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등학교 수능 모의고사에서 사상 처음으로 이과 응시생 수가 문과 응시생 수를 추월했다는 어느 저녁 뉴스는 오늘 이 기록에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취업률, 채용 인원, 월 평균 초임···, 학교 밖 사회에서는 이미 높낮이가 다른 파형이 깊은 골짜기를 이룬 지 오래. 다만, 그렇기에, 골짜기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바라보았다. 밤도 낮도 아닌, 암도 명도 아닌 그곳에서 스스로를 밝히는 등불을 든 이는 누구인가. 그는 왜 거기 있나. 무엇을 찾고 있나. 어디로 향하는가. 2022년 인문학도 이야기.
철학
왜 철학과를 택했나? 윤리교육을 전공하던 대학교 3학년 때 철학과 수업인 <현대유럽철학>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 강의를 녹음해서 아무리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무 어려워서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 동시에 ‘아, 이것이 대학에서 하는 공부구나’, 그제야 진짜 대학에 온 것 같았다. 철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동기들과 함께 쓰고 나누어 읽은 글이 있다. “그냥 활자가 좋은 게 아닌지. 집중하며 중력의 흐름을 거스르는 시간으로 빨려 들어가 사유하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을 이리도 회피하며 단순히 남은 흔적만을 보고 자기 위로를 하는 게 아닌지. 어려운 글을 읽고 나의 존재와 세상에 대해 고민한다는 일종의 지식인 계급에 속하고 싶은 치기 어린 허세가 아닌지. 단지 영화나 책을 통해 피가 들끓는 혁명가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거리에 나서지도 않고 그렇다고 생각하기를 회피하는 내가 부끄럽지는 않은지. 언제까지 내가 아직은 이래도 좋다는 젊음을 마지막 변명으로 내세울 수 있을지.” 물론 시험대에 오를 나의 민낯은 아직 부끄럽지만, 지금은 자신이 조금 붙었다. 공부가 재밌다.
요즘 무엇을 배우나? 철학은 크게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으로 나뉘는데 나는 서양 철학, 시기상으로는 현대, 국가로는 프랑스 철학을 배운다. 현재는 프랑스 철학자 중 질 들뢰즈 Gilles Deleuze의 텍스트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차이와 반복>을 즐겨 읽고 있다.
특히 곱씹는 부분은? 지금 당장은 ‘질 들뢰즈의 사유란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들뢰즈가 그동안의 철학과 사유를 비판하는 하나의 개념이 ‘사유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동안의 철학 혹은 사유들은 예를 들면 선함, 긍정 같은 어떠한 전제를 갖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발생한 사유가 아니라 전제를 가정하고 나온 사유이고, 이러한 사유의 이미지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질 들뢰즈는) ‘이미지 없는 사유를 해나갈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들뢰즈의 구도 안에서 사유가 발생하는 것은 어떠한 기호 Sign에 민감해짐으로써 그 기호가 우리에게 사유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 이해할 수 없거나 굉장히 폭력적일 만큼 내가 종잡을 수 없는 그림을 보게 됐다고 치자. 나의 인식의 틀 안으로 규정할 수 없는 대상인 기호를 만났을 때 사유가 발생한다는 것이 질 들뢰즈의 철학이다. 사유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해야 할까,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의 발생 혹은 어떤 기호가 촉발하는 사유가 굉장히 재밌고 필요해 보여서 이를 더 공부해보고 싶다.
철학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이건 나 스스로도 굉장히 크게 경험한 점이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학부가 철학과가 아니었다 보니 학자들의 텍스트(원서) 대신 우리나라 학자분들이 쉽게 풀어 쓴 해설서를 주로 읽었다. 그런데 대학원 면접 심사하던 교수님이 칸트의 책이면 칸트의 책을 먼저 읽어야지 그것을 해설한 (누군가의) 책을 읽는 것은 나중 일이라고 알려주셨다.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 텍스트를 자신의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는데 정말 어렵고 많이 달라서 다시 교수님을 찾아가 책이 읽히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여쭸다. 그때 하신 말씀이 두 번째로 새기게 된 태도다. “넘어가. 붙잡지 말고 그냥 넘어가.”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두 달 뒤 다른 것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고,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냥 읽힐 때도 있다는 거다. 큰 위안이 됐다. ‘완벽하게 완성하고 시작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해서 끝까지 나아가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느꼈다.
열아홉 살로 돌아가 스무 살의 나를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이건 들뢰즈가 <베르그송 중의>에서 베르그송을 빙자해 비판하던 ‘가능성의 사유’와도 맞닿아 있는데, 어떠한 결과는 무한한 잠재성이 현실화된 결과물이지 단순히 과거의 국지적 시점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잠재성이다. 내가 내린 모든 결정은 다 잘한 결정이었다.
철학이 왜 필요한가? 무서운 질문이다. 학부 시절에 철학에 대한 내 발표를 듣고 지구시스템공학부 학우 한 분이 똑같이 철학을 왜 해야 되느냐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물은 적이 있다.(웃음) 그때 화도 나고 억울하기도 한데 지금처럼 탁 막힌 거다.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을 많이 해보았는데···,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사유하는 것을 잊고 지나가며, 철학은 그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근력 운동이라기보다는 유산소 운동 같은. 사유하는 지구력을 길러줘 나 자신이 되었건, 사회가 되었건, 철학자가 되었건, 누구에게도 단순히 속고 살지 않게끔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최근, 지금까지 내가 한 선택들, 내가 지금 하는 진로 고민이 온전히 내 것이었는지 많이 생각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부모의 영향을 받았거나 사회가 삼는 이상향을 지향한 고민이었지 않나 싶은 거다. 혹시 오해가 생길까 싶은데, 앞서 말한 대로 다시 선택하고 싶거나 철학을 공부한 일을 후회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당장 박사 과정까지 마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지 언젠가 꼭 할 계획이기도 하다. 다만 그동안 내가 아닌 세상의 다양한 멘토가 나를 이 길로 안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거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를 등불로 삼기로 했다. 이것은 윤리이자 당위다.
그 등불을 밝혀주는 대상은 무엇인가? 나의 좌우명, <김영민의 공부론>에 담긴 맹자의 말 “인이불발 引而不發”. 즉 활시위를 당장이라도 쏠 것처럼 당길 뿐, 쏘지 않는다. 이는 그저 알기도 아니며 그냥 모르기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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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궁금하다. 칸트 전공자들이 굉장히 난해하다고 욕해서.
movie 박찬욱 <헤어질 결심>, 미아 한센-러브 <베르히만 아일랜드>.
poem 서동욱 시집 <곡면의 힘> 중 ‘이별의 복기’.
생사학
생사학이란 무엇인가? 라이프 앤 데스 스터디 Life And Death Studies, 우리 말로 삶과 죽음에 관해서 다루는 학문이다. 1903년 메치니코프가 노인학을 연구하면서 죽음학 Thanatology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했고, 1950년대에 미국의 학자 헤르만 파이펠 Herman Feifel이 자신의 저서 <죽음의 의미 The Meaning Of Death> 등을 통해 죽음학의 연구 성과를 제시하면서 의미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관련해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설립된 한림대 생사학연구소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고, 교육 과정으로 2013년에 개설한 것이 생명교육 융합 대학원이다. (학과명에) ‘죽을 사’ 자가 들어가는 것을 교육부에서 받아주지 못해서 ‘생명교육’, 그리고 삶과 죽음을 다루려면 철학, 종교학, 심리학, 의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이 어우러져야 하니 ‘융합학’, 그래서 생명교육융합학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어떤 학문을 공부했나? 1983년에 서강대학교에서 경제와 수학을 공부했고, 2005년에는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 대학원에 입학해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원래는 대학 졸업 후 재수 학원에서 수학 강사로 일했는데 나와 잘 맞지 않았다. 합격을 위해 가르친다는 것이, 학교에 (학생을) 붙여야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이라는 게 무엇인지 인간에 대한 관심이 늘 많아서 어릴 때부터 동양 철학이나 심리학 책을 봐왔고, 상담 심리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자격증을 갖추고 상담 일을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대학 졸업 후 개인 사회 활동을 하고, 직장 다니다가 또 대학원에 가고, 띄엄띄엄 10년마다 공부하러 다닌 것 같다.
