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한복 입은 보그너

2010.12.14GQ

스포츠웨어 브랜드 ‘보그너’를 이끄는 남자, 빌리 보그너는 1988년 서울에서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한복이 잘 어울린다.
한국에 온 게 벌써 여덟 번째다. 3년마다 한 번씩 온 것 같은데, 그때마다 서울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요즘 한복도 저렇게 생겼나?

한복은 유행과 상관없는 옷이다. 당신이 입었던 건 혼례복이다.
한복을 입으면 배가 나와도 감쪽같이 가려지겠다.

당신은 알려진 스포츠광이다. 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달리기나 웨이트 트레이닝은 부담되지만, 스키는 계속할 수 있다. 골프나 테니스도 좋아하고 세일링이나 페러글라이딩 같은 운동도 즐긴다. 지구에 있는 모든 스포츠를 해보는 게 목표다.

최근에 시작한 운동은 뭔가?
카이트 서핑. 아직 배우는 단계인데, 끝내주는 스포츠다.

스키 선수가 만든 스키웨어는 뭐가 다른가?
스포츠 웨어는 그 스포츠를 모르면 못 만든다. 난 스키 선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할 뿐 아니라, 갖가지 순간의 재미와 위험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일’에 내 ‘경험’을 결합 시킨다.

이 맛에 스키 탄다, 싶은 순간이 있나?
종종 깊은 밤에 스키를 타러 간다. 헤드라이트 하나 들고 캄캄한 산을 내려가는 건 환상이다. 그리고 헬기를 타고 아무도 밟지 않은 산에 올라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것만큼 멋진 건 없다. 그 기분을 맛보기 위해 매년 캐나다에 간다.

보그너를 이끌면서도 그런 기분을 느끼나?
보그너라는 간판이 달린 가게를 볼 때마다 스키 탈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다.

보그너를 골프웨어 브랜드로 아는 사람이 많다.
보그너는 방대한 라인을 갖고 있다. 중요한 건 모든 라인이 ‘스포츠’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거다. 골프와 스키를 비롯한 지구의 모든 스포츠웨어를 하나로 통합한 ‘보그너식’ 라이프스타일을 이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도 널리 전파할 거다. 한국에 세운 보그너 아시아가 그 역할의 중심이 될 거다.

보그너의 수많은 옷 중에서, 단 하나만 추천한다면 뭘 고르겠나?
매년 보그너에선 1천5백 개의 새로운 ‘룩’이 나온다. 그중에서 하나를 고를 순 없다. 사람마다 끌리는 지점이 다르고 스포츠에 대한 정의도 다르니까.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게 스포츠웨어의 핵심이다. 움직임에 유연하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옷은 오래 간직하고 오래 입을 수 있다. 보그너의 옷은 한 철만 입는 옷이 아니다.

유행과 무관하다는 얘기인가?
오래 즐기고 아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말이다. 적은 돈을 들이는 옷이 아니라면, ‘투자’하는 기분으로 골라야 한다. 보그너는 든든한 투자처다. 올해 입고 넣어놨다가 3년 후에 다시 꺼내 입어도 기분 좋은 옷을 만들고 싶다.

서울에 사는 수많은 남자 중에서 누가 보그너를 입을까?
자연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만큼 성공한 남자. 산을 오르고, 들판을 달리고, 강에서 노를 젓고, 눈밭에선 스키도 타겠지. 그런 사람이 옷으로 뭔가를 더 드러낼 필요는 없다. 보그너는 그런 인생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옷을 만든다. 옷이 사람보다 강하면 안 된다.

그런가? 하지만 선수 시절 슬로프에서 당신이 입었던 스키웨어는 진짜 강렬했다.
눈 위에선 얘기가 다르다. 거기선 누구보다도 돋보여야 제 맛이다.

BIG & HUGE
선물 상자는 늘 맘이 설레게 한다. 상자의 색깔과 광택을 보면 우선 들뜨고, 어떤 이름과 폰트가 새겨졌느냐에 따라 심장 박동 수는 점점 빨라진다. 그래서 티파니의 에메랄드빛 상자, 검은 리본이 장식된 랑방의 하늘색 상자, 에르메스의 오렌지색 상자는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초겨울 강남 한복판에 들어선 초대형 회색 선물 상자를 봤을 때도 그랬다. 뚜껑이 사 분의 일쯤 열린, 가장자리가 정교하게 흰색으로 테이핑되어 있는 팔각형 상자는 디올의 <디올 헤리티지>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다. 옆에서 보면 뚜껑의 앞뒤 부분을 교묘하게 살짝 기울여 건축적인 세심함까지 놓치지 않았다. 박스 안엔 파리 몽테뉴 거리를 재현한 벽지와 디올이 가진 유산이 담겨 있다. 오트쿠튀르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휘황찬란한 디올의 드레스, 자도르 향수가 더 빛났던 건 전부 차분하고 ‘모던’한 상자로 포장했기 때문이었다.

    에디터
    박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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