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노령견이 사는 세상

2014.05.09GQ

뛰지 않는다. 꼬리를 바닥으로 떨어뜨린 채 걷는다.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졌지만, 그걸 소화할 몸속 기관들은 온전치 않다. 얼굴은 고르지 못한 털 때문에 늘 추접스럽다. 늙고 못생기고 귀찮기까지 한 노령견을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고단하다.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피하면 안 되는 일이라서, 매일매일 마음은 더 눅눅해진다.

뭉치가 처음 집에 온 날 나는 흰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흰색 털이 굽슬굽슬한 뭉치를 처음으로 안아보던 순간이 후텁지근한 촉감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보니 한여름이었던 것 같다. 흰색 원피스와 털 색깔이 똑같은 강아지를 안고서는 엄마에게 강아지가 없어졌다는 시덥잖은 농담을 한 기억도 난다. 그게 벌써 18년도 넘은 일이다. 중학생 때의 일이라 종종 기억은 주파수 안 맞는 라디오 소리처럼 잡음이 많다. 뭉치는 밀양에서 태어났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이 말해줘서 알았다. 그 의사 선생님은 밀양에서 태어난 강아지 삼 형제를 각각 다른 집으로 보냈다. 뭉치는 여동생의 생일선물이라는 구실로 입양됐다. 요즘처럼 유기견을 입양하는 게 옳다는 인식도 의식도 없을 때였다. 그저 삼 형제 중 제일 예쁜 얼굴을 한 놈이 우리한테 왔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전날 밤에 했다. 그땐 정말 강아지를 사고파는 일이 신형 에어컨을 사서 거실에 들이는 것 정도의 고민이었다. 당연히이 작고 어린 강아지가 18년간 내 곁을 지킬 줄은 몰랐다. 젊고 팔팔하던 강아지가 이렇게 늙고 병들어갈 줄도 몰랐다. 아기가 있으면 노인이 있고,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데, 그 생각을 강아지를 처음 맞을 땐 하지 못했다. 방바닥을 꼬물꼬물 걸어가기에 혹시나 내가 밟을까 봐, 그래서 내가 물릴까 봐, 그 걱정만 했던 것 같다.

말티즈인 뭉치와는 7년째 단둘이 함께 살고 있다. 그전엔 동생과 함께 뭉치를 키웠다. 그보다 더 전엔 엄마가 뭉치의 엄마였다. 뭉치가 아침저녁으로 심장약을 복용한 지는 4년이 좀 넘었다. 귀가 안 들린 지는 1년이 좀 지난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일부러 깨우지 않는 이상 세상 모르고 잔다. 어느 땐 퇴근 후 씻고 정리하고 불 다 끄고 침대에 들어가면 그제야 “어, 왔는가?” 하는 눈으로 조금 놀라는 기색을 비추기도 한다. 3개월 전부터는 백내장이 온 한쪽 눈이 완전히 안 보이는 것 같다. 다행히 나머지 한쪽 눈은 백내장 진행 속도가 더디다. 물을 담아둔 통에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이지 않아, 앞발 두 개를 푹 적셔보고 나서야 물을 마신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몸속엔 여기저기 결석이 많고 가끔씩 폐에 물이 차기도 한다. 뭉치 배에 귀를 대보면 사이다 기포 터지는 소리 같은 것이 날 때가 있다. 그것 때문에 밤새도록 마른기침을 하는 날도 많다. 하도 기침을 많이 하다 보니 자주 붕붕거리며 방귀를 뀌고, 방바닥 여기저기에 스프레이를 뿌린 것처럼 콧물을 튀기기도 한다. 뭉치가 산책을 안 나간 지는 2년쯤 됐다. 콧구멍에 바람이라도 쐬어줄 요량으로 안고 나가면 별 감흥 없는 뒷통수만 보다가 들어오기 일쑤다. 안고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바닥으로 내려놓으면 휙 돌아서서 다시 집 대문 앞으로 간다. 이젠 걷는 속도가 로봇 청소기보다도 느려서 산책은 꿈도 못 꾸게 됐지만….

