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어차피 우승은 골스?

2019.11.10GQ

지난 5년간 NBA 팬들은 개막 전부터 골든스테이트의 우승을 확신했다. 팀의 주축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맞은 2019~2020 시즌, 그들의 우승 확률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전국 투어를 다니는 록 스타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디서든 팬들이 끊이지 않았다.” 은퇴한 센터 모리스 스페이츠에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라는 전국구 팀에서 뛰었던 기분은 어땠나”라고 묻자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스페이츠는 워리어스의 식스맨이었다. 스테픈 커리, 클레이 탐슨 등과 함께 2015년 NBA 우승을 맛봤다. 그다음 시즌에는 82경기 중 73경기를 이기면서 1996년 시카고 불스가 세운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을 새로 쓰는 데 힘을 보탰다. 스페이츠는 워리어스에서 뛰었다는 사실만으로 어딜 가든 주목을 받았다. 지난 5년간 이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항상 스페이츠처럼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경기 티켓도 못 구해서 난리였다.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홈 경기장(오라클 아레나)은 332경기 연속 매진됐다. 시즌 티켓을 사려면 10만원의 예약금을 걸어두고 자기 앞의 6천 명이 포기하길 기다려야 했다. 지난 파이널 6차전 경기 티켓은 2차 판매 사이트를 통해 1억원에 2장이 거래되어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올 시즌도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들은 매 시즌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워리어스는 5년 연속 NBA 결승 진출과 3번의 우승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2019~2020시즌을 앞둔 워리어스를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시선이 좀 달라졌다.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 스티브 커 감독이나 밥 마이어스 농구단 단장을 향한 질문 내용만으로도 그들의 위치가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앞으로 선수단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주전이 누구인가?”

질문의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단순하다. 우승 후보라 불릴 만큼 선수 구성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과 2018년 우승을 이끈 케빈 듀란트는 시즌 직후 자유계약 선수 자격을 얻어 브루클린 네츠로 떠났다. 팀을 지탱해오던 안드레 이궈달라는 이적을, 숀 리빙스턴은 은퇴를 선택했다. 또 탐슨은 파이널 시리즈 중 십자인대를 다쳐 수술대에 올랐다. 밥 마이어스 단장은 탐슨이 2020년 2월 이전에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쯤 되면 트와이스가 사나, 다현 없이 활동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전히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이 있고, 듀란트 대신 올스타 디안젤로 러셀을 영입했지만, 지난 5년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심지어 <ESPN>의 한 전문 기자는 “플레이오프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2019~2020시즌, 워리어스가 현실적으로 마주할 성적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워리어스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우승이 아닌, 서부 컨퍼런스 강호들 사이에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다퉈야 하는 신세가 됐다. 그 커트라인은 45~48승이다. 우선 문화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워리어스는 커리와 그린, 탐슨 3인방이 유쾌하면서도 전투적이고, 진지해야 할 때는 다 같이 뭉치는 ‘형제애’가 있었다. 듀란트가 그린과 충돌하고, 그 과정이 적나라하게 공개되며 흔들리긴 했지만, 양보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문화를 만들고 토대를 쌓아 올려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다. 기존 멤버들의 자리를 대신할 선수들의 캐릭터는 완전히 새롭다. 이는 농구 코트 위 전술 수행으로도 이어질 게 분명하다.

