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현상수배 <2>

2014.10.16GQ

에드워드 스노든은 왜 수십만 건의 일급 기밀 서류를 유출, 미 정부가 어마어마한 감시와 도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발렸을까? 미국 국가안전보장국 NSA의 불법 감청을 폭로하는 책을 쓴 적 있는 제임스 뱀포드가 그를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그는 내부 고발을 고민했지만, 일단 오바마의 당선을 기다렸다. “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가 대표하는 가치들을 고려할 때 전 좀 낙관적이었어요. 그는 고작 몇 퍼센트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잡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바꾸지는 않을 거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실망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약속 전체를 다 부정했어요. 다른 방향으로 나갔죠. 내건 약속을 보고 뽑은 사람이, 유권자들의 의지를 매수하다시피 할 수 있는 게 이 사회이고 지금의 민주주의인가요?”

그의 환멸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다. 2010년, 스노든은 NSA의 주 계약자인 델과 함께 일본에서 기술 전문가로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아들여 CIA에서 NSA로 옮겼다. 스노든에겐 일본에서 일한다는 부분이 특히 매력적이었다. 그는 십 대 때부터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스노든은 도쿄 인근 요코타 공군 기지에 있는 NSA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는 고위 관리들과 장교들에게 중국 해커들로부터 네트워크를 지키는 법을 가르쳤다.

하지만 스노든의 환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깨졌다. 간첩들이 은행가들을 연락원으로 만들려고 술을 먹이고 대중을 상대로 감시하는 것까지 알게 됐다. 이런 정보들이 죄다 전 세계의 NSA 시설 모니터로 쏟아져 들어왔다. 스노든은 군과 CIA의 무인기가 조용히 사람들의 몸을 산산조각 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NSA의 감시 능력이 얼마나 방대한지도 알게 됐다. 사람들이 지닌 MAC 주소를 통해 도시 안 모든 사람의 움직임을 파악해 지도상에 표시할 수 있었다. MAC 주소란 모든 휴대전화, 컴퓨터, 기타 전자 장비에서 부여되는데 기계마다 다 달라서 파악이 가능하다.

충격과 상관없이, 기술 전문가인 그는 계속 승진했다. 2011년 그는 메릴랜드로 돌아와 CIA와 일하는 델의 책임 기술 전문가로 1년 정도 일했다. “CIA의 CIO나 CTO, 온갖 기술 부서의 책임자들과 같이 앉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힘든 기술 문제가 뭔지 말했어요. 그걸 고칠 방법을 찾아내는 게 제 직업이었어요.”

그러나 2012년 3월, 스노든은 하와이에 있는 거대한 벙커 안의 정보 공유 사무실에서 일하는 책임 기술 전문가가 되었다. 습하고 서늘한, 23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터널은 예전엔 어뢰를 보관하던 창고였다. NSA의 정보 능력과 감독 부족에 대한 스노든의 걱정은 하루하루 커져만 갔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NSA에서 정기적으로 개인 대화 정보(메타데이터와 콘텐츠를 함께)의 원자료를 이스라엘 정보국에 넘기고 있다는 사실었다. 보통 이런 정보는 이름과 개인 신분을 식별할 수 있는 데이터를 제거하는 과정인 ‘최소화’를 거친다. 하지만 이번 경우, NSA는 심지어 미국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조차 보호하려는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아랍과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의 이메일과 전화 통화 내용도 들어가 있었다. 대화 내용에 따라,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 있는 그들의 친척들이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정보였다.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심한 행위였죠.”

NSA 디렉터 키스 알렉산더가 송신한, NSA가 정치적으로 극단적인 사람들이 어떤 포르노를 주로 보는지 비밀리에 감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문서도 걱정스러웠다. 메모를 보니 이런 ‘개인적 약점’을 이용해 정부를 비난하지만 실제로 테러를 꾸미고 있지는 않은 사람들의 평판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문서에는 나중에 타깃으로 삼을 만한 사람 6명도 기재돼 있었다. “FBI가 마틴 루터 킹이 바람을 피운 걸 이용해 그를 자살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과 아주 비슷해요. 60년대에 이미 우린 그런 일은 부적절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그런데 왜 지금 그런 일을 다시 하는 거죠?”

1970년대 중반,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은 미 정보국이 수십 년간 불법 첩보 행위를 해온 것을 알고 스노든과 비슷하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정보국의 활동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폭로했다. 외국 첩보 감시법 같은 개혁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스노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했다. “프랭크 처치는 심연의 끝에 서 있는 것과 비슷했겠죠.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게 된다고 했고요. 그리고 지금 우리의 걱정은, 우리가 그 심연의 끝에 다시 서 있다는 거죠.” 그는 처치가 예전에 깨달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권력 남용을 치유하는 법은 폭로하는 것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스노든은 상원의원회를 휘두를 수도 없고, 의회를 소환할 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훈련 받았던 대로, 자신의 임무를 은밀하게 해내야 했다.

