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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비만 벗어나는, 식단과 운동으로 감량하고 다이어트 약으로 유지하는 방법

2025.06.09.조서형, Matthew Roberson

Kelsey Niziolek; Getty Images

이 40세의 코미디언은 팬데믹 동안 큰 자각을 경험했다. 지금 그는 체육관까지 걸어가고, 라자냐 대신 사과를 먹으며, 교통 체증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기를 선택했다. 이안 카멜은 요즘 사과를 많이 먹는다. 실제로 인터뷰 중에도 사과를 베어 물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이 과일 덕분에, 코미디언이자 작가이며 <제임스 코든의 더 레이트 레이트 쇼>의 전 수석 작가였던 그는 한때 몸무게 190kg였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그가 영양학 석사이자 심리학 박사인 여동생 알리사와 함께 쓴 책 『T-Shirt Swim Club: Stories from Being Fat in a World of Thin』에서는 만성적으로 과체중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조기 사망에 이르는 이유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카멜은 체중 감량 여정 중 작가이자 GQ의 전 에디터인 다나 슈워츠와 만나 결혼했다. 첫 아이의 출생은 그의 삶에 중심을 잡아주었다. 최근에는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스탠드업 스페셜 <Comfort Beyond God’s Foresight>에 출연했고, 2016년부터 인기 팟캐스트를 이끌고 있다. 그는 체중을 감량하는 데 있어 ‘옳고 그름’이란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엄격한 식단을 선택하든, 약물 주사에 의존하든, 혹은 둘 다 병행하든, 카멜은 “하루라도 더 살아 있으려는 것에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해본 것 같다. 책까지 한 권 썼으니 말이다. 참고로, 나도 그 책을 읽었다.
정말 고맙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책에 담긴 내용을 다시 떠올리며 마음이 흔들리거나 힘든 순간이 있었나?
그렇다. 특히 몇몇 부분은 정말 되돌아가기가 어려웠다. 어린 시절의 괴롭힘, 판단, 그리고 그 위에 겹쳐지는 감정들까지. 중학교 시절, 팔에 튼 살이 생기기 시작했던 그 느낌이 정말 종말 같았다. “이게 뭐야, 이런 게 생겼어!” 하며 놀라고, 나중에 알아보니 그게 영원히 남는 거더라.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런데 그게 어쩌면 멋진 일일 수도 있다. 12살 때 생긴 자국이라니. (조커 목소리로) “어떻게 이 흉터가 생겼는지 알고 싶어?”

그런 감정을 겪을 때는, 내가 ‘나’라는 한 사람일 뿐이다. 지금은 성인이 되어 그 시절을 돌아보면, “그땐 내가 12살이었잖아”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쓸 당시에는 아들이 없었다. 지금은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이 있고, 그 아이가 혹시라도 그런 일을 겪게 될까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취약함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다행히도 내게는 사랑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가족들이 많았다. 그 점에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또 다른 힘든 지점은, 오랫동안 내가 연애 관계에서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되짚는 것이었다. 내가 나 자신을 대했던 방식,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어떻게 취급하도록 내버려 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여성들을 대했던 방식이 아주 무심했다. 마음을 열지 않았고, 단지 성적인 관계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확인받으려 했던 시절이었다. 그걸 다시 돌아보는 건 참 고통스러웠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약자로 여겼다. 실제로 많은 면에서 약자였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약자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 반대편에 와서 돌아보면, 나는 정말 개차반이었다. 정말 나쁘게 굴었고,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물론 불법적인 행동을 한 건 아니다. 다만, 사회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기억뿐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스스로를 어떻게 여겼는지 등의 사실이이 모든 게 너무 왜곡돼 있었다. 이건 많은 사람들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내 일이 아닌 건 알지만, 조나 힐이 서퍼 여자친구와 있었던 일—그가 굉장히 통제하려 했던 사건이 터졌을 때, 모두가 그 이야기에 달려들지 않았나. 나도 그런 식으로 행동한 적은 없지만, 그 행동 패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아, 이 남자도 자기 자신을 ‘뚱뚱한 남자, 모든 연애에서 약자’라는 이미지에 갇힌 채로 살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2019년 ‘Game On!’&nbsp;세트에서의 카멜. CBS Photo Archive/Getty Images

