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올해의 남자들- 구자철 기성용

2012.12.05유지성

이제 스물넷. 1989년에 태어난 구자철과 기성용은 한국 축구의 신나는 두 축이 되었다.

런던 올림픽에서, 구자철은 넘어지면 일어났다. 상대팀은 하나같이 구자철을 거칠게 몰아붙였다. 덩치가 크지 않은 에이스를 기술로 제압할 수 없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구자철은 어슬렁대다 공을 향해 달려가거나, 공이 있는 곳에 갑자기 나타나는 선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카메라가 구자철만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박지성도 대표팀에서 은퇴하기 전에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박지성이 우직하다면, 구자철은 미끈하다. 폼 안 나는 기묘한 동작도 서슴지 않고, 공을 끝내 지키면서 수비수의 빗장을 돌파한다. 박지성이 동료를 돕는 데 전념하다가도 중요한 순간이면 반드시 골을 넣었듯이, 올림픽 마지막 골은 구자철의 차지였다.

기성용은 새롭다. 기성용은 시원하고 명료하게 공을 찬다. 하지만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기엔, 분투하며 변화한 궤적이 너무 선명하다. 억척스러운 스코틀랜드에서 날아와 올림픽에 참가한 그는 대표팀에서 가장 거친 선수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그는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갖추고자 애썼다. 큰 키는 유럽 선수들 사이에서도 불쑥 눈에 띄는데,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공격수들에겐 재앙 같은 긴 다리 태클을 하고, 후방에서 사방으로 패스를 뿌리고, 킥을 도맡아 찬 것도 기성용이었다. 카메라보다는 해설자가 자주 찾는 이름. 기성용은 올림픽이 끝나고 <골닷컴>이 뽑은 올림픽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다.

구자철과 기성용은 1989년생 동갑이다. 올림픽 8강전, 영국과의 간 떨어지는 승부차기에서 구자철은 첫 번째 키커, 기성용은 마지막 키커였다. 그걸 보자 2002년 월드컵 8강에서 황선홍이 1번, 홍명보가 5번 키커였던 것이 생각났다. 황선홍과 홍명보는 87학번 동기로 20년 동안 한국 축구의 전후방을 지켰다. 한국 축구는 공수의 축이 될 그런 한 쌍을 기다려왔고, 구자철과 기성용은 그 자리에 들어찼다. 구자철이 동메달 결정전인 한일전에서 마지막 골을 넣었을 때, 기성용은 어디선가 나타나 구자철의 머리채를 쥐어뜯다시피 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을 땐, 누구보다 꽉 끌어안았다. 이제 둘은 올림픽 대표팀을 떠난다. 아쉬운가? 하지만 2018 월드컵 때도 둘은 겨우 서른이다. 자철이와 성용이는 한 마을에 살지 않았다. 지금도 한 나라에 살지는 않는다. 그런 채 한국 축구의 심장이 되었다.

기성용

부드럽고 우아하게 공을 차던 당신이 언젠가부터 투쟁심 넘치는 ‘싸움닭’으로 변모했다는 평이 있다.
글쎄. 내가 속한 팀의 색깔이나 상대의 특성에 따라 경기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부드럽거나, 터프하거나. 터프할 필요가 없는 상대에게 터프하게 굴진 않는다. 영국은 다른 리그보다 훨씬 거칠다. 거기서 뛰니 나도 모르게 좀 터프해졌을 순 있다.

축구 대표팀의 올림픽을 떠올려보면 좋은 일뿐이지만, 욕심 많은 당신은 좀 달랐나?
브라질전에서 우리가 조금만 덜 피곤했다면 후반에 혼쭐을 내줄 수 있었을 것 같다. 8강전에선 선수들이 차라리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는, 토너먼트의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였다. 나보다 먼저 찬 영국 선수가 실축해서 생각보단 부담이 없었다. 못 넣어도 우리에겐 한 번 더 기회가 있었으니까. 물론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은 들었다.

우리와 비긴 멕시코가 우승했다.
멕시코는 정말 잘했다. 사실 우리가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만났기 때문에 좀 더 당당하게 경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와 비겼으니까 우리도 우승할 수 있었을 거라고 계산해볼 순 있지만, 축구는 수학이 아니니까.

기성용과 구자철, 누가 올림픽 대표팀의 에이스인가?
자철이가 에이스 아닐까? 주장으로서 많은 역할을 해냈다. 수고했다 자철아!

