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78년 겨울

심은하 말고 이효춘이‘ 윤희’로 나온 1978년 <청춘의 덫> 마지막 회. 그리고 망사 쓴 혜은이를 지금, 보는 일.

국내 대중문화 자료 보존 상황은 매우 빈약한 형편이다. 배우 최불암을 만났을 때, 그가 통한의 목소리로 얘기했던 것은 MBC에도 <전원일기> 1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한편 MC 허참은 TBC가 문을 닫을 때 복도에 마구 버려진 비디오테이프를 주워 보관했다고도 말했다. 누군가의 ‘추억’이기 전에 모두의‘ 역사’일터, 우리는 그토록 소홀하기도 하다. 부족하긴 하지만 방송국별로 방송자료를 비디오 테이프나 DVD로 만들어 판매한다. 짐작하다시피, 모든 프로그램이 다 있진 않은데, 에디터는 MBC 프로덕션에서 제공하는 목록을 뒤지다 1978년 <청춘의 덫> 마지막 회를 발견하고 흥분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배달된 DVD를 보면서 솟구치는 수많은 느낌표를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은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파괴력을 발휘했다. 한편 함께 주문한 1979년 <MBC 10대가수가요제>에선 짙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양희은과 회색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를 입은 송창식이 환하게 웃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보다 더 묘한 윤수일이 있었고, 푸짐한 드레스 속에서 홀로 바지를 입은 정종숙이 호탕하게 웃고 있기도 했다. 인순이는 희자매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르는 무대에 반짝이는 모자를 쓰고 나와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마지막, 마침내 사회자 변웅전이 올해의 최고인기가수상을 발표한다. 수상자는 사진과 같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느라 소감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추억이기도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때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때만 가능한 일, 그런 정수가 서리서리 서려 있고,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장 흥미로운 역사를 체험하는 것이다. DVD는 대개 한 시간 프로그램 하나에 3만3천원이다. www.mbcpro.co.kr 02-789-0123

철저히 보이는 것만

토마스 스투르스가 경주에선 모란이 핀 담 너머를 들여다보고, 거제의 조선소에선 산업화라는 말이 되레 역부족인 총체를 목격하며, 어김없이 아파트에 가서 생각하고 서 있는다. 가로세로 3미터에 육박하는 사진들. 맞서는 사람만이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내년 1월 9일까지, 갤러리 현대.

새 책을 펼치다

새 책을 펼치다
1. <스틸 라이프> 안웅철, 시공사 사진가 안웅철은 전방위적 글쓰기를 혼용한다. 사진에 대한 후기가 됐다가, 일상에 대한 에세이도 됐다가, 취재 리포트도 된다. 사진가로 산다는 것의 면면을 두루 살펴볼 수 있게 됐다.

2. <비트윈> 황의건, 웅진윙스 ‘게이’가 바라보는 성 역할에 대한 이야기라고 재단한다면 너무 야박할 것 같다.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에 대해 조이고 푸는 문장은 외려 지극히 상식적이다. 또 산뜻하다.

3. <부케 드 파리> 정미영, 앨리스 파리에서 박물관이나 사람, 카페를 찾지 않는 것만으로도 돋보인다. 파리의 꽃 문화를 정육점부터 정원까지 샅샅이 뒤진다. 향기가 올라올 것 같은 꽃의 향연.

4. <서울 올레길 육백년 도성길> 이영근, 중앙북스 서울을 도보 단위별로 끊어가며 정리했다. 만만치 않은 작업에 더한 수고가 책 전편에서 묻어난다. 전통이고 현대고 가리지는 않았으나, ‘우아하게’ 선별했다.

5.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 있다> 고형욱, 사월의 책 충실한 백과사전이랄까? 영화에 비하면 늘 뒷전이던 영화 음악을 고형욱이 앞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시디까지 들어 있어 더욱 실용적인 쓰임이 있다. 에디터/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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