이번에는 그 주제가 왜 죽음인가?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다루기 힘든 주제가 죽음이다. 누군가가 자살해서, 돌아가셔서 몇 년씩 우울증에 걸리거나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담은 사람 마음을 다루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해 우리가 잘 모르고, 그것을 학문적으로 접할 데도 없었다. 그런데 마침 죽음 이야기를 하는 학과가 생기니 얼마나 반가운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공부하러 오는지 궁금해서 가봤더니 비슷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상실, 사별을 겪고 그 이후의 자기 삶에 대해 계속 고민하는 사람들. 삶의 시작이 우리 생명이라고 한다면, 삶의 마무리가 죽음이다. 시작과 마무리가 우리 삶을 관통하고 있는데 왜 삶에 대한 이야기, 내가 무엇을 할 것이고 어디에 취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다루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을 이곳에서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내가 공부해본 이 학과의 취지는 ‘사람들이 자꾸 숨기는 죽음이라는 것을 꺼내보는 일을 하자’ 같다.
죽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꺼내보나?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 위에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죽음을 성장의 과정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한번 정리해보는 것이 첫 번째로 다루는 내용이다. 가장 먼저 생사학에 관련된 여러 고전을 살핀다. 삶의 이야기를 쭉 뽑아낸 것이 삶에 대한 학문이라면, 티베트의 <티베트 사자의 서> 같은 고전이나 기독교, 불교, 유교 등 종교에서 말하는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만 편집해보는 것이다. 귀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공자가 “미지생 언지사 未知生 焉知死”, 즉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아느냐 말한 일화라든지, 예수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등 삶과 죽음에 대해 언급된 것과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를 표현한 것, 우리는 이를 생사관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여러 생사관을 모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임종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호스피스나 남아 있는 가족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끔 하는 애도와 관련된 주제, 사망과 관련된 법도 다룬다. 그래서 크게 보면 ‘데스 Death – 다잉 Dying – 비리브먼트 Bereavement’라고 한다. ‘Death’는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 ‘Dying’은 죽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들, 그리고 ‘Bereavement’는 사별 이후에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고 그들을 어떻게 상담할 것인지 학기마다 배운다.
배움을 통해 바뀐 관념이 있나? 죽음을 하도 다루다 보니까 실제로 ‘다룬다’라는 느낌을 갖게 됐다. 어쩔 수 없다는 게 죽음이었는데, 죽음을 자꾸 얘기하다 보니까 ‘그래도 죽기 전에 할 수 있는 일로 이런 게 있네?’ 하는 통찰이 생기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예를 들면 존엄사라는 것이 있다.(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더 이상 연명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환자 자신이 사전에 관련 서류를 내거나 가족의 동의를 받을 경우 가능하다.) 현대 과학에서는 산소호흡기로 숨을 불어넣으면 10년이고 20년이고 살려둘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살고 싶은가’, ‘의사소통도 되지 않고 의식도 없는데 숨만 붙어 있는 게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남은 가족에게 맡기지 말고, ‘나는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 스스로 자꾸 질문을 던지다 보면 죽음에 대해 ‘내가 그냥 당한다’는 느낌보다 ‘내가 다룰 수 있다’, ‘내가 먼저 나아가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은 두렵고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죽고 나면 남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상담을 하다 보면 유가족들이 유산을 가지고 많이 싸운다. 유가족 입장에서는 유품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정리해야 할지,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논쟁이 될 수 있다. 남겨질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화장을 할지 매장을 할지 혹은 다른 방법을 택하고 싶은지, 그런 결정을 스스로 미리 정리해두면 막연하게 있다 ‘헉’ 하고 죽는 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일종의 준비가 되는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참 낯선데, 그렇다면 스스로 죽음에 대해 하고 있는 준비가 있나? 말만 해서는 안 되니까 조심스러운데, 톨스토이의 마지막 죽음의 과정을 보며 영감을 받았다. 톨스토이의 삶은 굉장히 축복받고 영광이었지 않나. 그런데 자신의 삶의 마무리로 기차 여행을 하다 낯선 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곳으로 막내딸이 와서 임종을 지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미리 정리할 것 하고, 나눠줄 것 주고, 여행하다 적당한 데가 있으면 그곳 병원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역에서 그러면 폐 끼치니까.(웃음) 여행을 가기 전에는 생전 장례식이라고 해서 생일 파티 하듯 미리 사람들을 초대해 나 죽었을 때 부조하지 말고 지금 해라 해서 그 돈 가지고 여행하겠다. 생전 장례식이라는 문화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는데, 나는 이런 문화도 필요한 것 같다. 죽은 후에 와서 해주는 위로도 좋지만 실제로 본인이 위로받고 싶은 것도 있지 않나. 내 죽음에 대해서.
그러나 삶이라는 것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지 않나. 미리 준비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죽음, 일방적인 죽음에 대해서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두고 위기의 사회라고 하지 않나. ‘위험 사회’라고,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Ulrich Beck이 주장한 말인데, 현대에 와서 죽음이나 위기가 항상 어디에서 터질지 모른다는 거다. 전쟁이 날 수도 있고,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고,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고, 그러니까 그것은 내가 잘하고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벌어진다는 거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도, 우리는 자연사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벌어지는 거다. 일어나는 거다. 나이가 들어서 우리가 사는 과정, 바꿔 말하면 죽어가는 과정도 일어나는 것이고 갑자기 사고로 죽는 것도 일어나는 거다. 다 급작스럽다. 그런 관점에서는 전부 대처가 안 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처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 이 공간에서 여기, 이 시간에. 그러니까 지금과 여기라는 ‘지금의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것을 1981년에 돌아가신 우리나라의 류영모 철학자 다석 선생의 말로 하면 “오늘”이다. ‘오’는 감탄사로 행복하라는 뜻이고 ‘늘’은 지금 영원히라는 의미다. ‘지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최대한 내 삶을 다하고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만이 우리한테 주어졌다고 생각하고 살자’, 그렇게 살면 죽어도 이 사람은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지 않나. 오늘 내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주로 가진 인생관은 ‘내일’ 이란 말이다. 내일 할 거야, 다음에 할 거야. 엄밀히 말하면 내일이 어디 있나.(웃음) 그래서 류영모 선생의 말을 “오늘살이”라고 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 그러니까 급작스런 죽음에 대비하는 방법은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충실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늘 잘 살아서 내일 잘 살아 있으면 행복하고 고마운 것이고, 지금 없다고 하면 그냥 일어난 거지, 뭐.(웃음)
생과 사의 관점에서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떤 분이 참 멋있는 말을 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무늬, 남아 있는 흔적에 대한 학문이다”라고. 인간이 이 세상에 나와, 예를 들면 돈도 벌고, 집도 짓고, 무언가 취하지 않나. 그런 모든 것을 인문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좋겠다. 자신이 어떤 문양으로 그려지는지 고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죽으면 결국 남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저 사람 저런 사람이었지, 하고. 그런데 그 기억이 어떠하면 좋겠는지를 본인이 생각하고 살아야 그와 비슷한 무늬가 남는다. 내 삶은 죽었지만 그 무늬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면, 어떻게 보면 또 살아 있는 것이지 않나. 영원히. 한 인간이 자신의 삶을 끝없이 성찰하고 표현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계속 자신의 무늬를 반추하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떤 무늬를 남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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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힐러리 제이콥스 헨델의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자주 빠지는 감정과 억제와 방어 기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sentence “30분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 수업 On Grief And Grieving> 중. 애도 과정에서 충분히 표현해야 할 것들을 하지 못하면 자꾸 어딘가에 남아있다. 우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사회적인 눈치 때문에 억제하고 참지 않았으면 좋겠다.
exhibition <Beyond The Ridge – 그들은 왜 산에 오르는가>. 작가 황문성이 2년동안 찍은 우리나라 산악인 36인의 인물 사진전.