모스크바의 여름 해는 늦게 진다. 호텔 창밖으로는 긴 그림자들이 도시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노든은 인터뷰가 저녁 시간까지 이어져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뉴욕 시간에 맞춰 살고 있다. 미국에 있는 그의 지원자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미국에서 최신 뉴스가 나올 때 바로바로 듣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거친 말을 실시간으로 듣게 되는 일도 생긴다. 스노든이 폭로를 결심한 후에 했던 행동을 비난하는 건 정부 기관원들만은 아니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기술 업계에서조차, 그가 너무 빨리 행동하고 위험한 정보를 소홀히 다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넷스케이프 창업자이자 유명한 벤처 캐피탈리스트 마크 안드레센은 CNBC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과사전에서 ‘반역자’를 찾아보면 에드워드 스노든 사진이 나와요.” 빌 게이츠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비난을 했다. “난 그가 법을 어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나는 그가 영웅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아요. 난 그를 별로 높이 사지 않습니다.”

스노든이 안경을 고쳐 쓴다. 코받침 하나가 없어서 가끔 흘러내린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다. 결정을 내리던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던 순간을 회상하는 듯하다. “정부가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대중이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워야죠. 그리고 내부 고발은 그를 위한 전통적인 수단을 제공하고요.” 그의 얼굴은 진지하고 말은 느릿느릿하다.

NSA는 스노든 같은 사람이 위험한 짓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아무튼 스노든은 자기가 원하는 어떤 비밀 정보도 아무 문제 없이 접근하고, 다운로드하고, 추출까지 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니까 말이다. 최상위급 비밀 문서를 제외하면, NSA의 거의 모든 감시 프로그램은 세세한 내용까지도 누구나 접근 가능하다. 직원이나 계약자, 이등병이나 장군 모두에게 열려 있다. 일급 비밀 NSA 허가를 받은 사람이고, NSA 컴퓨터를 쓸 수 있다면 그렇다. 하지만 하와이에서 스노든이 접근 가능한 범위는 그 선을 훨씬 넘어섰다. “난 하와이에서 정보 공유 사무실의 책임 기술 전문가였어요. 어디든 다 액세스할 수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도 전부 다는 아니었다. 그의 손이 닿지 않는 중요한 영역이 한 군데 있었다. NSA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는 공격적인 사이버 전쟁터. 이 마지막 비밀 창고에 접근하기 위해, 스노든은 NSA의 다른 거물급 계약자인 컨설팅 업체 부즈 앨런에 애널리스트로 취직했다. 그 덕에 그는 국내외 정보를 모두 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이중 권한을 얻게 됐다. 그래서 그는 국내의 사이버 공격을 추적해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새 직장에서 스노든은 시스템 파괴 소프트웨어를 전 세계에 심고 외국의 비밀을 몇 기가바이트씩 훔쳐오는 은밀한 비밀 세계에 빠져들었다. 동시에 그는 NSA가 방대한 양의 미국 내 통신을 ‘영장도, 범죄 혐의 입증도, 적합한 이유도, 특정 개인을 지목하는 절차조차 없이 가로채서 저장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증거를 모아서 몰래 안전한 곳에 보관했다.

2013년 봄, 어느 날 정보 장교가 그에게 ‘NSA 해커 부서인 TAO가 2012년에 시리아의 메이저 인터넷 서비스 공급사의 핵심 라우터 하나에 익스플로잇(취약점을 공격하는)을 심으려 했다’는 정보를 알려줬다. 당시 시리아는 내전을 한창 질질 끄는 중이었다. 성공하면 NSA는 시리아의 이메일과 인터넷 트래픽 상당 부분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라우터는 먹통이 되고 작동이 완전히 멎어버렸다. 이 라우터가 망가져 시리아는 갑자기 인터넷 접속이 아예 불가능해졌다. 사람들은 미국 정부 책임이라는 걸 몰랐지만 말이다.

TAO 운영 센터의 정부 소속 해커들이 패닉에 빠졌다. 스노든은 그런 상황을 ‘젠장, 망했다’ 순간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라우터를 원격으로 고쳐보려고 법석을 떨었고, 자신들의 자취를 지우려 안간힘을 썼으며, 네트워크에 접근할 때 사용한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시리아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게 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라우터가 막혀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었다. NSA로선 다행스럽게도, 시리아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밝히기보다는 인터넷을 복구하는데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았다. TAO 운영 센터에서는 진실이 상당히 담긴 농담 한마디가 긴장을 깼다. “들통나면, 이스라엘이 시킨 짓이라고 하면 되지 뭐.”

