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제주도에서 산다는 것

2020.02.07GQ

제주도에 정착했다가 유턴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간다. 물리적인 위치를 바꾼다고 해서 삶의 만족도가 바뀌는 건 아니다.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방금 목적지인 제주국제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비행기 안내 멘트가 나오면 바짝 조여져 있던 온몸의 근육이 자동적으로 느슨해진다. 지친 일상을 탈출해 떠난 여행객들에게 제주도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통하는 통로겠지만, 이곳이 고향인 내겐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연결문이다. 보말을 잡아 삶아 먹고, 돌담을 넘어 귤 서리하고(죄송해요, 귤밭 주인님),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죄송합니다, 선생님) 겨울 바다로 향했던 십 대 시절의 내가 이곳에 있다.

2000년 초반,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라는 말이 힘을 발휘하던 시기였다. 서울 하늘 아래에 홀로 섰던 날의 낯설었던 첫 공기를 기억한다. 전국 8도 사람들이 모여드는 서울이지만, 출신이 제주도라는 건 그 중에서도 여러모로 튀는 일이었다. 열에 아홉은 “부모님이 귤 농사하시겠네요?”라고 물었다. 누군가는 “정말로 말들이 도로 위를 막 뛰어다니나요?”라고 진지하게 말을 건네왔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셨….” 창의성이 빛나는 질문도 있었다. “한라산에서 공을 차면 바다로 떨어진다면서요?” 황당한 질문에 괜히 빈정이 상할 땐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하는 것도 아시죠?”라고 되물었다.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미친 사람 바라보듯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땐 뭐랄까, 한국 사회에서 제주도는 육지에서 떨어져서 섬이 아니라, 미지의 땅으로 인식되기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외계 섬 같았다.

2010년을 넘어가면서 제주도는 ‘힐링의 성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배경에 저가 항공 활성화가 있었다. 20만~30만원 하던 서울-제주 왕복 항공권을 5만원 안팎에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심리적 거리가 단축됐다. 고향 집에 내려갈 일이 많았던 내게도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올레길 조성도 사람들을 제주로 유인했다. 올레길 위에서 위로를 얻었다는 아름다운 후기들이 바다 건너 육지에 닿았다.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유명 스타들이 찾아들면서 제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커졌다. 대한민국 대표 트렌드세터 이효리로 인해 ‘소길리’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핫 스폿이 된 건, 아마 모두가 잘 아는 사례일 것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연예인들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며 ‘제주식 킨포크 라이프’를 향한 로망이 달아올랐다. ‘제주 한 달 살기’ 열풍이 일었을 때만 해도 이 관심이 얼마나 가려나 의심했던 나는, ‘제주 이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자 이것이 반짝하고 끝날 유행이 아님을 직감했다.

제주도 열풍이 일면서 내게 던져지는 질문의 종류도 달라졌다. “현지인이 많이 가는 제주 맛집 좀 소개해주세요.”, “좋은 숙소 추천해줄 수 있어요?” 거기엔 정보가 진짜 궁금해서 묻는 사람이 있었고 친분을 쌓을 요량으로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유이건 제주도 출신이라는 건 호감 가는 사람과 대화를 확장시킬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됐다. 지금도 이런 질문이 종종 날아든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제 그 질문에 대답해줄 말이 별로 없다. 제주의 변화 속도는 제주 출신인 내게도 따라잡기 버거운 것이었으니까. 제주도는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가장 급변하게 변화를 겪고 있는 지역 중 하나다. 1년에 두어 번 내려갈 때마다 나는 달라진 제주의 모습을 발견했다. 모교 제주여자고등학교가 있는 ‘아라동’은 대단지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서면서 과거의 흔적이 지워졌다. 국제학교가 생기면서 현대판 맹모(孟母)들이 제주도로 몰려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스타벅스. 2011년까지 스타벅스는 제주 사람들에게 육지에 가야만 음미할 수 있는 ‘육지의 맛’이었다. 제주도에서 익숙한 초록색 간판 로고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제주 여행과 이주 열풍의 변화를 빠르게 읽어내는 곳이 출판계다. 제주 열풍 초창기엔 가볼 만한 곳을 알려주는 ‘여행 안내서’가 쏟아져 나오더니, 제주 한 달 살기 붐이 일면서 ‘체류기’가 그 인기를 이어받았다. 조금 지나 ‘이주하는 법’들이 앞다퉈 경쟁을 벌였다. 최근엔 제주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철새처럼 유턴하는 이민자들이 늘면서, 제주에서 돈 버는 방법을 다룬 책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제주도 인구정책 종합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제주 지역 전출 인구 중 87퍼센트가 이주민이었다. 언론은 놓치는 법이 없다. ‘제주도 이주 열풍 끝났나’, ‘제주에 살던 육지 사람들 제주 떠난다’와 같은 헤드라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확실한 건, 아무리 꿈에 그리던 공간이라도 그곳이 일상이 되고 생계와 결부된 공간이 되면 달라진다는 것. 통장 잔고가 바닥으로 향할수록 여유는 흔들린다. 그리고 찾아온다. 물리적인 위치를 바꾼다고 해서 삶의 만족도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건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이. 낭만에 기대 제주행을 택한 경우일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더 크다. 바다가 보이는 아침 풍경을 꿈꾸며 해안가 부근에 집을 사서 정착한 친구 K가 그랬다. K는 바닷가 습기와 모래라는 변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곰팡이의 공격과 가전제품의 빠른 부식과 치워도 치워도 사라지지 않는 모래 공격 속에서 K는 잦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나는 K가 1~2년 안에 서울로 돌아온다에, 내 재산 1천원을 걸었다.