사학
사학도로서 요즘 관심을 가지는 사회 이슈는 무엇인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그리고 최근 경직되고 있는 미중 관계를 지켜보고 있다. 부전공이 정치외교학인데 이번에 국제 관계를 보며 결국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인가 하는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같은 이슈에 대해 정치외교학은 왜 이런 전쟁이 일어났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적으로 접근한다면, 사학은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어떤 미래를 꿈꿔야 하는지, 혹은 이런 전쟁 상황 속에서 누가 피해받고 있으며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추상적인 질문들로 다가간다. 두 학문을 통해, 조금 비관적인 말이지만 전쟁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고 누군가는 계속 죽고 피해를 입을 텐데,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실제로 베를린에 잠시 머물 때 전쟁이 막 시작되어 친구들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옷을 기부했는데 이건 정말 작은 형식이고, 사학을 공부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이 역사가 언젠가 기록됐을 때 왜 이렇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는지 짚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하나의 역사에 소속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기록되고 전승되는 역사는 보통 승리자들의 역사라고 하지 않나. 이런 소수의 (미세한) 부분은 잘 기록되지 않는다. 당시 이해 관계나 권력 관계를 더욱 고려해서 역사를 봐야 한다는 것을 사학을 배우면서 알았다. 러시아는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낸시 펠로시는 왜 대만을 방문했을까? 프랑스 혁명 역사에서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저항했던 건 왜 빠졌을까? 우리가 역사라고 배운 그 역사가 왜, 어떻게, 기록될 수밖에 없었는지 집중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이 있나? 어릴 때는 위인전에 많이 나오는 이순신, 세종대왕, 선덕여왕, 잔다르크 이런 인물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는데, 역사를 배우면서 ‘이렇게 기록된 게 진짜 이 인물이 맞을까? 어쩌면 내가, 사람들이 보고 싶은 대로 만든 인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인물의 한계나 단점을 발견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인물을 따로 설정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하게 말하는 일은 경계하게 된다.
역사라는 것은 기록이 분명한 학문인데 그것이 꼭 분명하다고 할 수 없다는 이야기 같아 아이러니하다. 내가 사학을 공부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사학과가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학년 때는 그 추상성 사이에서 ‘이걸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데 어떡하지?’ 싶어 자주 길을 잃었다. 교수님들이 말씀하시는 것 또한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니고, Yes도 No도 아니어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실에서라기보다 사실을 판단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에서 길을 잃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추상성만이 담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더라. 세상에는 Yes나 No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도 많고, 흑과 백이 아니라 회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진리도 많아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건 그냥 어려운 문제구나. 그 안에서 내가 길을 잃어야 되는 문제구나’ 생각하고 넘기게 됐다.
요즘은 무엇에서 헤매고 있나? 누군가는 사람들을 구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혹은 그냥 편하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경계선을 긋는다. 나는 계속해서 경계선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어놓은 경계선에 언제 내가 걸릴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이라도 세상의 경계선을 지워보고자 한다. 재일조선인, 화교, 오키나와인 등 냉전이라는 양대 강국의 힘겨루기 상황에서 자신의 자리를 뺏긴 이들이 어떻게 자리를 뺏겼는지, 그 과정에서 어떻게 권력이 개입되었는지 공부하고 있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사학도로서 무슨 말이 지겹나?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준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같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만큼 달라졌고 이만큼 더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인턴으로 학교에서 사회로 첫발을 내디뎠는데, 전공을 통해 배운 지식이나 시선이 발현하는 지점이 있나? 원래 동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다가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보고 싶어 비영리 사단법인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됐다.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곳은 쉽게 말해 사회적인 임팩트를 창출하는 기업인데, 전공 지식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건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공을 배우면서 내가 설정한 마인드셋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 느낀다. 사회적인 임팩트라는 것은 단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에 투자하고 그 사회적 기업이 비즈니스를 한다 해서 그것이 바로 사회적 가치로 창출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차가 필요한데, 이 시간차를 견뎌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표님이 말씀하시더라. 내가 이만큼 비즈니스를 실행할 때 효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서 무력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반대로, 이것이 내가 역사를 배우면서 느낀 점인데, 내가 원하는 모습과 원하는 방향이 바로 일어나지는 않지만 언젠가 이뤄지겠다는 희망을 갖고 잔잔하게, 비관적으로, 하지만 희망적으로 임하는 마음의 힘을 길러왔다. 그 힘이 추상적이지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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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ence 현대 미술 작가 제니 홀저 Jenny Holzer의 “Protect Me From What I Want”를 매일 직시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켜줘”라는 뜻이다. 이 문장을 바라보면서 나의 선호도에 개입된 다양한 권력 관계, 정치 그리고 자본을 생각해본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서울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거대하고 빠른 서울이라는 도시의 기저에는 촘촘한 형태의 착취가 있다. 나는 현대 서울이 거대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에 개입된 다양한 정치 권력에 대해 더 알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울을 좋아하는 일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서울뿐만 아니라 다양한 대상을 향하는 나의 욕망이 진정으로 나의 자발적인 욕망인지는 계속해서 의심해야 한다. 욕망의 길 안에서 은밀하고 위대한 방식으로 수많은 자본과 정치가 개입되지는 않았을까? 그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싶다. 그러면서도 계속 욕망하고 좋아하고 사랑하고 싶다. 맹목적이지 않은 욕망을 꿈꾸면서 욕망을 실천하고 싶다.
book 박은지 시인의 <여름 상설 공연>. “나 진짜 열심히 사랑할 거야. 더 많이 더 오래 성실하게. 엉망진창이어도 꼭 살아 있자 우리.”
유학동양학
유학동양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국내에 하나밖에 없어서 그런지 유학동양학과라고 말하면 “동양화?”, “유아교육과?”, 다양한 오역을 듣는다. 2학년 때부터는 두 번 설명하기 귀찮아서 “공자, 맹자 배우는 동양 철학과 다닙니다”라고 한다. 유학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인 경전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 仁과 예 禮를 근본 개념으로 수신 修身에서 비롯해 치국평천하 治國平天下에 이르는 실천을 중심 과제로 삼는다. 유학을 기반으로 한국 철학, 동양 철학과 함께 문화, 역사, 미학, 종교, 콘텐츠 등 선조들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한다. 과거에서 배울 점을 현대 사회에 접목해 성찰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학과라고 소개하고 싶다.
왜 유학동양학을 택했나? 원래 중국어 공부가 재밌고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그리고 드라마 <시그널>을 재밌게 봐서 경찰, 그중에서도 외사경찰을 꿈꿨다. 그런데 내가 유도와 맞지 않았다.(웃음) 그래서 평소 생각지 못했던 선택지로 유학동양학을 전공하게 됐는데, 절대,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유학을 대표하는 말이 수기치인 修己治人, 자기를 닦고 남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학문이다.
