해보고 싶어, 저것도 해보고 싶어, 하면서 이거 한 달 하고 그만두고, 저거 한 달 하고 그만두는데도 부모님이 다 지원해주셨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봐라, 하시는 스타일. 덕택에 저는 사춘기도 딱히 없이 지나왔어요.
그렇게 건강한 어른 설현으로 자랐군요. 감사한 일이에요. 지금도 부모님하고 언니를 정말 존경해요. 혼자만의 우물에 틀어박히고, 우울해지고, 좀 삐뚤어지려고 할 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요. 그러고 나면 가치관이 다시 바로 정립되는 것 같아요.
지난해부터 독립해서 혼자 살죠? 외롭지 않냐고들 물어보는데, 외롭지 않아요. 너무 좋아요!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혼자 사니 좋더라고요.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순 없잖아요. 혼자면 내 시간을 편하게 쓸 수 있으니까 참 편하더라고요. 누워서 책 읽고, 영화 보고, 미드 보고.
최근 재미있게 본 미드는 뭔가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너무 재미있어요. 다양한 캐릭터가 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잖아요. 우리나라는 주인공 한두 명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는 게 좋더라고요.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엔 정말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있죠. 그런 캐릭터 중 한 명을 연기해보고 싶다면요? 거기서는 누구 하나를 꼽을 수가 없어요. 이 캐릭터 서사를 보면 이 캐릭터가 재미있을 것 같고, 저 캐릭터를 보면 저 캐릭터가 해보고 싶고. 지금의 저는 개구지고 장난기 많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어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쉴 때의 설현은 어떤 모습이에요? 전 드레스업을 하면 그때부터 출근하는 거예요. 그리고 화장을 딱 지우는 순간부턴 퇴근. 그때부턴 민낯으로 다니는 거고, 일 안해요.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군요. 네.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안 써요. 그냥 모자 하나 눌러쓰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카페도 가고. 직장인들에게 퇴근 이후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저한테도 그 시간이 소중하거든요. 아쉬운 건 차가 없어서 행동반경이 좁다는 것.
차가 생기면 뭘 하고 싶어요? 반려견 덩치랑 여행 가고 싶어요. 덩치는 산책하는 데가 매일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얘한테도 다른 공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고, 다른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어요.
남에게 보여지는 걸 끊임없이 의식해야 하는 입장에선 더욱 반려동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들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주니까요. 맞아요. 덩치의 판단하지 않음이 큰 위로가 돼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덩치는 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사랑하죠. 그리고 어쩐지 내 감정에 공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 제 감정을 투영하게 되더라고요. “너도 우울해?”, “너도 기분 좋지!” 라는 식으로 말을 걸면서…. 덩치와는 정말 운명이에요. 계획되지 않았던. 제 인생에 찾아와줘서 정말 기뻐요.
덩치랑 당장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요? 여수요. 되게 맛있는 갈치조림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덩치에게 바다 구경도 시켜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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