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 남자 흉포하다? 김윤식 인터뷰

2008.08.08GQ

김윤석이 눈을 켜들었다. 꿈틀대는 동물의 등처럼 보였다.

신작 <추격자>는 여러모로 유영철 사건을 연상시킨다.
난 그런 생각해본 적 없다.

실제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묻는 게 불편한가?
그게 불편한지 불편하지 않은지가 왜 궁금한가?

우리 지면에서는 꼭 필요한 질문이 아니니까 불편하다면 더 하지 않겠다.
…….

혹시 피곤한 건가?
처음 시나리오 받았을 때부터 전혀 그런 생각을 못해봤다. 그냥 연쇄살인마와 그를 추적하는 보도방 업주 이야기다. 유영철과 관련된 이야기니까 참고하라고 말한 사람도 없었다. 그랬다면 연구했겠지. 오로지 대본에 대한 연구와 현장에서의 호흡만으로 작업했다.

어쨌든 관객들이 보기에는 실제 사건과의 연관성을 느낄 만하다. 본격적인 홍보활동에 들어가면 언론에서 분명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질 공산이 크다.
뭐 그렇게 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싶겠지 뭐.

어떤 매력을 느껴 선택하게 됐나?
생날것, 그 이상의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무척 끌렸다.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방식도 전에 보지 못했을 정도로 굉장히 특이했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속에 참 많은 걸 숨겨놓았다고 생각한다.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을 때, 정말 굉장히 신선하고 이 영화에 뛰어들 만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정확히 어떤 특이함인가?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데…. 우리 사회에는 절대 다수의 행복과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합리적 질서들이 존재하지 않나. 이를테면 이 세상은 오른손잡이를 위한 사회다. 왼손잡이로서는 가위질부터 운전에 이르기까지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절대다수 오른손잡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합리적 약속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편의에 의해 조금씩 소외당하고 피해당해온 자의 비극에 대해 다룬다.

<추격자>의 살인마가 그런 환경의 부조리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건가?
내가 해석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단정 짓고 싶은 마음은 없다.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눈 하나가 정상인 동네에 가면 비정상 취급을 받는다. 사람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그 환경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이냐를 연구해야 한다. 거기서 모든 게 출발한다.

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드는 건 환경인가, 직업인가, 혹은 아주 개인적인 문제일까?
개인적으로는 환경의 문제가 더 큰 것 같다. 오로지 환경 때문에 좌우되지는 않겠지만, 맥락을 따지자면 환경의 영향력이 가장 클 거다.

중호의 매력은 무엇일까?
설정만 보면 정말 나쁜 놈 같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세상의 일반적 기준에서 볼 때 모두 나쁜 놈이다. 중호는 보도방 업주에 전직 비리 경찰이고, 상대는 극악무도한 살인마다. 하지만 중호는 남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다. 그게 좋았다. 그가 감당해낼 수 없는 악의 벽에 부딪혔을 때, 그러니까 그가 가지고 있는 나쁜 행동 따위는 미세한 문제가 돼버릴 정도의 악마성을 마주했을 때 보통 사람처럼 괴로워한다. 그에게는 최소한의 무엇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있는 거다.

그 최소한의 무엇이 뭔가?
양심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동구 아버지나 <타짜>의 아귀도 날것의 느낌이 아니었나. 언뜻 비슷한 느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접근 방식이 달랐다. 동구 아버지나 아귀 같은 경우에는 캐릭터 자체가 생날것이다. 동구 아버지는 집에서 왕이다. 아귀는 도박판에서 왕이다. 이번 인물은 어디서도 왕이 아니다. 사회 어두운 구석에 자기 아지트를 만들어놓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려 바동거리는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게 이 인물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상대가 하정우다. 서로 호흡이 잘 맞던가?
영화 찍으면서 굉장히 친해졌다. 특히나 호흡이 잘 맞았다. 액션 장면을 찍다 보면 호흡이 서로 맞는지 안 맞는지 몸으로 느끼게 되는데. 허, 거참. 정말 한 몸 같았다. 다친 적이 없거든. 무자비하게 거친 액션이 난무하는데도 말이다. 그건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굉장한 호흡이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긴장하거나 힘이 더 들어간다면 실제 가격을 하게 되는데. 그런 적이 없었다.