공부하며 깨닫게 된 감각이 있나? <맹자>를 읽으면서 부동심 不動心이라는 개념이 크게 와 닿았다. 맹자는 인의 仁義 추구를 통한 부동심이 이 利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를 보면 이익 추구의 끝은 전쟁인데, 제나라같이 부강한 나라와 전쟁을 하려니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인의를 좇지 않으면 결국 ‘이익 추구 – 패도정치 – 부국강병 – 전쟁 – 승리 또는 패배(두려움)’의 끝없는 순환일 뿐 확장 가능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증자는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비록 천만 명이 있더라도 내가 가서 당당히 대적하겠다라고도 했다. 스스로 돌이켜서 정직하다면, 그 어떤 것도 욕심나거나 두렵지 않는 것 같다. 그 마음이 곧 부동심 아닐까?
물리적으로 유학은 춘추 시대, 기원전 770년부터의 학문이다. 과거의 시선에 의구심이 든 적은 없나?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여쭤본 적도 있다. 공자의 정명론이라고, 쉽게 말해 사람마다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이를 열심히만 하면 모든 사회가 잘 굴러간다는 이론이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을 다하고 아들은 아들의 역할을 다하면 된다는 유의 내용인데, 한 인간의 범위랄까, 더 다양한 가능성을 제약하는 것은 아닌지 의아했다. 결론은, ‘자기가 맡은 역할 하나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 다른 일을 넓혀가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나 역시 이해하게 됐다. ‘역할’이라는 단어는 표상적인 것일 뿐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사물의 이치 같다.
전공을 토대 삼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를 번역하는 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껴 요즘은 ‘<춘추> 스터디’에서 <춘추>의 아직 번역되지 않은 부분들을 대학원 선배들과 함께 번역 공부를 해보는 중이다. <춘추>는 공자 이전의 요, 순, 우와 같은 왕들이 하·은·주 나라의 역사를 담은 역사서인데, 당시 사관들의 기록을 공자가 수집한 뒤 나름대로 자신의 철학을 담아 편찬했다. 이를 두고 “공자가 저술했다”, “아니다, 편찬했다” 등등 의견이 분분한데, 어쨌든 워낙 장대해서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에 관한 과정 또는 그 기록”을 의미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춘추>는 같은 구절을 다르게 해석한 주석들만 책 4권을 이룰 정도로 다양하게 풀이된다. 그래서 똑같은 파트를 주석서 4권을 돌려가면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게 참 재밌다. 예를 들어 죽었다는 기록은 있는데 장례를 지냈다는 표기는 없는 왕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주석서마다 다 다르게 얘기한다. 전대 왕과 관련됐거나 아니면 죽은 왕이 폐도 정치를 했거나, 보통 좋지 않은 경우에 속하는데, 그래서 대체 왕의 행실이 어땠길래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없는지 세세한 조사가 주석으로 또 뻗어 나간다. 주석들을 읽다 보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막장 드라마 같은 얘기도 많이 나온다. 왕이 사촌 여동생을 좋아해서 그 결혼식에 찾아갔다거나 하는. 요즘 사람이나 옛날 사람이나 딱히 다를 바가 없구나 싶다.(웃음) 전공을 토대 삼아 어떻게 더 나아갈지 아직 고민 중이지만, 그와 별개로 아직 번역되지 않은 옛 문헌들을 살펴서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옛 문헌 속 인물을 만난다면 무엇을 물어보고 싶나? 옛날에는 죽간(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 글자를 기록하던 대나무 조각)을 끈으로 이어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끔 끈이 끊어져 내용이 뒤섞인 경우가 있는데, 이를 착간이라고 한다. 공자 후대 사람들은 책을 읽다가 흐름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주를 달아 이 부분은 착간일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래서 공자가 살아 계신다면 실제로 착간이 맞는지 여쭙고 싶다. 예를 들어 <논어>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장이 덕을 높이고 의혹을 분별하는 것에 대해 묻자 공자가 답한다. “主忠信 徙義 崇德也 충신을 주장하며 의에 옮김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 愛之欲其生 惡之欲其死 旣欲其生 又欲其死 是惑也 사랑할 때에는 살기를 바라고 미워할 때에는 죽기를 바라나니, 이미 살기를 바라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미혹이다. 誠不以富 亦祇以異 진실로 부유하지도 못하고 또한 다만 이상함만 취할 뿐이다.” 학계에서는 마지막 구절에 대해 착간이다 아니다 논의가 오가는데, 나는 ‘미혹’이란 단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공자께서 일부러 넣은 문장이라 생각한다. 이 마지막 문장은 <시경>에 실린 시 중에서 바람난 남편을 찾아 떠나는 부인의 이야기인 ‘아행기야’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혹과 어울리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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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춘추 시대부터 진시황까지 중국 역사를 담은 소설 <열국지>.
word 永. 요즘 서예를 배우는데 서예는 처음에 ‘길 영’ 자를 연습한다. 퍼져 나가는 형태의 ‘물 수’ 변과 길하다는 뜻이 마음에 와 닿는다.
고고학
이번 김해 고인돌 유적지 훼손 문제에 대해 학과 내에서도 떠들썩했겠다. 그렇지 않아도 친구가 뉴스 링크를 보내줘서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상석과 상석 아래 묘역 층이 원형을 잃고 날아갔다. 고고학적인 자료를 상당수 잃어 마음이 아프고, 유적과 발굴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태도에 화가 난다.
고고학이란 무엇인가? 고고학은 인류가 남긴 과거의 물질자료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 모습을 복원하는 학문이다. 사학과는 문헌 기록을 통해 연구한다면, 고고학은 유물을 통해 연구한다. 남아 있는 물질자료는 항상 완벽하지 않고 온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데, 그러한 불완전한 자료를 탐구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추론해나가는 과정이 고고학에 대한 나의 의의이고 재미다. 사소해 보이는 아주 작은 단서도 중요하다.
요즘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우리 학교가 있는 영남 지방에는 가야와 신라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나는 가야와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 시대를 연구하는데, 최근에는 5세기 토기를 실측했다. 토기를 보고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건데, 실측을 하면서 세부적인 토기의 특징을 더 잘 알게 되어 큰 도움이 됐다. 세부적인 특징을 알아야 어떻게 변하는지 양상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아이폰도 세대를 거치면서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지 않나. 그처럼 유물 역시 똑같은 토기여도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 변화를 관찰해서 시대를 구분하고, 구분된 시대별로 사회 양상을 정리한다. 보통은 토기의 형태가 변하는 차이를 캐치해서 시대를 구분하지만, 이번에 나는 새로운 방식으로 토기에 새겨진 문양을 토대로 구분해봤다. 그런데 기존에 형태적으로 시대 구분을 한 것과 일치하는 면이 많아서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 아직 미흡한 연구지만 틀린 방향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 순서는 어떻게 아나? A에서 C로 변했으리라 예상했는데 실상은 C에서 A로 변한 경우도 있지 않나? 맞다. 보통 ‘단순 → 복잡 → 단순’으로 변화하는 경향은 있지만 정해진 정답은 없고, 그래서 교수님들도 늘 틀릴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다. 기록이 우리나라에는 없어도 주변 중국이나 일본에는 남은 경우도 있어, 가능한 모든 정보와 자료를 종합적으로 관찰하고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유추하는 것이지 1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다.
