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net <프로듀스> 시리즈는 K-pop 산업에 특수한 판도를 만들었다. 비리가 드러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지난 12일, 경찰은 Mnet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CJ ENM의 신형관 부사장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앞서 5일에는 <프로듀스 X 101>의 김용범 총괄 PD와 안준영 PD의 구속영장심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앞서 <프로듀스> 시리즈에 연습생을 출연시킨 적 있는 한 기획사 관계자는 “원래는 안준영 PD로 꼬리 자르기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앞으로의 수사 결과에서 윗선의 개입이 얼마나 있었는지 나오면 얘기가 좀 달라질 것 같다”고 말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금은 Mnet 쪽에 시선이 집중돼 있어서, 여기에 관련된 기획사들까지 영향을 받을까 싶기도 하다”고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미 <프로듀스> 시리즈로 인해 형성된 K팝 산업의 특수한 판도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나가지 않고 오랫동안 공을 들여 데뷔와 컴백을 준비한 아이돌 그룹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데뷔를 준비하는 한 보이그룹 관계자는 “우리만의 콘셉트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미 <프로듀스> 시리즈로 나온 팀들이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된다”고 말한다. 다행히 “그나마 <프로듀스> 시리즈가 데뷔 시기를 정하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다른 신인그룹이 데뷔 시기의 중복을 피해갈 수 있고, 에이티즈처럼 자기들만의 콘셉트로 잘 된 팀도 있지 않냐”는 말에 약간의 희망은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전히 비관적인 입장을 취한다. “<프로듀스 X 101> 검찰 수사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거기서 인기를 끈 연습생들이 많은 기획사도 있기 때문에 연습생을 출연시키지 못한 기획사보다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불안에는 이유가 있다. <프로듀스>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연습생들 중 다수가 탈락한 뒤에 여러 모양새의 팀으로 데뷔했다. 다들 <프로듀스> 시리즈에서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팀을 홍보해, 동시기에 함께 데뷔한 다른 신인 아이돌 그룹보다 쉽게 관심을 끌었다. <프로듀스> 시리즈에 출연하지 않았던 한 회사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시에는 <프로듀스>에서 팬을 확보하지 못하면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으로 시장에 뛰어드는 느낌이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데뷔를 했다가 실패를 맛본 팀들은 KBS <더 유닛>, JTBC <믹스나인> 등에 출연하기도 했다. 모두가 <프로듀스> 시리즈와 I.O.I, 워너원의 성공으로 나온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데뷔가 무산되거나, 그다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일을 겪었다.
오리지널리티. 어쩌면 이것은 ‘<프로듀스> 시리즈가 갖고 있던 가장 큰 힘이었다. 비슷한 포맷의 후발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했던 그룹보다도 훨씬 더 인기를 끈 팀은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탈락생들로 이루어진 JBJ다. 팬들이 요구해 한시적 프로젝트 그룹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용 꼬리 되기와 뱀 머리 되기 중 어느 쪽이 나은지 겨루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는 방송 관계자의 말처럼, <프로듀스> 시리즈에 나와 팬을 확보한 탈락자 연습생들이 속한 팀인 JBJ의 데뷔 앨범 ‘FANTASY’의 판매량은 134,900장(가온차트, 2017년 연간 앨범 판매량 기준)이었다. 하지만 <더 유닛>을 통해 데뷔한 유앤비의 앨범 ‘BOYHOOD’는 46,131장(가온차트, 2018년 연간 앨범 판매량 기준)이 팔려 JBJ의 음반 판매량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프로듀스>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오리지널리티는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프로듀스> 시리즈가 태동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잡는다고 얼마나 바뀔까 싶다”, “어차피 방송사와 기획사 간의 커넥션은 오래된 관행이라는 게 과거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는 여러 음악방송 관계자들의 말은 <프로듀스> 시리즈의 오리지널리티라는 요소가 궁극적으로는 K팝 산업의 어두운 단면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낸다. 즉, 범인을 찾아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젯거리를 지금 K팝 산업과 그 소비자들이 마주했다. <프로듀스> 시리즈가 의도치 않게 드러낸 한국 아이돌 산업의 주요 동력이 무엇인지 지금 수많은 대중이 보고, 느낀다. 대체 K팝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경찰 조사가 끝나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는 걸까.
-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