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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의 마법, 페라리 488 GTB

2015.08.13GQ

페라리의 본고장 마라넬로에서 488 GTB를 시승했다. 전작인 458 이탈리아와 부품의 85퍼센트가 다르다. 엔진은 자연흡기에서 터보로 돌아섰다. 그 결과 가속과 반응속도 등 항목별 성능이 수직상승했다.

일정은 오후 1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서 ‘방해하지 마세요’ 택을 방문에 걸었다. 다녀오니 방은 이미 청소 완료. ‘방해하지 마세요’ 택도 원래 자리에 단정히 걸려 있었다. “흡연실이 있냐”고 묻자 지금은 없으니 몸을 창밖으로 빼서 피우란다. 여기는 이탈리아다. 모든 게 뒤죽박죽 제멋대로 돌아가는 듯한 이 나라에, 페라리를 타러 왔다. 사소한 룰에 개의치 않고 살면서도 기막히게 아름답고 빠른 차를 만드는 이탈리아 사람들. 어쩌면 ‘선택과 집중’이 몸에 밴 삶이 모여 이 같은 드라마를 완성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볼로냐 공항에 내렸다. 페라리 본고장 마라넬로의 관문이다.

다음 날 아침, 각 나라에서 모인 기자들과 전세버스를 타고 페라리 본사로 향했다. 호텔에서 약 30분 거리였다. 본사에 가까워질수록 거리에 페라리가 부쩍 늘었다. 알고 보니 관광객을 상대로 빌려주는 업체의 차. 페라리를 모는 사람들 표정에 감동이 가득했다. 이윽고 사진으로 보던 페라리 건물이 눈에 띄었다. 거대한 덕트가 꽈리를 튼 풍동실험실이 특히 인상 깊었다. 공장 연면적은 23만8천3백22제곱미터로 연간 7천 대를 만드는 회사치곤 제법 큰 편이다. 생산 단지 사이를 이웃한 도로 주변엔 슈퍼카 렌터 업체와 작은 기념품 가게, 페라리 깃발을 내건 식당들이 둥지를 틀었다. 페라리는 이 동네의 주인 같았다.

이번 출장에서 시승할 주인공은 페라리 488 GTB. 458 이탈리아의 실질적 후속이다. 엄밀히 따져 코드네임이 송두리째 바뀐 차세대는 아니다. 기존 458의 개발명 F12에 ‘변형’을 뜻하는 M 한 글자를 덧붙였다. 하지만 내용은 신차에 가깝다. 가령 전체 부품의 85퍼센트가 새롭다. 458 시리즈와 함께 쓰는 부품은 앞 유리와 지붕, 밑바탕을 이룬 뼈대뿐이다. 488 GTB를 시승할 무대는 페라리 본사와 이웃한 피오라노 트랙. 1972년 완공된 이 트랙은 너비 8.4미터, 길이 2.997킬로미터로 언덕과 내리막, 저속과 고속 코너가 두루 섞였다. 과거엔 GT 모델은 물론 F1 머신 테스트에 활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FIA 규정 때문에 F1 머신을 공식적으로 시험하는 덴 쓰지 않는다. 양산용 페라리 시험과 이벤트에 활용한다.

이 트랙의 랩타임(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페라리 신차의 성능을 가늠할 잣대가 된다. 역대 최고기록은 마이클 슈마허가 2004년 F1 머신으로 찍은 55초 999. 페라리 일반 도로용 모델 가운덴 라 페라리가 1분 19초 70으로 제일 빠르다. 그 다음은 1분 21초의 F12 베를리네타. 488 GTB의 기록은 1분 23초다. 458 스페치알레보다 0.5초 빠르다. 피오라노 트랙엔 11대의 488 GTB가 준비되어 있었다. 실물로 만난 488 GTB는 458 이탈리아보다 한층 미끈했다. F1으로 갈고 닦은 풍동실험의 대가다운 솜씨였다. 페라리는 신차를 개발할 때마다 공력성능을 개선한다. 시속 200킬로미터로 달릴 때 공기의 흐름이 차체를 짓누르는 무게(다운포스)가 대표적이다. 수치가 높을수록 고속에서 안정적이다. 20세기 말, 360 모데나만 해도 이 속도에서의 다운포스가 80킬로그램을 살짝 넘는 수준이었다.