워리어스는 NBA 농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팀이다. 어디서든 3점슛을 던지고 마치 서커스를 하듯 앨리웁 플레이를 즐겼다. 패스도 정말 잘 돌았다. 지난 5년간 패스 횟수와 패스 성공률이 가장 좋은 팀이었다. 영리한 선수가 많았고, 서로 성격과 농구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다. 작전 이해도 역시 높았다. 워리어스는 커 감독이 디스크 수술로 장기간 벤치를 비웠을 때도 리그 선두를 유지했다. 한번은 커 감독이 선수들이 직접 작전을 지시하게끔 작전판을 넘긴 적이 있는데 그때도 선수들은 평소 워리어스가 해왔던 그 작전들을 능숙하게 수행했다. 그만큼 선수들이 팀의 방향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팀의 장점은 승부처에서 잘 나타난다. 수비가 필요할 때는 이궈달라가 나서서 큰 역할을 해냈다. 리빙스턴도 패싱 게임을 도우며 정확한 중거리슛을 꽂았다. 두 선수는 팀에 새 식구가 들어왔을 때 빠르게 녹아들고, 제 구실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핵심 자원의 도움 없이 다시 강팀의 문화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선수들조차도 ‘우린 워리어스니까’라는 기대치가 있을 것이나, 이제는 그 기대치를 낮추고 새로이 시작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스티브 커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2019년 10월을 서로를 알아가고 시스템에 적응하는 기간으로 삼았다.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플레이 대신 구조적인 플레이가 많아질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새로운 구성원의 농구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선수층이다. 커리, 그린, 러셀을 제외하면 주전급 선수가 적다. 주전 센터로 낙점된 케본 루니는 지난 시즌부터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한 선수다. 경험도 부족하고, 내세울 만한 장점도 앤서니 데이비스(LA 레이커스)나 루디 고베어(유타 재즈), 니콜라 요키치(덴버 너게츠) 등 서부 엘리트들에 비해 떨어진다. 또 다른 빅맨, 윌리 컬리 스테인, 오마리 스펠맨도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심지어 스테인은 시즌도 시작하기 전에 발을 다쳐 개막전을 함께할지도 불투명하다. 그동안 커리가 코트를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장신 선수들이 보디가드 역할을 충실히 해온 부분도 있었다. 워리어스를 상대하려면 커리를 죽도록 쫓아다니고 앤드루 보거트, 자자 파출리아, 데이비드 웨스트 같은 터프가이들의 보디체크를 견뎌야 했다. 그들은 파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상대를 괴롭혔다. 이런 빅맨이 없다는 점은 치명적이다.

탐슨이 없다는 점도 불안요소다. 세 가지 문제가 예상된다. 먼저, 커리에게 수비가 더 집중될 것이다. 상대 입장에서는 ‘술래잡기’할 대상이 사라졌기에 수비가 편해진다. 두 번째로 커리가 쉬는 동안의 ‘텐션’ 유지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탐슨이 나와 분위기를 유지해주는 측면도 있었으나 이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궈달라, 리빙스턴마저 없기에 경기력 저하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탐슨은 그냥 슈터가 아니다. NBA에서 손꼽히는 수비 스텝을 가진 선수다. 그런 그가 무릎 부상으로 빠진다는 점은 공격에서 20점을 잃는 것 이상의 타격이다. LA 클리퍼스는 폴 조지와 카와이 레너드 등 공격뿐 아니라 수비력까지 겸비한 슈퍼스타를 영입, ‘우승 후보’ 대열에 올라섰다. 휴스턴 로케츠는 제임스 하든의 짝으로 러셀 웨스트브룩을 데려오면서 화력을 강화했다. 이들을 상대로 고득점을 올리고, 반대로 이들을 평균 이하의 점수로 막는 워리어스의 모습은 아직 기대하기 힘들다.

불안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워리어스는 2019~2020 시즌, 우승이 아닌 플레이오프를 목표로 경쟁하게 될 것이다. 다만 <ESPN> 전망처럼 아슬아슬하게 7~8위를 노리는 팀으로 몰락하진 않 으리라고 본다. 5~6위 혹은 그 이상까지도 노려볼 만하다. 워리어스가 단순히 커리의 에이스 놀이를 메인 전술로 하는 팀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그린과 ‘새 식구’ 러셀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탐슨의 공백으로 저하될 경기 품질은 그린과 러셀을 통해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 그린은 포인트가드부터 센터까지 해낼 수 있는 멀티 자원이다. 라커룸 문화도 이 선수가 이끌어가야 한다. 다만 이번 시즌부터는 득점에 더 가담해야 하는데, 유독 슛에 자신감이 떨어진다. 이 점만 개선되면 팀도 더 활발한 공격을 기대할 수 있다. 러셀은 듀란트 레벨의 선수는 아니다. 그래도

볼 컨트롤과 픽앤롤 공격 전개는 훨씬 좋다. 커 감독과 커리 모두 이 점에 대해서는 서로 영상을 분석해가며 적극 활용할 의사를 밝혔다. 사실 워리어스가 지금처럼 기대치가 낮아진 이유는 단순히 우승 주역들이 떠나서만은 아니다. 서부 컨퍼런스 라이벌 팀들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승팀이 항상 네임밸류에 의해 결정되었던 것은 아니다. 우승을 위해서는 팀의 결속력과 문화 등 여러 공식이 뒤따라야 한다. 다행히 워리어스는 그 우승 공식을 완성시킨 주역들이 남아 있다. 이 과정을 얼마나 단축시키고 매끄럽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왕조 지속 여부도 결정된다. 글 / 손대범(<점프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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