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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 협업 ‘테슬라 X 메르세데스-벤츠’

2019.06.21GQ

빌려 쓰고, 나눠 쓰고, 돌려 쓴다. 자동차들의 공생 관계.

Tesla Model X
테슬라 × 메르세데스-벤츠

1백 년이 훌쩍 넘은 제조사들 사이로 호기롭게 진입한 차는 많았지만, 대부분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다. 테슬라는 달랐다. 전기 에너지로 구동하는 시스템과 반자율 주행 기능으로 21세기 들어 유일하게 주목받는 신생 브랜드가 되었다. 척탄병 같은 패기로 무장한 ‘신입’은 ‘선배’들 사이에서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센터페시아의 버튼을 과감히 없애고, 커다란 디스플레이를 통해 차량 기능을 제어하는 방식의 진원지는 테슬라다. 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던 건 아니다. 모델 X와 모델 S에서 조력자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티어링 휠 뒤에 달린 전자식 기어 레버와 와이퍼 레버는 물론, 창문을 여닫는 버튼도 전량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Infiniti Qx30
인피니티 × 메르세데스-벤츠

조작 버튼을 넘어 동력 계통까지 타 브랜드와 공유하는 경우도 있다. 이유는 둘 중 하나. 테슬라의 경우처럼 생산 효율성을 높이거나 다른 브랜드의 장점을 끌어온 차를 출시할 수 있어서다.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인피니티 QX30은 후자에 속한다.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만드는 GLA와 거의 같은 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GLA를 만드는 벤츠의 모듈화 플랫폼에서 생산하고, 7단 자동변속기와 2.0리터 터보 가솔린 엔진도 벤츠에서 가져왔다. 국내에선 출시하지 않았지만, 2.2리터 디젤 엔진을 탑재한 QX30은 가솔린 엔진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인피니티의 약점을 다양성 측면에서 보완한다. GLA와 QX30의 가격 차이는 최대 1천만원. 어떤 차를 선택할지는 ‘엠블럼’에 달렸다.

Mercedes-Benz A-Class
메르세데스-벤츠 × 르노

메르세데스-벤츠가 언제나 ‘공급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벤츠에도 ‘남의 엔진’을 실은 차가 있는데, 1.5리터 디젤 버전의 A클래스와 B클래스다. 엔진의 개발자는 프랑스의 르노. 자존심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지만, 벤츠는 생산 효율성에 더 무게를 두고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직렬 4기통 1.5리터 디젤 엔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새롭게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부품을 사용하는 게 경제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엔진이나 고른 건 아니다. 르노의 ‘K-타입’ 시리즈는 수많은 자동차를 통해 이미 내구성이 검증된 소형차 전용 엔진이다. 올해 국내 출시가 확정된 신형 A클래스에도 ‘K-타입’ 엔진을 변형한 르노의 디젤 엔진이 들어갈 예정이다.

Lotus Evora
로터스 × 토요타

엔진을 직접 만들지 않는 자동차 제조사도 있다. 영국의 스포츠카 제조사 로터스가 좋은 예다. 엔진 개발보다 단순하고 가벼운 차를 만들어 보다 순수한 ‘운전 감각’을 강조하는 데 모든 공력을 쏟아 붓는다. 로터스의 차는 모두 토요타의 엔진을 사용하는데, 엔진 튜닝 방법에 따라 차의 성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극명하게 드러낸다. 로터스 에보라에 들어가는 V6 3.5리터 가솔린 엔진은 렉서스의 ES350에 들어갔던 엔진과 같은 계열이다. 스포츠카와 전혀 접점이 없을 듯한 미니밴인 토요타 시에나에도 동일한 시리즈의 엔진이 들어간다. 다만 로터스는 토요타의 자연 흡기 엔진에 컴프레서를 더한 ‘슈퍼차저’로 출력을 높이고, 경량화 소재를 사용해 전혀 다른 성향의 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Toyota Supra
토요타 × BMW

‘큰손’ 토요타가 2002년 단종된 스포츠카 수프라를 다시 생산한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보다 개발 배경에 더 눈길이 갔다. 유럽의 ‘큰손’ BMW와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토요타와 BMW는 동일한 플랫폼에서 각각 수프라와 Z4를 생산한다. BMW도 손해 볼 게 없었다. 판매가 부진해 끊임없이 ‘단종설’이 나왔던 Z4를 다시 개발하는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두 차의 익스테리어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수프라의 인테리어 레이아웃과 스티어링 휠 등 내부는 영락없이 ‘BMW 스타일’이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까지 BMW의 소프트웨어가 깔리고, 엔진도 Z4와 같다. BMW의 Z4는 이미 국내에 출시됐지만, 토요타 수프라의 국내 출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Ford Mustang
포드 × 쉐보레

BMW 5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의 E클래스. 모두 독일차지만 세계 곳곳에서 수십 년 동안 경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이다. 포드 머스탱과 쉐보레 카마로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미국 국적인데도 머슬카의 왕좌를 두고 50년 이상 엎치락뒤치락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두 차는 앙숙을 넘어 ‘애증의 관계’로 접어든 것 같다. 머스탱과 카마로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에 넣은 10단 자동변속기가 두 회사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포드와 쉐보레의 오월동주로 탄생한 변속기는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해 무게를 줄이고, 변속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려 기술적으로 한 단계 진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 머스탱과 카마로의 엔진 특성에 알맞도록 기어비는 두 회사가 각각 설정했다.

Audi TT RS
아우디 × 람보르기니

한 지붕 아래 있는 회사라면 협업은 한결 수월하다. 폭스바겐 그룹에 속한 아우디와 람보르기니의 이야기다. 아우디 R8에 람보르기니 우라칸의 V10 엔진이 탑재된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같은 엔진을 사용하면서 가격 차이가 1억 이상 난다는 점은 R8을 더욱 매력적인 차로 보이게 했다. 아우디의 차세대 TT RS에도 람보르기니의 손길이 닿았다. 우라칸에 들어가는 엔진이자 R8에 들어가는 엔진을 작은 차체에 알맞게 반으로 툭 쪼개서 넣은 것이다.
원래 5.0리터 V10 엔진이었기 때문에 배기량과 실린더 배열은 2.5리터 직렬 5기통이 되었다. 출력도 반으로 줄어들어 610마력의 절반인 305마력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TT RS용으로 변형한 엔진에는 터빈이 달려 최고출력이 400마력까지 오른다.

Opel Karl
오펠 × 쉐보레

창원에선 가끔 특이한 차가 도로에 출몰한다. 분명 쉐보레의 경차 스파크인데, 엉뚱한 엠블럼을 달고 있다. 스파크의 유럽 버전인 오펠 ‘칼’이 시험 주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창원에는 전 세계에 수출할 스파크를 생산하는 GM 공장이 있다. 몇 년 전 프랑스의 PSA(푸조ㆍ시트로엥)에 인수됐지만, 오랫동안 쉐보레와 함께 GM 그룹에 속했던 오펠은 여전히 창원 공장에 칼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PSA가 보유한 공장에 새로운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게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유사 스파크’는 하나 더 있다. 복스홀(오펠의 영국 전용 브랜드) 엠블럼을 붙인 ‘비바’ 역시 창원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범퍼나 휠 등 디자인 일부가 조금 다른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일한 차다. 같은 차가 세 가지 이름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셈이다.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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