미리 동선을 합의하지 않나.
미리 논의된 동선은 60퍼센트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다. 이 영화에 멋있는 막기 지르기 차기 따윈 없다. 말 그대로 개싸움이다. 다찌마와 리다. 그런 장면들이 진짜 어렵다.

전에 서로 안면이 없었는데도 그런 호흡이 가능한 건 무엇 대문일까?
강한 믿음이다. 믿지 못하면 몸이 경직된다.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공포가 있어도 믿음이 있으면 조화가 생긴다. 촬영 이외 시간에도 서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다.

이를테면? 술?
허허허. 그보다는 즉흥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눴다. 둘 다 즉흥성에서 터져 나오는 우연을 좋아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거기서 나오는 빛나는 부분들을 추구하려 애쓰는 거다.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부딪혀서 발생하는 너와 나의 에너지, 아무런 약속 없이 부딪혔을 때 나오는 생짜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전에 이렇게 액션 장면이 많았던 경우가 또 있었나?
없었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동구와의 마지막 결투는 액션이라기보다 거의 일방적인 난타였다.

전에 운동을 배운 적이 있나?
동구 아버지를 연기하기 위해 권투를 배웠을 뿐이다. 다른 운동을 한 건 없다. 태권도야 군대 가면 다 하는 거고(웃음).

연극과 영화, TV드라마를 병행해왔다. 장단이 있을텐데.
서로 많이 틀리다. 연극은 말 그대로 라이브다. 클로즈업이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몸 전체가 5미터 앞에 있는 관객과 호응해야 한다. 드라마 연기 같은 경우가 참 재밌다. 난 드라마에서 많은 장점을 느낀 케이스다. 연극이나 영화는 두 시간 안에 주어진 주제를 확실하게 끄집어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일일 드라마 110회를 하다 보니 일상성을 연기하는 호흡을 알게 됐다. 이를테면 식사 장면이 많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묻어나야 한다. 영화나 연극으로서는 쉽게 배울 수 없는 부분이다.

무섭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없나?
뭐가?

당신이.
말을 안 하고 있을 때는 솔직히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무서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밥을 같이 먹던지, 술자리를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내가 무섭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될 거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본색이 드러나게 될 테니까.

지금 술이나 밥은 안 먹었지만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데, 어렵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털털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직업이 연기자인데. 예민한 부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예민한 부분 못지않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많다. 사실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만 생각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나? 나도 그냥 동네 친구들이랑 술 먹고 밥 먹고 놀고 싶다. 자연스럽게 말이다. 가정에서는 또 가장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가정에선 어떤가. 설마 동구 아버지 같은 건 아닐까.
가정에선 호구다, 호구(웃음).

<즐거운 인생>의 성욱을 연상하면 되나?
그거보다 더하다. 완전 호구다.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채널 선택권을 모두 빼앗기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거실을 서성거리는, 아주 불쌍한 아버지다.

가족과 어울릴 시간이 많은 편인가?
아무래도 직장인과는 다르다. 작업이 끝나고 나면 24시간 계속 같이 있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 나이가?
어리다. 여섯 살, 세 살.

아버지가 출연한 영화는 못 봤겠다.
그걸 본다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니깐. 영화는 못 보고 TV에 나오니까 드라마만 본다.

부인은 남편의 연기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는 편인가?
아무래도 그렇다. 연기자를 배우자로 둔 사람이 그런 재미라도 없으면 어떻게 살까. 난 이렇게 생각했는데 어떻게 봤느냐 식의 대화를 자주 나눈다.

비판하면 화낼 거 같다.
그런데 비판을 안 한다.

무서워서 안 하시는 거다.
사실 비판을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현명한 게 중요한 거다. 봐라, 연극이라면 이런 부분들을 저렇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조언하는 게 필요하다. 다시 무대에 올라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필름이라면 이미 찍혀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비판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 비판이라기보다는 서로에게 조언을 해주는 정도일텐데, 사실 그 조언마저 같이 오래 살다 보면 이미 서로 알고 있는 단점들에 대해 지적해주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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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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