흥미로운 이야기다.
특히, 전형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사람과 만나게 될 때는 더욱 그렇다. 어릴 적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고 여겼고, 나는 초대받지 못한 채 ‘핫한 사람들’만의 파티가 열린다고 믿었다. 그런 이야기를 자기 안에 계속 들려주는 거다. 나이가 들어 그들과 같은 파티에 있게 되거나, 심지어 그들과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그 사고방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자아상을 떨쳐내는 데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정말 파괴적인 관계들을 불러온다. 그래서 옛일을 다시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 시절에 좀 더 잘 대해줬어야 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그랬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연애를 할 때면 늘 이런 느낌이 있다. ‘어, 내가 끌리는 사람이 나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뭔가 이상한데?’ 이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은 오히려 그 사람이 덜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
맞다. ‘왜 나를 좋아하지? 난 형편없는 인간인데. 너 멋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날 좋아한다니 바보 아냐?’ 그런 덫에 걸리는 거다. 사람들은 흔히 “노력이 필요해”라고 말하는데, 그건 치료가 필요하다는 뜻이고,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이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많은 면에서 식사와 비슷하다. 스스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치료나 성찰이 그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게 해주진 않지만, 그걸 인지하게는 해준다. 그리고 때로는, 조금이라도 멈춰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준다.

그걸 인지하고 멈추려고 한다고 해서, 감정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마치 냉장고 앞에 서서 여섯 번째 피자 조각을 아무 맛도 못 느끼면서 먹고 있는 순간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 지금 폭식 중이구나. 멈춰야겠다. 산책이나 나가자’라고 알아차릴 수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적어도 피자를 들고 산책하라는 거네.
맞다. 피자를 들고 움직여라. 하지만 완전한 ‘먹이 폭주 상태’에 이르기 전엔 멈춰야 한다. 책에서 심장마비가 온 줄 알고 911에 전화하기 위해 거리로 내려간 이야기를 했다. 혹시라도 내가 기절하면 구급대원이 날 끌어내려야 하는 상황이 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그게 내 마지막 경고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나를 덮쳤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망가져 있었는지, 얼마나 간절히 ‘뚱뚱한 사람’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난 절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다른 뚱뚱한 사람들과는 달라. 냄새도 안 나. 직장도 있어. 옷도 잘 입어.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르다. 구급대원들도 내가 뚱뚱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으면 좋겠어.’ 이런 생각을 했다.

결국은 또 하나의 자기부정 행위였다. 알고 보니 공황 발작이었고, 나중에 알게 된 건 공황 발작과 심장마비는 처음에 느낌이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그건 참 끔찍한 일이고, 공황 발작을 줄이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심장마비가 아니란 걸 알고 나서 집으로 다시 올라가, 원격 진료를 예약했다.

진료 중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지금 당장 와야 할 외래 진료소가 있다”고 하더라. 거기 가보니 내 혈압이 200이 넘는 숫자였다. 아주 높았던 거다. 나중에 알게 된 건강한 혈압 수치는 보통 100에서 130 사이란 걸 알았다. 간호사인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엄마도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수액을 맞아야 했다. 놀라운 건, 그때 이미 나는 체중 감량을 시작한 상태였다는 거다. 결국 90kg를 감량하게 만든 바로 그 과정을 시작하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나는 설탕과 소금이 혈압을 높인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지금은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런 정보도, 그걸 아는 사람들은 그게 보편적인 지식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나는 그때까지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

그 얘기도 책에서 봤다. 건강식품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전혀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귀여운 라벨 하나 붙여놓은 경우도 있다는 것. 초록색으로 건강해 보이는 디자인을 하고서.
맞아, 1990년대에는 건강식품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냥 박스를 초록색으로 만들었지. 그러면 “오, 나 영원히 살겠네” 하는 기분이 들었다. 히든밸리 랜치 드레싱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한 게 기억난다. 포장에 초록색이 있고, 채소 그림도 있었잖아. 근데 랜치는 절대 몸에 좋은 게 아니다.

그 시점에서 샐러드에 그냥 푸아그라를 쏟아붓는 거랑 다를 바 없다. 진짜 그렇게 나쁘다. 그런데 나는 그런 걸 전혀 몰랐어. 나는 음식 배달을 자주 시켜 먹었는데, 사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한다. 조리된 식사가 집으로 배달된다. 들으면 좀 있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비싸지 않다. 지금 장 보러 가는 것보다도 안 비쌀 수 있다. 그냥 그걸 먹었다. 그리고 아몬드버터를 엄청 먹었는데, 그거 칼로리 함량 보면 놀랄 거다. 그리고 육포도 많이 먹었는데, 단백질은 풍부하지만 거의 소금 덩어리다.

