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번째 쇼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드리스 반 노튼의 39년 여정. 그의 엔딩 크레딧에는 과거에 대한 확신, 현재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격려로 가득했다.
GQ 쇼를 마친 지 약 36시간이 지났어요.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DVN 일단은 행복합니다. 당장 다음 주에 “세상에 내가 뭘 한 거지?”라고 말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다고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에요. 오랜 시간 몰두한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나는 패션을 좋아했고, 여전히 사랑해요. 뷰티와 향수에 대한 작업, 그리고 남성복과 여성복에 대한 관심과 조언은 끊임없을 거예요. 다만 그러면서도 이제는 매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겠죠. 음악을 들을 때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할 때 영감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요.
GQ 어제 클로징 룩은 당신다운 선택이었어요. 새틴 포켓의 블랙 롱 코트, 물이 흐르듯 반짝이는 실버와 골드 빛 팬츠, 그리고 샌들. 간결해서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DVN 많은 사람이 장식적 요소가 많은 디자인이나 지난 컬렉션을 회고하는 컬렉션을 기대했을 거예요. 그 점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지만, 너무 시끌벅적하게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가 하던 대로 하고 싶었죠. 대신 브랜드의 주요 요소인 컬러, 프린트, 자수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며 마지막 도전을 감행했어요. 새로운 소재나 프린트 기술을 개발하고 시도하면서요. 클로징 룩을 정할 때는 고민이 많았어요. 원래 골드 블레이저로 하고 싶었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바꿨어요.
GQ 오프닝은 알랭 고수인이 맡았죠.
DVN 알랭은 1991년 드리스 반 노튼과 첫 쇼를 시작했어요. 지금까지 34개의 쇼를 함께했는데, 그는 옷을 소화하는 능력과 워킹 실력이 출중해요. 알랭이 아름다운 울 리넨 롱 코트를 입고 오프닝을 연다는 생각에 마음이 얼마나 들떴는지 몰라요. 이번 피날레를 젊은 모델에게 맡긴 건 미래의 알랭을 위해서에요.
GQ 드리스 반 노튼, 그리고 앤트워프 식스를 통해 패션을 접하고 업계에 진출한 젊은이가 정말 많아요. 앤트워프 식스가 이렇게 전설적인 집단이 될 거라는 걸 예상했나요?
DVN 전혀요. 처음부터 ‘그룹을 만들어서 마케팅을 하자!’라는 식의 계획은 절대 아니었어요. ‘앤트워프 식스’라는 이름조차 우리가 지은 게 아닌걸요. 1986년, 런던의 브리티시 디자이너 쇼에서 2층 웨딩드레스와 란제리 쇼룸 뒤쪽에 전시를 했는데, <우먼스 웨어 데일리>에 앤트워프 식스라는 이름으로 기사가 나간 게 시작이에요. “앤트워프에서 온 여섯 명의 디자이너(the six from Antwerp)를 보러 위층으로 오세요” 라는 전단지를 돌렸거든요. 발음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적었던 건데 그룹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당시 각자 생각하는 패션의 비전은 달랐지만, 서로 많은 정보를 나누었어요. 아, 물론 요즘도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곤 합니다. 몇 주 전에도 만났거든요. 최근의 화두는 가드닝, 과거의 유산, 손자와 손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예요. 여담이지만, 앤 드뮐미스터는 놀라운 정원사예요. 요즘은 저에게 줄 토마토를 기르는 데 한창이에요.
GQ 앤트워프 식스로 데뷔한 이후, 많은 게 달라졌을 것 같아요.
DVN 준비가 덜 되어 있었지만, 바니스에서 큰 주문을 했어요. 운이 좋았죠.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게 순탄했던 건 아니에요. 자본을 만들기 위해 다른 브랜드의 커머셜 컬렉션 7개를 디자인해야만 했거든요. 마틴 마르지엘라와 딕 비켐버그는 이미 그들의 쇼를 시작했지만, 저는 1991년이 되어서야 첫 쇼를 열었어요.
GQ 꿈을 키우던 디자이너 초창기 시절, 패션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요?