부즈 앨런에 있을 때 스노든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중국이 해올지도 모를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것이었다. 그의 타깃 중엔 의외의 기관들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정보국의 권한을 넘어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중국을 아주 공격적으로 해킹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지만, 우린 선을 넘었어요. 우린 실제 정부와 군사 타깃보다는 대학과 병원, 전적으로 민간 인프라를 해킹하고 있어요. 그건 정말 걱정되는 부분이죠.”

스노든을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든 건 유타 주 블러프데일시에 있는 NSA의 거대한 비밀 데이터 저장 시설의 용량을 확인하다 알게 된 비밀 프로그램이다. 그곳에선 요타바이트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9만 제곱미터가 넘는 이 건물로 수십억 건의 전화 통화, 팩스, 이메일, 컴퓨터 대 컴퓨터 데이터 전송, 문자 메시지가 전 세계에서 MDR을 통해 매 시간 날아들어온다. 어떤 것은 그냥 흘려보내고, 어떤 것은 잠시 보관해두고, 어떤 것은 영구 보존한다.

거대한 감시 활동도 나빴지만, 스노든은 ‘몬스터마인드’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는, 전면 핵전쟁에 가까운 사이버 전쟁 프로그램을 새로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 언짢았다. 몬스터마인드는 외국에서 사이버 공격을 게시하려는 조짐을 자동으로 찾아낸다. 컴퓨터 파괴 소프트웨어로 알려졌거나 의심되는 알고리즘을 담은 메타데이터를 잠시도 쉬지 않고 찾는다. 의심이 가는 알고리즘을 발견하면 자동으로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다. 사이버 용어로는 ‘킬’이다.

비슷한 프로그램은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몬스터마인드엔 새로운 능력이 장착될 예정이다. 악성 프로그램을 발견해 들어오려는 순간 죽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맞대응을 하는 것이다. 사람이 관여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공격한다. 스노든은 이 부분이 문제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아무 죄 없는 제3국의 컴퓨터를 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걸 역이용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에 앉아 있는 누군가가, 러시아가 미국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러시아 병원을 공격하게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엔 무슨 일이 생길까요?”

스노든의 말에 따르면 몬스터마인드는 뜻하지 않게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프라이버시 측면에서 최악이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NSA는 우선 해외에서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들어오는 모든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몰래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의적인 트래픽 플로우를 발견하고 대응하려면, 트래픽 플로우를 전부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그리고 우리가 트래픽 플로우를 전부 분석한다는 건, 우리가 모든 트래픽 플로우를 다 가로챈다는 거예요. 그건 헌법 4조를 어기는 거죠. 불합리한 압수와 수색에 대해 신체, 주거, 서류, 물건의 안전을 확보할 국민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안된다. 선서나 확약에 따라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유가 있어 특별히 수색할 장소와 압수할 물건, 체포·구속할 사람을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장이 발부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을 묻기 위해 NSA 대변인에게 취재를 요청했지만, 그 어떤 내용에 대해서도 발언을 거부했다.

블러프데일에 있는 NSA의 새 데이터 저장 시설, 우연히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 해외에서 들어오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감시할 상황까지 생각하니, 스노든은 방대한 문서를 들고 가서 세상을 향해 자신이 아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하느냐가 문제였다.

2013년 3월 13일, 스노든은 뉴스 기사 하나를 읽다가 불현듯 이제 행동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정보국 디렉터 제임스 클래퍼가 상원위원회에 NSA가 ‘고의적으로’ 미국인 수백만 명의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봤기 때문이다. 스노든과 동료들은 NSA가 스파이 짓의 범위에 대해 늘 판에 박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클래퍼의 그 말이 놀랍지는 않았다. “그냥 받아들이는 거예요.” 스노든은 그런 행동을 나치 독일의 관료들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연구를 인용해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과 비슷해요. 사소한 악, 사소한 규칙 위반, 사소한 부정직, 사소한 기만, 사소한 공익 침해에 노출돼요. 그리고 그냥 그러려니, 하며 정당화할 수 있게 되죠. 하지만 그러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고, 15년, 20년, 25년 정도 몸담고 있으면 비밀을 다 알게 됐는데도 충격을 받지 않아요. 그냥 정상적인 걸로 생각하게 된다고요. 그게 문제고, 클래퍼 사건이 보여주는 게 그거였어요. 클래퍼는 미국인들을 속이는 것이 자기가 하는 일, 자기 직업이고, 아주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자기가 했던 일 때문에 처벌을 받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건 맞긴 하죠. 그는 선서를 하고서 거짓말을 했는데도 경고조차 받지 않았으니까요. 체제와 우리의 지도자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는 사건이죠.” 스노든은 자기 역시 천천히 산 채로 삶아지기 전에 물 밖으로 뛰쳐나갈 때가 되었다고 결심했다. 심각한 결과가 생길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한 걸음을 내딛기란 정말 어려워요. 내가 무언가를 믿느냐가 전부가 아니라, 내가 내 인생에 불을 붙이고 홀랑 태워먹어도 좋을 만큼 그것을 믿느냐의 문제죠.” 하지만 그는 다른 선택은 없다고 생각했다. 두 달 후 그는 주머니에 이동식 드라이브를 잔뜩 넣고 홍콩행 비행기에 올랐다.