제주 정착의 천적 중 하나는 집값과 땅값일 것이다. 제주엔 ‘연세’라는 임대 문화가 있다. 1년 치 월세를 한꺼번에 지불한다고 해서 ‘죽어지는 세’라고 불린다. 제주 열풍이 일기 전만 해도 연세 2백만~3백만원 선이면 시 외곽 지역에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주 바람을 타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가격이 가파르게 뛰었다. 땅값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 곡선을 그렸다. 사진가이자 홍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던 지인 P가 동료들과 함께 제주시에 정착해 가게를 연 건 2014년이다. 남원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느낀 제주의 매력이 제주 이민을 결심하게 했다. P는 제주에 정착하기 전에도, 그리고 제주 시청에 가게를 낸 후에도 더 좋은 자리를 보기 위해 부동산을 찾아다녔다. “2013년 평당 80만원 하던 애월 해안도로 접한 땅이 2014년에 평당 1백30만원까지 뛰었어요. 1년 전 가격을 몰랐으면 모를까, 너무 훅 뛰니까 망설여지더라고요. 그땐 곧 꺼질 거품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2015년 그 땅이 평당 1백70만~1백80만원으로 올랐다. 또 1년이 지나니까 평당 2백30만원이 됐다. ‘이제라도 사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기차는 떠났다. 평당 4백만 원까지 오르자 P는 땅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제주도에는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제한적이다. P처럼 자영업을 하거나 농사를 지으러 오는 경우가 아니면 밥 벌어 먹고 살 게 얼마 없다.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이주민 사장님이 많은 건 그래서다. 그마저도 치솟는 임대료와 비싼 물가와 업체 간 치열한 경쟁으로 운영이 녹록지 않다. 문화생활 면에서는 어떨까. 이건 제주도에 살 때 가장 갈증을 느낀 부분이었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연극, 콘서트에 대한 아쉬움은 차치하더라도 하다못해 보고 싶은 영화도 마음대로 누릴 수 없다. 상업 영화 위주로 영화가 배정되는 탓에 아트 영화는 상영관도 못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주로 온 또 다른 이주민 J는 말한다.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서울에 갔어요. 쇼핑몰도 들렀는데, 하루 온종일 건물 안에서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는 ‘원스톱 시스템’이 그렇게 좋은 줄 새삼 깨달았죠.” 그럼에도 J가 제주도를 떠나지 않는 이유? “사는 곳이 서울인가 제주인가는 이제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곳에 제가 좋아하는 일자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죠. 놀이 문화가 적은 건 아쉽지만, 서울보다는 덜 번잡하다는 것도 마음에 들어요. 집값 관련해서 말이 많지만, 욕망의 도시 서울보다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많아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괴로워할 일도 크게 없고요. 물론 지금 하는 가게가 문을 닫으면, 제게 제주에서의 다음은 없다고 봐야죠.”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마다 생각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 수 있을까. 제주도에서 나는 경계인인가, 내부인인가. 서울은 내게 종착역일까, 환승역일까. 제주도로 돌아가려면 버려야 할 것은 욕망일까, 관계일까. “승객 여러분, 방금 목적지인 김포국제공항에 착륙하였습니다.” 다시 몸에 긴장이 ‘빡’ 스며든다.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