DVN 양장점을 운영하던 부모님 덕분에 피렌체와 밀라노를 여행할 때면 컬렉션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패션에 매료됐죠. 또 매우 고전적이었던 예수회 학교를 다니다 패션 스쿨로 넘어오면서 견문이 넓어졌어요. 월터와 마틴 같은 친구를 만나면서 ‘와, 다른 세계가 있었구나’를 실감했고요. 물론 그 당시는 패션이 그 자체로 격동기를 맞았을 때예요. 1974년부터 1975년, 아르마니와 베르사체가 리넨 정장, 가죽 재킷 등을 선보이며 남성복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거든요. 그리고 뒤이어 클로드 몬타나와 티에리 뮈글러가 빅숄더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우아하고 캐주얼한 스타일이 주를 이루던 패션이 하루아침에 파워 드레싱의 시대를 맞은 거죠. 당시 런던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펑크, 부정주의를 등에 엎고 뉴로맨틱스라는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어요. 또 곧이어 일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가 1980년 파리에서 꼼데가르송의 첫 쇼를 선보였고요. 이게 불과 5년 동안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겨지나요? 아이디어와 비전, 다양한 사고가 마치 화려한 폭죽처럼 폭발했던 때예요. 지금도 물론 패션은 아주 놀랍지만요.
GQ 파리에서 열린 첫 꼼데가르송 쇼에 참석했나요?
DVN 네. 학생이었지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초대장을 복제하는 속임수 기술이 기가 막혔거든요. 초대장 하나가 열두 장이 되어 우리는 모두 쇼에 참석할 수 있었어요. 또 <뉴욕 타임스> 사진작가 빌 커닝햄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는 “패션쇼는 나이 든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여러분 같은 젊은이를 위한 것이에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빌이 텐트 옆을 열면 우리는 미끄러지듯 들어갔어요. 고마웠어요, 빌 커닝햄!
GQ 처음 만든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DVN 처음 옷을 만든 건 패션 스쿨 2학년 때였어요. 남성 블레이저를 만들었는데, 탄성이 많은 소재로 만들어서 좀 이상했지만 재밌었습니다. 월터와 마틴은 이미 완성형 디자이너였고요.
GQ 피렌체에서 열린 1996년 S/S 시즌 컬렉션 쇼는 맨즈웨어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쇼 중 하나예요. 이 쇼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요.
DVN 피티 워모의 자금 지원을 받아 진행했는데요. 사실 피티 워모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싫어했죠. 우리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타협점은 모델이었어요. 전형적인 모델이 아닌, 길거리의 사람을 런웨이에 세우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유럽 각국에서 온 모델 140명을 피렌체 길거리에서 캐스팅했어요. 쇼가 진행되는 동안은 정말이지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모델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품 가방을 파는 사람, 버스 두 대에서 내린 일본인 관광객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어요. 어디 그뿐인가요. 피날레 때는 불꽃을 터트렸는데, 화약을 너무 많이 준비한 기술자 때문에 폭발에 가까운 현장이 펼쳐졌어요. 피렌체의 모든 창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고, 자동차와 박물관의 경보기까지 울렸다니까요.
GQ 맨즈웨어의 전환점이 된 컬렉션을 특별히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DVN 하나만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감 받은 2011년 F/W 시즌 컬렉션을 포함해 다양한 쇼가 있어요. 또 2001년 S/S 시즌 컬렉션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한 컬렉션이었는데, 제가 한 남성복 컬렉션 중 가장 최악으로 손꼽는 쇼예요. 쿨하고 미니멀해 보이려고 애썼지만, 좋은 방식은 아니었어요. 브랜드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며 한번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죠.
GQ 2000년 즈음, 패션에 대한 생각이 변화했다고 언급한 적이 있어요. 유행하는 옷보다 아름다운 옷을 만들겠다고요.
DVN 그때는 이상한 시기였어요. 도처가 모두 질 샌더와 헬무트 랭에 대한 것들뿐이었죠. 물론 사업은 여전히 번창하고 있었지만, 1990년대 말에 크리스틴 매티스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면서 사업적인 측면까지 책임져야 했어요. 또 패션 그룹이 몸집을 늘리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맥퀸과 질 샌더가 회사를 매각하고, 젊은 디자이너가 빅 하우스에 합류하고 있을 무렵이었죠.
GQ 패션의 복합 기업화가 시작한 때군요.
DVN 톰 포드가 구찌를 맡으며 옷보다 신발, 가방과 같은 액세서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모든 건 마케팅 싸움이 됐고요. ‘우리가 하던 대로 옷을 만드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했어요. 어떤 팀원들은 “더 미니멀해지고 날렵해져야 해요”라고 말했지만, 그건 우리답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던 2001년 S/S 시즌 컬렉션이 이를 방증했죠. 그래서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어요. 색과 자수에 대비와 요소를 넣어 변주하면서 더 현대적인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GQ 맨즈웨어의 변화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도했어요. 빠른 혁신에 어떻게 대응했나요?
