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순간들 – 3

2015년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시간이었나? 모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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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훈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메르스로 알려진 중동호흡기증후군은 지난 여름 대한민국을 마스크 공포로 가득 채웠다. 정말 공포스러웠다. 사진기자는 반드시 현장에 가야 하니까. 마스크를 사러 약국부터 갔다. 5월 20일을 시작으로 69일 만에 정부는 메르스 종식을 선언 했다. 36명의 사망자와 1만6천여 명의 격리자가 발생했다. 영화 <감기>와 거의 비슷한 상황이었다. 바이러스는 대형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국민은 병원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바이러스 공포는 낯설지만 인류 역사와 늘 함께했다. 공포는 다시 반복될 것이다.

‘태완이’ 이름을 딴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7월 31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계속해서 취재하고 있는 살인사건이 있었다. 대부분 진범 대신 억울한 사람이 옥살이를 한 경우였다. 그런 분노와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기회가 태완이법으로 다시 열렸다. 꼭 필요했던 법이다. 1999년 5월 20일 여섯 살 태완이는 황산 테러를 당했다.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태완이는 패혈증 증세로 49일 만에 사망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시민의 분노가 결국 ‘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를 이끌었다. 하지만 태완이 사건은 1999년에 발생해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10월 12일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선언했다. 앞으로 수많은 논쟁이 반복될, 진짜 중대한 순간이었다.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전쟁의 현장은 멀리 있지 않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전쟁은 이미 전 정권 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집권 세력은 금성교과서를 좌편향이라고 낙인찍었다. 역사를 둘러싼 전쟁의 뿌리는 깊다. 해방 이후 집권 세력들은 늘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느덧 해방 70주년. 다시 70년이 흐르면 역사 전쟁은 마무리돼 있을까?

 

홍석재 영화 <소셜포비아> 감독

2015년 1월 26일 일베에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한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세월호가 ‘헬조선’의 밑창을 까발렸을 때 가장 슬프고 끔찍한 건 정부 측의 무능한 대처나 사후 조치가 아니라 같은 자국민으로서 이런 이해 불가능한 조롱과 혐오와 맞닥뜨렸을 때다. 그 아이들은 글을 읽고 상처받을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하지 못했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차라리 좋겠다. 이제부터 바뀌면 되니깐. 가장 끔찍한 건 그 아이들이 상처받는 사람들을 상상했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했을 거라는 의심이다. 어쩌면 우리가 일베에 대해 품는 혐오가 사실 일베를 배불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온라인 세계에서 올 한 해의 키워드는 단연코 ‘혐오’다. 오랜 시간 만연해온 여혐의 정서에 대한 카운터펀치가 드디어 도달했다. 메갈리아에 처음 들어갔을 때 진지하게 의심했다. 이걸 쓴 사람들이 여자가 아닐 거라고. ‘남혐’의 대상이 되고 나니까 나는 그녀들이 공격하는 남성들의 부류에 들지 않았지만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다. 반대로 말해 여지껏 ‘여혐’의 그늘 아래 있었던 여성들 또한 똑같은 기분이었을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남혐’이 여지껏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젠 하나의 공간을 얻고 세력을 형성해 자신들의 정체성과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결국 이 모든 걸 만든 도화선은 일베였다. 메갈리아의 다음은 어디일까? 그리고 무엇일까? 더 극심한 것이 아직 남아 있을까?

국정원 해킹 사건으로 혐오 3부작이 완성된다. 국정원이 국민을 도감청하기 위한 해킹 프로그램을 외국 해킹팀에서 구매했고 사용 내력도 있다. 이 모든 사실이 밝혀졌고 심지어 토렌트에 이 외국 해킹팀 사내 자료 백업이 4백기가나 올라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처벌받지 않고 조사받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채 끝났다.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난들 무엇이 바뀔까?

 

윤창숙 영화 프로듀서

<탐정: 더 비기닝>이 관객 2백만 명을 돌파했을 때다. 2015년은 내가 영화 일을 시작한 지 15년이 되는 해였다. 프로듀서를 맡은 세 번째 영화인 <탐정: 더 비기닝>이 9월에 개봉했고, 관객수가 2백만 명이 넘었다. 관객 1천만 명 영화들이 연달아 나오는 상황이니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가장 많은 관객수다. 한국 영화계엔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가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의 인지도 선입견을 깨고 성과를 올려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 때 엄청난 흥행을 예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전부다.

김민찬 어린이의 작품들을 보았다.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영재가 아니라 마음으로 그림을 담는다는 아이였다.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함께하고 싶다던 민찬이가 어른들의 편견과 의심으로 인한 상처로 외부 사람을 피하게 되었다. <영재 발굴단> 제작진은 9개월 동안 아이와 끊임없이 소통해 마음을 열게 된 민찬이의 작품 세계관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협한 사고와 왜곡된 시선으로 세상을, 타인을 바라보는지 느꼈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그림이었다. 영어로 달이 ‘문Moon’이라는 걸 배워왔다며, 달과 우리나라 창호문을 이용한 예술품을 만들어 그 여러 개의 문으로 모든 희생자가 하늘로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다는 아이를 마주한 어른은 부끄럽다.