뭉치가 우리 집에 오던 그 즈음은 애완동물 열풍이 막 시작되던 때 였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아파트에서도 애완동물을 눈에 띄게 많이 키우기 시작했고, 각각의 가정으로 흩어진 강아지들이 이젠 각자의 방식으로 노령견이 되었다. 대형 아파트 단지에 딸려 있는 동물병원의 수의사들은 매일같이 나이 든 동물들을 치료하느라 허리 펼 새가 없다. 노령견 전문 병원, 노령견 클리닉도 생겨났다. 치아가 예전같지 않은 늙은 개들을 위해 생식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려동물 키운다는 집의 수에 비해, 나이 든 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는 집의 수는 별로 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나 그 집 개의 안부를 물으면, 시골의 아는 지인 집으로 보냈다는 말을 종종 들은 것 같다. 그 많은 노령견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버티고 버려지고 있는 걸까? 혹시 나이 들기 전에 죽음을 먼저 맞이하는 걸까?

가끔, 아주 가끔, 나이 든 개들의 서글픈 얼굴을 찾아보기 위해 ‘구글링’을 한다. 이게 왠 자학인가 싶지만, 그게 주는 마음의 위로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늙은 개의 모습을 찾는 건 쉽지 않다. 굳이 검색하고 찾아봐야 그제야 겨우 몇 장 나온다. 돌려 말하면, 우리 주위에 예쁘다 하는 개들은 모두 다 젊고 팔팔한 모습을 하고 있단 뜻이다. 누구나 다 예쁜 강아지를 좋아한다. 너무 어려서 겨우 꼼지락거리는 강아지의 모습에 환장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페이스북에는 ‘귀여움 주의’라는 설명 붙은 채 어린 강아지의 영상이나 사진이 올라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동물 사진으로 몇십 만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인스타그램의 인기 계정에도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 대부분이다. 동물의 표정과 털을 있는 그대로 만들기로 유명한 브랜드 ‘한사토이’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그곳에도 늙고 힘 빠진 개는 없다. 낮잠을 자고 있는 사자, 졸고 있는 호랑이, 춤추는 비버는 있어도 못생긴 늙은 개는 없다. “여기 혹시 노령견 인형은 없나요?” 없을 줄 알면서도 물어나 본다. 노령견을 귀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귀엽게도 못 여기는 사회에 대한 괜한 불평 같은 것이다.

 

흰둥이

얼마 전, 놀라운 페이스북 페이지를 하나 찾았다. ‘ >수지스 시니어 도그(바로가기)‘라는 이름의 이 페이지에선 미국 전역의 버려진 노령견의 새 주인을 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힘 빠진, 이 빠진, 털 빠진, 수십 마리의 노령견 사진이 올라와 있다. 주로 소파에 누워 있거나 주인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이다. 얼굴만 크게 찍어 세월이 뚝뚝 떨어지는 적나라한 포트레이트 사진도 있다. 이곳의 주인장인 수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범상치 않은 외모의 노령견이다. 지금은 수지의 주인이 된 브랜든 스탠튼은 뉴욕 시민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올리는 인기 블로그 ‘HONY’에 우연히 촬영한 열세 살 노령견 수지의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안그래도 가늘고 힘없는 털이 정전기가 난 것처럼 사방으로 흐트러져 있고, 얼굴엔 주름 하나 없는데도 피곤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묘하게 귀여운 얼굴. 50년째 무대에 서는 늙은 로커 같기도 하고, 창밖을 바라보는 요양원의 할머니 같기도 한 수지의 모습에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브랜든은 수지를 입양했고, 여자친구와 함께 노령견을 입양하자는 취지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들은 노령견이 성견보다 주인을 더 따르고 더 사랑해준다는 것을 크게 내세우고 있다. 노령견에게 애정을 가져달라는 속뜻을 품은 말이다. 사실 노령견을 키우는 일은 노령견이 주는 사랑보다도 훨씬 더 큰 희생을 필요로 할 때가 많다.

