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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우석 “힘들 때마다 저에게 미션을 줘요”

2024.01.26김지현

적막이 흐르는 공간 속, 변우석의 고요한 순간들.

브이넥 베스트, 릭 오웬스.

GQ <힘쎈여자 강남순>(이하 <강남순>) ‘과몰입러’로서 이렇게 마주 앉아 있으니 ‘류시오’의 잔상이 남아 사뭇 긴장돼요.
WS 흐아. 진짜요? 그럼 성공이다. 연기하면서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GQ 약 5년 전, <지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가끔 거울을 보면서 여러 표정을 짓곤 해요. 혼자 광기 어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사람들이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져요”라고.
WS 맞아요. 그때부터 홀로 연습했던 감정들을 ‘류시오’라는 캐릭터를 통해 비로소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웃음) 사실 제가 이 친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정이 꽤나 길었거든요. 지금까지 인간 변우석이 경험해보지 못한 환경의 인물이고, 또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까.
GQ 거울을 볼 때 ‘어, 나에게 이런 표정이?’ 싶은 게 있던가요?
WS 무표정으로 거울 속 제 모습을 오랜 시간 바라볼 때요. 그때 스스로가 조금 무섭더라고요. 그래서 ‘류시오’를 연기할 때 이런 표정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는 거. 소위 말해 ‘소시오패스’만의 섬뜩한 감정선요.
GQ 존재 자체가 두려운 악역이었지만 마지막 회에서 ‘류시오’의 죽음은 쉽게 와닿지 않았어요. 마지막 대본을 받았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WS 마지막 회 대본에서 “난 세 번을 버려졌어. (중략) 두 번만 버려진 걸로 끝내고 싶어”라는 대사를 읽고 이해했어요. 아, ‘류시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구나. 가장 거룩한 죽음을 맞이한 거죠.(웃음) 물론 시청자분들은 빌런의 최후가 조금 더 극적으로 무너지는 결말을 기대하셨을 수도 있지만요.

블레이저, 마리아노 at 10 꼬르소 꼬모. 스트라이프 롱 슬리브, 마틴 로즈 at 10 꼬르소 꼬모.

GQ ‘섹시 빌런’이라고 불리던 ‘류시오’의 죽음을 본 많은 시청자가 “악역이 죽는데 기쁘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있나요?
WS 이 댓글을 보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나요. “나도 류시오한테 맞아보고 싶다.”
GQ 이전 인터뷰에서 “남의 인정과 시선보다는 나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적 있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신념인가요?
WS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남의 시선을 가장 신경 쓰게 되잖아요. 그게 좋은 시선이든 안 좋은 시선이든. 근데 그런 잣대에 흔들리는 자신을 자각해보니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면모의 변우석으로요. 이후로는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어떤 부분이 부족하면 ‘이건 확실히 부족하다’, ‘이렇게 해서 수정해야겠다’라고 피드백을 주는 습관이 생겼어요. 저를 제가 가장 잘 인지할 수 있도록. 저에게 조금 엄격해지려는 것도 있어요.

데님 베스트, 데님 팬츠, 모두 지방시.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근데 MBTI가 ‘ESFJ’예요. 보통 이 MBTI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 아주 민감한 성향이잖아요. 눈치도 빠르고요. 종종 다른 사람의 시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WS 물론 그렇죠. 사실 제가 오디션에서 백 번 넘게 떨어졌거든요.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과 그 현장에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게 행동한 것 같아요. ‘이 모습이 그들에게 더 좋아 보이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요. 이런 말들이 머릿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잘되는 일도 그르치는 것 같고. 그래서 제 자신을 조금 더 믿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GQ 저도 MBTI가 ‘ESFJ’여서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거든요. 이 외에도 신경 쓸 것들 투성이인데 말이죠.
WS 공감해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만 할 것 같고. 최근에 김원해 선배님께서 문득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이 순간이 되게 소중하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라고.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정말 하루를 꽉 채워서 저를 위해 살아보려고요. 줏대 있게.

데님 팬츠, 아크네 스튜디오. 부클 비니, 오픈 와이와이. 니트 스카프, 메종 마르지엘라. 레더 플립플롭, 드리스 반 노튼.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한창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촬영 중이라고 들었어요. 변우석이 맡은 ‘류선재’는 어떤 인물인가요?
WS ‘류선재’는 실력과 인성을 모두 겸비한 톱스타인데, 부득이하게 생을 마감하며 과거로 돌아가요. 열아홉 살로 돌아간 ‘류선재’는 ‘임솔’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고요. ‘임솔’을 만나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기거든요. 표현도 서툴고 성숙하지 않은 열아홉 살의 ‘류선재’가 성장하는 과정이 되게 귀엽고 매력적이에요. 정말 더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은데···, 여기까지만. 꼭 봐주세요.
GQ 제일 좋아하는 단어를 “사랑해”라고 꼽을 만큼 로맨스 장르에 진심인 편이잖아요. 지금 현재, 가장 사랑하고 있는 존재가 있나요?
WS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 음···. (한참을 골몰하다) 지금은 진짜 ‘류선재’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류선재’라는 캐릭터를 대본으로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빨리 이해하고 있거든요. 요즘은 오로지 이 친구만 사랑하고 있어요. 아주 많이.
GQ 어떤 사랑을 좋은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나요? 변우석이 정의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요.
WS 이런 생각은 자주 바뀌는 것 같은데···, 지금 느끼는 좋은 사랑은 ‘건강한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어요. 그럴 수 있겠죠?
GQ 맞아요. 몸도 그렇지만 마음이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에는.
WS 맞습니다, 너무 맞아요.

