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호에겐 동심이 있지!

GQ 오늘 촬영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음악이었어요. 착장이 바뀔 때마다 직접 음악을 선곡했죠. 마치 DJ처럼요.
KH 어렸을 땐 음악을 늘 들었어요. 방에 혼자 있으면 공부보다는 공상을 많이 했는데 그때마다 음악이 더 넓은 세계를 열 줬어요. 음악에 심취해 있다 보면 온갖 상상이 절로 펼쳐졌거든요.
GQ 음악과 함께했던 그런 시간들이 연기에도 분명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KH 이게 또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연기할 때 가끔 차 안에서 음악을 듣긴 하지만, 그 음악에 함몰돼서 그날 찍어야 하는 신들의 분위기를 내가 먼저 가져가게 될까 봐. 그래서 한편으론 음악을 연기와 연결하는 걸 경계하기도 해요.
GQ 모두의 작업이니까.
KH 그렇죠. 조금 전 내가 차에서 감상했던 음악의 에너지가 오늘 내가 연기해야하는 장면을 지배하면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음악 하나로 인해서 제 연기가 너무 선명해지면 안 되는 거죠. 연기를 입체적으로 가져가려면 좀 비워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님들의 의견도 한 부분씩 차지해야 하는데 자칫 내 음악적 몰입이 이런 틈을 주지 않을까, 혹은 지배하는 건 아닐까, 늘 조심하죠.

GQ 반면 오늘 화보는 배우 윤경호의 무대였으니, 선곡한 음악에 풍덩 빠져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춤도 췄고요!
KH 즐거웠어요. 어떤 연기를 준비할 때, 저마다 자기만의 주머니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과거의 기억일 수도 있고, 어떤 상상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는데, 제 경우엔 그 주머니 안에 음악들이 가득 들어 있는 거죠.
GQ 아까 춤을 출 땐 샤기 Shaggy의 ‘Boombastic’을,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소품을 들었을 땐 젬 Jem의 ‘They’를, 또 묵직한 포트레잇을 찍을 땐 스팅 Sting의 ‘Shape of My Heart’를 고민 1도 없이, 착착 틀었잖아요. 마치 도라에몽 주머니 같았어요.
KH (미소) 맞아요. 이럴 땐 확실히 음악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이라는 가면을 쓴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좀 있죠.
GQ 오늘 음악들이 꼭 그랬어요. 변검처럼 윤경호의 분위기를 휙휙 바꿔줬죠.
KH 제가 종종 ‘가면’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제가 내향적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외향적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MBTI가 ‘I’거든요. 그것도 대문자 I.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연기를 너무 해보고 싶고, 이 표정을 정말 잘 살리고 싶고, 또 이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가끔씩은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몰입이 확 깨져요. 부끄러움도 훅 몰려오고, 눈빛도 흐려지고요. 그런데 그럴 때 ‘가면을 쓴다’라는 생각을 하면 많은 힘을 받아요. 예를 들면 수염이라든지, 안경이라든지, 헤어스타일, 메이크업, 또 어떤 상황에선 배역의 이름까지, 이런 것들이 전부 가면이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 음악도 제게 일루션을 입혀주는 굉장히 매력적인 가면이에요.

