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훈은 헤르난 바스의 그림 <다윗과 골리앗> 앞에선 등을 돌렸고, <불신의 순간적 유예> 앞에선 철퍼덕 누웠다.
이야기하는 지금 모습은 제가 예상한 당신과는 지구인과 외계인 정도의 차이네요.전 예의 없는 걸 너무 싫어해요. 기본적으로 신문 인터뷰는 좀 짜증나요. 언론과 많은 만남이 있지 않았고요. 게다가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려서, 이야기를 토해내기보단 듣는 게 많았어요. 지금은 저도 후배가 생겼으니까요.
3년 만의 복귀예요. 누군가는 공백 기간이 짧다고 말하죠. 만약 당신의 공백 기간이 좀 더 길었다면 복귀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을까요?
글쎄요. 그냥 제가 싫은 거예요. 이미 싫은데, 싫은 감정을 이 일에 붙이는 거고요. 그렇지만 저는, 저를 싫어하는 것을 정말로, 진심으로 미워하지 않아요. 아버지한테 항상 배운 것이, 사람이 스무 살이 넘으면 모든 잘못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된다는 거예요. 제가 로봇이어서 누가 절 조종한 건 아니잖아요. 제가 한 행동이고 당연히 책임이 따르죠. 죄송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에요. 저를 싫어하는 분들에게, 왜 저러냐는 생각 안 해요. 충분히 분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약 사건을 안 물어볼 수 없겠네요. 가장 궁금한 건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온 상태에서 순순히 인정한 이유예요.
그런 건 의미가 없어요. 제가 한 것도 사실이고, 자백을 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 중간에 어떤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해도, 잘못한 건 변하지 않아요. 아까 말했듯이 잘못을 했는데, 뭐가 억울하다고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요. 그냥 반성할 게 있으면 반성하고, 미안한 게 있으면 어떻게 갚아나갈까 생각하는 게 훨씬 빠를 것 같아요. 그게 제 정신건강에도 좋고요.
최근 연기를 통해 반성하고 사죄하겠다고 말했어요. 그에 대해 많은 비난이 있었죠. 어쨌든 연기하는 건 당신의 경제적 활동인데 어떻게 반성이 되냐는 이야기예요.
경제적 활동 맞아요. 먹고살아야 되니까요. 그런데 제가 사고 치고 길을 갈 때, 팬이 아닌 것 같은 데, 특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주지훈 씨, 어쨌든… 힘내요.” 그분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제가 나온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죠. 꼭 저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위로 받으셨겠죠.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싫단 이유로 죽을 사람은 없잖아요? 정말 저에게 화가 난다고 자신을 해할 사람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한두 분이라도 인생을 놓고 싶을 때, 제 작품이 위로가 되거나, 적어도 힘이 난다는 이야기를 하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혼자서 반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만큼 열심히 산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저 또한 영화나 책을 보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니까요. 저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럴 능력이 있으니까 예전보다 훨씬 최선을 다해서 갈고 닦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사건 직후 바로 군대를 간 것이, 반성의 시간을 군대로 무마하려는 도피가 아니냐는 의심도 샀어요.
아니에요. 병무청에서 보낸 통지서에 적혀 있는 그 날짜에 가려고 했어요. 그리고 심지어 미뤘어요, 3개월. 왜냐하면 병무청에서 11월 4일인가 영장이 나왔어요. 근데 제가 10월인가, 디스크까지는 아니고 디스크 내장증이라 그러는데, 그 병 때문에 아예 움직이질 못했거든요. 화장실도 친구 두 명이 거들어야 갈 수 있었죠. 결국 병무청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니, 자료를 보내라고 해서 MRI 찍은 것과 의사 소견서 가져가 심지어 미뤄서 간 거예요. 도피가 되려면 제가 자진해서 입대를 신청했어야죠.
이렇게 상세한 이야기를 그동안 왜 하지 않았죠? 변호사를 통해 이야기할 뿐,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어요.
일화가 있어요. 어떤 선배님께서 <궁>하고 나서 저한테 봉사활동을 다녀오라고 하셨어요. 그때 제가 스케줄 때문에 다음에 가겠습니다, 했어요. 그런데 어떤 기자 분이, 이 내용을 진지하게 썼어요. ‘주지훈에게 봉사활동 가자고 했는데 단칼에 거절’ 이렇게요. 그때도 전 아무런 대처할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선배님께서 괜찮냐고 전화를 걸어서 아주 멋진 말씀을 해주셨어요. 진실이 아닌 건 다 밝혀지게 돼 있다. 내일 밝혀질지 십 년 뒤에 밝혀질지 모르지만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정말 감동 받았어요. 군대 이야기가 나오건, 자숙 기간에 대한 얘기가 나오건, 저를 싫어할 때 전 그러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인정해요. 그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저를 텔레비전에서 보기 싫다고 하시는데. 그럼 당장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배우가 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또 그러겠죠. 저의 경제활동이라고. 그 점에 대해선, 그동안 군대에 있어서 한 게 없으니. 좋은 일 많이 할 거라고 답하고 싶네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기부 활동하기 참 힘들어요. 제가 만약 2백만원, 3백만원 기부하잖아요? 그럼 욕 먹어요. 웬만한 4년제 대학 나온 사람 한 달 월급인데도 그렇죠. 이미 마음이 중요한 게 아닌, 크기가 중요해진 세상이 됐어요. 본인의 삶을 포기할 정도로 봉사하시는 분들을 존경해요. 그런데 그런 분들보다 덜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당신을 향한 편견보다 마음을 움직에게 한 것이 있을까요?