슬리브리스 니트, 팬츠, 쇼츠, 모두 메종 마르지엘라. 레더 플립플롭, 드리스 반 노튼.

GQ 작년 연말부터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백만 명 이상 늘었어요. 이 인기를 몸소 체감하고 있죠?
WS 얼떨떨하고 실감이 잘 안 나요. 최근에 촬영 도중 잠깐 편의점에서 라면이랑 핫바를 먹고 있었는데, 지나가시던 분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셨어요. 알아봐주신 것에 오히려 제가 더 당황하며 사진을 찍어드린 기억이 있어요.
GQ <2023 MAMA AWARDS> 시상식도 다녀왔잖아요. 레드 카펫 등장 장면부터 라이즈 ‘앤톤’과 인증샷까지. 모든 순간이 화제였어요.
WS 으흐흐흐. 저도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현장에서 라이즈분들을 보자마자 (입을 틀어막으며) “허!” 이러고 달려가 사진도 찍었고요.
GQ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작년을 되돌아봤을 때,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WS 질문을 들으니 문득 떠오르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일본에서 팬미팅을 했어요. 그때 되게 힘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은 스크린 밖에서 팬들을 직접 마주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근데 시간과 돈을 써서 저를 보러 와준 모습을 보니 너무 벅차더라고요. 정말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요.

데님 셔츠, 데님 팬츠, 모두 구찌.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연이은 스케줄 때문에 이번 겨울에도 그 좋아하는 스노보드를 타지 못했겠죠? 촬영 외에 이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WS 이번 겨울에도 못 갔어요. 만약 가더라도 워낙 부상 위험이 있는 스포츠이다보니 더 망설여지는 것 같고요. 지금은 일이 먼저니까. 내년에는···, 아냐, 내년에도 일을 하는 게 더 좋죠. 그렇지.
GQ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기면 어떤 일에 가장 집중하나요?
WS 쉬는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토트넘 경기를 봐요. 제가 손흥민 선수의 오랜 팬이거든요. 예전에 손흥민 선수를 마주친 적 있는데, 그때도 라이즈분들 봤던 것처럼 달려가 “형, 팬이에요! 제가 진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이러면서 손을 잡았어요. 근데 알고 보니 손흥민 선수가 1992년생이더라고요. 제가 1991년생인데. 그래도 멋있으면 형이니까요. 매번 열렬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GQ 다른 인터뷰를 찾아보니 항상 운동, 연기 외에 별다른 취미는 없다고 해서 궁금했어요. 인간 ‘변우석’은 뭘 좋아하는지.
WS 제가 너무 재미없게 살죠. 취미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어요. 없는 게 취미라고 말해야 하나?(웃음) 아, 요즘은 맛있는 과일 먹는 거. 예전에는 과일이 너무 비싸서 자제했다면, 요즘은 저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이 된 것 같아요. 당도 높은 과일 먹으면서 새벽에 축구를 보는 거죠.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이에요.

부클 비니, 오픈 와이와이. 슬리브리스 톱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2024년에 스스로를 향한 기대가 있다면요?
WS 저는 힘들 때마다 저에게 항상 미션을 줘요. “네가 이걸 이겨낼 수 있으면 좋은 보상을 줄게. 못 이겨내면 넌 그냥 이대로 살아” 이런 식으로요. 누군가 저에게 미션을 주는 느낌이라 지킬 수밖에 없거든요. 올해도 제가 준 미션을 잘 헤쳐나가고 싶어요.
GQ 2023년에는 촬영 스케줄 때문에 다짐한 목표가 없다고 했어요. 2024년에는 꼭 한 가지 목표를 세워야 한다면요? 목표 말고 미션으로 할까요?
WS 사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바쁘거든요. 그래서 목표를 세우기보다 눈앞에 놓인 일들을 하나하나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원해 선배님 말씀처럼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니까.
GQ 내일은 어떤 미션이 있나요?
WS 드라마 촬영 스케줄이 변경돼서 바뀐 대본을 얼른 숙지해야 해요.
GQ 아까 촬영 도중에 오늘 화보 콘셉트가 연인에게 차인 느낌이냐고 물어봤잖아요. 사실 이별은 아니고, 요 근래 계속 쉬지 못하는 것 같아서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나마 쉴 수 있도록 잡은 거였어요.
WS 어쩐지! 촬영 내내 침대에 누워 있어서 그런지 푹 쉬다 가는 것 같아요. 오늘 잘 쉬었으니 내일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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