시기와 시대를 구분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5세기 때의 유물을 3세기 것이라고 파악했는데 이와 비슷한 유물을 중국에서는 4세기 것이라 판단할 경우, 실제로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역으로 우리가 중국에 영향을 줬다고 잘못 해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고고학이라는 한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시대를 관통하는 다른 학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고고학을 공부하며 깨닫게 된 관념이 있나? 아무래도 당대 제일 지위가 높았던 사람들의 무덤을 발굴하고 연구하게 되지 않나. 그런 사람들의 유물이나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그들의 무덤을 파면 금이 정말 많다. 죽고 나면 금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웃음) 그리고 말 장식품이나 마차와 관련된 소품이 많다. 지금 부의 상징으로 좋은 차를 몰고 다닌다 해도, 미래에 보면 우리가 지금 마차를 보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구나, 그냥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며 살자는 생각도 든다.
전공 서적 속 인물에게 무엇을 묻고 싶나? 그보다는 내가 직접 과거로 가서 연구가 정확한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많다. 연구 중인 토기도 그렇고, 이번에 경주에서 쪽샘 44호분이라는 묘지를 하나 발굴하고 있는데 그 묘지에서 적색 안료가 나왔다. 적색 안료가 종교적이라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인데, 내가 궁금한 건 이 적색 안료를 어떻게 발랐고 어디에 바른 걸까 하는 좀 더 심도 깊은 내용이다. 관련 일본 서적 <朱の考古学 주의 고고학>도 찾아봤는데, 이 책에서는 보통 동물 털에 묻혀서 붓으로 바르듯이 바른다고 나오는데 경주에서 발견된 흔적은 팟 팟 뿌린 듯해서···, 고민이 더 깊어졌다.
사람들이 고고학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는 무엇인가? 공룡과 관계없다.(웃음) 공룡은 지질학과 관련 있고, 고고학은 인류가 출현한 시점부터 다루기 때문이다. 고고학에서 철기가 시작된 시기를 언제로 보는지는 학자마다, 학교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고고학의 범위는 항상 같다. 인류가 출현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현시대도 고고학의 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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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ence Simple Is Best. 고고학을 공부하다 보면 양식이 화려하게 발전하다 다시 점차 단순하게 변해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러한 양상을 보면 ‘Simple Is Best’는 꾸준히 통하는 말 같다.
place 고고학이 궁금해지면 가까운 관련 박물관에 가보는 것이 제일 쉽고 정확한 방법이다. 부산 지역에 남은 가야 역사를 알고 싶다면 부산 복천동 복천박물관을 추천한다.
문화인류학
문화인류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입학해서 처음 <인류학에의 초대> 수업을 들을 때 송도영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세상을 인간의 시점이 아니라 외계인의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라.” 이것이 문화인류학 전체를 관통하는 시선과 태도라고 생각하고, 학업적으로는 인류가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을 비롯해 다양성과 보편성, 특수성을 바탕으로 현존하는 인류 문화를 연구한다.
그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우리 학과에서 학기마다 진행하는 현지 조사를 한 예로 들 수 있겠다. 몇 해 전에는 제주 강정마을로 갔는데,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정마을은 2007년부터 해군기지 설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던 곳이다. 2016년에 해군기지가 완공됐지만 관련해서 시위하는 시민단체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강정마을에 가서 당시 정황이 어땠는지, 언론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 현지에서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취집했다. 마을 이장님, 청년 회장님을 비롯해 거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능한 한 많은 현지인을 만나 묻고 들었다. 그렇게 기록한 이야기 중 하나가, 당시 강정마을에서 투표를 했는데 한 가족 내에서도 찬반이 갈릴 정도로 의견이 분분했지만 반대표가 더 우세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실질적인 주민 투표가 있던 날 반대하던 주민들은 단체 여행을 가서 없었다. 찬성파에서 마을 전체 행사라고 하고 반대하는 어르신들을 보낸 것이다. 이런 현지의 이야기를 기록해서 리포트로 남겨둔다. 일반적인 역사서가 거시적인 기록에 가깝다면, 문화인류학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 특정 사건의 소수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한다.
취재원의 발언이 팩트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객관성에 대한 보완 장치가 있나? 그 부분이 어렵고 민감하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기도 하고, 정답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하게 여러 입장을 듣는다. 제주 강정마을 조사 때는 9개 조가 매일 어떤 조는 해군기지 관계자와 인터뷰하고, 다른 조는 시민단체를 만나는 등 제주 곳곳에서 각각 다른 취재를 했다. 어떤 현지 조사를 하든 마찬가지다. 그러고는 저녁마다 한자리에 모여 스터디를 한다. 어떤 내용을 취재해왔는지 스터디하고 그것을 종합해 각 조장이 보고서를 쓰면 평균 80쪽 정도의 책자가 되는데, 원하는 학우에게 배포하고 최소 3~5권은 학과에 보관한다. 그 기록이 쌓인다.
요즘은 어떤 주제의 리포트들이 쌓이고 있나? 우리 학과에는 연구반이 3개 있다. 먼저 문화자원관리연구반은 고고학과 문화재관리학 분야 위주라서 무형의 문화유산과 자원을 어떻게 연구하고 보존하고 활용하는가를 공부하고, 공간민속연구반은 특정 공간에서 일어나는 문화 변화상을 본다. 그리고 내가 속한 실천인류학반은 앞서 말한 현지 조사의 예와 같이 사회문제에 대해 현상황과 표면적 현상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기초로 문제의 중심과 약자의 관점까지 두루 살피고자 한다. 최근 문화자원관리연구반은 경기도 화성의 화성 당성 발굴 현장에 가서 고고학 수업 때 배운 지표 조사 등을 실질적으로 실습했고, 공간민속연구반은 인천 부평 쪽으로 과거 미군기지가 있던 곳의 변화를 보러 갔고, 실천인류학반은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가서 구술서, 예를 들어 6.25 전쟁 등 특정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자료들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문화인류학이 중심으로 삼는 이론이 있나? 특정 학자나 이론보다는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 중 하나가 문화상대주의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문화를 살펴야 한다. 또 하나는 총체적인 관점이다. 외계인의 시선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학문적인 표현으로 바꾸면 총체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승자와 패자가 있으면 승자만 볼 것이 아니라 패자의 관점에서도 보고, 다수와 소수가 있으면 다수든 소수든 양쪽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 문화상대주의를 근본으로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
문화인류학도로서 현재 무엇에 현미경을 대고 있나? 요즘 <실크로드 세계사>를 읽고 중동과 이슬람에 대해 다시 호기심이 동했다. 중동과 이슬람은 이 학과를 선택하게 된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 신문에서 한 칼럼을 읽고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그 필자가 당시 이 학과에 재직하셨던, 지금은 은퇴하신 이희수 교수님이셨다. 당시 테러 단체 IS에 대해 미군이든 연합군이든 다 소탕하겠다, 소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팽배했는데, 이희수 교수님은 오히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IS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하셨다.(최준호 학생이 언급한 칼럼과 정확히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이희수 교수가 2015년에 작성한 ‘IS의 테러 행진, 어떻게 봐야 할까’ 칼럼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주류 무슬림이다. 이 사실을 유념한다면 이슬람 세계는 서구보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급진 테러리스트에 맞서야 한다. 요컨대 서구의 일방적 대테러 전쟁이 아닌, 서구와 이슬람이 함께하는 테러 근절만이 IS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해결책이다.”) 모두가 테러 집단에 대한 어떤 응징을 이야기할 때 오히려 왜 이렇게 됐는지 짚었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 다른 시선이라서 흥미로웠다. 여전히 중동, 이슬람 국가에는 테러 집단이란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 근원부터 다시 파보고 싶다. 다양한 면을 보고 싶다. 항상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무슨 사건이든, 어떤 인간이든, 한 면만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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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1학년 때 읽었는데, 4학년이 된 지금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무엇일지 궁금해 다시 읽어보고 싶다.
movie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인류학 수업으로 알게 된 영화인데, 어느 한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듯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인상 깊다.
place 울릉도. 섬이라서 비롯되는 밀폐성이나 폐쇄성이 드문 곳이란 인상을 받아서 무척 흥미롭다.
