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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터사이클 산업의 위기

2020.05.10GQ

자동차와 비행기를 제조하는 나라에서 모터사이클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숱한 기회를 날려버린 끝에 국내 모터사이클 산업은 시동이 꺼지기 직전이다.

대림의 ‘씨티’는 파수꾼이다. 국내 모터사이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로, 역대 판매 대수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항상 중심에 있었다. 1987년 씨티백을 시작으로 시대 흐름에 맞게 모델 체인지를 거쳐 지금까지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으며, 편리한 이동수단과 생계형 툴로서 국내 모터사이클 발전의 원천이 됐다. 그런데 지금 씨티는 위태롭다.

대림오토바이는 한국 모터사이클의 역사 그 자체다. 시작은 1962년. 기아산업이 혼다와 기술 제휴로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면서 국내 모터사이클 산업의 문을 열었다. 이후 1978년에 대림공업이 설립됐고, 1982년에 기아기연과 합병하면서 대림자동차공업이 됐다. 기아기연부터 이어온 혼다와의 기술 제휴로 합병 후에는 기아혼다에서 대림혼다로 명칭을 바꿨다. 엔진과 같은 주요 부품은 혼다의 것을 사용하면서 국내 조립 생산의 공정을 이어왔다. 덕분에 모터사이클을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씨티백, 택트, VF125 등이 탄생했다. 특히 씨티 시리즈는 혼다의 커브를 베이스로 탄생했지만 국내 시장에 맞게 개량한 모델이다. 국내 모터사이클 업계의 상징과도 같아서 여전히 ‘대림’이라고 대표한다.

KR모터스의 전신은 효성기계공업이다. 당시 효성기계공업은 스즈키와 기술 제휴를 맺어 효성스즈끼라는 상표명을 달았다. 1980년부터 모터사이클 판매에 돌입했고,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IMF와 인수합병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엔진 개발과 독자 모델에 대한 끊을 놓지 않았다. 현재까지 국내 최대 배기량 엔진과 레저용 모터사이클을 생산하는 등 도전을 멈추지 않은 덕에 나름의 애증 섞인 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효성기계공업은 2007년에 S&T모터스로, 그리고 2014년에 코라오홀딩스가 인수하면서 지금의 KR모터스가 됐다.

모터사이클 산업이 도래한 지 약 60년이 흐른 지금, 국내 제조사의 미래는 어느 때보다 암울하다. 대림오토바이와 KR모터스의 명예와 신뢰도는 추락한 지 오래다. 정부는 모터사이클 산업에 영 관심이 없다. 연간 30만 대를 판매하던 실적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대림오토바이의 업계 1위라는 타이틀 역시 언제 빼앗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기술력의 부재다. 모터사이클 산업 초기에는 일본의 기술을 전수받거나 자체 제품 개발에 의욕이 있었지만, 투자 대비 판매 부진과 결함 등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본 브랜드의 라이선스 제품을 국산화하는 생산 방식에 치우쳤다. 융통성 없는 정부의 방침도 거들었다. 수입 규제의 그늘 아래 국내 브랜드의 독점 형태로 굳어버린 시장은 브랜드를 나태하게 만들었다. 특히 국내 브랜드가 주력하던 저배기량 바이크 부분의 관세가 높았다. 수입 브랜드가 감히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7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안방에서 배부르자 점점 안주하기 시작했다. 기술 개발의 진척은 더뎠고, 당연히 세계적인 흐름에서도 서서히 도태됐다. WTO 체제로 시장이 더욱 개방된 후에는 수입 브랜드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정상급 품질의 일본 브랜드와 가성비 좋은 대만 브랜드, 여기에 저가형 중국 브랜드까지 기습했다. 시장이 서서히 잠식당하면서 국내 브랜드의 입지는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현재는 유일한 희망이던 상용 바이크 시장마저도 내준 상태다. 전국 곳곳에 판매와 서비스 인프라를 오래전에 구축해 유리한 환경을 선점하고 있었지만, 대세는 이미 넘어간 후였다. 결국 값은 조금 비싸더라도 혼다 PCX와 같은 상품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세울 만한 기술력 하나 없다 보니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외면당했다. 이제는 중국 제품을 수입해서 로고만 바꿔 파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새로운 모빌리티 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공언하면서 중국의 저가형 전기 스쿠터를 수입해 정부 보조금만 챙기는 꼴사나운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관련 법규와 제도의 개선은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륜자동차로 고속도로를 통행할 수 없고, 올림픽 대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도 진입할 수 없다. 자동차로 분류되어 자동차세 등의 의무는 부여되는 반면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자동차 정비사와 달리 모터사이클 정비사는 국가공인자격증도 없다. 면허제도 역시 허술하고 실용성이 없다. 실질적인 문제 해결은 둘째치고, 온갖 규제를 들이민 이후 발생하는 문제는 등한시한다. 기업이 사활을 걸고 기술 개발과 투자를 할 리 없다. 정부의 뒷짐에 모터사이클에 대한 의식, 문화, 산업 등 모든 것이 뒤처졌다. 브랜드는 쇠락을 거듭한 끝에 이제는 의지마저 없어 보인다. 개선을 위해 팔 걷고 나서는 기업과 정부가 없어 체계가 잡히지 않는다.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산업을 기반으로 발전시키려다 보니 의식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곪아 터지는 악순환이다.