병원은 노령견의 친구다. 뭉치도 열다섯 살이 넘으면서, 동물병원을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다. 모든 노령견이 다 아픈 건 아니지만, 동물 의료가 발전할수록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하루는 뭉치가 짖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화내는 것도 아닌 목소리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감기인가 싶어서 동물병원을 찾았더니 감기는 물론이고, 심장과 폐에 이상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날 때부터 선천적인 이상 증상이 있었는데, 나이 들면서 더 나빠졌단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물속에서 듣는 소리처럼 어리벙벙하게 다가왔다. 개들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이야기하질 못 하고, 개 주인들은 아픈 개를 얼마나 어떻게 처치해줘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노령견 주인에게 믿을 사람은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 하나다. “선생님! 저, 뭉치 주인입니다”라는 말로 전화를 건 게 수십 차례, 뭉치 이름이 적힌 약 봉투를 받아온 건 그것의 두 배다. 한 달에 한 번씩은 끼룩끼룩 우는 뭉치를 자동차 조수석에 태우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간다. 병원 대기실에 뭉치를 안고 앉아 있으면 목줄은 사람이 개한테 매는 것이 아니라, 개가 주인한테 매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령견을 돌보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의지와 정신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때부터 돈도 와장창 깨지기 시작한다.

카피라이터 박미현은 유기견이었던 말티즈 흰둥이를 데려와 12년째 키우고 있다. 흰둥이는 나이가 들면서 눈 주변이 거무튀튀해졌고 몸에도 군데군데 회색 반점이 생겼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아침저녁으로 약도 먹여야 한다. 어림잡아 한 달에 50만원 정도를 병원비로 쓴다. 유난이네 어쩌네 하는 주변의 말들은 마음 아래로 눌러둔 지 오래다. 약을 주지 않으면 죽음이 다가오는데, 이걸 피하고 막는 일을 두고 유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약을 먹으면 이전처럼 다시 쌩쌩해지는데, 이 방법을 쉽게 무시할 수 있을까? 애초에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경제적인 능력이 되는지 검증하는 과정도 이래서 필요하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흰둥이 약과 밥을 챙겨줘야 해요. 그 이후로 생활이 완전이 바뀌었어요. 야근을 할 땐 저녁 식사 시간에 잠시 집에 들렀다 와요. 저녁 약속도 쉽게 잡지 않죠. 친구들이 ‘내가 개만도 못하냐?’고 농을 걸 때도 있지만 내가 아니면 개가 죽는 건데…. 그래서 “요즘 나 개 간병인, 개 ‘시다바리’ 생활하고 있다” 이런 말들을 오히려 제가 먼저 하곤해요. 그게 서로 마음 다치지 않는 방법이라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개한텐 오로지 저밖에 없어요. 내가 기르기로 한 거니까 끝까지 책임져야죠. 개를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온 날은 기분이 마구 요동쳐요. 진단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거죠. 정신적인 체력이 달린달까요? 외국에서는 반려견 관련 정신 상담도 있다죠?”

 

띠룽이

수의사 입장에서도 진료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다.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10 ~11월에 조사한 결과 2009년에 비해 진료비가 20~30퍼센트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애완견 한 마리당 1년에 드는 비용이 66만5천원이고, 이 중 약 20만원 정도가 의료비였다. 노령견으로 조사의 범위를 좁힌다면 이 비용은 열 배 정도 올라갈 테다. 수의사는 노령견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할 수 있는 처치를 다 해보자는 쪽으로 최대한 설득을 한다. 하지만 막상 진료비 문제에 닥치면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 게 현실이다.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동물의 주인으로부터 괜한 처치를 하는 게 아닌지 오해를 받기도 한다. 부모님 세대는 이러한 돈의 딜레마에 더 쉽게 빠진다. 가족 같은 동물이지만, 다른 가족을 지킬 돈 역시 소중하기 때문이다. 뭉치의 병원비를 확인한 엄마는 약값을 뺄 수 없으니 이발비라도 아끼겠다고 가위로 직접 뭉치의 이발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애견용 ‘바리깡’으로 이리저리 밀어서 겨우 헤어스타일을 완성하는데, 뭉치가 꼭 수제비 뜨기 전 밀가루 반죽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도 귀여운 맛이 있다며 좋아라 한다. 18년 동안 뭉치를 넣고 이동한 개 가방이 낡을 대로 낡아서 새로 사고 싶어도 여지없이 엄마의 방해에 막힌다. 구멍만 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말 이면에는 몇 번 사용해보지 못하고 곧 죽으면 어쩌나, 두려운 마음도 한 겹 깔려 있다.

