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ches

위트 있는 디자인의 시계 4

2024.03.01김창규

유머야 말로 신사가 지녀야 할 가장 가치 있는 덕목이다.

위블로 
스피릿 오브 빅뱅 티타늄 드래곤

극동 아시아 사람들에게 2024년은 용의 해다. 늘 그렇듯이 이 시장을 공략해 용이라는 소재로 시계를 장식한 모델이 여럿 쏟아져 나왔다. 시계를 만드는 유럽권 사람들에게 용은 공포의 화신이며, 이를 소비할 동양인들에게는 신과 같은 상서로운 존재다. 그러한 고정관념 때문인지 올해 선보인 거의 모든 용의 해 에디션 시계들은 마냥 진지하게 용을 묘사했다. 그러나 강한 개성으로 승부해 온 위블로는 이 역시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홍콩 뒷골목에 자리잡은 멋진 클럽의 오너이자 뮤지션인 DJ 드래곤이라는 사람이 차고 다닐 법하게 생긴 디자인으로 발표한 것. 실제 중국 아티스트의 작품을 옮긴 것이다. 시계 다이얼만 네온 컬러의 기하학적인 용 모습이었다면 솔직히 유머러스한 느낌까지 주진 않았겠지만, 입체적인 패브릭 비늘을 상감 기법으로 장식한 러버 스트랩은 어느 각도에서든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으며 놀라움 가득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88점 리미티드 에디션.

리차드 밀 
RM 88

이 분야의 가장 프로페셔널한 코미디언이라면 리차드 밀이다. 스위스 최상의 워치메이킹 공학을 19금 농담 던지는 장난감에 사용했으며(RM 69), 장인의 미니어처 페인팅 기법으로 마시멜로나(RM 07-03) 젤리 따위를 시계 위에 묘사(RM 16-03)했고, 금으로 만든 해골 손이 악마의 뿔을 나타내는 스켈레톤 워치(RM 66)까지 발표했으니까. 이번에는 최근 퍼렐 윌리엄스의 손목에 감겨 유명세를 탄 RM 88을 소개한다. 오토매틱 스켈레톤 투르비용 사양의 시계는 무지개 위에 골드 스마일리 캐릭터가 있고, 주변을 태양,파인애플, 선인장, 홍학, 구름, 다이아몬드, 우산을 꽂은 칵테일 잔 등의 오브제가 장식한다. 가격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럽지만, 퍼렐 윌리엄스의 재력이라면 참 재미난 시계 정도일 거다.

모저앤씨 
인데버 센터 세컨즈 제네시스

리차드 밀이 크리스 락 정도의 유머로 인기를 끌어왔다면, 모저앤씨는 조니 녹스빌 수준의 과격한 유머를 던져왔다. 애플 워치처럼 생긴 시계, 핸즈가 없어 오로지 미니트 리피터로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투르비용 워치, 치즈를 가공해 케이스를 제작한 시계,수많은 워치메이커들의 아이코닉한 디자인을 하나의 시계에 담아 시계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회자됐던 모델까지. 인데버 센터세컨즈 제네시스는 시계 베젤과 글라스, 크라운까지 입체적인 QR 코드 디자인이다. 3D 프린터를 사용해 제작한 이 시계는 단순히 QR 코드를 재미난 시계 디자인으로만 활용하지 않았다. 실제 시계의 코드를 통해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스위스 금융회사, 블록 체인 업체 등과 협업했다. 핸즈는 ‘시간에 대한 덧없음’을 일깨우기 위해 일부러 잘 안보이게 만들었다.

프레드릭 콘스탄트 
매뉴팩처 슬림라인 문페이즈 데이트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브랜드 론칭 당시부터 현재까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한 자세로 시계를 만들어 미들레인지라는 위치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상승세로 확고히 자리잡은 브랜드다. 하지만 얼마전 진짜 재미난 시계를 발표했다. 매뉴팩처 슬림라인 문페이즈 데이트는 원래 브랜드의 기술력과 디자인 역량이 최대치로 담긴 역작이다. 그런데 그 시계의 인덱스를 조립하다 말은 것처럼 흩뿌리고, 모든 폰트를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변경한 것도 모자라 문페이즈 디스크까지 손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디자인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김수용식의 실없는 개그 같다. 오리지널 모델이 진짜 진지하게 생겼기 때문에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피식하는 웃음을 참을 수 없다. 나사 몇 개 빠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능적으로 완벽하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