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국제대회 때마다 대표 차출에 잡음이 있다. 당사자들에겐 이유가 있다. 어느 순간 나 몰라라 하는게 당연하게 돼버렸다.
국가 대표가 짐이 되는 시대가 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 감독 선임을 두고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는 몇몇 감독들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가만 보면 무슨 짓인가 싶다. 그들이 이 땅에서 소위 ‘영업’을 하는 한, 국가의 부름에 응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야구계라는 시장이 없다면 감독들은 모두 다른 일에 종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감독이란 사회적 지위는 국가가 준 것이다. 국가의 권한은, 작금의 나라 실정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원칙상으론 국민에게서 온다. 국가의 부름은 국민의 부름이다. 그런데 안 하겠다니? 우리는 충분히 분개할 수 있다.
그러나 고사한 이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건강 때문에 거절한 김성근 감독을 제외하고 김경문 감독이나, 후에 코치로 거론된 김재박, 조범현, 김시진 감독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팀 사정’이었다. LG, KIA, 히어로즈의 올 시즌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이들은 감독이기 전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다. 하여 그들에겐 사랑에 보답할 감정적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홀몸이 아니다. 감독은 팀이다. 그들의 마음이 행동에 온전히 반영될 수 없다. 김인식 감독은 WBC 감독을 수락하며,“국가가 있고 팀도 있다”고 했다. 맞지만 애국심과는 별개의 문제다. 모두 같이 힘들기 때문이다.감독들이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선수들은 뛰고 싶을까? 감독들은 김인식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에 선수 차출만은 돕고 따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싫다는 선수를 억지로 보낼 순 없다. 팀 상황이란 게 감독에게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WBC는 3월에 열린다. 끝나면 바로 시즌이다. 선수들은 다음 시즌 ‘영업’을 위해 오프시즌 때 쉬며 훈련해야한다. WBC에 나가면 그들의 시즌은 한 달 길어지는 것이다. 컨디션을 일찍 끌어올리면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 선수에게 몸은 돈이다.
제1회 WBC 때 김동주는 부상을 당했다. 그는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한 해 연기하게 됐다. FA를 획득하려면 9년이 걸린다.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가 됐다면 서른이 훨씬 넘어야 자격을 갖게 된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서른이 넘으면 기량이 떨어진다. 현행 FA는 선수들의 꿈을 하향 조정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국가를 위해 뛰다 다친 김동주에게 KBO가 보상해 준 것은 없다.국제 대회에서의 활약이 연봉 협상에 도움이 되거나, 해외 이적을 위한 긍정적인 밑바탕이 된다면 선수들도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을 것 같다. 말은 쉽다. 우선 FA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막는다. 또한 야구는 국제 대회가 이적을 위한 ‘뽐내기’의 장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단 WBC만 놓고볼 때 미국과 일본의 몸값 높은 선수 중에 참가를 거부하는 선수는 너무 많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 대회가 아니라 리그(시즌)다.
박지성, 이영표 같은 해외파들이 이야기한 바 있듯,축구 선수에게 국가대표는 영예다. 그러나 이것이 야구 선수보다 축구 선수가 애국심이 강하기 때문은 아니다. 축구는 야구에 비해 이적이 자유롭다. 프로에서 3년을 뛰면 FA 자격을 얻는다. 월드컵은 선수 이적의장이다. 각국의 스카우터들이 월드컵을 주시한다. 국가 대표에서의 활약이 연봉 계약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구단 입장에서도, 스타 선수는 돈이다. 국가 대표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면 소속팀에서의 입지도 강해진다. 그들이 팬을 경기장에 부르고 구단에게 돈을 벌어준다. 수원, 서울, 성남같이 대표급 선수들이 많은 구단을 제외한, 그 외의 구단들은 소속 선수가 국가 대표로 뛰는 게 구단 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A매치는 힘이 세기 때문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축구가 A매치 열기에 의존하는 건 K리그 관중이 적어서다. 이 점을 잘 생각해 보면 야구는 국제 대회 열기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 프로 야구는 그 자체로 흥행이 된다. 국제 대회는 번외 경기다. 