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환상 속의 서울

2014.08.06GQ

서울엔 많은 사람이 산다. 수도이자 복잡한 도시. 그 탓에 서울 시민들은 서울을 답답하게 여긴다. 하지만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와 <못된 건축>의 저자 이경훈 교수는 이 모든 게 환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울은 아직도 ‘제대로 된’ 도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의 제안은 서울의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

Architecture판형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서울을 애증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거창하게 시작하자면 서울의 가능성부터 묻고 싶다. 서울은 세계 어떤 곳과 비교해도 빨리 변하는 도시다. 가령 한 세대 만에 모든 주거가 아파트로 변했다는 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최근 사례로는 도어록이 디지털로 변하기까지 5년이 채 안 걸렸다. 수용력이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변화 가능성이 많다. 말하자면 ‘다이내믹’한 도시다.

그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아파트가 있다. 당신의 책 <못된 건축>에선 지금의 아파트 문제를 밀도는 낮지만 고층으로 짓는 저밀고층에서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공원을 넓게 만들고, 좁은 땅에 층을 높게 올리는 형태다. 그보다는 공지空地를 최대한 줄이고, 저층으로 넓고 낮게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조망권 확보라는 문제에 부딪힌다. 우리나라에서 조망은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녹지에 대한 무한한 애정까지 더해진다. 창문을 열면 답답하지 않아야 하고 나무가 보여야 한다. 이건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공원과 같은 공지는 항상 넓어야 하고,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파트를 좁은 땅에 높게 짓게 된다. 서울의 녹지 비율이 이미 30퍼센트에 가깝다. 다른 나라 대도시와 비교해도 꽤 넓은 비율이다.

공원은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는다. 예전에 용산 미군부대였던 자리에 공원을 만들지 말고 서민아파트를 짓자는 청년 건축가들의 아이디어가 있었다. 하지만 바로 반대에 부딪혔다.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의 주거공간이 비좁기 때문 아닐까? 그 까닭에 공공의 공간이 넓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공원을 만드는 의견에는 반대가 적은 것 같다. 그런 명분도 있겠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같은 사적 주거공간을 만들 때도 녹지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녹지를 넓게 만들기 때문에 경쟁하듯이 아파트를 높게 짓는다. 아니면 그 반대로 높게 짓기 위해서 공원을 넓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보통 땅의 건폐율(대지에 들어앉은 건물 바닥 면적의 비율)이 50퍼센트인데, 아파트의 경우 대개는 20퍼센트로 낮춘다. 그렇게 되면 용적률(건물 총면적, 각 층의 바닥 면적을 합한 전체 면적)이 250~300퍼센트라고 할 때, 10층만 지어도 될 집을 30층이 훌쩍 넘게 짓는 것이다. 지상의 건물 면적을 최대한 넓게 짓지 않으면 도시는 도시로서의 기능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오히려 저층고밀의 건물이 많아야 서울이 진정한 도시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이 대안이 될까? 맞다. 하지만 우린 저층고밀 주택을 제대로 지어본 경험이 없다. 지어본다면 상업적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아서 모를 수도 있지만, 건물은 굉장히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관습에 따르기 마련이다. 건폐율을 높이고 저층으로 지으면 아무래도 채광이 좋지 않은 공간이 생기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빛이 들지 않는 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어두운 방은 대체로 유럽의 주거 형태에서 볼 수 있는 공간 아닌가? 그래서 유럽에선 프렌치 도어, 즉 유리로 문을 만들어 집의 깊은 공간까지 답답하지 않게 한다. 밖을 향하는 창문이 방마다 필요할까? 오히려 창이 없는 공간도 필요하다는 접근이 도시 주거공간에 어울리지 않을까? 도시는 원래 빽빽하다. 그건 도시의 숙명이다. 큰 창은 큰 도로를 향하게 만들어 불편하지 않을 만큼 채광과 통풍의 여건을 마련하면 된다. 다른 집의 뒤통수를 보려고 어거지로 창문을 낼 필요는 없다. 게다가 녹지에 대한 맹신 때문에 좁은 건물 사이사이에 꾸역꾸역 나무를 심는다. 그러니 잘 자라지도 못한다. 내가 쓴 첫 책의 제목은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이다. 제목처럼 서울은 여전히 도시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서울은 도시화가 덜된 도시다. 원래 책에 붙이고 싶은 제목은 ‘매트릭스 서울’이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선 실제한다고 믿는 공간이 전부 가상이다. 이처럼 우리는 도시에서 살지 않으면서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은 답답하고, 복잡하다 여기고, 그 생각에 얽매여 오히려 녹지를 신성시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울과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다. 간단히 말해 서울이 불편한 이유는 아직까지 도시화가 덜되었기 때문이다.