DVN 제가 처음 패션을 시작할 때는 그야말로 맨즈웨어 혁신 시대였어요. 첫해부터 말이죠. 1980년대는 남성복을 근사하게 디자인한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주를 이뤘다면, 1990년대 초는 몬타나와 뮈글러가 그 자리를 대체했어요. 남성 사이즈의 여성복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남성복을 여성복처럼 대했습니다. 저는 섬세한 테일러링에 집중했어요. 판타지가 아닌 섬세한 리얼리티를 원했죠. 이를테면 빅숄더 재킷이지만 현실감이 있을 것. 섬세한 디테일이 리얼리티를 완성합니다.
GQ 지금 패션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DVN 빈티지를 입어도, 유니클로를 입어도 충분히 근사하고 패셔너블해요. 재료가 좋다는 말이죠. 핵심은 개성이에요. 룩을 만들어내는 건 각자에게 달려 있으니까요. 디자이너가 단어를 만드는 사람이면 고객은 자신만의 언어로 문장을 만들어야 해요. 현재 패션계의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들지 않는 점에 대해 말하자면 날을 새워야 할 텐데, 시간 괜찮아요?
GQ 원하는 만큼요. 제가 느끼기에 지금 패션은 매우 불안정하고 취약한 상태인 것 같아요.
DVN 엄밀히 말하면 그건 패션 비즈니스일 거예요. 패션과 패션 비즈니스는 다르거든요. 패션은 갈망입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근사한 스웨터를 걸치면 기분이 좋아지고, 빛나고 싶을 때 빛날 수도 있어요. 반대로 숨을 수도 있고요. 패션 비즈니스는 사업가들이 만든 거예요. 가짜 욕망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썩 유쾌하진 않죠.
GQ 업계에 대한 이런 감정이 은퇴 결정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DVN 극히 일부는 작용하겠지만 큰 영향은 없어요.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는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사람들이 공감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GQ 1990년대 후반에 LVMH나 케어링에 회사를 매각했다면 어땠을까요?
DVN 브랜드가 10배 더 성장하고, 매장도 많이 열었겠죠. 그렇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시퀸과 실을 선별해 고르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게 여전히 좋기 때문이에요. 푸이그의 일원이 되기 전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올바른 결정이었습니다.
GQ 푸이그에 브랜드의 지분 대부분을 매각한 건 은퇴 계획의 일부였을까요?
DVN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 자체로 괜찮은 생각이었으니까요. 2018 지분을 매각했을 때 저는 60대에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드리스 반 노튼은 건장한 회사였지만 복합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죠. 이커머스 사업의 부재, 매장 부족 등.
GQ 그렇다면 은퇴는 언제 계획한 건가요?
DVN 원래 65세에 브랜드 사업을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을 함께한 팀원에게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안녕!”이라고 말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죠. 브랜드의 지속성을 판단하기 위해 하우스를 객관적으로 바라봤어요.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활용할 충분한 재료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요. 드리스 반 노튼은 직물도, 패턴도, 체계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카이브는 브랜드가 지속될 가치와 가능성이 충분했어요.
GQ 드리스 반 노튼은 한 번도 유명 인사의 명성을 지렛대 삼은 마케팅을 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은퇴를 선언한 후 모든 미디어가 당신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DVN 맞아요. 꽤 미묘한 기분이에요. 은퇴를 발표한 후 편지를 받았어요. 연령도, 직업도 다양한 많은 사람으로부터요. 여기에는 동료 디자이너가 쓴 편지도 있었어요. 그들은 제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또 어떤 귀감을 선사했는지에 대해 깊은 감정과 마음을 전했어요.
GQ 내일 앤트워프로 돌아간다고요. 다음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DVN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아요. 충분히 고민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젊은 디자이너를 위한 아이디어가 많다는 것만은 확실해요.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일을 계속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저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한번은 패트릭에게 “오직 내 또래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내 인생이 아니야”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젊은 사람과 소통하며 그들이 가진 생각과 비전을 끊임없이 나누고 싶어요. 조언을 건네기도 하면서요. 그들 역시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줄 테고요.
GQ 후임을 위해 조언한다면?
DVN 대담해지세요.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위험을 감수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내가 마지막 쇼를 했던 것처럼요. 어떤 사람은 내 마지막 쇼가 기대했던 것보다 화려하지 않다고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방향이든 내가 원하는 방식을 택해야 해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GQ 네이비 스웨터도 볼 수 없는 걸까요?
DVN 제 하루는 생각과 결정의 연속이에요. 그래서 일상에서라도 고민을 최소화하려고 해요. 옷장을 열 때도,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정해진 것만 고르는 편이죠. 간단함과 소박함이 좋아요. 네이비 스웨터가 유니폼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이제는 은퇴를 했으니 다양한 패션에 도전해볼 수도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