남자들을 위한 단백질이지.
맞아, 남자들을 위한 단백질! 하지만 동시에 남자들을 위한 나트륨도. 나는 이미 체중 감량을 시작했고 건강을 의식하려고 노력 중이었지만, 혈압이 200을 찍었던 그날 밤에는 아무 약도 먹고 있지 않았고,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술을 마신 날이었다. 술을 마시고 치킨 윙도 한가득 먹었지. 그 일 이후로는 병원에 정기적으로 가기 시작했다. 혈압약도 처방받았고, 의사가 나에게 비만 수술을 하게 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게 예정된 결말이라는 식이었다. 수술 전까지 체중을 줄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될 거다”라는 뉘앙스였지. 나는 그걸 도전처럼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나 수술 없이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듣자하니, 살을 뺀다는 것에 대해 경험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수치심과 비난을 쏟아붓는 일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토할 정도로 먹고 또 먹고 싶었던 감정, 그 식욕의 소음 같은 걸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 말이다. 나에겐 평생을 따라다닌 감정들이야. 내가 생각하는 체중 감량의 핵심은 이거다: 네가 이 행성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가족이나 친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바닷가에서 하루 더 누릴 수 있는 것—그런 걸 가능하게 해주는 게 있다면 난 무조건 찬성이다. 방법이 뭐든 상관없다. 나도 이른바 “올바른 방법”으로 90kg을 감량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딴 건 신경 안 쓴다. 내 말은, 이런 문제에 대해 실제로 겪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판단하는지 정말 짜증난다. “올바른 방법”으로 해봤거나 해보려 했던 사람들, 그러니까 세상 모든 뚱뚱한 사람들과 얘기해봐라. 나도 여전히 나 자신을 뚱뚱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중에 “나는 이 몸이 좋아요. 사람들한테 괴물 보듯이 쳐다받는 것도 즐기고, 노드스트롬 매장 가면 직원들이 나를 못 본 척하는 것도 너무 좋아요” 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우리는 아무도 세상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팻 리버레이션’이니 뭐니 해도, 자기비판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그 판단질 같은 건 그냥 지들끼리 하라고 해. 자기들이 그 삶을 살아본 적 없다는 걸 인정하라고.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세상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 너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관심 없어.

올바른 방법으로 살을 뺐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어떤 방법을 썼고, 지금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걸 하고 있는지 말해달라.
일단 내가 이 이야기를 할 때 꼭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90kg을 감량할 수 있었던 나만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매우 중요한 요소니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구에게든 꼭 전하고 싶다. 나는 그 당시 싱글이었고, 아이도 없었고, 수입은 꽤 괜찮았으며, 팬데믹 기간 동안 안정적인 직장도 있었다. 감량 초기 최소 10개월 동안은 연애 상대도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피자를 시켜 먹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를 실망시킬 일도 없었고, 아이 때문에 수면 패턴이 꼬이는 일도 없었고, 친구들이랑 바에 가거나 외식하러 나가는 유혹도 없었다. 쉽진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큰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는 조건들이 나한텐 없었던 거다.

또 하나는 식사 배달 시스템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재정 상태는 다르겠지만, 나는 일주일에 200달러(한화 약 27만원) 조금 넘게 썼다. 비싸 보일 수도 있지만, 포스트메이츠 같은 걸로 시켜 먹는 돈을 생각해 보면 금방 200은 넘는다. 내가 했던 방식은 간헐적 단식이었다. 정오쯤에 단백질과 채소가 포함된 식사를 했다. 닭가슴살과 그린빈, 참치 샐러드, 스파게티 스쿼시와 칠면조 미트볼 같은 식단이었다.

꽤 괜찮게 들리는데?
진짜 맛있다. 내가 사용하는 회사는 ‘선페어(Sunfare)’라고, LA 지역에서만 운영하는 것 같다. 전국적으로 서비스하는 곳으로는 ‘팩터(Factor)’가 있는데, 그들도 내 팟캐스트 스폰서 중 하나다. 정오엔 단백질과 채소가 포함된 식사를 하고, 오후 2시쯤에는 과일 하나, 오후 4시쯤에는 작은 채소 반찬—예를 들면 콜리플라워 트레이나 작은 샐러드 같은 걸 먹는다. 오후 6시에는 또 한 번의 단백질과 채소 식사, 오후 8시에는 과일 하나, 그리고 그걸로 끝. 그다음에는 그냥 잠을 잔다. 그렇게 하고, 하루에 만 보를 걸었다.