저층고밀로 건물을 지으면 서울이 제대로된 도시가 될까? 아파트 단지에 공원이나 산책로를 만들면서 단지 입구 쪽 인도와 실제 주거공간 사이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니 단지 안에서도 차를 이용하게 된다. 주거공간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걸어 다니지 않는다. 그 탓에 도시는 활기를 잃는다. 아파트에서 내려다봐도 사람들이 어떻게 다니는지 전혀 보질 못할 정도다. 저층고밀 아파트를 만들면 땅의 크기마다 최대한의 건물을 지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도로와 주거공간이 가까워진다. 걸어 다니는 유동인구가 많으면 도시는 활기를 되찾는다.

작년, 서울시립대 건축과 김성홍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유럽에서 홍대와 상수동을 좋은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존의 주택 건물을 변화시켜 1층을 상업 공간, 2~3층을 주거공간으로 활용해 골목 안으로 유동인구를 끌어들인 사례가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어떤 도시든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도로 근처에 주거공간이 있다. 주거와 상업 공간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도시다운 모습이다. 홍대와 상수동은 음악과 공연이 항상 존재하고, 하나뿐인 가게도 많다. 사람들은 걸어서 그 공간들을 지나고, 자신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한다. 오히려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이 더 불편할 정도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의 모습은 촘촘 하지만 낮은 건물들이 빼곡한 모습이라는 점이다. 파리와 같이 광고에 종종 배경이 되는 도시의 모습은 전부 낮고 도로와 맞닿아 있는 건물들로 둘러싸인 형태다.

우리는 주거공간을 항상 단지로 만들려고 한다. 어떤 모습이든 단지를 만드는 건 못된 건축의 첫 번째 조건이다. 아파트를 비롯해 학교, 심지어 미술관도 단지 형태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어떤 문화이든 ‘구별 짓기’가 꽤 큰 줄기이기 때문일까? 이 것을 당위나 도덕의 문제로 보고 싶지 않다. 철저하게 돈과 연관 지어 이야기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유물론. 연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내수 경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걸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살아야 한다. 작은 상점, 대기업 자본과 떨어져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살아나려면 저층고밀 건물이 많아지고 건물이 도로 가까이 와야 한다. 그런 좋은 사례로 가로수길을 꼽고 싶다.

하지만 최근 가로수길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은 멀어진 것 같다. 찾는 사람들이 바뀔 수는 있어도 여전히 상권은 활발하다. 가로수길에 없는 것이 두 개 있는데 공원이 없고, 인도에 세워진 차가 없다. 이 두 가지만 만족시키면 서울 어디라도 도시다울 수 있다.

궁 근처는 어떨까? DDP도, 서울 신청사도 궁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한편 당신은 경복궁 앞에 있는 트윈트리타워를 덜 못된 건축으로 꼽았다. 동십자각 뒤로 트윈트리타워가 병풍처럼 배경이 되어준다고 했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트윈트리타워는 건조한 형태로 몸을 낮췄다. 배경이 되어 동십자각에 주목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의 남측은 공업적인 재료로 마감해서 정면이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니 동십자각이 선명히 드러난다. 다른 건물들과 비교해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주변 건물들이 유리를 사용해 반짝이는 것과 달리 트윈트리타워는 일부러 선을 흐트러뜨려 바탕이 되려고 했다.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광화문 교보빌딩 근처에 비각(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이 있다. 이 중요한 문화재를 주변의 어떤 건물도 배려하지 않는다. 전통 건축을 존중한다고 꼭 멀리 떨어지거나 공지를 확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바로 옆에 바짝 붙여 짓더라도 트윈트리타워처럼 의도가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궁 주변 건물을 필로티 방식으로 지어 사람이 걸어 다니면서 궁을 볼 수 있게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동의하기 어렵다. 건물 1층을 기둥으로 세우는 필로티 방식은 사람과 건물 간의 교류를 막는다. 1층엔 상점이 있어야 재미는 상점과의 교류에서 시작된다.

책에서 도로와 인접해야 하는 건물로 호텔도 중요하게 언급했다. 서울의 특급 호텔이 숨어 있는 점이 불편하다고 했다. 부티크 호텔인 W호텔은 산속에 있다. 그런 도시는 전무하다. 호텔이 도로 근처에 있어야 왕래가 편하고 교류 장소로 활용될 수 있는데, 서울의 특급 호텔들은 산속이나 최소한 언덕이라도 만들어 도보로 방문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해외에선 큰 도시의 호텔 대부분이 차 없이 도보로 방문할 수 있도록 도로 가까이 있는 것과 대비되는 방식이다.

서양에선 오래전부터 호텔 안에 있는 식당, 카페, 바가 교류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우리나라에선 호텔 밖에 있는 술집이나 바, 카페가 사적인 교류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서양과 우리가 인식하는 호텔의 모습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지금까지의 특급 호텔 대부분이 1960~1980년대에 지어졌으니 어쩔 수 없다. 호텔엔 용적률 인센티브가 있다. 다른 건물에 비해 20퍼센트 정도 더 지을 수 있는데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지을 수 있는데도 녹지와 주차장을 너무 크게 만들려다 결국 인접 도로와 멀어지고, 건물은 안쪽으로 숨어버린다. 호텔 1층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거닐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면 활기가 생긴다. 도심에는 여전히 호텔이 부족하지 않나?

