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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9.24GQ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대개 초심을 잃는 데서 시작됐다. 쟁쟁한 업체가 같은 이유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승승장구 중인 현대기아차가 과거의 열정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05년 9월, 독일 프랑크루프트 모터쇼에서 폭스바겐 브랜드 사장 볼프강 베른하르트는 이렇게 외쳤다. 폭스바겐의 시작을 이끌었던 소형차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마침 골프를 밑바탕 삼은 하드톱 카브리올레, 이오스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런데 이날 무대 뒤에서 이 광경을 언짢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노신사가 있었다. 폭스바겐 그룹 감독위원회 의장 페르디난트 피에히였다. 그는 폭스바겐의 ‘신분 상승’을 꿈꾼 주인공이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도 A클래스로 꼬마 차 시장에 뛰어드는데 폭스바겐이라고 작은 차만 만들란 법 있느냐”는 논리였다. 그는 경영자 이전에 탁월한 엔지니어였다. 외할아버지 포르쉐 박사의 피는 못 속였다. 성향만큼은 전혀 달랐지만.

피에히는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충돌을 서슴지 않았다. 회유에도 능했다. 1천 마력이 넘는 경주차를 만들며 돈을 펑펑 쓰다 포르쉐에서쫓겨났다. 아우디로 옮겨서는 TDI 엔진과 콰트로의 개발을 이끌었다. 탁월한 정치력으로 폭스바겐 회장에 오른 뒤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신차 출고장을 테마파크로 탈바꿈시켰다. 독일 드레스덴에 갤러리 뺨치게 호화로운 유리공장도 세웠다. 여기서 최고급 세단 페이톤을 만들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포르쉐와 손잡고 개발한 SUV 투아렉도 더했다. 폭스바겐은 두 차에 최고의 기술을 아낌없이 담았다. 피에히의 고집 때문이었다. 특히 페이톤 개발팀엔 반드시 만족시켜야 할 열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황당한 주문이었다. 가령 섭씨 50도에서 시속 3백 킬로 미터로 온종일 달리면서 실내온도는 섭씨 22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했다. 기발한 발상으로 부피를 줄인 W12 엔진도 얹었다.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차였다. 문제는 폭스바겐 엠블럼이었다. 언론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상품성을 칭찬했다. 하지만 프리미엄급 가격에 대해선 평가를 아꼈다. 페이톤은 돌풍을 일으켰지만‘ 폭스바겐=비틀’의 고정관념이 희박한 시장에 한정됐다. 한국이 대표적이었다. 소형차로 입지를 다진 시장에선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드레스덴 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는 2만 대. 하지만 2002년 데뷔 이후 2006년까지 페이톤을 총 2만5천여대 생산하는 데 그쳤다. 2006년엔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볼프강 베른하르트의 도발은 이처럼 불편한 진실을 겨냥했다. 성과를 거둬 몸값을 높여야 할 전문 경영자 입장에선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룹 총수의 자존심을 대놓고 건드렸다. 베른하르트는 결국 괘씸죄 명목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폭스바겐 그룹의 전략에 반영됐다. 소형차 라인업을 보강하는 한편 엔진 다운사이징에 속도를 높였다. 달라진 폭스바겐을 상징할 차종은 지난해 데뷔한 업!이다. 너비 빼곤 우리 경차 기준과 겹치는 미니카다. 업!은 거품을 쏙 뺐다. 안전성과 성능, 품질은 폭스바겐의 까칠한 기준에 맞췄다. 폭스바겐 마케팅 총괄 크리스티안 아델트의 설명은 의미심장했다. “업!은 세컨드카가 아닌 메인카를 지향합니다.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차예요.”

골프를 빼곤 히트작이 없던 미국엔 수수한 제타와 파사트로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인의 취향을 반영해 관절의 힘을 뺐다. 장비 욕심을버리고 경쟁력 있는 가격을 앞세웠다. 미국 테네시 주 채터누가엔 파사트를 만들 현지 공장까지 세웠다.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감각을 되찾으면서, 폭스바겐 그룹은 전성기를 맞는 중이다. 2018년 세계 1위 등극을 꿈꾼다. 물론 이 목표의 가장 큰 걸림돌은 토요타다. 2008년 GM을 꺾고 세계 1위에 오른 뒤 3년 연속 왕좌를 지켰던 챔피언 출신이다. 분위기는 뒤집기에 성공하기 몇 년 전부터 감지됐다. 토요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겸손한 반응뿐이었다. 심지어 1위가 확실시된 후에도 “집계 방식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며 능청을 떨었다. 하지만 외부에 비춰진 모습과 달리 내부적으론 무리수를 많이 뒀다는 후문이다. 세계 1위의 상징성에 집착한 탓이었다. 공격적으로 해외 공장을 늘렸지만 관리 인력과 품질 수준을 맞출 협력업체가 부족했다. 품질 관리에 허점이 생겼다. 신차 투입의 호흡마저 가빠졌다. 토요타는 개발기간을 기존 3~4년에서 24개월까지 줄였다. 가상제조기술 덕분이었다. 가상현실과 비슷한 개념이다. 설계와 제조, 시험에 이르는 여러 분야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개발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개발비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지름길에서 시작되었다. 관리 대상을 품질에서 원가로 옮긴 결과였다.