노령견 뭉치와 함께 매일매일을 지내는 일은 녹록치 않다. 놀라고 두려운 일들의 연속이다. 개들이 침대에서 자주 뛰어내리다 보면 관절에 무리가 올 수 있다고 해서, 오래 전에 애견용 계단을 사주었다. 요즘 뭉치에게 이걸 오르는 일은 설악산을 등반하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계단 4개를 올라야 침대에 안착할 수 있는데 2개를 오르고 나면 한동안 그 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안 되겠다 싶은지 뒤돌아 다시 내려가기도 한다. 돌아서는 뒷모습을 내가 봤다는 것을 뭉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침대에서 추락하거나 계단을 굴러서 내려오는 일도 잦다. 그때마다 뭉치는 내가 자신을 밀어낸 줄 알고 한동안 가까이 오지 않는다. 직접 내리고 올려줄 테니 알려만 달라고 몇 번을 말해보지만 그 말을 알아들을 턱이 없다. 열여덟 살이나 먹도록 여지껏 말 한마디 배우지 않고 뭐 했냐고 원망하다 보면 밤이 찾아온다. 침대 가운데에 납작하게 붙어 자는 뭉치 때문에 나의 취침 자세는 늘 C 모양으로 꺾여 있다. 뭉치가 어릴 땐 내 몸에 깔릴 걱정은 없었지만, 노령견이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을 바짝 쓰면서 잔다. 그래도 매트리스에 귀를 대고 자면 뭉치의 심장 소리가 매트리스 사이에서 진동할 때의 안도감이 좋았다. 최근엔 그 박동 소리가 유난히 다급해서 몇 번이나 잠에서 깼다. 뭉치의 기침이 끝나지 않는 날 밤은 잠을 거의 제대로 자지 못 잔다. 밤을 새다시피 하고 출근을 하는 날이 이삼일 이어질 때도 있다. 그러면 피로가 눈알을 짓이겨서 제대로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뭉치를 번쩍 들어 거실 한 쪽에 마련한 이불 위에 올리고 방문을 쾅 닫고 잤다. 문 밖에서 뭉치의 기침이 휘몰아칠 때는 졸면서도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서는 죄책감과 공포감이 뒤범벅이 됐다. 일어나 방문 앞에 서 있는 뭉치 앞에서 다행이라는 말이 선뜻 나오진 않았다.

노령견과 지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감정 중에 의외로 쓸쓸함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혼자 지내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던 과거 팔팔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되레 ‘인생무상’을 느끼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산책하고 짖고 음식에 애걸복걸하는 젊음이 찬란하던 과거를 자꾸 떠올리게 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깨끗하게 씻겨 품에 안고 밖에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어머, 강아지 귀엽다. 몇 개월이에요?”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에게 168개월이라느니, 172개월이라느니, 농담처럼 받아 쳤다. 그 시절이 추억처럼 멀어져 간다는 사실이 좀 처량하다. 함께 등산을 갔다 산 정상에 휘리릭 먼저 올라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던 얼굴, 가족끼리 나누던 대화 중에 ‘빵’이라는 단어만 들리면 귀를 쫑긋거리던 모습, 출장 가려고 짐을 싸는데 트렁크 안으로 폴짝 들어가 앉던 일들이 자꾸만 겹쳐진다. 길을 가다 지나가는 개만 보면 ‘젊어서 좋겠다’를 읊조리고, 뛰고 요동치는 공원의 개들을 보면 괜히 눈물이 스르르 고인다. 그럴 땐 괜히 하루 종일 디귿자 모양으로 누워 자는 뭉치의 배를 긁어보지만, 기침만 할 뿐 일어날 기미가 안 보인다.

