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는 단순히 부품 공급을 넘어 양산 전기차까지 만들수 있을까? 가전제품을 만들던 LG를 이제는 다르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
“LG 그룹이 자동차 파워트레인 세계 3위 부품업체인 마그나와 합작법인을 만든다고 밝혔습니다. 계열사의 배터리와 인포테인먼트, 조명 및 기타 부품 등과 합쳐 종합적인 전기차 포트폴리오를 완성한다는 계획입니다.”
2020년 12월에 들려온 소식은 꽤 신선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브랜드가 신성처럼 등장하는 것이 요즘 전기차 시장 흐름이라지만, 그게 LG 그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니까 말이다. LG가 미래 전기차 시장을 주요 먹거리로 삼는다는 가설이 드디어 구체화된 시점이었다. 실제로 합작법인 이야기가 공식으로 수면 위로 오르고 단 몇 개월 만인 2021년 초. LG전자가 물적 분할 형태로 회사를 세우고 캐나다 마그나인터내셔널이 신설 회사 지분 49퍼센트(약 5천20억원)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LG전자 자동차 부품 사업본부(VS)에서 전기차 부품을 담당하는 1천여 명의 직원을 신설 법인으로 옮겼다.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은 인천에 사업장을 두고 전기차 모터, 인버터, 감속기가 모듈화된 구동 시스템과 배터리 히터, 배터리 팩, 충전기 관련 사업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한다. 참고로 LG와 합작법인을 만든 마그나는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선 내로라하는 자동차 부품 솔루션과 기술을 가진 곳이다. 이들은 과거 애플과 애플 전기차를 논의했을 만큼 자동차 전동화 생산 기술에 대한 노하우가 깊다.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은 LG 그룹 입장에선 큰 도약이자 2013년 이후 꾸준히 준비한 밑그림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LG 그룹에 구광모 회장이 취임하며 미래 먹거리로 꼽았던 ‘전기차 분야로 전환’의 완성 단계로 접어든 것이다. 현재 LG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은 전 세계에서 꽤 강력한 전기차 기술과 부품 공급망을 가지고 있다. 앞서 소개한 LG마그나 e파워트레인뿐만 아니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회사인 얼티엄 셀즈를 통해 연간 1백만 대 분량의 전기 차를 제작할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뿐인가?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 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만들어서 현대 기아차뿐 아니라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유럽의 폭스바겐, 아우디, 볼보, 르노 등 20곳 이상의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LG전자는 전기 모터, 인버터, 전동 펌프, 오디오, 비디오, 내비게이션(AVN),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스마트키 등을 만든다. LG디스플레이는 자동차용 디스플레이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브레이크 잠김 방지 모터나 차량용 센서, 카메라 등 통신 모듈, LED 라이트 모듈 같은 장비는 LG이노텍의 분야이고, 자동차 원단과 경량화 부품, 범퍼는 LG하우시스가 제작한다. LG CNS는 전기차 충전 솔루션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충전 인프라를 넓혀간다. LG유플러스는 5G 같은 통신 네트워크 규격을 개발해 자율주행이나 사물인터넷 통신 능력을 강화하는 배경이 된다.
이게 다가 아니다. LG는 얼마 전 카카오모빌리티에 1천억원을 지분 투자하면서 미래 모빌리티 분야의 플랫폼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하고, 잠재적인 시너지 효과도 모색하고 있다.
“회사의 자본력이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이케아 같은 가구 회사는 미래 자동차를 만들지 못한다. 그러나 LG나 삼성 같은 가전제품 회사는 미래 자동차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사는 이케아 같은 가구도, LG나 삼성 같은 가전제품도 만들 능력이 없다.” 약 10년 전에 우스갯소리로 하던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 순수 전기차라는 전동화 기술이 구체화되고, 모듈 형태의 전장 제어 장치가 시장 흐름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실제로 2022년 전기차 시장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됐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가 1백 년 가까이 발전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내연기관 엔진이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엔진을 중심으로 각종 전장 장비를 외부에서 공급받아 조립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협력 부품업체들의 규모가 커지고 자체 연구 시설과 모듈화 솔루션이 뒷받침되면서 자동차 시장에 시너지가 일어났다. 신차 개발 주기는 나날이 짧아지고, 가격 경쟁력도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일각에선 부품 공급 회사의 영역이 커지면서 주도권이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배터리 기술이 핵심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분야에선 이런 현상이 도드라졌다.
재규어처럼 소규모 완성차 회사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전기차 기술과 시장 분위기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마그나 같은 자동차 전장·부품 솔루션 회사에 전기차를 위탁 생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완성차 회사가 자동차 섀시와 외·내관 디자인에만 참여하고 전기차 구동계의 모든 기술을 외부에 맡겼다. 애플카, 구글 자율주행 자동차의 소문이 뜨거웠던 이유가 이런 구조적 변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아도 일부는 현실이 됐다.
루시드, 리비안, 카누, 프로테라, 어라이벌 등 자본이 뒷받침되는 스타트업 전기차 회사들이 다양한 전기차 제작 솔루션을 통해 쏟아지듯 시장에 등장했다. 듣도 보도 못한 중국 회사들이 전기차 기술을 발표하고 저가 제품부터 하이엔드 슈퍼 전기차까지 양산을 예고한다. 그만큼 전기차라는 분야는 새로운 시장이다. 시장의 진입 문턱이 낮아지고,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요즘 집 안 풍경을 보면 가전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다. 소파와 침대를 제외하면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정수기, 오디오, 공기청정기, 와인셀러와 조명 등 대부분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이 가전제품을 통해 이뤄진다. 심지어 옷이나 신발을 관리하는 스타일러나 유기농 식물을 재배하는 가전제품까지 등장한다. LG는 이 분야에서 선두다. 2021년 가전 분야 매출은 74조 7천억원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순익의 상당수를 전기차 부품·전장 전환 전략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TV와 가전제품에 쏠렸던 체질에 균형을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전기차와 전동화 흐름에 집중하면서 과거보다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다.
LG는 최근 개최된 CES 2022에서 ‘옴니팟’이라는 미래 자율주행차 콘셉트를 발표했다. 옴니팟은 ‘자동차가 집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집이 자동차가 된다’는 접근에서 이동형 공간의 확장 개념을 제시한다. 자동차 안에 들어서면 마치 요즘의 집 분위기처럼 소파를 중심으로 거대한 디스플레이와 각종 가전제품이 배치된 실내를 볼 수 있다. 운전석에는 롤러블 TV가 올라오고, 겉옷을 보관하는 스타일러도 달렸다. 소형 냉장고와 와인셀러를 더해 라운지같이 편안한 느낌도 든다. 도어 반대쪽에 대형 스크린을 달아 이동 중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도 제공한다. 업무에 최적화된 사무실이나 영화 감상, 운동, 혹은 숙면이 가능한 분위기로 바뀐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 콘셉트카에 담긴 모든 기술은 LG 그룹의 것이다. 사실 옴니팟은 앞으로 LG가 내놓을 순수 전기차라는 해석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미래의 자동차 전장 분야의 경쟁력을 보여주고, 새로운 플랫폼 비즈니스로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쪽에 가깝다.
물론 미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 흐름을 보면, LG가 당장 양산형 순수 전기차를 발표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만큼 전기차 시장에 깊숙이 들어섰고, 분명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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