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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 "목숨을 가진 생명체는 한없이 약한 것 같아요"

2021.06.28전희란

약함을 말하는 강함. 이주영의 가감 없는 방식과 태도.

화이트 슬리브리스, 낸시부. 블랙 재킷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레드 볼 캡, 원더비지터.

슬리브리스, 자라. 데님 팬츠, 데님 재킷, 모두 리바이스.

GQ <춘몽>에서 타던 오토바이 아직 타요? 본인이 평소에 타던 거였잖아요.

JY 처분한 지 좀 됐어요. 가파른 언덕 위 집으로 이사했는데 아빠가 너무 걱정하셔서요. 대신 차 사준다 해서 고맙게 넙죽 받았죠.

GQ 오늘 입은 의상이 그 오토바이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촬영 중에 역시 청청이 최고야, 계속 이야기하더라고요. 청청 패션이 왜 그리 좋아요?

JY 최우선은 편한 거예요. 편하면서 많이 꾸민 것 같지 않고 자연스럽게 멋진 것.

GQ 얼마 전에 드라마 첫 주연을 맡은 <타임즈>가 종영되었죠. 끝나고 나니 어때요?

JY 과연 주연의 무게감은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많이 배웠어요. 주연이 아닐 때라고 가벼웠던 건 아니지만 작품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달까. 함께한 이서진, 문정희, 김영철 선배님 보면서 오랫동안 어떤 위치에 있는 분들은 다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개인의 입장보다 모든 사람과 어우러지면서 작품 안에서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할지 선배들 보며 많이 배웠어요.

GQ 극 중 서정인은 아주 집요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죠. 이주영에게도 서정인 같은 집요함이 있나요?

JY 없어요. 뭔가를 집요하게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금방 질리고, 잘 포기하고, 타협도 잘해요.

GQ 집요할 줄 알았는데.

JY 전혀 아니에요.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너무 관성처럼 일을 하고 있나?

GQ 언제 찾아온 생각이죠?

JY 불과 이틀 전. 소파에 누워서 천장 보다가요. 연기든, 오늘 같은 화보 촬영이든 저는 항상 처음 그 순간처럼 설레고 재미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지루하진 않을지 고민이 돼요. 계속 봐도 질리지 않고 좋아할 수 있을 만한 포인트를 충분히 갖고 있나…. 계속 새롭고 싶어서요. 생각이 무거워져서 대대적으로 방 청소 했어요.

GQ 뭘 치웠어요?

JY 저는 미니멀리스트예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놓여 있으면 마음의 짐이 돼요. 그래서 뭔가를 버리는 거, 너무 기분 좋아요. 시야 안에서 치워버리면 그 물건의 무게만큼 가벼워지는 느낌이거든요. 어제도 청소하느라 거의 밤샜어요. 한번 뒤엎으면 해치워야 하는 성격이라.

GQ 그럼에도 여전히 못 버리는 건?

JY 좋아하는 영화 굿즈, 그리고 그동안 해온 작품에서 제가 캐릭터를 분석한 노트들. 청소하다 5년 전 작품들 연구한 거 보며 반성했어요. 그땐 내가 참 집요했구나 싶어서. 예전의 유물들 보면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게 꽤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다짐했죠. 앞으로도 노트만은 버리지 말고 남겨두자. 5년 뒤, 10년 뒤에 보면 지금의 것도 다르게 보일 테니까.

슬리브리스 드레스, 렉토. 진주 목걸이, 유지떼 at 아몬즈. 나머지 주얼리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퍼프 소매 크롭트 톱, 마티유 at 매치스패션. 하이 웨이스트 팬츠, 더오픈프로덕트.

GQ 유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싸이월드 다시 열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JY 안 그래도 소식 들었어요. 특별히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는 건 아닌데, 그걸 굳이 다시 여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사람들이 그걸 원할까요? 내 의지로 내 과거엔 이랬어, 보여주는 것과 의지와 상관없이 공개되는 건 다르니까.

GQ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길 바라는군요.

JY 타임캡슐처럼 고이 보관되어 있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을까요?

GQ 그래도 영원히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혹은 서정인처럼 과거에 신호를 보내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바꿀 거예요?

JY 과거는 별로 개의치 않아요. 그것도 다 저이니까요. 살면서 후회하는 게 많이 없어요. 돌이켜보면 괴로우니까 외면하기도 하고, 스스로 암시를 하죠. 지나간 일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GQ 서정인처럼 어떤 한 선택이 다른 생을 가져온다고 믿기보다는,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봐요.

JY 맞아요. 여러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이기도 하고요. 우연히 연기를 시작했다고 생각해왔는데 돌이켜보면 저는 연기를 할 성정을 갖고 태어난 것 같아요. 운명을 좀 믿는 편이에요.

GQ 언젠가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린 책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어요. “생 안에는 자기를 초과하는 힘이 있다.” 그 말을 믿어요?