체중은 정말 빠르게 줄어들었다. 처음엔 속도가 느렸지만, 한 번 속도가 붙자 정말 정말 정말 빠르게 빠졌다. 나는 매우 엄격하게 했고, 매일 혈압을 쟀으며 그로 인해 공황 발작도 겪었다. 그런 공포감 또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더 건강한 수치를 원했으니까. 그 시기에는 그렇게 식사했다.

그 이후 나는 훌륭한 제빵사인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세상이 다시 열렸고 나는 다시 식당에 가고 싶어졌다. 내 삶을 조금 더 살고 싶어졌다. 아주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아내와 그녀의 친구 두 명과 저녁을 먹으러 나갔을 때인데, 나는 여전히 선페어 식단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파마산 치즈를 얹은 닭요리를 먹는 그들을 보며 앉아만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뜨거운 차를 마시며 식욕을 억제했다. 그 치킨을 너무나도 먹고 싶다는 감각 외에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서 촛불에 손을 넣고 싶을 정도였다.

진짜 고통이다. 그 상황에서 가장 괴로운 음식이었겠네.
말도 마라. 진짜 맛있어 보였다. 그건 거의 내장 깊숙이 박힌 감각적 기억이다. 지금은 좀 더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끔 외식도 하고, 체중도 조금 다시 늘었다. 특히 갓난아이를 육아하는 동안에는 꽤 많이 쪘다. 지금은 그냥 조금 더 인식적으로 접근하고, 스스로를 더 용서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달 반 정도는 티르제파타이드(Tirzepatide)를 맞고 있었고, 이것도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젭바운드 계열 약물 중 하나다. 최근에 그 처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끊은 상태다.

그건 마치 망고향 액상 담배를 금지 당한 청년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정확하다 정말 힘들 거다. 내가 그 약을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아들이 태어난 뒤 내 체중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두 시간밖에 못 자고, 골든 글로브, 오스카, 마크 트웨인 상 관련 작업을 연달아 하고 있었다. 정말 집중도가 필요한 일들을 계속해서 맡았고, 나는 계속해서 에너지바인 라라바(Larabars)를 너무 많이 먹고 있었다.

나는 “올바른 방법”으로 다시 해내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지만, 내 자신에게는 90kg을 오직 절제와 노력으로 뺐다는 이유로 “다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을 고수하려다가 결국 내 아들의 졸업식을 못 보게 될 수도 있잖아? 우선순위가 정말 바뀌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했다. 뭐 어때. 만약 그 약을 로즈볼 경기장 대형 스크린 앞에서 주사 맞아야 한다 해도, 내 아이와 며칠이라도 더 같이 지낼 수 있다면 기꺼이 할 거야.

그래서 한 달 반 전에 그 주사를 시작했고, 음식에 대한 집착에서 정말 해방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가 하는 일은 얼핏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스트레스가 심하다. 예전에는 맛있는 육포 하나를 먹거나 라라바를 하나 먹는 것에서 만족감을 얻곤 했다. 마치 좋은 농담 하나를 썼을 때 느끼는 그 만족감과 같은 감정이었지.

“무언가 필요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걸 먹음으로써 충족되는 느낌. 농담이든 이야기 구조든, 무언가 잘 안 풀릴 때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게 된다. 그 주사는 그 감각을 없애줬다. 고통스러운 부분이 사라졌고, 스트레스에 굴복해서 폭식하던 그 식욕 폭발의 순간들도 사라졌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내 삶에 추가한 요소였다. 그 전에는 운동을 했다. 하루에 최소 30~45분 정도 심박수가 150 이상으로 올라가는 유산소 운동을 했다. 주 5회는 헬스장에 갔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걸어갈 수 있는 헬스장에 등록한 것이다. 차를 타고 가서 주차하는 것—그리고 LA에서는 주차비도 들지—그런 번거로움을 전부 없애버렸다. 지금 다니는 헬스장은 걸어서 25분 정도 거리다.