사회학
윤여정 배우의 “봉(준호) 감독이랑 임상수 감독이 사회학과를 나와서 그래”라는 발언에 대해 사회학도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학과 모든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랬다. “아···, 그럴 수 있지.”
사회학을 모르는 나도 굉장히 뛰어난 통찰이라 생각했다.(웃음) 우리도 맨날 “다시 전쟁이 난다면 사회학과 사람들부터 먼저 다 끝내고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제일 먼저 잡혀갈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윤여정 배우의 말에 앞서) 봉준호 감독이 이런 얘기를 했지 않나. 영화를 진행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도끼를 휘두르거나 피를 많이 흘리게 된다고.(웃음) 아마 사상에 대한 검증이 굉장히 심했던 때로 돌아가면 사회학을 하는 우리가 제일 먼저 잡혀가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우리끼리도 맨날 한다.
사회학으로 대학원까지 진로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학부 때 복수 전공으로 경제학도 배웠다. 사회학과 경제학을 놓고 보면, 경제학은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을 가정하고 이론을 만들어온 학문이다. 물론 학자마다 다르게 정의하기도 하고 지금의 경제학은 그렇게만 가정하고 있지 않기도 하지만 어쨌든 굉장히 이상적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회나 조직과 제도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해 나가는 게 이 전체 사회라는 생각을 늘 했던 터라, 일단 합리적인 인간상을 가정하고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경제학의 시작점이 내게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학부 1학년 1학기 때 들은 사회학 이론 수업이 너무 재밌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의문을 가지고 그것을 직접 찾아 나가는 이런 공부가 진짜 공부이지 않나 싶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어떤 의문을 좇고 있나? 인간 근원에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 혹은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하는 본능이라는 게 있는 건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왜 어딜 가든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 하는 걸까? 물론 그걸 원치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어떤 단체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굉장히 사소한 게 겹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양한 조직들도 생겨나지 않나. 작게는 동호회라든지. 생판 모르는 사람과 하나의 관심사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나한테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하나의 사회,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게 늘 의문스러웠다. 결국 사람들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필요로 하나? 그래서 사회가 이때까지 꾸려져 왔고, 그렇게 해서 이렇게 발전해온 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거기에 속하고 싶어 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항상 한다.
혹시 팬클럽이나 동아리에 가입해본 적은 없나? 가입되어 있다. 세븐틴을 좋아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뭘까?’ 하는 거다.(웃음)
요즘 연구 중인 논문 주제는 무엇인가? 나는 사회학 중 문화사회학, 그중에서도 문화산업을 공부하고 있다. 요즘 플랫폼에 대해 배우고 있는데, 지금은 사회학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문에서 플랫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좀 더 초점을 두고 있는 건 플랫폼 자본주의다. 플랫폼이 많은 비용을 들여야 개발할 수 있다 보니 결국 어떤 산업 분야에서든 자본을 많이 가진 회사가 이 플랫폼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네이버가 검색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카카오가 택시 시장을 장악했던 것처럼. 예전의 자본주의는 자본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소위 갑의 위치에 서는 것이었는데, 시대마다 그 자본이 무엇인지 달라져 왔지 않나. 예를 들어 과거에는 자본이 땅이었다면 지금은 플랫폼을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온 게 플랫폼 자본주의이고, 요즘 그것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사회학에서는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나?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주제를 예로 들어 나아가 보자면, 주제를 정한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우선 플랫폼 중에서도 아이돌 산업을 바탕으로 보고 있는데, 하이브의 위버스나 SM의 버블과 같이 요즘 대형 소속사들은 자신들의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위버스는 팬덤 산업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 모든 경제 활동을 이 안에 집어넣겠다는 게 굉장히 명확히 보이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산업에서 무언가 독점이 일어났을 때 긍정적인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례로 작년에 해당 플랫폼에서 산 물품에 하자가 있는데 소비자 대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잘 해결되지 않은 일이 빈번했다. 만약 경쟁 시장이었어도 같았을까? 문화 산업이나 문화는 아주 작은 한 개인이 가진 창의성만으로도 크게 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하나의 대기업이 독점했을 때 문화 산업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다른 산업에 거대 플랫폼이 들어왔을 때의 변화에 대한 분석은 이런 게 있는데, 대중음악 산업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에서는 독점방지법의 영역이 어떠하며,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연구해나간다.
그래서 “네 전공은 무엇을 배우는 것이냐”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하겠나?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는 법을 배운다.” 사회학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답을 내려주는, 마치 병원에서 진단하고 약을 처방해주는 것처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과 앞선 사회 연구들을 살펴봤을 때 우리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일해야 한다든지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든지, 지금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 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사회학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분석과 현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까운 미래를 아주 살짝 엿보는 것이 사회학이자 인문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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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벤저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최근 상황을 보면 채 1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그때의 경험을 모두 서서히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고 있다.
sentence “금융 지원과 빚은 미래의 노동을 담보로 요구한다.”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 중.
place 광화문 광장. 좋아하는 공간이라고 하기는 좀 이상하지만, 거기에 있으면, 특히 주말이면 한국 사회의 총체를 보는 기분이 든다.
서사창작
“네 전공은 무엇을 하는 것이냐”에 대한 농담 섞인 답변은? 막연함의 한복판에서 (비)자발적으로 내던져지고도 당황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전공이다.
진지하게 설명하자면 어떠한가? 서사를 창작하는 주체로 하여금 텍스트를 매개로 타자성의 무한을 산책하게 하며, 그 무한 속에 오롯이 서 있는 지표를 세우게 한다. 서사창작이라는 전공은 이해라는 이름의 환상통에 자발적으로 시달리는 기호항해자(Semionauts,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니콜라 부리오 N. Bourriaud가 ‘수많은 문화와 기호들을 통과하며 경로를 창조하는 포스트프로덕션 시대의 예술가들’에 대해 한 명명)를 육성하는 전공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 무엇을 배우나? 지난 1년간은 개인 사정으로 휴학을 하고 시와 소설을 쓰면서 첫 시집 출간 준비를 했다.(<일인조>, 올 11월에 출판사 파란을 통해 출간 예정이다.) 하여 학문적 배움은 그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진하다고 할 수 있다. 대신 ‘가능하게 사는 것’에 대해 부박하게 배우고 있다. 학문이든 예술이든, 연구든 창작이든, 먹고살 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역 逆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배와 머리 혹은 심장 중 어떤 것에도 소홀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매 순간 균형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낮에는 온라인 강의 촬영, 밤에는 병원 청소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달진 않지만 사는 맛이 있다. 미각을 배우고 있다.
역으로, 오히려 이러한 태도에서 배고픔 따위는 문제되지 않는다는 기세가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 입학할 때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나이로만 따졌을 때 동기들 중 내가 중간이었다. 다른 분야에 발 담갔다가 진로를 틀어서 온 분이나 직장 생활을 하다 온 분이 많아서 이 전공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먹고사는 문제로 귀결되고는 했다. 고생을 자처하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전공을 살려서 이것으로 먹고사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그렇게 많지 않기도 하다. 직업적으로 밥벌이를 하는 방향이 굉장히 한정적이기도 하고 대우가 그렇게 좋은 편도 아니니까. 그래서 보통은 전공과 무관한 것이든 무엇이든 직업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더 우선으로 두게 되는데, 이유는 하나다. 그게 해결돼야 글을 더 오래 쓸 수 있으니까. 나 역시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공이 당신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 있나? 나의 전공은 먹고사는 문제를 대하는 법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는 태도에 대해 가르친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기울기가 모순과 부조리를 때때로 산파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모순과 부조리는 종종 나의 무력함을 확인하게 한다. 내가 나 자신을 화나게 한다.