첫 만남을 갖고 2주가 지난 뒤 스노든을 세 번째로 만났다. 스노든이 오후에 내 호텔방으로 온다고 했다. 나는 장소를 옮겨 내셔널 호텔에 묵고 있었다.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 맞은편에 있는 곳. 레닌이 107호에 산 적이 있고, 여기에 살았던 구소련 비밀 경찰서장 펠릭스 제르진스키의 유령이 아직도 복도를 배회하는 곳. 스노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러시아 비밀경찰보다는 그의 전 직장인 CIA와 NSA다. “만약 정말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날 때려죽이는 게 임무인 팀을 하나 두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들이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온라인상에서 누구랑 이야기하는지는 아마 분명히 모니터하고 있을 거예요. 암호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을 해독하지는 못한다 해도, 누구한테 언제 이야기하는지만 가지고도 많을 걸 알아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스노든은 개혁을 향한 진전을 전부 파괴해버릴까 봐 두렵다고 했다. 개혁을 위해 그는 그토록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말이다. “난 자기파괴 성향이 있진 않아요. 하지만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도 없죠.” 그래서 그는 자신을 뒤쫓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가려고 큰 고생을 한다. 그는 컴퓨터와 이메일 주소를 끊임없이 바꾼다. 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이 위험해질 걸 안다. “난 실수를 할 거고, 그들이 나를 때려죽이겠죠.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에요.”

실제로 그의 동료 몇이 이미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 작년에 그린왈드는 스노든으로부터 GCHQ(미국의 NSA에 해당하는 영국 기관)에서 나온 방대한 기밀 자료를 받았지만 암호를 풀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함께해온 파트너 데이비드 미란다를 그들의 집이 있는 리오에서 베를린으로 보내 포이트라스에게서 다른 세트를 받아오게 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 GCHQ에 정보가 포착됐다. 영국 경찰은 그가 도착하자마자 붙잡아 놓고 9시간 동안 심문했다. 게다가 60기가 외장 하드(문서 5만8천건 정도)를 압수당했다. 문서들은 트루 크립트라는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암호화되어 있긴 했지만, 영국 경찰은 파일 하나의 암호가 적힌 미란다의 종이 한 장을 발견했고, 75페이지 정도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린왈드는 아직도 GCHQ 문서 전체에 액세스하지 못하고 있다.

스노든의 다른 걱정은 그가 ‘NSA 피곤증’이라 부르는 양상이다. 민간인 사찰을 폭로해도 대중이 무감각해지는 것을 뜻한다. 전쟁 중에는 전사 소식을 들어도 담담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고,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그는 스탈린을 인용해 신랄하게 말을 이어갔다. “앙겔라 메르켈의 권리를 침해한 것은 큰 스캔들이 되는데, 8억 독일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건 이야깃거리도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사람이 뽑힌다고 해도 개혁에 대한 기대는 없다고 했다. 결국 스노든은 우리는 정치인들이 아닌 기술에 믿음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겐 법적 조치, 정책 변화 없이도 대중 감시를 끝낼 수 있는 수단과 기술이 있어요.” 그가 말하는 해답은 열심히 암호화를 하는 것이다. “암호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즉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기본적으로 암호화를 설정해두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중 감시를 종결시킬 수 있어요. 미국 안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요.”

그렇게 되기 전까지 스노든은 계속 폭로를 이어갈 예정이다. “아직 끝을 본 건 아니잖아요.” 과연 우리의 만남 몇 주 후에 <워싱턴 포스트>는 NSA의 감시 프로그램이 원래 타깃인 외국인들보다 무고한 미국인들에 대한 데이터를 훨씬 많이 저장했다고 밝혔다. 아직도 비밀 문서 수십만 건이 남아 있다. 어쩌면 스노든에게 감화를 받았을지 모를 내부 고발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노든은 앞으로 폭로될 서류에 든 정보가 무엇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던져진 문제는 다음 이야기가 언제 나올 것이냐가 아니에요. 어떻게 해결하느냐죠.” 

    에디터
    제임스 뱀포드
    포토그래퍼
    PLATON ANTON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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