일단 가족요. 저는 이 사회체제 안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매를 맞는 게 당연한데, 제 가족이 매를 맞아요. 사실, 저는 굉장히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신 집에서 자랐고, 항상 사람이 되라는 말을 들었어요. 남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부모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이 얘기가 나와서 안 할 수가 없는 게,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기자 분들조차, 저보고 공인이래요. 지겨워 죽겠어요. 그럼 제가 물어요. 저희는 공인이니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드려야 되나요? 그럼 그렇대요. 알 권리면, 우리한텐 의무예요. 선택권이 없이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이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거 자체가, 저를 이미 공무원의 그 공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정말 지겨운 얘기예요. 하지만 공인의 사전적 의미만 중요한 건 아니죠.
그렇죠. 사전적 의미론 나라 녹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저는 나라에서 십원 한 푼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하는 행동이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파장이 있잖아요. 만약 공개된 사람이라는 뜻의 공인이라면 책임을 인정해요. 충분히 통감했어요. 청소년이든 성인이든 저 때문에 그 나쁜 행위를 따라 했을까 생각하면, 저는 이미 맞아야 돼요.
위로가 될 수 있으니까, 안 좋은 쪽으로 영향도 줄 수 있죠.
분명히 그래요. 그래서 죄를 지었고, 반성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저는 무정부주의자도 아니고, 사회 구성원이고, 전체 질서를 따르는 건 맞아요. 그래야 질서가 유지되니까.
복귀 작품은 코미디 영화를 선택했고, 드라마는 김순옥 작가의 작품을 선택했어요. 뭔가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을까요?
저는 대중에게 친절한 배우는 아니에요. 전 제가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이죠. 저의 내적인 요소가 아닌 외적인 요소로 인해 파괴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어떤 전략을 쓸 만큼 머리도 좋지 않아요.
예전에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는 연기할 수 없다고 얘기했어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어떤 지점이 당신을 설득시켰을까요?
저는 항상 리얼리티를 추구해요. 리얼리티가 느껴지면 하는 거예요. 영화에서 왕이 될 충녕이 밖으로 나가잖아요. 보통 영화 같으면 충녕의 세자다운 품위를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완전 본능으로 돌아가는 걸 담았죠. 이런 면들이 굉장히 리얼리티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연기든 자신 안에서 끄집어내는 편인가요? 자신을 부수면서 연기하고 싶진 않아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건 하지 않아요. 할 수 있는 것만 하죠. 덴젤 워싱턴의 연기 톤이 변하는 거 보셨어요?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 다 똑같아요. 반면 깊게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어요. 사람 각각의 목소리와 주파수, 말의 뉘앙스가 있어요. 이걸 크게 변화시키면 우리 뇌는 다 알아요. 그래서 진실된 연기는 거슬리지가 않는 거예요. 모든 걸 만들어서 캐릭터화하려면 어색하겠죠.
당신은 어느 정도 깊게 팠을까요?
음…. 그보다 뭘 팔지에 대해, 두 개의 구멍 정도으로 줄은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끝까지 파봤어요. 지금은 파다가 돌이 나오면 조금 방향을 틀 수 있는 상태인 것 같아요. 질문에 맞는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멍 중 하나가 뮤지컬일까요?
이번 뮤지컬 <돈주앙> 말인가요?
아뇨, 앞으로 뮤지컬을 계속하겠냐는 질문이었어요.
이번 뮤지컬은, 영화에 캐스팅돼서 빠진 거 아니냐는 말이 있는데, 그건 1백 퍼센트 답변할 수 있어요. 애초에 지금 찍은 영화와 뮤지컬 모두 같이 가기로 했어요. 여러 가지 말을 할 수 있지만, 제가 증명할 수 있는 게, 뮤지컬 판 엄청 작아요. 다들 친하고, 형제 같아요. 제가 영화 때문에 그 큰 뮤지컬을 배신하고 나왔다면, 전 뮤지컬 다시 못하겠죠.
다음 뮤지컬을 할 수 있을까요?
출연에 대해 이미 얘기하고 있는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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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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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리스트/ 정혜진, 임혜림(J&H plc.), 헤어&메이크업/임해경, 어시스턴트/ 유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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