GQ 어떤 장치를 설정해두듯이.
KH 네, 하, 그런데 제가 연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게 참 민망할 때가 있어요. 제가 뭐 대단한 배우인 양 이야기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싶기도 하고. 제가 또 아시죠? 제가 말이 많은 편이잖아요. 하하하핳!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 끝도 없을까 봐.
GQ 아녜요. 실은 저도 오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배우 윤경호’의 이야기를 먼저 좀 채집해보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 윤경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던 인터뷰는 찾지 못했어요. 반면 작품 관련한 내용은 많았고요. 오늘 인터뷰가 이렇게 쭉 흘러간다면 ‘윤경호’를 새로 알게 되는 순간을 꽤 많이 만나지 않을까 싶어서 좋습니다. 전.
KH 그렇다면 아낌없이 들려드리겠습니다. 하하하핳!!
GQ ‘투 머치 토커’ 하면 늘 박찬호님이 떠올랐는데 이제는 정말 ‘윤경호’가 먼저 생각날 정도예요. 유튜브나 예능 출연 이후의 변화에 대해 물으면요?
KH 놀라워요.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한 일이고요. 제가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연기자로서의 모습이 있는데 그보다 최근 한 1년 사이, 유튜브나 몇몇 콘텐츠에서 보여드렸던 모습들을 더 많이 좋아해주시니까요. 이게 뭐랄까, 솔직히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다 싶다가도, 뭐 여전히 낯설고, 쑥스럽고 그런 것 같아요. 최근에 자주 하는 생각은 연기가 아닌 제 본모습을 이렇게 좋아해주시니까, 이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싶죠. 정말 큰 힘이 되고요.
GQ 맞아요. 배우 윤경호만큼 아저씨 윤경호나 형 윤경호의 모습도 너무 좋은 거죠. 재미도 재미지만 저의 경우엔 친근해서, 오늘 처음 만났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던 형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KH 고맙습니다. 진심이에요. 사실 저는 제 본모습이 콤플렉스였어요. 연기자로서 특별히 잘난 게 없다는 생각에서 아까 이야기했던 가면처럼, 어떻게 보면 더 많은 가면을 쓰려고 했거든요. 그렇게 연기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현장을 벗어나면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내향적인 윤경호로 살고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가 저를 좋아해준다면 당연히 그건 가면을 쓴 ‘연기자 윤경호’를 좋아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이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지만요. 그런데 최근에 유튜브나 예능에 출연한 뒤로 수다쟁이 아저씨인 제 본모습을 더 좋아해주시니까 이게 마음이 굉장히 행복하고, 뭐랄까, 아무튼 되게 좋았어요. 내가 가면을 벗은 모습도 좋아해주시는구나 싶어서요.

GQ 반응도 보세요? 댓글에 사랑스럽다, 귀엽다는 말이 정말 많아요.
KH 맞아요. 댓글이 정말 많이 달리잖아요. 특히 <핑계고> 같은 경우엔 진짜 너무 많이요. 그런데 네, 저는 다 봐요. 하하하하핳! 보면서 ‘이야, 어떻게 이 나이에, 나를 귀엽다고 해주시지?’ 싶은데 기분은 뭐 너무 좋죠. 감사하고.
GQ 다 본다고 하셨으니까, 그럼 기억에 남는 댓글도 있어요?
KH 있어요. <핑계고> 댓글에 어떤 분께서 이렇게 남겨주셨거든요? “밥 먹을 때 틀어놓고 윤경호 씨 수다를 듣고 있으면 밥 친구 같아서, 누군가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서 좋다”는 댓글. 그래서 이렇게 상상을 해보게 된 거예요. 요즘 1인 가구가 많잖아요. 저도 혼자 밥 먹을 때 많거든요. 누군가가 이렇게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제가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막 하고 있는 거죠. 그냥 이웃으로, 형이나 삼촌 친구 같은 존재로 이렇게 막 떠드는 장면을 떠올려봤는데 ‘그래, 누군가의 밥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거, 이거 의미가 있겠다’ 싶었어요. 누군가에게 친근한 사람일 수 있다는 거, 이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다’는 바람에서,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거든요?
GQ 그게 언제쯤이었어요? 중학생?
KH 아니요, 더 어렸어요. 한 예닐곱 살? 그 꼬마가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막연하게 유명해지고 싶어 했어요. 제가 연기에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 이런 고민 없이 그냥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엉뚱한 욕심이 생겼을 때가 있었어요. 아마 튀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나 봐요. 내성적인데 튀고 싶다니 모순적이죠?(미소) 그런데 어렸을 때도 이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난 잘하는 것도 특별한 것도 없으니까 사람들한테 주목받긴 어렵지 않을까. 그런 와중에 외모나 첫인상 이런 부분에서 오해를 받게 되니까 그게 콤플렉스로 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마음이 더 절실했던 것도 있어요. 유명해지면 이런 오해들도 안 받겠지? 난 사실 무서운 사람이 아닌데, 나 1980년생 맞는데, 내가 유명해지면 이런 오해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꽤 진지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지금 그 꿈을 이룬 거죠.