 

왜 이름이 488 GTB인가? GTB는 ‘그란투리스모 베를리네타’의 약자다. ‘빠른 고성능 쿠페’란 뜻이다. 1975년 308 GTB 이후 1985년 328 GTB, 1989년 348 GTB로 바통을 이어갔다. 1994년 F355 이후 명맥이 끊겼던 GTB는 이번 488 GTB와 더불어 부활했다. 한편, 전작인 458은 4.5리터, 8기통이란 의미였다. 488은 기통당 배기량을 상징한다.

왜 이름이 488 GTB인가? GTB는 ‘그란투리스모 베를리네타’의 약자다. ‘빠른 고성능 쿠페’란 뜻이다. 1975년 308 GTB 이후 1985년 328 GTB, 1989년 348 GTB로 바통을 이어갔다. 1994년 F355 이후 명맥이 끊겼던 GTB는 이번 488 GTB와 더불어 부활했다. 한편, 전작인 458은 4.5리터, 8기통이란 의미였다. 488은 기통당 배기량을 상징한다.

 

 

이후 F430은 120, 458 이탈리아는 거의 140킬로그램까지 개선했다. 488 GTB의 다운포스는 200킬로그램으로, 무려 50퍼센트 이상 치솟았다. 양산 페라리 가운데 최강이다. 그저 조약돌처럼 매끈 다듬어서만 얻은 결과는 아니다. 예컨대 꽁무니의 디퓨저엔 여닫는 방식의 덮개를 달았다. 특허 낸 새 뒷날개는 공기를 위쪽으로 튕겨낼 뿐 아니라 아래쪽으로도 잽싸게 뽑아낸다. 그 결과 다운포스를 높이는 동시에 뒤쪽에서 끌어당기는 힘도 확연히 줄였다. 또한 앞 범퍼 속 냉각장치는 458 때의 크기를 유지하되 용량을 20퍼센트 더 키웠다. 양쪽 도어 뒤엔 커다란 흡기구를 뚫었다. 도어 손잡이 모양도 특이하다. 수직 날개처럼 위로 삐죽 치솟았다. 도어 뒤쪽 흡기구로 향하는 공기의 흐름을 다잡을 장치다. 차체 바닥 커버엔 홈을 팠다. 여기에서 생기는 소용돌이가 차체를 땅바닥으로 한껏 끌어당긴다. 페라리의 디자인을 총괄하는 플라비오 만조니는 “전반적 형상은 물론 깨알 같은 디테일마저 철저히 기능을 염두에 두고 빚었다”고 강조했다.

실내도 손질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은 같다. 그러나 흡기구나 변속 스위치 등 우툴두툴했던 부분을 매끈하게 다듬었다. 스위치도 손 닿기 좋은 곳으로 옮겼다. 계기판 그래픽과 메뉴도 개선했다. 동반석엔 간단한 정보를 띄울 디스플레이를 심었다. 시동키는 굳이 꽂을 필요 없다. 몸에 지닌 채 스티어링 휠의 스타트 버튼만 누르면 차가 화를 버럭 내며 깨어난다. 첫 순서는 동승 체험. 페라리의 수석 테스트 드라이버가 운전대를 쥐었다. 처음 와 본 서킷이라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잔뜩 긴장한 나와 달리 그는 차분하고 느긋했다.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트랙에 진입했다. 본선에 합류하자마자 그는 예고 없이 드로틀을 활짝 열었다. 순간 대화는 물론 호흡도 끊겼다. 압도적 가속에 난 깜짝 놀랐다. 488 GTB는 ‘휘몰이 장단’으로 피오라노 트랙을 누볐다. 그러나 이후엔 겁나지 않았다. 눈부시게 빠르지만 놀랍도록 안정적이었다. 과연 달인의 운전다웠다. 한 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제 내 차례. 운전석에 앉아 시트벨트를 맸다. 앉아서 내다본 풍경은 출국 직전 시승한 458 스페치알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체 높이를 감안하면 시야가 무척 좋다.

488 GTB의 핵심은 심장이다. 현재 생산 중인 페라리 가운데 캘리포니아 T에 이어 두 번째로 터보(공기를 압축해 엔진에 불어넣는 장치)를 물렸다. V8 3902㏄ 가솔린 직분사 트윈 스크롤 터보로 670마력을 낸다. 458보다 배기량을 595㏄ 줄였지만 100마력 높였다. 페라리는 새 엔진의 특징으로 예리한 반응, 빠른 가속, 독특한 사운드, 고회전을 꼽았다. 과연 488 GTB는 페라리의 주장처럼 터보 심장을 얹고도 자연흡기 엔진의 감성을 살렸을까. 이번 시승회에 오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점이다. 페라리 역시 이 점을 우려했던 모양이다. “1~2단 가속 초반에 토크를 의도적으로 억눌렀다”고 강조했다. 페라리 홍보 담당의 설명이 적절했다. “디젤 터보의 꽝꽝 터지는 느낌을 원치 않거든요. 어떤건지 아시죠?” 공교롭게 바로 전달 스페인에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LP750-4 슈퍼벨로체를 시승했다.