JY 생 안에는 자기를 초과하는 힘이 있다. 네, 그렇게 생각해요. 목숨을 가진 생명체는 한없이 약한 것 같아요. 최근 뉴스를 보면 사람 인생이 참 허무하다, 허망하다 싶죠. 저 역시 굉장히 약해요.

GQ 강함으로 많이 인식되어 있죠.

JY 강하고, 흔들리지 않고, 신념이 있는 이미지로 많이 봐주시죠. (잠시 침묵) 그런데 저 너무 약하거든요. 사실 강한 캐릭터를 만나면 벅차요. <야구소녀>의 주수인, <타임즈>의 서정인 같은 인물요. 인간 이주영으로서의 능력보다 너무 높은 능력치를 갖고 있는 캐릭터니까요. 오히려 제가 선망하는 대상에 가깝죠.

GQ 아주 자연스러워서 평소 이주영과 많이 닮은 건가 했는데, 달라서 끌리는 거였군요.

JY 그런 거 같아요. 저의 모습과 너무 다르니까. 한없이 유약하고 고통받고, 바스라질 것 같은 캐릭터를 굉장히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다른 에너지, 다른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요?

GQ <타임즈>에서처럼 굳게 믿고 있던 세계가 하루 만에 송두리째 달라지면 어떨 것 같아요?

JY 쉽게 타협하고 그 삶을 살려고 할 거예요. 서정인은 극 중에서 자신이 믿는 세계와 눈앞에 닥친 현실이 다르니까 자꾸 진실을 파고들며 잘못된 과거를 돌려놓죠. 오뚜기처럼. 저에게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저라면 하루빨리 달라진 현실과 타협해 안정감을 찾을 텐데. 스트레스 받잖아요. 서정인을 연기하면서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한 부분이에요.

GQ 그럼에도 스스로를 사랑해요?

JY 자존심이 굉장이 강해요. 고집도 세고요. 사주에 금이 많으면 고집이 세다는데 저는 금이 네 개 나와요. 황소고집이래요. (웃음) 전에는 타인이 볼 때 단점으로 읽힐 수 있는 점을 제게서 발견하면 많이 자책했어요. 나는 왜 이렇게 자존심이 세고 고집불통일까? 좀 더 유연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요즘은 사주, MBTI 보면서 위안을 받아요.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그랬구나.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모습이 있다면 노력해서 바꿔보고, 그래도 안 되면 받아들이자. 생각이 변화했어요. 20대 때까지만 해도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는 못했어요. 지금도 많이 부족해요. 하지만 저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데 열린 사람이고 싶고, 좀 더 멋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서른이 되면서 찾아온 변화예요.

퀼팅 소재 브라 톱, 8 at yoox.com. 선글라스, 블루엘리펀트.

GQ 넷플릭스 <겨우 서른>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라이브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거 봤어요.

JY 매일 두 편씩 보고 있어요. 굉장히 놀란 건, 국가가 다른데도 또래는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연예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일이 배우일 뿐, 제 일상은 굉장히 평범해요. 나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걸 경계하기도 하고요.

GQ 평소에 의식 안 하고 다니는 편이에요?

JY 아직도 종종 버스, 지하철도 타요. 편하게 다니는 게 제 스트레스 해소법이라 포기할 순 없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못 알아보기도 하고. 하하.

GQ <겨우 서른>의 세 주인공 중 하나의 역을 맡는다면 무엇을 택할 거예요?

JY 구자 역. 단순히 야망 있고 내조의 여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입체적인 캐릭터예요. 여러 가지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저는 중샤오친이랑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겠죠? 전 그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요. 구자가 남편의 외도를 눈치챈 뒤 분노하는 연기,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눈이 이글이글 탄다.)

GQ 지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 촬영에 한창이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보면 배우의 의견에 귀를 많이 기울이는 감독이더라고요. 유달리요.

JY 촬영 현장 어때? 누군가 물어보면 좋은 말밖에 안 나오는 현장은 오랜만이에요. 가끔은 현장이 연극적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감독님의 즉흥적인 주문도 많은데 저는 그게 재미있어요. 그러면서도 디렉팅은 굉장히 정확해요. 언어의 장벽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느껴요.

GQ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중에 뭐가 제일 좋아요?

JY <원더풀 라이프>.

GQ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JY 정말?

GQ <원더풀 라이프>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의 정류장에서 생을 돌아보며 다시 보고 싶은 반짝이는 순간을 영화로 만들잖아요. 이주영에게도 다시 보고 싶은 생의 찬란한 순간, 지금 떠올라요?

JY 반려견 티그와 만난 순간요. 4년 전 일인데 지금도 생생해요. 반려견 입양하려고 마음먹고 두세 달 동안 유기견 사진을 어찌나 찾아봤는지. 유튜브로 반려견 키우는 법도 열심히 공부하고요. 그런데 어떤 날, 어떤 순간에 티그를 만났고 ‘이 아이를 데려와야만 한다’는 운명적인 이끌림이 있었어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결혼도 그렇게 하는 건가?

GQ 마침 연출도 꿈꾸고 있으니 경험 살려서 영화화해보면 어때요?

JY 재미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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