딱 좋은 거리다.
완벽하다. 팟캐스트 듣기 좋은 시간이지. 그리고 정말 많은 물을 마신다. 식욕을 이겨내는 방법은 가능한 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실 수 있는 만큼 물을 마시면, 사실 배고픈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되게 바보 같은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 독자들 중에 바보 같은 사람 많다. 이 얘기 들으면서 “맞아!” 할 거야.
나는 진짜 바보 같은 사람 맞다. 아침엔 물 벌컥벌컥 마시고, 오후에도 마신다. 지금도 최대한 단백질과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한다. 사과를 정말 많이 먹는다. 하루에 세 개에서 네 개는 기본이다.

와, 난 그 정도는 아닌데. 멋지다.
의사들은 하루 두 개 정도로 줄이라고 하긴 한다. 하지만 생각해봐. 그거 아니면 라자냐야. 그러니까 사과를 먹는 거지. 그리고 나는 블루베리를 정말 사랑한다. 블루베리는 진짜 좋은 베리다. 최고의 베리는 아닐 수 있지만, 항상 평균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는 건 블루베리라고 생각한다.

이건 진짜 아재 같은 얘기인데, 메타뮤실(Metamucil). 어떤 사람들은 다이어트할 때 탄수화물을 아예 안 먹으려고 한다. 메타뮤실엔 탄수화물이 있지만 정말 적다. 이건 물을 마시게 유도하면서도 포만감을 준다. 칼로리도 낮고. 혈압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특히 섬유질 섭취를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사과, 메타뮤실, 채소, 단백질을 기본으로 하고, 한 주에 한 번쯤은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그냥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내 건강이 좋아질수록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에 대한 욕구는 점점 줄어든다. 아이스크림을 안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먹었을 때 더 몸이 힘들다.

나도 그래. 아이스크림 거의 안 먹게 됐어.
야, 그게 제일 끊기 어려웠어. 진짜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거든. 며칠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그 후 이틀 동안 진짜 숙취 같은 기분이 들더라.

오늘의 카멜은 어떤가?

체중을 감량한 이후 사람들이 당신을 다르게 대하는지 물어보려고 했습니다. 혹시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상하다. 사람들이 더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걸 가장 강하게 느끼는 건 LA의 교통 상황에서다. 예전엔 누가 차에서 소리칠 때 “꺼져, 뚱땡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냥 “꺼져, 멍청아!”라고만 한다.

며칠 전에 다시 ‘뚱땡이’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아, 그래. 지금까지 해온 걸 다시 돌아볼 때가 됐구나’ 싶었다. 맞다, 사람들은 뚱뚱한 사람에게 다르게 대한다. 난 꽤 외향적이고 매력 있는 뚱뚱한 사람이었는데도 그렇다. 그래서 더 아쉽다. 우리 사회가 뚱뚱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안타깝다. 사실, 우리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요즘 문화에서 가장 심각한 전염병은 ‘자존감의 전염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몸에 안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나쁘게 느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건 다름을 지닌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뚱뚱한 사람, 게이, 트랜스젠더 등등 말이다. 이 모든 건 자존감의 심각한 결핍에서 비롯된다. ‘내 인생은 이렇게 엉망인데, 왜 저 사람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라도 받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조차 ‘특별 대우’처럼 느껴질 수 있다.

뚱뚱하든, 무엇이든 간에, 더 건강한 삶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해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여성들과의 관계든, 내 자신과의 관계든 그 모든 행동을 바꿔놓은 전환점은, 이를 악물고 몇 주간 정말 건강하게 살아본 경험이었다.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가발전처럼 지속되는 무언가가 됐다. 그게 나 자신에 대해 진짜 의미 있는 방식으로 더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치즈케이크 한 입 먹는 것만큼이나 좋아졌다. 진짜로 그렇다!

왜냐하면 치즈케이크는 정말 맛있으니까.
치즈케이크는 진짜 맛있다. 그래서 말인데, 만약 누가 수술이나 오젬픽(Ozempic) 같은 걸 ‘반칙’이라고 여긴다면, 그럼 매년 여섯 종류의 새로운 오레오를 내놓는 건 대체 뭐라고 부르겠는가?

와.
우리한테 뭔가를 먹게 만들기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실험실과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가 겨우 약국 하나쯤 아군으로 삼았다고 해서 그게 반칙이라고? 말도 안 된다.

오젬픽은 매일 나비스코(Nabisco)와 싸우고 있는 거군요.
오레오가 림까지 자유롭게 달려갔는데, 미안하지만 우리가 디켐베 무톰보를 드래프트했을 뿐이다. 이제 다른 방법으로 득점해야 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