GQ 그렇네요.
KH 네, 지금은 어떤 분이 저를 갑자기 만나도 놀라거나 무서워하기보단 재밌다고 해주시고,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시고, 또 촬영 일정으로 먼 지방에 갔다가 우연히 작은 식당에 들르더라도 먼저 반가워해주시고 그러시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너무 바랐던 세상인 거죠. 그래서 이제는 또 이런 생각을 해요. ‘이분들에게, 나를 알고 있는 이 많은 분에게 그럼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저를 만나면 반가워해주시니까요. 저도 오래도록 ‘반가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거죠. 아주 잠깐 인사를 나누더라도 반가운 모습으로, 웃는 얼굴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면 좋겠다.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GQ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주신 김에, 그럼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배우’로 명확해지기 시작한 건 언제였어요?
KH 중고등학교 때였어요. 성당을 다니면서 성극을 경험하게 됐는데, 뭐 약간 재롱잔치 같은 분위기이긴 했지만(미소), 관객석에서 “잘한다” 뭐 이런 말들을 들었던 게 생각나요. 그러다 고3이 되면서 이제 진로를 결정해야 했는데, 사실 그때 제가 많이 힘들었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떤 의욕이나 꿈, 이런 희망들이 보이지 않던 시기였는데, 연극영화학과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땐 내가 연기를 하면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이 힘듦이 잠깐이지만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탈을 쓰고 사는 수동적인 삶을 바랐던 거죠.
GQ 그렇게 연기라는 걸 시작했는데, 거기에서 마주한 현실은 어떻던가요?
KH 벽이 가장 먼저 느껴졌죠. 이 많은 학생 중에서 내가 잘하더라도 다시 사회에 나가서 배우로서 작품에 쓰이고, 돈을 벌고, 유명해지는 건 정말 작디작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확률이겠구나, 이런 벽을 느꼈을 때 겁도 많이 났죠.
GQ 그러다 결국 어떤 희망을 발견했으니 지금의 윤경호가 있는 거겠죠?
KH 참 신기한게요, 그게, 그 희망이 말 한마디였어요. 제가 1학년 때 기성 배우분들과 합작으로 공연을 올리게 됐어요. TV에 나오는 선생님들이 오셔서 같이 연습하고 그랬는데, 그때 한 선생님이 저희를 맨날 혼내셨거든요. 거기서 저는 1학년이었고, 이제 3, 4학년 선배들하고 같이 연습하던 날이었는데, 그렇게 계속 혼만 내시던 선생님이 갑자기 저한테 칭찬을 한마디해주셨어요. “너네 잠깐, 스톱” 그러시더니 1학년인 저한테 “얘는 그래도 들을 줄 아네. 얘는 말을 들을 줄 알아” 이 한마디가 막막하고 메말랐던 제 마음에 작은 싹 하나를 틔우게 만들어줬어요. 그때 그 칭찬을 해준 분이 주용만 선생님이셨어요. 그 한마디 칭찬이 절 버티게 해줬죠. 어디 가서 깨지고 혼나더라도 ‘대신 난 들을 준 안다, 들을 줄 아는 배우다’ 이런 다짐으로 스스로 다독이고, 응원하고 그랬어요.

