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브라질에서 왔습니다 – BOOK & MUSIC

2016.08.09GQ

아서 베로카이 < Arthur Verocai > 어떤 곡이 샘플링의 대상이 된다는 건, 일단 개별적인 소리가 매혹적이란 얘기다. 단일 앨범으로서 < Arthur Verocai >는 총 30번이 넘게 샘플링되며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겼다. 매 곡이 서로 다른 데다 음표마다 전력투구의 흔적이 완연하니 그 소리가 탐이 날 수밖에. 재즈와 솔의 영향이 짙지만, 그저 전체를 브라질리언 재즈나 솔 음반이라 부르기엔 섭섭하다. 1972년에 발매한 초반의 경우 5백만원이 넘는 경매가를 호가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네 번 재발매됐다. 2009년 아서 베로카이의 첫 LA 공연에 출연한 프로듀서 매들립은 당시 < 데이즈드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부터 남은 일생 동안 이 음반을 매일 들을 수도 있어요.”

잡지 < Abusada > 첫 장부터 훌러덩. 표지를 넘기자마자 실제 섹스 장면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남녀 모두의 성기가 그대로 노출된다. 이어서 성인 잡지의 한계에 도전하듯 자위, 그룹 섹스까지 거침없이 나아간다. 물론 커버 모델도 예외는 아니다. 타블로이드지의 형식으로 한 페이지에 여러 장의 사진을 실어, ‘기승전결’을 담는 식이다. 나체가 나오지 않는 페이지는 한 장도 없다. 궁금해 찾아본 < Abusada >는 ‘학대’라는 뜻이다. 이해가 될 듯 말 듯 여전히 알쏭달쏭하다.

다큐멘터리 < Rip It Up > 현대의 저작권법이 어떻게 사람들의 창의력을 제한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디즈니, 샘플링, 디지털 음악 저작권의 대표적인 사례들이 이어지고, 브라질이 등장하면서 한번 도약한다. 브라질이 다른 문화를 받아들인 역사, 그리고 그것을 향유해온 정신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 작품은 묻는다. 식인종의 극단적인 예까지 들어가며, 창의력의 비밀을 말한다. 어쩌면 저작권법이 아니라 브라질의 그 끝도 없는 즐거움의 비밀을 엿본 것 같기도 하다.

< 브루터스 > 1993년 10월 2호 ‘Meets Bossa Nova’ 1993년이면 김건모가 레게를 시도한 ‘첫인상’을 발표했을 때다. 잡지 < 브루터스 >는 보사노바를 찾아 브라질로 간다. 라틴, 레게, 보사노바 취향이 가미된 시티팝을 발표해온 싱어송라이터 요시타카 미나미가 함께했다. 그가 톰 조빔과 로베르토 메네스칼을 만나고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 카에타노 벨로조, 조앙 질베르토의 자취를 좇으며 적은 여행 일기가 특집 기사다. 지금 한국의 그 어떤 잡지와 단행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보사노바 추천 앨범과 함께, 보사노바에 대한 충실한 도입부를 제공한다.

컴필레이션 < Brazilian Disco Boogie Sounds > 더운 나라의 음악에는 그들만의 음표라도 있는 걸까. 물론 그런 리듬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먼저 들리는 건 멜로디다. 남국의 해변에서 느릿느릿 흥얼거리다 보면 이런 선율이 불쑥 떠오르기라도 하는 건지. < Brazilian Disco Boogie Sounds >는 재발매 및 컴필레이션으로 명망 높은 프랑스의 페이보릿 레코즈에서 1978년부터 1982년까지 나온 브라질의 디스코와 부기(일렉트로 훵크)를 모은 음반이다. 대개 느릿하고, 별로 힘차게 부르지 않는다. 목청을 뽐내기엔 그곳은 내내 나른한 계절이라.

영화 < Black Orpheus >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의 리라는 이 영화에서 기타다. 이 기타는 단지 소재가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보사노바 기타 연주를 동경하는 계기가 됐다. 오르페우스의 능력이 신화 바깥세상도 바꿔놓았다. 비니시우스 지 모라에스의 뮤지컬 < 성모수태축일의 오르페 >를 마르셀 카뮈가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가 평소 교우하던 루이스 본파와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을 끌어들여, 신화적 비감이 감도는 영화에, 또 다른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음악까지 덧붙였다. 새로운 세대의 그리스 신화, 새로운 세대의 삼바의 시작이었다. 다른 세상에서 온 것 같은 ‘A Felicidade’의 멜로디는 이 영화에서 비롯됐다.

엘리스 레지나 < 엘리스 > 브라질뿐만 아니라 브라질 바깥에서도 유독 사랑받는 가수. 어린 시절부터의 연예계 활동, 겨우 스무 살에 성취한 송 페스티벌 우승, 비극적인 삶이 호기심을 자아낸 바도 있겠지만, 그녀의 노래에 흘러넘치는 그 엄청난 감정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재기작이었던 < Elis >의 ‘Romaria’에서, 그녀가 무지렁이 화자로서 노래하는 삶은, 불행 근처에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가슴이 미어지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 결혼을 앞둔 38세에 술과 코카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고, 그 절망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코넬리우스 < Point > 열대림에 사는 풍조의 깃털, 풀잎마다 이슬, 벌레와 버섯의 점박이 무늬, 티타임과 현기증, 창고에서 물건을 때려 부수는 소리, 누군가 기타 연습을 하거나, 자꾸만 브레이크를 밟는 자동차. 이 앨범은 복잡할 대로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순수하리만치 깨끗하게도 들린다. 앨범 커버엔 “나카메구로에서 어디로든” 이라는 말이 있는데, 9번 트랙 ‘Brazil’이 흐를 때, 이 앨범은 우주가 된다.

< Alair Gomes > 알레르 고메즈는(1921~1992)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 또한 비밀스런 사진가였다. 그는 리우 해변에 온 젊은 남성의 몸을 은밀한 시선으로 채집했는데, 그리스 로마 시대가 남성 누드를 다루는 방식과 현대 포르노그라피가 조장하는 몸의 이미지 사이, 그의 사진은 ‘몰래 찍는’ 뉘앙스를 통해 더욱 노골적인 탐미주의를 드러냈다. 햇빛이 거의 난무하다시피 하는 도시에서 망원렌즈와 고감도 필름의 거친 입자로 번진 사진에는 어둑한 슬픔이 스며있기도 하다. 그는 리우에서 살해되었고, 해변은 다른 몸들로 다시 채워졌다.


사진집 < 지젤 > 큰 키, 군살 없는 몸, 뚜렷한 이목구비처럼, 백인 모델의 전형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하면 지젤 번천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연애한 경력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녀는 소위 잘나가는 학창 시절을 보내지도 않았고, 패션의 중심과 한참이나 떨어진 브라질 출신이다. 한 달 전 발매된 이 사진집을 보면, 성공적인 경력을 단지 전형성으로 폄훼한다는 게 얼마나 게으른 일인지 알게 된다. 그녀는 참 두려움도 없이 별의별 촬영에 다 나섰다. 브라질은 이 독일 이민자 출신의 여성에게조차 모험심이라는 재능을 줬다.

    에디터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포토그래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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