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를 통해 배우를 재발견하기도 한다. 올 하반기의 가장 강력한 두 명은 장동윤과 손담비다.
최근의 KBS 주중 트렌디 드라마 편성표는 개성 강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흥미로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월화드라마인 <조선로코-녹두전>은 제목에서 연상 가능한 것처럼, 이성 간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애정이 꽃피는 사극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여장을 한 남자 녹두가 등장한다. 수목드라마인 <동백꽃 필 무렵>은 휴먼 드라마로, 연애 감정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정의를 보다 넓혀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 곳곳에 사연을 부여한다. 그중에는 가장 애달프게 죽음을 맞이한 젊은 여성, 향미도 있다.
배우의 중요한 임무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사연에 공감하도록 시청자를 설득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녹두를 맡은 배우 장동윤은 그 설득의 임무에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남자다. 말끔하게 다듬은 얼굴이 여장에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억지로 과부들에게 끌려가 목욕을 하게 되었을 때조차 그는 여장남자라는 설정에 매달려 호들갑 떠는 연기를 선보이지 않는다. 불필요한 손짓이나 말투의 과장 없이 서사에 필요한 만큼만 여성을 흉내 내는 데에 그침으로써, 장동윤의 녹두는 여장을 웃음의 소재로 삼는 대신에 주된 서사의 한 줄기로 끌고 가는 인물이 된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여장남자를 연기하면서도 적절한 표현 방식을 택해 연기하는 배우. 장동윤은 누구보다도 영리하고, 똑 부러지게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
반면에 손담비가 향미를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장동윤의 녹두가 적정선을 지키는 데에서 미덕을 만들어낸다면, 손담비의 향미는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를 품은 캐릭터를 과장되게 연기하며 미덕을 만들어낸다. 성매매 업소에서 자라고, 일하던 여성이라는 설정 안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기합리화와 자기반성을 반복한다. 바람을 피우는 남성을 협박해 돈을 뺏는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려 들다가도, 돈을 훔쳐 간 자신에게 변명조차 듣지 않고 용서하려는 동백에게 울면서 화를 낸다. 이처럼 향미는 나의 초라한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잘 살아보고자 하는 평범한 삶에의 열망마저 감추기 위해 그는 매사에 비관적인 여성으로 자신과 타인을 속이는 인물이어야만 한다. 커다랗고 멍해 보이기만 하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때, 향미의 복잡한 감정은 데뷔 13년 차의 손담비를 마치 새로 만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단순하지 않은 사람들을 연기하는,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배우들을 주목하고 있다. 대학생으로 살다가 편의점에서 강도를 잡은 청년은 배우가 되어 여장을 하고, 터프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려다 섹시한 콘셉트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던 여성 가수는 배우 전문 소속사로 옮겨 가족에게서도 외면받은 성매매 여성을 연기한다. 우연히 얻은 기회였을 수도, 헤매고 헤매다 얻은 귀중한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난 두 사람이 각자에게 어울리는 방향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같은 방송사의, 같은 시간대의, 주중 드라마에서 가장 화제성 높은 사람들로. 그야말로 흥미로운 우연이다.
- 에디터
-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