서울역이 호텔이 될 수는 없었을까? 올해 초 도쿄역에 개장한 도쿄스테이션 호텔의 경우 고급 숙박은 물론이고, 쇼핑몰과 미술관까지 끌어들이면서도 외관은 잘 보존했다. 새로운 서울역 쇼핑몰은 장사가 안 돼서 현재 아웃렛으로 변했다. 오랫동안 서울의 중심이었던 서울역에 아웃렛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웃렛은 도심 외곽에 있어야 한다. 서울역 신청사 또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방식부터 설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방식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구청사의 경우 박물관,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건축가들이 주장했다. 최근엔 도서관, 박물관도 만든다고 하면 공원처럼 반대하지 않는다. 법규도 문제다. 공지를 마련하면 용적률을 높여주고, 최소 공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DDP가 문제인 건 DDP 자체의 문제보다 그 주변에 듬성듬성 심은 나무 아닐까? 그건 DDP의 생경하고 도전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제스처로 보이기도 한다. 먼저 이야기하자면 DDP엔 내 책임이 많다. 설계 지침을 내가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통해서도 DDP에 대한 해명을 하고 싶었다. 방금 말한 나무를 주변에 심은 것도 정책의 강박 때문이다. 한국적인 녹지 강박.

결국 DDP도 공원을 품고 있다. 개인적으론 지금 모습의 DDP보다 녹지가 훨씬 적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의 빽빽한 건물들 사이에서 성벽을 보존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기 때문에 완충하는 녹지가 필요했다. 녹지가 쓸데없는 곳에 있는 점이 문제지, 지금의 DDP는 필요에 의한 녹지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처음엔 그냥 공원만 만들자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지금은 ‘테크놀로지’를 보여줄 수 있는 건물이 됐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런 건물이 꼭 필요했다.

앞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DDP는 충분히 랜드마크로서 가치가 있다. 중국, 일본에서 DDP만을 보러도 많이 올 것 같다. 서울엔 랜드마크가 너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여줄 만한 건물이 없다.

꼭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건물이 필요할까? 한국의 ‘21세기’를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신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다. 좀 더 실험적인 건축을 통해 우리만의 건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서울이라는 지역의 특징과 동시에 21세기라는 시간을 함께 표현한 건물들이 부족하다. 한국 건축의 가장 큰 문제는 ‘오리지널리티’가 없다는 점이다. 어디서 본 것의 조합들이다.

DDP는 오리지널리티를 지녔나?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자신 있다. 한국 작가들 대신 자하 하디드의 작품을 뽑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서울의 오리지널리티의 핵심은 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수십 년 동안 고민해왔는데, 한국의 전통 건축을 계승하기보다는 그 건축을 배려하는 데 오리지널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윈트리타워와 같이. 이제부터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공모전을 하면 1차에선 떨어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보수적인 작품을 많이 출품한다. 그래서 누군가 2등 상금을 많이 주자고 제안했는데 그 의견에 동의한다.

페이퍼 아키텍처(실제 가능성보다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으로 제안하는 건축)에 대한 지원도 활발히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2등만 노리는 건축가가 많아지고, 도전적인 시도가 많아질 것이다.

하필 이런 말이 생각난다. 좋고 진부한 것보다 새롭고 나쁜 것이 낫다.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 창의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 것 같다. 분명 새로운 게 전부 좋지는 않다. 그걸 판단하는 건 역사다. 하지만 DDP는 역사가 좋은 평가를 내릴 것이다.

책 마지막 부분에 인상적인 주장을 실었다. SF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포스Force’가 건축에도 필요하다고 했다. 건축이 취향과 감성에서 시작하지 않고 논리와 이성으로 확인하게 하는 단위가 포스이고, 한국 건축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한국 건축의 또 다른 문제가 합리화다. 설계는 직관적으로 하면서 마치 엄청난 논리가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그러니까 건축이 대중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이다. 억지로 갖다 붙이니 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 어떤 건축이든 엄청난 사상이 있는 것처럼 꾸미지 말아야 한다.

지금 서울에 그 포스가 있는 건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아직까지는 트윈트리타워와 DDP뿐인 것 같다. 두 건물 모두 대지의 힘에 적응하고 있다.

대지의 힘? 땅은 건축에 필요한 하나밖에 없는 조건이다. 서울 땅에 충실하면 서울에 충실한 것이다. 파리를 생각해보자. 찌그러진 건물이 많다. 길 모양을 따라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선 찌그러진 건물을 찾기 어렵다. 길은 구부러졌어도 건물은 똑바로 짓는다. 남는 공간은 나무로 채우기 급급하다.

앞으로 가능할까? 서울은 ‘다이내믹’한 도시니까. 최근 가로수길이나 몇몇 지역에서 길을 따라 만드는 건물들이 생겼다. 그런 태도를 보면 서울에 가능성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녹지를 제공했으니 착한 건축이라고 말하는 것이 못된 건축이고, 도로, 땅, 사람에 반응을 잘하는 것이 도시를 도시답게 만드는 착한 건축이다.

    에디터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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