그래서 두 브랜드의 차이를 여러모로 느꼈다. 가령 람보르기니의 시승회 운영은 친절하고 자상하다. 무조건 페이스카 뒤를 좇아 달려야 했다. 각 코너엔 고무 고깔로 제동과 에이펙스(코너의 정점)를 표시해 뒀다. 완벽히 짜인 매뉴얼에 따르면 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페라리는 완전 딴판이다. 꽁무니 살랑살랑 흔들며 약 올릴 페이스카는 물론 트랙에 아무런 표시도 없다. 아무 제약 없이 날 트랙에 풀어놓았다. 실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다. 운전 모드는 ‘레이스’, 변속기는 ‘오토’에 맞추고 출발했다. 피트에서 나와 본선에 합류해 가속페달을 냅다 밟았다. 488 GTB는 준비할 짬도 주지 않고 격렬히 등을 떠밀었다.

초기 가속 때 의도적으로 힘을 옥죈 결과 그 뒤의 반전이 한층 극적이다. 터보차저의 ‘성깔’을 완전히 감추진 못했다. 이 지점에서 토크는 그야말로 날아오른다. 포물선을 그리지 않고, 수직이착륙 전투기처럼 제자리에서 까마득히 치솟는다. 488 GTB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3.0초, 시속 200킬로미터 가속을 8.3초에 마친다. 사운드도 사뭇 달라졌다. 가속 땐 맹렬히 도는 터빈 소리가 도드라진다. 고속에선 차체 옆구리를 뚫고 꽁무니로 쓸려나가는 바람 소리도 제법 크게 들린다. 페라리가 섬세하게 조율했다는 사운드는 이 소음에 적잖이 상쇄된다. 그러나 감성을 양보한 대가는 풍성하다. 가령 페달 조작에 따른 반응 시간이 0.06초에 불과하고 각 단수별 가속 또한 25퍼센트 빨라졌다.

게다가 자기유체 서스펜션과 디퍼렌셜을 손질해 좌우 움직임도 개선했다. 페라리는 구체적 수치를 제시했다. 이를테면 458 이탈리아보다 코너에서 최대한 버틸 수 있는 횡가속력은 6퍼센트 높고, 좌우로 기우는 각도는 13퍼센트 적다. 제원을 몰라도 몸이 먼저 느낀다. 똑바로 달릴 땐 엄청 묵직한데, 운전대만 꺾으면 믿을 수 없을 만큼 몸놀림이 사뿐사뿐해진다. 피오라노 트랙 시승은 강렬하되 짧았다. 이제 도로로 나설 차례. 본사 주변을 한두 시간 도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오후 내내 달리는 코스. 시내로 들어서자 행인의 시선이 단박에 쏟아졌다. 대여용 페라리를 모는 이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에 우쭐할 여유는 없었다. 488 GTB의 가속은 너무 빨랐고, 마라넬로 시내는 아주 좁았다.

이날 오후, 난 488 GTB와 함께 고속도로와 국도, 굽잇길을 입에서 단내 나도록 누볐다. 시간이 흐를 수록 순간 가속과 우렁찬 사운드에서 비롯된 자극엔 덤덤해졌다. 대신 다양한 형태와 조건의 도로를 섬세하게 강약 조절해가며 섭렵하는 희열에 눈을 띄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엔 기어이 시속 300킬로미터를 넘겼다. 488 GTB로의 진화는 성공적이었다. 터보로 돌아서면서 고회전에서의 아득한 사운드처럼 감성적 측면에서 잃은 것도 있다. 그러나 얻은 게 더 많다. 전작보다 확연히 강력하면서 효율도 앞선다. 운전도 보다 쉽다. 때론 고집도 필요하다. 그러나 도약은 고집을 과감히 버릴 때 꿈꿀 수 있다. 이해는 쉽되 실천은 어려운 도전을, 페라리가 해냈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김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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