왜 그렇게 서사와 창작을 좇나?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많이 해보기도 했는데, 이것이 해소되는 답변을 나조차 내게 주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내린 결론은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은 아깝지 않더라는 사실이다. 이전에 직업적으로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세무회계학을 공부하고 세무사 시험을 준비할 때는 시간이든 금전이든 내가 계속 투자하는 것들이 아까웠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행위는 아깝지 않다. 텍스트를 경유해 다른 시공간에 처하는 재미는 체험을 매 순간 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 모르겠다. 매력적이라기보다 마력적이다. 어떤 인력이 있다.
기억에 남는 과제는 무엇인가? <융합창의리서치워크숍>이라는 수업에서 했던 과제가 기억난다. 로봇 팔을 작동시켜 말하고 싶은 주제를 표현하는 내용이었는데, 언어를 움직임으로, 그것도 로봇의 움직임으로 재해석해서 표현하는 작업이 지난하고 흥미로웠다. 로봇 팔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X축, Y축, Z축의 좌표를 지정해주어야 한다. 그 각각의 축의 위상학이 언어를 어떤 식으로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추상적으로 빠지는 것 같아 오브제를 추가해 풀어나갔다. 상징과 알레고리는 인문학이 세상을 현시하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것 같다. 구체적 실체를 경유했을 때 비로소 명쾌해지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로봇의 팔을 빌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나? 나의 시 ‘시 없는 삶’을 로봇 팔을 이용해 묘사하려고 했다. ‘시 없는 삶’은 ‘너’와 ‘나’라는 이자 관계가 전지적 존재가 연출하는 무대, 다시 말해 세상이라는 풍경의 영향권 바깥에서 때때로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하는 시다. ‘너’와 ‘나’의 관계, 그것이 사랑을 기제로 하는 것이든 무엇이든, 그 앞에서 세상은 생략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너’와 ‘나’의 관계는 불가침하다. 그리고 바로 그 관계에서부터 새로운 세상이 생겨나기도 한다. ‘너’와 ‘나’를 상징하는 두 개의 투명 상자를 로봇 팔의 뒤에 단을 두어 올려놓았다. 전지적 존재를 상징하는 로봇 팔은 세상의 여러 장면을 상징하는 불투명한 상자를 ‘너’와 ‘나’가 있는 단에 올리려고 하지만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한다. 나는 그 옆에 앉아 시를 낭독했다.
요즘 창작하고 있는 서사는? 작년 겨울부터 쓰고 있는 소설이 하나 있다. 함께 러닝클럽을 하는, 30대를 목전에 둔 세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20대 때부터 만난 친구들이 그때는 각자 꿈이 있었는데 이제 한 친구는 꿈과 현실의 문제에 봉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다른 한 친구는 미적지근하지만 계속 꿈을 향해서 조금씩 나아가고, 나머지 한 친구는 거칠게 말하자면 현실과 타협해서 더 이상 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세 친구가 다시 만난 시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은 러닝클럽을 만들어놓고는, 뛰지는 않고 매번 러닝복 차림으로 종로나 서촌을 배회하며 하이볼 맛집을 찾거나 계속 술을 마시며 뛰는 것의 방법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것은 사실 꿈에 대한 알레고리다. 소설은 마지막에 세 친구가 1킬로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잠깐 뛰고 땀을 뻘뻘 흘리며 끝난다. 지금 나의 지극히 가까운 거리에서 공유되는 세대감이 이 소설의 인물들이 겪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 세 인물이 다 내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 학문을 통과하며 내린 행복에 대한 정의가 있나? 인위적으로 창작된 서사는 설득력이 없듯, 행복 역시 그것을 인위적으로 창조해내려는 순간 자취를 감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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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복거일의 첫 시집 <오장원의 가을>(1988)을 읽고 있다. 절판된 책을 며칠 전 중고로 구입했다. 복거일의 작품은 그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1987)와 ‘그라운드 제로’(2007)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독특하고 도발적인 면이 있어 그를 꽤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artist 파울 클레 Paul Klee의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1920)를 좋아한다. 해당 작품을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이 <역사철학테제>(1940)에서 역사철학적 관점으로 주해하는데 그 내용이 감동적이다. “역사의 천사가 폐허의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무형유산학
지난 주에 실습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무형유산학에서는 어떤 실습을 하나? 전주국립무형유산원에서 천연염색 이수자 선생님(국가무형문화재는 보유자, 3년 이상 전수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기량 심사를 통해 전수교육 이수증을 발급받은 사람을 이수자라 칭한다)에게 이론 수업도 듣고, 이론을 바탕으로 직접 염색을 해보는 실습이었다. 자연을 통해 색을 만드는데, 한해살이풀인 쪽으로 염색하면 파란색이 나오고 홍화라는 꽃으로 염색하면 핑크색이 나온다.
무형유산을 직접 배우나? 혹시 판소리를 배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웃음), 무형유산학과는 직접 경험해보는 실습 시간도 있지만, 무형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한다. 형태가 없는 무형유산은 사람을 통해 전승되다 보니 시대와 함께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전승자가 없으면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는 무형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장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해서 기록하는 등 연구하고, 그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며, 무형유산을 현대적으로 활용하고 기획하는 법을 배운다. 이번 2학년 2학기 때는 <한국 근대공예사>와 <공예문헌강독> 수업을 통해 특히 공예에 대해 배울 예정이다.
왜 무형유산학을 선택했나? 목적과 취지가 멋있었다. 일단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문화재청이 설립한 국립대학교이자 특성화 대학이다. 우리의 유산을 지켜 다음 세대에 계승하는 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고, 마땅히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입학해서 공부하며 알았는데, <오징어게임>에 나와 많은 사람이 추억했던 그런 ‘놀이’들, 우리가 어릴 때 한 놀이도 무형유산이다. 혹은 곧 날씨가 쌀쌀해지면 김장 담그시지 않나. 김치 담그기도 무형유산이다. 우리 일상에 무형유산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일상도 미래의 무형유산이지 않을까?
전공자로서 관심 깊게 보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가? 올해 4월에 ‘문화재’라는 명칭이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60년 만에 ‘국가유산’으로 변경됐다. “문화재라는 용어가 과거 유물의 재화적 성격이 강하고 자연물과 사람을 문화재로 부르는 것은 부적합하다”는 지적에 따라 변경됐는데, 그래서 ‘무형문화재’도 ‘무형유산’이라 한다. 원래는 혼용해서 썼지만 이제는 무형유산만 사용해야 해서 다소 어색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난 이 ‘유산’이란 단어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다. 유산은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라는 뜻이지 않나. 잘 물려받고, 잘 물려주고 싶다.