GQ 어쩌면 윤경호가 연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네요.
KH 네. 그런데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내가 만약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면 뭐가 없어졌기 때문일까? 반대로 내가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할 수 있고, 대신 단 하나의 재능만 가져가야 한다면 뭐가 필요하지? 굉장히 많은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호기심, 오지랖, 열정. 배움, 그런데 저는 이것 같아요. ‘동심’.
GQ 동심.
KH 네, 동심. 동심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동심 안에는 호기심도 있고, 오지랖도 있고, 걱정도 있어요. 또 거기에는 탐구하는 마음도, 거듭 궁금해하고 도전해보려는 마음도 있고요. 어린이들 보면 그렇잖아요? 이런 마음들을 우리가 늘 갖고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데 그럴 순 없으니까요. 동심이 품고 있는 많은 마음들, 태도들을 최대한 많이 느낀다면 배우 일을 하는 데 굉장히 좋은 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GQ 반대로 연기를 할수록 오히려 떨쳐지지 않는 고민도 있겠죠.
KH 있죠. 내 연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혹 발전이 없는 것처럼 보일까, 그냥 하는 연기처럼 보이진 않을까, 이런 걱정은 늘 있어요. 당연하게도 지금 제게 들어오는 모든 작품 하나하나는 정말 너무 소중하거든요? 그러니까 마치 예전에는 나무 하나를 열심히 키워서 겨우겨우 사과 한 알을 받아 먹었는데, 그런데 그 사과가 설익거나 크기가 작아도 참 맛있는 거죠. 그랬던 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많은 나무를 갖게 되고, 그만큼 많은 열매가 막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떨어지는 열매를 모두 받아내고 있는 거예요. 사과 하나를 손에 쥐었을 때의 간절함, 그 소중함을 이 많은 열매에서도 분명 느끼지만, 뭐랄까요, 제 체력이나 몰두해야 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할 때, 그럴 때 안타까워요. 한 작품에 몰두할 에너지를 내가 나눠 쓴다는 생각 때문에요. 네, 여전히 사랑받고 싶고, 오래오래 많은 작품을 하고 싶지만 내 손은 두 개고, 또 저처럼 옆에서 나무 하나를 정성껏 가꾸고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면 그 모든 열매를 내가 다 가져갈 순 없는 거고. 결국엔 솔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욕심이라면 욕심이란 걸 알아야 하고, 타성에 젖어 있다면 그도 역시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자기 객관화가 된다면 제가 하는 걱정들이 바로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게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이런 생각이 찾아오지 않길 바라죠.

GQ ‘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의 ‘예전’이라는 말에 기준을 세워본다면 그건 언제가 맞는 것 같아요?
KH 제가 수상 소감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상을 받아서 너무 감사하지만, ‘이런 상을 못 받고 살더라도 평생 연기만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했던 스물세 살 보조 출연자 시절의 윤경호에게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기준이라면 그때의 저인 것 같아요. 스물세 살 보조 출연자 윤경호.
GQ 생각해보면, 스물세 살 보조 출연자 윤경호가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잘 걸어올 수 있었던 건 무엇 덕분이었다고 생각해요? 윤경호를 지지해주고 밀어줬던 어떤 힘이요.
KH 그 칭찬 한마디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때때로 힘들고 막막하더라도 ‘그래, 난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 많은 배역 중 내 역할 하나 없을까’ 같은 용기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이 절실함과 또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칭찬 한마디는 제게 도대체 뭐였을까요.(잠깐의 정적) 지금 생각해보면 우산 하나랑 사과 한 알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살이 다 드러난 우산일지라도 그 비바람을 막기도 뚫기도 할 수 있었던 게 절실한 마음이라면, 다른 손에 쥔 사과 한 알은 언젠가 꽃을 피우고 나무가 될 수 있는 씨앗이라는 믿음, 희망 같은 게 아니었을까.
GQ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많은 작품을 담을 수 있는 넓은 마음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고요.
KH 고맙습니다. 다작은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다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정도를 잘 유지해야죠. 욕심부리지 말고 완급 조절을 잘해서요. 나이가 드니까 확실히 힘들어지는 부분들도 있어요. 하하하핳!
GQ 나이 이야기가 나와서요. 배우의 시간은 배역의 시간이기도 해서, 그 나이대에 좀 머물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KH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요, 다행히 지금 제가 배우로서 가장 좋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머물고 싶다면 지금 같아요. 저의 20대나 30대를 좋아해주셨다면 모르겠지만 그 시절의 저를 좋아해주셨던 분은 없거든요. 하하하하핳! 그래서 지난간 시점에는 미련이 별로 없어요. 배우로서 지금을 잘 살아낸다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저씨로, 또 부장님이나 과일가게 사장님처럼 꼭 어울리는 배역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럴 수 있을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