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조지 클루니가 사는 이유

2014.03.03GQ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에 출연하거나, 여자를 만나거나.

<모뉴먼츠 맨 : 세기의 작전>을 연출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지금까지 그랜트(헤슬로브)와 냉소적인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우리 모두 그런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엔 좀 따뜻한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세상이 전부 썩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

원작 <모뉴먼츠 맨>은 영화 소재로 훌륭하다. 군대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늙은 남자들이 예술작품을 구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는 이야기다. 영화 소재로서 끝내준다. 히틀러가 영국은 폭격했지만 파리는 폭격하지 않은 이유가 예술품 때문이라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예술품을 훔쳐서 광산에 숨겼다고. 그런데 자세히 알아보니 히틀러가 예술품을 싸그리 훔쳤었다. 수백만 점에 이르는 작품들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냥 옛날 전쟁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들이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잘 아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같은 2차 세계대전을 다루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야기다. 적어도 난 몰랐다. 몇 명의 남자가 작전을 수행하러 떠나는 이야기다. 그들이 나이가 좀 많으면 어떤가? 빌 머레이와 존 굿맨, 밥 바라반인데.

<대탈주>나 <특공대작전>, <지옥의 특전대> 같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모험 영화들을 참고했나? 모두 참고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영화의 윤곽을 짜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쟁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참고하게 되었다. 그 다음에 약 30개나 되는 전쟁 영화를 봤는데 대부분 요즘 시대에는 별로 공감되지 않았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콰이강의 다리> 는 여전히 여러 측면에서 명작으로 꼽을 만하고, <대탈주>의 스토리텔링, <지상 최대의 작전>이나 <머나먼 다리>의 촬영기법은 정말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쟁 영화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 의존해서 만들었다.

영화제용 무거운 영화라기보다 오락 영화에 가깝다는 점에서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용 전쟁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싶지는 않다. 자부심이 들 만한, 훌륭하고 탄탄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모든 배우가 캐스팅 제의에 곧바로 응했다. 개런티가 많지도 않은데도 흔쾌히!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라서 힘이 났다. 다들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요즘은 사람들끼리 서로 헐뜯고 자책하는 일이 많은데, 시기적으로 이런 영화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은 주로 저예산 영화였는데 이번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다. 이 영화는 천문학적인 규모까지는 아니지만 두 제작사에서 나눠서 투자했다. 부담이 많이 됐다. 내가 연출한 작품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었으니까.

캐스팅이 엄청나다.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캐스팅한 배우들이 얼마나 되나? 케이트 블란쳇에게는 내가 전화를 걸었고, 맷 데이먼에게는 시나리오를 보냈다. 빌 머레이와도 친하다. 존 굿맨에게는 <아르고> 파티에서 시나리오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사실 전부 아는 사이다. 스타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도움이 됐다. 에이전트들은 제작이 확실하게 결정된 경우에만 스타들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제작비가 이미 확보 된 경우에만 시나리오를 건넬 수 있다. 이번 영화는 촬영 시작 날짜가 확실히 정해지고 제작비가 확보된 상태에서 배우들에게 출연 의사를 물었기 때문에 훨씬 간단했다.

감독으로서 배우들과 전부 아는 사이라는 점 때문에 힘들지 않았는가? 이를테면 연기가 마음에 안 들 때 지적하고 다시 주문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빌 머레이와는 굉장히 좋은 친구 사이다. 지난 여름에도 내 집에서 같이 보냈을 정도다. 촬영 시작 전에 그에게 말했다. 연기를 지도하는 게 좀 어색할 것 같다고. 그런데 말만 하라고,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말해주었다. 존 굿맨의 경우는 내가 신인 시절 <로잔느 아줌마> 첫 번째 시즌에 출연했을 때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었다. 그런 그에게 “존, 내가 원하는 연기는 그게 아니에요”라고 한다니 이상했다. 하지만 존은 상황이 어색해지지 않도록 대해주었다.

빌 머레이와 밥 바라반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정말 웃긴다. 빌이 밥을 계속 구박한다. 거구의 빌과 작은 밥이 함께 한 화면에 잡히면 웃음부터 난다.

특정 배우를 고려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나? 대부분의 캐릭터가 그랬다. 특정 배우를 떠올리면서 쓰면 훨씬 쉽다. 하지만 빌 머레이가 맡은 역은 평소와 다르다.

극적인 느낌이 강하다. 이렇게 배우의 평소 이미지와 다른 캐릭터를 그리는 것도 재미있다. 웃음과 전쟁의 긴박함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었나? 물론이다. 심각한 코미디가 아니라 웃음이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 진지한 코미디는 관객들이 다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영화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아르고>가 그랬다.

가벼운 부분도 있지만 예술과 문화유산 같은 무거운 주제도 들어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지, 예술이 없으면 문화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을 위해 목숨을 바칠 필요가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반드시 그럴 가치가 있다. 예술작품의 의미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으니까. 예술은 인류의 역사다. 아이폰 같은 기록 장치가 없었을 때 인류는 예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기록했다. 이라크가 그렇듯, 박물관을 보호하지 않으면 문화가 파괴된다.

본질적으로 범죄 영화의 성격을 띠는 이 영화에서 예술의 가치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스토리텔링은 광범위한 게 아니라 개인적인 범위 안에서 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예로 이 영화에서는 벨기에 브뤼헤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성모자상을 한 캐릭터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시켰다. 영화에서 내가 맡은 인물이 “꼭 되찾아야겠군”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예술에 목숨을 바칠 가치가 생긴다. 하지만 아무런 전후사정도 없이 광범위하다면 예술에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지 증명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맥락에서는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은 물론이고 관객들도 절대로 히틀러에게 내줄 수 없기에 그 예술품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동료의 죽음을 절대로 헛되게 할 수 없다고 말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당신의 인생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지금 만드는 영화들이 자신의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인가? 예전부터 개봉 첫 주에만 반짝하고 마는 영화가 아니라 오래 기억되는 영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비록 큰돈은 못 벌었지만 꽤 오래 기억되는 영화다. 이번 <모뉴멘츠 맨>도 그렇고 <인 디 에어>나 <킹 메이커> 같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좋아서다. 애초부터 상업성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가 아니다. 물론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고 개봉 몇 주만에 큰 수익을 올리는 영화도 거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진짜 관심있어하는 영화가 아니다. 70대가 되어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개봉 첫 주 1위를 기록한 영화를 아홉 편이나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아무 의미도 아니다. 10년이 흐른 뒤에도 내 영화를 보며 “정말 좋은 영화야!”라고 말하는 게 더 좋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에디터
    양승철
    기타
    ILLUSTRATTOR / 이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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