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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어요"

2021.08.26김영재

김준수는 숙명인 듯 무대에 자신을 밀어 올린다. 그래야만 했고 그럴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엠브로이더리 디테일 수트, 알렉산더 맥퀸. 네크리스, 현케이.

스터드 베스트, 바이 디 바이. 이어커프, 월간. 레더 셔츠, 팬츠, 체인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축구선수를 꿈꿨을 만큼 운동 좋아하잖아요. 올림픽 열심히 챙겨 봤어요?
JS 그럼요.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TV를 켜고 올림픽 중계 방송을 돌려 봤죠.
GQ 새롭게 흥미가 생긴 종목 있어요?
JS 어머니가 배구선수였어요. 부모님하고 형하고 탱탱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주고받으며 놀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배구는 친숙하긴 하지만 경기까지 찾아보진 않았거든요. 이번에 여자 국가대표팀 경기를 응원하면서 봤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GQ 어휴, 어머니께서 손이 매우셨겠네요.
JS 엄청요. 혼날 짓을 해서 등짝을 맞으면 일주일이나 얼얼했어요.
GQ 본인과 어울릴 것 같거나 배워보고 싶은 종목도 발견했을까요?
JS 펜싱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어릴 적에 날렵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순발력이 중요한 종목이니 소질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GQ 경기장 밖의 이야기가 궁금한 선수는요?
JS 김연경 선수요.
GQ 어떤 점이 궁금한데요?
JS 슬럼프에 빠졌거나 진짜 힘들었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들어보고 싶어요.
GQ 김준수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이겨내요?
JS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어떤 일을 하든 당연히 얻는 것과 잃는 게 있어요. 하지만 예전의 저는 얻는 것만 당연하게 여기고 뭔가 잃으면 제 자신이 불행하다고만 느꼈어요. 심리적인 슬럼프를 겪으면서 어느 순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잃는 것도 당연하고, 나는 누구보다 얻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고 나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어요.
GQ 연예계와 스포츠는 다른 분야지만 치열한 순위 경쟁과 노력이라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잖아요.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보는 마음이 남다르지 않을까 짐작했어요.
JS 아무래도 그렇죠. 자신에게 거는 주위의 기대와 관심, 그런 부담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도 비슷해요. 그래서 경기 결과에 만감이 교차하는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들어요. 저를 되돌아보게 되기도 하고요.

쇼트 재킷, 홀리넘버세븐. 벨트 디테일 글러브, 벨앤누보. 이어 커프, 티에르. 부츠, 8 at yoox.com.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루종, 팬츠, 모두 송지오.

GQ 김준수의 사전에서 ‘정상’이란 단어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JS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잖아요. 1위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전성기가 한풀 꺾였을 때, 지금까지 열심히 잘했다 싶거나 더 이상 아쉽지 않다면 정상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GQ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정상을 찍었다고 생각해요?
JS 제 입으로 어떻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아쉬움은 없어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보장된다고 한들 그 과정에서 제가 견뎌야 했던 체력적, 정신적 부담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지난 인생을 다시 살고 싶지 않다고요.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진 못할 것 같아요. 못해요. 왕관의 무게라고 하잖아요. 연예인으로서 공인으로서 얻고 누리는 만큼 속이 닳도록 감내해야 하는 것도 많아요.
GQ 그 무게를 견뎌내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JS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어요. 처음부터 에베레스트를 올라야 했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 거예요. 뒷동산을 넘었더니 동네 산이 눈앞에 보였고, 그다음은 청계산, 한라산, 백두산이 차례로 나타났죠. 이만큼 해냈으니 조금 더 노력하면 저기도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딪혔던 것 같아요.
GQ 데뷔 19년 차인데 그동안 한결같이 같은 일을 해왔다는 것도 대견한 부분이죠.
JS 이 일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줘야만 계속할 수 있잖아요. 노래라는 가장 좋아하는 걸로 계속 활동하고 있으니 큰 축복을 받았어요. 저는 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뮤지컬 배우로 각인됐지만 10년 넘게 방송 활동을 못 하는 동안 저를 보러 공연장에 오신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만큼 최선을 다하기도 했고요.

송치 버건디 코트, 벨벳 셔츠, 모두 김서룡 옴므. 팬츠, 알렉산더 맥퀸. 초커, 밸엔누보.

블루종, 팬츠, 모두 송지오.