매트가 가속페달에 걸렸다. 가속페달 자체도 시원치 않았다. 일부 하이브리드카는 브레이크가 말썽을 피웠다. 후폭풍은 거셌다. 토요타는 1천만 대 이상의 사상 최대 규모 리콜에 나서야 했다. 도요타 아키오 사장은 미 하원 청문회까지 불려갔다. 금전적 손해도 엄청났지만 수십 년 신뢰가 폭삭 무너진 데 비할 바는 못됐다. 2005년, 토요타는 구매담당 부사장 와타나베 가쓰아키를 사장으로 앉혔다. 토요타 아키오 사장의 아버지인 쇼이치로 명예회장의 참모 출신이자 원가절감의 달인이었다. 그는 취임 이후 4년 동안 혹독하게 원가를 쥐어짰다. 리콜 대상이 차 대부분은 공교롭게 그 시기에 개발됐다.

토요타 아키오는 소비자의 시선에서 제품을 살폈다. 잘 팔릴 차는 많지만 열정을 자극할 차는 드물었다. 사장 데뷔 직후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아키오가 주문한 건 재미였다. 가령 렉서스 신형 ES는 운전대의 각도를 좀 더 수직에 맞춰 세웠다. 토요타 신형 캠리는 F1 노하우가 스민 ‘에어로 핀’으로 주행시 공기의 흐름을 조정해 고속주행안정성을 높였다.

아키오 사장은 청문회에서 “모든 (토요타)차엔 내 이름이 들어간다. 소비자의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개혁은 현실로 거듭나는 중이다. 토요타는 최근 올 초 발표한 생산 및 판매 계획을 수정했다. 생산은 기존 9백58만 대에서 9백76만 대, 판매는 22만 대 늘어난 1천5만 대다. 올해 다시 세계 1위를 되찾을 전망이다.

사실 폭스바겐과 토요타는 스스로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빅 스리(GM·포드·크라이슬러)’의 위기를 목격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 때문에 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 빅 스리의 몰락은 한층 드라마틱했다. 포드는 1990년대 SUV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후 GM을 넘겠다는 일념으로 유럽 브랜드 사냥에 나섰다가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GM은 세계 최대라는 자긍심에 도취돼서 크고 무거운 차를 만들어왔다. 친환경 흐름에 역행하는 16기통짜리 콘셉트카를 심드렁하게 선보였다. 자동차보다 주택금융 등 부가사업에서 돈 벌 궁리에 바빴다. GM엔 자동차 할부 금융을 담당하는 GMAC이란 자회사가 있다. GMAC는 1990년대 말 주택 모기지(담보 대출) 회사를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6년부터 집값이 떨어졌다. 담보 가치가 하락하니 자금 회수할 방법이 묘연해졌다. “위기를 향해 치닫던 폭주기관차.” 당시 미국의 한 언론이 묘사한 GM의 상황이었다. 결국 GM은 2009년 파산했다. 부실기업은 올드 GM으로 묶어 파산시키고, 경쟁력 있는 사업만 추려 뉴 GM으로 부활시켰다. 인수, 합병의 달인다운 해법이었다.

현재 업계는 현대기아차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 시장의 불황과 패닉 상태에 빠진 유럽 경제에 개의치 않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비결로 소위 ‘청개구리 전략’이 손꼽힌다. 모두가 위기를 말할 때 과감히 투자했다. 반대로 주문이 빗발칠 때 증산을 자제했다. 이 같은 결정의 중심에 정몽구 회장이 있다. “한두 번 성공하면 운이라지만, 그게 꾸준히 반복되면 감이라고 볼 수밖에요.” 현대차 디자인센터장 오석근 부사장의 설명이다. 물론 안심하기엔 이르다. 12퍼센트 가까운 경이적 수익률은 협력업체의 희생이 뒷받침된 결과다. 게다가 상황과 전략이 토요타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요컨대 신차 개발기간을 향후 18개월까지 줄일 참이다. 계열사 내에서 먹이사슬을 완성하는 수직계열화에도 열심이다. “전 (현대차가)성공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직 갈 길이 멀거든요.” 그의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 로열티를 절반으로 깎아주겠다는 미쓰비시의 제의를 뿌리치고, 독자 엔진 개발에 나섰던 시절의 열정과 패기를 곱씹어볼 때다. 기회와 위기는 늘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아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션 김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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