무형유산학이 나아가는 진로 방향은 어떤 편인가? 무형유산학과가 2017년에 신설되어 아직 졸업생 선배가 많지 않다. 박물관 학예사나 문화재청, 아태무형유산센터에 취직한 예가 있고, 무형유산을 활용해서 창업한 선배도 있다. 아직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사람들이 무형유산에 관심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유튜브 ‘문화유산채널’을 보면 아마 공감하실 수 있을 텐데, 장인들을 직접 곁에서 보면 저절로 감동을 받는다. 얇게 간 조개껍데기로 여러 가지 무늬를 만든 다음 그것을 이용해 나전칠기를 만드는 나전장, 대나무 살을 엮어 갓을 만드는 갓일장,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등의 정성과 노고를 보면, 무엇에 가치를 두어야 그게 가능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무형유산학도로서 좋아하는 도시가 있나? 부여. 백제금동대향로가 부여에서 발굴됐지 않나. 그런데 발굴된 스토리가 드라마틱하다. 이제 그만두자고 할 때 발굴단이 “딱 한 번만 더 파보자”고 군청에 요청해서 진흙 속에 파묻혀 있던 금동대향로를 발견했다는 이야기. 나는 이 스토리가 정말 좋다. 우리 학교가 왜 부여에 세워졌는지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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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ence 속담 – “조개껍데기는 녹슬지 않는다.”
art 1995년 뉴욕에서 돌아와 1년 동안 불국사 손님방에 머물던 박대성 작가가 “있는 동안 눈이 오면 참 좋겠는데…”라고 말한 다음날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고 한다. 경주에 7년 만에 쌓인 눈이었다. 한겨울에 눈이 소복이 쌓인 불국사에 있는 듯한 생생함과 고요함이 느껴진다. 눈이 내려앉은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채색을 하지 않고 한지 본래의 흰색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직접 마주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미학
“네 전공은 무엇을 배우는 것이냐” 물으면 건네는 농담 섞인 답변은? 먼저 그림을 못 그린다고 답한다. 확신을 가지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미학이란 미와 예술에 대한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미와 예술의 좋음이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님에도 미학과는 그것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해서, 창작자들에게는 “왜 자꾸 설명하려 드느냐”라는 비판을 받고 철학자들에게는 “그건 엄밀하지 않다”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왜 자꾸 설명하려 드는가? 예술을 감상하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좋기 위함이지만, 두 번째는 우리가 전시장 바깥에 나와서 하는 일은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공유이지 않나. 그 공유에서 온갖 비합리적인 감정들로 가득 차 있는 나의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 배운다고 생각하면, 나는 이렇게 (미학을) 공부하는 일이 굉장히 가치 있다고 느낀다. 사실 전공자로서 미학을 배우고 설명하려는 이유는, 어떤 필요라기보다 나 스스로 예술을 너무 좋아해서 ‘내가 이것을 왜 좋아하는지를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해서인 것 같다.
인간 근원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나? 경탄. 그리고 그 경탄이라는 것이 미학과 굉장히 깊은 연관이 있다고 믿는다. 무언가에 굉장히 놀라고 감동하고 하는 성질은 다분히 인간적인 면모인데, 그 놀람으로부터 나의 취향이 생기고 총체적인 예술이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 같아서, 경탄하는 일이 가장 인간적이고 그리고 그것이 가장 미학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경탄한 바 있나? 연극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양정욱 작가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앞에서. 어떤 것을 강요하거나 더 말하려고 하지 않는, 그런데 그것이 압도적인 조용한 예술을 좋아한다.
잔상이 진한 과제가 있나? <영미 미학 특강> 수업 과제로 예술 작품에서 사용되는 역겨움의 코드에 대해 글을 썼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최근 들어 많은 작품, 이를테면 데미언 허스트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역겨움은 명백하게 환기된다. 영미 미학에서 학자들 간에 어느 정도 합의되고 있는 것은, 역겨움이라는 것은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신체적인 거부 반응, 즉 구토나 메스꺼움을 유발하는 대상에 대한 나의 직접적인 반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내가 그 앞에서 메스껍고 어지럽고 구토가 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어떻게 좋은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 어떻게 긍정적 감정을 느꼈다고 할 수 있는가?’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를 설명하려는 많은 학자의 이론이 등장했다. 나의 직관은 “역겨움이라는 것이 작품 속에서 부차적이거나 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보다 ‘역겹기 때문에’ 예술적인 특수한 맥락의 작품들이 있다”였으므로, 나는 부정적 감정인 ‘역겨움’이 긍정적 감정인 ‘예술 작품 감상의 즐거움’으로 연결되어야 할 필연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이 연결되나, 필연적으로? 내가 예시로 가져온 건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얼굴의 컨셉에 대하여>라는 연극이다. 아들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데 나이 많으신 아버지가 계속 설사를 해서 아들이 나가지 못하고 계속 아버지의 속옷을 갈아주고 갈아주며, 그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엄청나게 절망한다. 그러다 극 마지막에 아들이 무대 뒤편의 거대한 예수 얼굴 그림 앞에 기대면서 거기서 어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연극이 끝나버린다. 문제는 만약 그것이 설사가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일단 ‘(신)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가 끝까지 봤을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역겨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리가 그걸 봄으로써 삶에 대한 통찰 같은 가치들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고 긍정적인 것을 얻을 수 있으므로 “역겹기 때문에 좋다”라고 할 수 있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감사하게도 성적은 잘 받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교수님이 지적하신 부분은 역겨운 예술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설명하는 데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논문이라고 할 만한 글을 많이 써보지 않았던 때라 매우 부족했고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몹시 즐거웠다. 앞으로도 이와 연관된 주제를 계속해서 붙잡고 공부해볼 생각이다.
최근 미학과 내에서 화두는 무엇인가? 굉장히 단순한 것으로도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를테면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에 네 품안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했다는 가사가 나온다. 그래서 이 친구가 잘못했는가 아닌가를 한 다섯 시간 얘기했다. 이런 예가 많다.(웃음) 나는 그 노래에서 “손을 잡고 걸을 때도”, “네 넓은 가슴에 묻혀” 있을 때도,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한 게 주기적이고 그건 지나가는 상념이라고 보기에는 지속의 성질이 너무 강해서 이건 헤어져야 한다, 적어도 미리 말했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런데 ‘미 美’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워도 다른 이에게는 추할 수 있지 않나?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루는 것이 ‘미’일지 ‘미적 가치’일지가 중요해진다. 그러니까 ‘미’라고 하면 The Beauty인데 요즘 많이 쓰이는 말은 The Aesthetic이다. 왜 그런가 하면 ‘미 The Beauty’라는 것은 추한 예술을 설명할 수 없지 않나. 그래서 그것들을 포함시키기 위해 ‘미적인 것 The Aesthetic’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무엇이 미, 아름다움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다. 예를 들어 칸트는 우리가 인식하는 기관이 같으니까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란 대상을 보거나 감상했을 때 ‘쾌 快’를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아름답지 않아도 쾌를 주거나 쾌를 주지 않는 데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미적인 것’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
당신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요즘 내게 아름다움이란 이번에 굉장히 오버페이해서 산 턴테이블을 이용해 듣는 이소라의 ‘청혼’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견 불일치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미학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이소라의 ‘청혼’을 두고 아름답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고,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변호할 거다. 그것은 문장이 될 수도, 영화 속 장면이 될 수도,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다. 바로 이 선호의 차이, 불일치로 시작하는 대화 속에서 ‘그렇다면 무엇이 아름다운 대상인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되돌아보자면 우리는 비합리적인 선호의 감정에서부터 출발해 ‘아름다운 대상이 되기 위한’ 혹은 ‘아름답다고 평가되는 대상’의 어떤 조건을 탐색하기에 이르렀고, 그건 달리 말하면 모두가 각자 ‘작은 미학’을 하고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 공부로서의 미 美 학 學은 정말 어렵지만, ‘미학한다’라고 했을 때의 미학은 이미 모두가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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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미학과를 선택해도 좋겠다 생각한 계기 연극 <레드>.
book 마일리스 드 케렝갈의 소설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