그럼 기성용에게 구자철이란.
자철이는 글쎄…. 구자봉? 하하.

올림픽이 끝나고 스코틀랜드의 셀틱에서 EPL의 스완지 시티로 이적했다. EPL과 스코틀랜드 리그는 어떻게 다른가?
스코틀랜드 리그는 다른 리그에 비해 육체적으로 힘들다. 물론 EPL도 육체적으로 힘든 건 비슷하지만, 특히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다. 셀틱에서 뛸 땐 모든 경기를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 약팀을 상대한다고 해서 승리에 대한 부담이 적은 건 아니다. 늘 이겨야 하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다.

이적할 때도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당신은 스완지 시티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받고 이적했다. 팀 전력에 만족하나?
스완지는 짧은 패스를 중시하는 멋진 축구를 한다. 내가 가장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술이 좋은 선수가 많다.

제라드와 붙은 날은 어땠나? ‘기라드’란 아이디를 쓰기도 한다.
제라드와 맞붙었다는 사실보다, 어렸을 때 좋아하던 리버풀의 홈구장에서 뛸 수 있다는 게 기뻤다. 얀필드!

혈기왕성하고 배짱 넘치는 당신이 30대가 된다는 건 어쩐지 상상이 좀 안 된다. 30대가 된 기성용은 어떤 모습일까?
글쎄, 슬슬 은퇴를 생각하고 있으려나?

구자철

어떻게 그렇게 공을 안 뺐길 수 있나? 특히 올림픽에선….
올림픽은 다른 경기와는 좀 달랐다. 매 경기 매 순간 힘들었지만, 악착같이 버텼다. 3년 전 올림픽팀이 처음 소집됐을 때부터 홍명보 감독님은 런던 올림픽 얘기를 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자고. 3년 동안 수없이 외쳤던 말이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더 투쟁심 강한 플레이가 나온 것 같다. 이렇게 멋진 날을 또 만들기 위해 다른 동기부여가 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선 결연함이 모든 걸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동메달 결정전 전에 부담이 좀 있었다. 병역 면제도 그렇지만, 내 자존심이 걸려 있다고 생각했다.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해봤는데 너무 끔찍했다. 경기 전에 감독님께서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쟁에 나가면 죽을 것이고, 죽을 각오로 전쟁에 나가면 살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죽을 각오만 하고 경기에 나갔다. 그리고 대회기간 동안 골이 없었는데, 꼭 팀을 위해 골을 넣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게 환상적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아시안컵 이후 부쩍 공격에 재미를 붙인 모습이다.
맞다. 아시안컵 이후 공격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그래도 아직 연구할 숙제가 많다.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 전방에서부터 압박하는 수비….

섹시하다는 말은 어떤가? ‘섹시한 올림픽 선수 99인’에 뽑히기도 했다.
물론 귀엽고 잘생긴 사람보단 섹시한 사람이라는 게 훨씬 맘에 든다. 하하.

2009년부터 오랫동안 올림픽 대표팀의 주장으로 뛰었다. 이제 다음 세대에게 올림픽 팀을 넘겨주고, 성인 대표팀에 합류한다.
올림픽이 끝나고 부상으로 두 달 정도 쉬면서 과거를 많이 돌아봤다. 미래 계획도 세웠다. 성인 대표팀과 월드컵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시간이 더 흐른 뒤 차차 보여주고 싶다.

기성용은 구자철에게 무엇인가?
성용이는 항상 미래에 대비해 자신이 할 일을 준비한다. 남 모르게 스스로 싸우고 준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배울 게 많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좋지 않은 농담을 해도, 진정 나를 생각한다고 믿는 그런 친구다.

지난 시즌 당신은 소속팀 아우크스부르크의 에이스처럼 보였다. 올해는 뭘 해내고 싶나?
구체적으론 10개의 공격 포인트에 도전하고 싶다. 한편 이번 시즌도 더 부지런히 해서, 시즌 끝난 뒤 더 발전한 선수가 되는 게 또 다른 목표다.

최종 목표는 첼시에서 뛰는 거라고 했다. 첼시의 어떤 부분이 좋나? 그냥 한국 스폰서가 있는 빅 클럽이어서….

“성용아 잘 했다.”“자철아 잘 했다.”그 말이면 됐다.

“성용아 잘 했다.”
“자철아 잘 했다.”
그 말이면 됐다.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Ji Hyu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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