GQ 노래를 통해 느끼는 아주 진한 행복은 뭐예요?
JS 카페에서 제 노래가 나올 때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더라고요. 오래 전에 스키장에 갔다가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소소하지만 정말 큰 행복이에요.
GQ 김준수가 정말 노래 잘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알아요. “노래 잘한다” 식의 이야기 말고, 뮤지컬 동료들은 김준수의 목소리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JS 음, 이런 이야기를 듣긴 했어요. 슬픈 감정의 노래를 누구보다 슬프게 잘 부른다고. 그리고 캐릭터에 따라 소리를 조금씩 다르게 내거든요. 드라큘라나 죽음 같은 초월적인 역할을 연기할 땐 목을 긁으면서 부르는 탁성을 일부러 많이 구사해요. 다른 분들은 탁성을 쓰면 목이 간다고 하지만 저는 아무렇지 않아요.
GQ 가수, 뮤지컬 배우 중 어떤 호칭이 더 익숙해요?
JS 뭐든 다 좋아요. <미스터트롯>, <미스트롯2>를 통해 저를 알게 된 분들은 심사위원님, 마스터님이라 부르기도 해요. 호칭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알아보고 불러주면 감사하죠.
GQ 호평, 수상, 인기 등의 외적인 성과 말고 뮤지컬 무대에서 얻는 개인적인 수확은 뭔가요?
JS 다른 인생을 간접적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의미가 커요. 모차르트나 왕이 될 수 있고, 드라큘라와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기도 했어요. 또 즐겨 봤던 만화 <데스노트>의 엘도 됐어요. 그들의 대사와 가사를 통해 나름 인생에 관한 배움을 얻기도 해요.
GQ 어떤 작품을 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를 느꼈죠?
JS 아무래도 <모차르트!>겠죠.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게 해준 데뷔작이기도 하고, 그 당시 많이 불안해하고 고민하고 두려워했던 제 마음을 달래주고 용기를 북돋워준 작품이에요.
GQ 2019년 초연에 이어 <엑스칼리버>의 두 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연기하는 아더로부터는 무엇을 발견했어요?
JS 아더는 엑스칼리버를 뽑고 왕이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지녔지만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혈통을 모른 채 자랐는데 그 평범함이 그를 강하게 만들어요.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 점점 강해지는 거죠. 극 중에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을까?”라는 대사가 있어요. 평범하기 때문에 주어진 미션을 잘 극복하고 나아가면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요.
GQ 김준수가 이룬 것들도 누구든 할 수 있을까요?
JS 네,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셔츠,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스트랩 디테일 화이트 코트, 바이 디 바이. 스니커즈, 컨버스 × 릭 오웬스.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모차르트!>, <엘리자벳>, <드라큘라> 재연 때 더 깊어진 해석과 완성도를 보여줬어요. <엑스칼리버>는 지난번과 무엇이 다른가요?
JS 캐릭터들의 서사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몇몇 장면을 더하거나 뺐어요. 아더의 경우 신이 선택한 소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엑스칼리버를 뽑기 위한 연습 장면을 덜어내고 숙명을 지닌 그가 고뇌하는 모습에 중점을 뒀어요. 덕분에 아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졌어요.
GQ <엑스칼리버>에서 부르는 넘버 ‘왕이 된다는 것’에 “내 한계를 넘어 더 가볼 수 있을까 날 향한 의심을 지울 수 있을까”라는 가사가 있더군요. 창작자, 아티스트와도 뗄 수 없는 고민이라 생각하게 돼요.
JS 동의해요. 저는 자의든 타의든 경쟁 관계 속에 있느라 한시도 긴장을 푼 적이 없어요. 긴장하며 도전하고, 다시 미션이 주어지는 패턴을 반복하며 살았죠. 그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젠 어떤 무대라도 감당할 수 있지만 아무리 연습을 철저히 한들 늘 미션처럼 느껴져요. 특히 뮤지컬 무대는 긴장이 많이 돼요. 세 시간 동안 한 번의 실수 없이 클리어해야 하니까 부담이 커요.
GQ 무대에서 긴장은 언제 사라져요?
JS 첫발을 떼는 순간요. 신기하게 싹 사라져요.
GQ 진짜 무대 체질이네요. <모차르트!>, <엘리자벳>등 라이선스 뮤지컬을 통해 원작자의 극찬을 받기도 했잖아요. 해외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해요?
JS <드라큘라>의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혼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인 브로드웨이에도 너처럼 노래하는 보컬은 없다, 무조건 진출할 수 있다, 그러니 영어부터 하라고.
GQ 오, 그래서요?
JS 다음 생에 도전해보겠다고 했어요. 일본어는 좀 할 줄 알지만 영어는 자신 없어요. 노래만 한다면 해볼 만한데, 영어 대사와 연기는 욕심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GQ 그래서 완전히 접었어요?
JS 그렇다기보다는 열린 결말로 할게요.
GQ 만약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로 다시 태어난다면 누가 떠올라요?
JS 대부분 불행한 캐릭터들이라 딱히 끌리진 않네요. 해피 엔딩이 없어요. 그럼에도 하나를 꼽으라면 <엘리자벳>의 죽음 캐릭터. 어쨌든 죽지 않는 영생의 존재니까요.
GQ 그럴 수 있다면 뮤지컬은 평생 하고 싶어요?
JS 늙지 않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조건이에요?
GQ 그렇다고 치죠.
JS 그럼 계속할래요. 브로드웨이에도 도전할 수 있겠네요. 영어 공부에 5년 정도 투자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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