노령견을 키울 때의 최대 관건은 밥을 먹이는 일이다. 약은 주사기에 넣은 뒤 찰나의 순간을 노려 뭉치 입 안으로 밀어넣기 때문에 괜찮다. 하지만 사료는 끝끝내 사약처럼 피한다. 맛 없는 게 싫기도 하고, 사료를 씹어 먹기엔 이빨이 부실하기도 해서다. 어쩔 수 없이 밥때가 되면 간이 되지 않은 쌀이나 생선살을 먹인다. 같은 걸 연속으로 주면 단번에 싫증을 내는 통에, 어떤 날은 고등어 살을, 어떤 날은 쇠고기 로스구이를, 어떤 날은 바게트빵 속살을 떼어준다. 최근엔 그마저도 잘 먹지 않아서 밥그릇을 대차게 한 번 집어던졌다.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 위에 부드럽게 찢은 고등어 살을 입 앞으로 가져다주다가 그랬다. 순대 두 줄을 위아래로 붙인 것 같은 뭉치 입술이 벌어질 듯 벌어질 듯하다가 이내 닫혀버리는 통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힘은 계속 달렸다. 부풀어진 흰 털 때문에 살이 빠진 줄도 몰랐는데, 1.7킬로그램이었던 몸이 1.3킬로그램까지 쭈그러들었다. 가만히 서 있다가도 두 발이 바닥이 빙판인 듯 미끄러지면서 서서히 벌어진다. 힘이 없어서 그렇다.

열두 살 먹은 웰시코기 띠룽이는 번역가 조동섭의 개다. 깔끔한 개였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챙겨줘야 할 게 많아졌다. 다행히 출근하지 않는 프리랜스로 일하는 주인 덕에 띠룽이는 노후를 보내기가 훨씬 수월한 편이다. “퇴행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어요. 나이가 드니까 여기저기 삐걱거리네요. 항문에 힘이 부족한지 뒤처리도 깔끔하지 못해요. 따라다니며 닦아줘야 하니까, 하루에 두 번만 싸면 안 되냐고 농담을 하기도 해요. 물티슈 값이 많이 들죠. 하하. 좁은 집이라도, 안 좋은 상황이라도, 개를 다른 곳에 보내는 것보단 끝까지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다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저랑 나랑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것 같습니다. ”