그동안 번외경기는 올림픽과 아시안 게임 정도였다. 4년 전에 갑자기 WBC란 게 생겼다. 하필 시즌 개막 직전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는 형국이다. 핵심은, 이미 잘 되고 있는 시즌을 망치지 말라는 것이고, 번외 경기에 낭비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땅의 야구 열기를 위해!’라고 그들의 마음을 돌려 볼 순 있겠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게 없다고 당장 야구판이 망할까? 정황이 이렇다 보니, 감독이나 선수들이 대표 차출에 부담을 느끼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나는 건 그 꼴이 우스워서다. 도대체 군대가 뭐길래? 어차피 작금의 감독과 선수는 팬보다 자신의 ‘영업’을 위해 시즌을 치른다(팬을 위한다면 대표 차출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들이 은연중에 영업상의 권익을 내세웠기 때문에 시작됐는데,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의 이익은 극히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된다. 병역도 단지 딱한 사정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군대를 빠질 기회를 주었다. 많은 선수들이 열매를 따먹었다. 그들은 이제 국가 대표를 할 이유가 없다. 하물며 KBO는 선수들에게 더 이상 병역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국제 대회는 선수들에게 쓸모없는 이벤트로 전락했다. 그들의 애국은 불순했다.축구나 야구나 속내는 마찬가지다. 결국 모두들 자신을 위해 뛴다. 어려운 상황에 감독직을 수락한 김인식 감독은 존경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국가가 진정 국민들의 울타리가 돼 주지 못하는 이 가난한 시대에, 국가적 대의라는 잣대로 다른 이들을 비난할 순 없다는 사실 역시 옳다. 이제 규정에 기댈 수 있을 뿐이다. 국가와 개인을 분리한 건 선수와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야구는 국제 경기가 많지 않아 그때마다 임기 응변으로 사안들을 처리했다. 김인식 감독이 강조한 것처럼 이젠 KBO가 대표 차출에 대한‘당당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감독 선임의 문제가 있다. 1~2년 걸러 있을 국제 대회를 위해 전임제를 실시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직전 시즌의 우승팀 감독이 맡는 게 어떠냐란 논의가 있었던 걸로 안다.선수 차출에 관해선, KBO가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병역 혜택을 받은 선수들은 앞으로 무조건 국가의 부름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수협의회에서‘신체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에 배치되는 불합리한 내용이다’라고 반박했다. 그 뒤 흐지부지됐다. 잘못됐다. 병역 혜택 자체가 특례 조항이다. 수혜에는의무가 따른다. 의무 역시 특례의 관점에서 다뤄져야 옳다. 이쯤에서 황당한 건 KBO다. 이 유명무실한 단체가 왜 있는지 위의 사례를 통해서도 의심하게 된다.감독과 선수는‘영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다. 그렇다면 그 시장의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국가 대표는 그런 의무의 하나다. 선수 차출에 대한 규칙에 다소간의 강압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문제 삼으면시장의 질서가 무너진다. KBO는 질서를 지킬 의무가 있다.의무 불이행은 선수들보다 KBO가 먼저다.
최근엔 당근책에 대한 논의도 있다. 에디터는 기본적으로 전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 국가 대표 차출에 응하도록 규정을 만드는 건 옳다. 이것이, 직장인에게 출근 시간을 정해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익 집단이 존속유지되기 위해선 규칙이 있어야 한다. KBO가 이 점에 대한 확신이 없고, 밀고 나갈 뚝심이 없으니, 당근책이 논의되는 것이다. 당근책의 취지는, 병역 면제가 없어진 상황에서 선수들의 동기 유발을 위한 수단을 만들자는 건데, 선수 차출에 관한 양측의 이해 관계를 고려한–모두가 만족할 방안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 규칙을 만들면 그만이다(1회 WBC, 김동주의 사례 같은 경우는 보상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그건 공상이다. 국가는 그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축구처럼 FA 획득 연 수를 대폭 줄이면 자연스럽게 애국심이 생길까? 문제는 남는다. 국내 프로 야구가 흥행을 거두고 있는 건, 좋은 선수들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FA 제도는, 대표 차출과 별개로 심도 있게 다듬어야 한다.그런데 이 공허함은 뭔가? 우리는 왜 규정으로 이들을 제재하려 하는가? 국가 대표급 감독과 선수라면 이미, 다른 선수들에 비해 연봉도 높을 거고, 팬들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도 받고 있을 게 아닌가? 그래서 얄밉다. 거듭, 그들이 처한 상황은 알겠다. 이해와 애정은 별개다.
- 에디터
- 이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