애국심으로 장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술력이 없으면 게임은 끝이다. 안타깝게도 60년에 가까운 국내 모터사이클 역사의 산증인과 같은 대림오토바이와 KR모터스의 가치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정부는 방관했고, 기업은 안주했다. 대림오토바이와 KR모터스는 시장 점유율 하락은 물론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KR모터스가 대림자동차의 이륜사업 부문을 인수하려 했으나 결국 무산됐다. 대림산업은 여전히 대림오토바이의 매각을 고려 중이다.
모터사이클이라는 운송 수단의 가치는 분명하다. 작고 경제적이며, 실용적이고 편리하다.

특히 비대하게 확장된 도시에서 주차 문제와 교통 체증을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도로 위에서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교통수단이 자동차만은 아니다. 모터사이클은 차보다 열세하지도 않고, 자동차로 올라가기 위해 잠깐 타고 거쳐가는 물건도 아니다. 엄연히 개성과 물성이 달라 산업과 사회 구석구석에 투입될 가치가 있는 정상적인 교통수단이다. 사용처가 특정 문화권이나 지역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모터사이클 산업이 사멸한다고 해서 국가 경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발전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이대로라면 시장은 넓어도 자리를 보존할 방법이 없다. 로고만 바꾼 중국 제품을 파는 수입사의 꼴이 아니라 진정으로 미래를 이끌 모빌리티 리더로서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고, 올바른 제품으로 화답했으면 한다. 이게 첫 번째다. 골목대장 역할에 그쳤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국내 판매에만 치중해서도 안 된다. 아세안 지역은 모터사이클이 운송 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브라질과 멕시코 등 라틴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현재 일본 브랜드와 자국 브랜드가 시장을 석권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저가 틈새 시장을 공략해야 할 테지만, 지금 상태라면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길 재간이 없어 보인다. 내연기관이든 전기동력원이든 중요치 않다. 새롭고 획기적인 기술과 모델이 절실하다. 현실과 심각성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씨티백은 한국 모터사이클의 지표 같은 존재였으나 점점 설 자리를 잃고 목적지 없이 표류하고 있다. 이 같은 전개라면 바이크 산업은 고사할 게 분명하다. 호황기로 시간을 되돌릴 순 없겠지만, 바이크 제조국이라는 명맥이라도 유지했으면 한다. 새로운 파수꾼이 절실하다. 글 / 조의상(모터사이클 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