오늘로부터 2주 전, 일본 카와고에로 출장을 떠난 사이 뭉치가 쓰러졌다. 노령견은 애견 호텔에서 위탁 받기를 꺼린다. 언제 어떻게 건강이 악화돼 위기가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잠깐 맡아주는 입장으로서도 두려운 것일 테다. 그래서 2박 3일의 짧은 출장을 가더라도 지방에 계신 엄마가 뭉치를 돌보러 올라온다.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나를 보자마자 엄마가 코가 빨개지도록 울면서 전해준 2박3일간의 이야기는 이렇다. 여느 때처럼 천천히 어슬렁거리던 뭉치가 갑자기 쓰러져서 숨을 가파르게 쉬었다. 눈은 떴지만 초점이 없었고 숨통이 답답한지 자꾸만 고개를 높은 곳으로 추켜올렸다. 작은 타월을 턱 밑에 받쳐주니 숨은 좀 쉬는 듯했지만 온몸의 힘이 빠져 말 그대로 산 송장 같았다고 한다. 엄마는 이제 정말 보낼 때가 됐구나 생각했다. 갑자기 전날 밤 살만 바른 생갈치를 맛있게 먹던 뭉치의 얼굴이 떠올랐다. 비싼 갈치라 뭉치는 조금만 떼어주고 나머지 한 토막을 혼자서 다 먹은 게 마음에 턱턱 걸렸다. 숨을 몰아쉬는 뭉치를 두고 황급히 프라이팬을 꺼내 냉장고에 뒀던 갈치를 굽기 시작했다. 뼈를 바르고 살을 으깨서 늘어져 누운 뭉치 코앞으로 가져다 댔다. 뭉치는 일어나서 먹지 못했다. 엄마는 지금껏 미안했던 일들에 대해 다급히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루에 산책을 두 시간씩 시키는 바람에 몸에 무리가 와서 오래 입원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몸집의 12분의 1도 안 되는데, 너무 많이 걷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목욕 후 헤어드라이어로 뭉치의 젖은 몸을 빨리 말리려다가 화상을 입힌 일도 떠올렸다. 엄마가 한창 갱년기를 지날 때, 뭉치 뒷바라지가 갑자기 너무 지긋지긋하게 느껴져 뭉치를 대구에 사는 친구 집으로 보내버린 적이 있었다. 오줌, 똥 치우는 것부터 짖는 소리에 이웃집 눈치 보는 것까지 모든 게 넌덜머리 나게 싫어져서 순간적으로 내린 선택이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데려오긴 했지만, 그때 뭉치가 받았을 충격을 헤아리다 엄마는 참 많이도 울었다. 쓰러진 뭉치에게 그때 일을 다시 꺼내는 엄마의 표정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다행히 뭉치는 지금 동물병원 산소방을 거쳐 고향 부모님 댁으로 내려간 상태다. 몇 년째 달고 있는 대여섯 가지의 병에 신부전증이라는 걸 하나 더 보탰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내가 돌보기엔 이젠 매 시간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서울에 올라올 일이 많은 부모님도 뭉치를 보기엔 무리가 있지만, 최대한 일을 정리하고 창원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한 차례 아프고 나서인지, 나이가 들어 치매가 온 것인지, 요즘 들어 뭉치가 부쩍 이마를 벽에 기대고 몇 시간이고 서 있는다고 한다. 뱅글 뱅글 돌기도 하고, 냉장고에 이마를 붙이고 서 있는 날도 있다. 이젠 더 쓸약도 없고, 응급 처치도 더 이상 뾰족한 것이 없어서 유리 인형처럼 조심히 돌보는 것만 하고 있다.

잡지사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이은석은 두 달 전에 반려견 멍멍이를 떠나보냈다. 뭉치와 비슷한 상황에서 요로 결석으로 고통받는 멍멍이를 그냥 볼 수가 없어 안락사 결정을 내렸다. 요로를 막았던 돌멩이를 다시 신장으로 올려두는 시술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에다 여기서 더 처치를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혼자서 돌보느라 스트레스도 받고 화도 나고 짜증도 많이 냈어요. 그럴 땐 좀 무섭기도 하고, 내가 사이코패스인가, 생명을 우습게 보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요. 많은 고민 끝에 멍멍이를 떠나보내던 날은 좋아하는 평소 군고구마를 실컷 줬어요. 막상 실감은 안 나요. 죽어도 반나절 동안 몸이 따뜻하거든요. 주변에 안락사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사실 아직까지 반려동물을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이 유난 떠는 걸로 보일 때도 있어요. 모두에게 이해받기는 힘든 것 같아요. 동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건 절대 쉽게 볼 일이 아니에요.” 동물이 귀여울 때만 치장하고 미용하고 옷 입히는 데 열중하는 것이 유난 아닐까? 마지막까지 생명을 책임지는 일이 누군가에게 유별난 행동으로 보인다면, 그 사회는 반려동물과 어우러져 살기엔 너무나도 퍽퍽한 땅이다.

오늘 누워 자는 뭉치의 사진이 또 한 장 도착했다. 엄마가 카카오톡으로 보낸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아이폰 속 뭉치 사진은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는 것뿐이다. 자루 걸레처럼 퍼져 있는 걸 귀엽다고 찍어 보낸 엄마의 사진 속 뭉치의 털이 노랗게 바래 있었다. 이젠 더 이상 흰색 원피스에 품어도 숨기기 힘들 것 같았다. 앞으로 뭉치에게 또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살아서 다행이라는 말을 못하는 날이 오더라도 괜찮다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끝까지 함께 지낸 것만으로도 뭉치와 나에게 힘껏 박수를 쳐주고 싶다.

 

뭉치

    에디터
    손기은
    스탭
    ILLUSTRATION / KWAK MYEONG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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