 

이호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감독

얼마 전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3천 부 증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책을 든 사람 보기 드문 요즘, 그것도 몇 해 전 시집이 큰 인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뭉클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올해는 뭔가를 나누는 일에 소홀했던 것 같아 문득 죄스러웠다. 그 순간 내가 자라며 먹었던 활자들을 미처 나누지 못한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추석, 노홍철 씨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던 MBC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봤다. MBC 예능국은 나의 원작 영화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서 콘셉트와 제목을 차용했지만, 이 같은 사실을 방송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사전에 MBC 측이 원작 영화의 콘셉트와 원제 사용에 대한 동의는 구했다. 노파심 섞인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좋은 뜻으로 이를 허락하는 대신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 “MBC 예능은, 원작 영화인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그램이며, 타이틀까지 사용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방송 중에 표기해달라는 조건이었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이는 전혀 다른 맥락의 자막으로 처리되었다. 애당초 내가 바랐던 조건의 의미는 단순 표기의 문제를 떠나, 원작을 열렬히 좋아했던 관객분들에 대한 예우가 지켜지길 바란 것이다. 어차피 원작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젊은이들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우리만이 특권을 가지고 내던지는 도전장이 아니었다. 그것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에게 적용된다 할지언정, 내 것인 양 주인 행세를 할 의중은 없었다. 설령 다른 경로임에도, 원작이 지닌 의미가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은 나 혼자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었기에, 나는 결국 수많은 관객분께 돌이킬 수 없는 빚을 졌다. 소중한 것을 도둑질당하는 순간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게 해드려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또한 담뱃값 인상의 순간이다. 사실, 2015년의 우리는 부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계, 기업, 국가 부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총부채가 3천 조에 달하는 경제적 부채도 물론 심각하지만, 한 개인으로서 유난히 마음의 빚이 만개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물질보다 되갚기 힘든 마음의 부채들. 주머니는 이미 털릴 대로 털렸고, 이제는 싼값에 팔아넘긴 내 영혼조차 되찾지 못하는 애도의 마음으로 담뱃값으로 나름 국가 부채를 갚아나가는 일에 일조하고 있으니 그나마 유일하게, 나라에 빚진 순간은 없는 셈이다.

 

고석승 JTBC 보도국 사회2부 기자

헌법 1조가 다시 등장했다. 그는 헌법을 들고 나왔다. 대통령의 날선 비판이 있은 지 13일 만이다. 대통령이 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공개 비난한 초유의 사태로 초여름 정국이 들썩였다. 논란 끝의 사퇴 선언 자리에서 그는 헌법 1조를 내밀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이 짧은 문장을 지키기 위해 정치를 해왔노라고 차분한 어조로 고백했다. 물론 그의 ‘헌법 1조’가 정치적 수사인지, 진심어린 고백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헌법 1조는 갈등의 순간마다 늘 등장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 변호사가 외친 절규도 헌법 1조였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서도 헌법 1조가 시위대의 구호로 쓰였다. 헌법 1조의 부재를 느낄 때 사람들은 더 크게 헌법 1조를 부르짖었다. 그의 회견을 지켜보는 내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우리는 또다시 헌법 1조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궁서체로 쓴 ‘살려야 한다’를 봤다. 사진 한 컷의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노련한 정치인은 사진을 다룰 줄 안다. 대통령이 그렇다. 사진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법을 안다. 6월 15일 조간 신문에 실린 사진은 그런 면에서 실패작이었다. 메르스 진료 병원을 찾은 대통령의 어깨 너머로 “살려야 한다”는 외침이 보였다. 사진을 찍은 자의 의도와 달리 “살려야 한다”는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사실 그건 대통령 개인에 대한 조롱은 아니었다. 큰 재난 앞에서 무능한 모습을 보인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우왕좌왕하던 정부와 “살려야 한다”는 궁서체 외침은 ‘매치’되지 못했다. 봇물 터지듯 쏟아진 “살려야 한다” 패러디는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에 놓인 거대한 장벽에 던지는 ‘조약돌’이었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산서 의붓딸 2명 잡고 인질극…경찰 대치”. 오전 11시, 비현실적인 속보 팝업 창이 휴대전화에 떴다. 현장에 가라는 팀장의 지시를 받고 곧바로 안산으로 향했다. 현장은 주민들과 취재진이 뒤엉켜 난장판이었다. 장시간의 대치 끝에 결국 인질범 김 씨는 경찰의 손에 이끌려 나왔다. 이미 두 사람이나 죽인 뒤였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도 당당했다. 주민들의 비난에 고개를 돌려 눈을 흘겼다. 그의 눈빛은 메말라 있었다.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경멸이 깔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괴물이라 부르며 별종 취급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어딘가 익숙했다. 우리의 눈빛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섬뜩했다. 천인공노할 그의 행동과 별개로 그의 얼굴에서 서로 단절된 채 증오하는 우리의 모습이 비쳤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악다구니 쓰며 매일을 살아가는 너와 나의 그 모습 말이다.

 

최태혁 매거진 <B> 편집장

<쇼미더머니 4>는 “실력 있는 래퍼들을 발굴하겠다”는 취지로 2012년 시작한 경연 프로그램의 네 번째 시즌 프로그램이다. 2009년 <슈퍼스타 K 1>이 방영된 이래 연이어 등장한 각종 음악 경연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비주류 장르를 주류로 진입시켰다는 것과 사회 내 무자격자들에 대한 전복 가능성을 점쳤다는 것이다. 시즌 1~2가 랩 경연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정도였다면, 시즌 3는 마니아를 포함한 일부 대중의 관심에 불을 지폈고, 올해 방영된 시즌 4는 랩을 즐기지 않던 다수에게까지 그 존재와 영향력을 미쳤다. 이를 통해 가요 속 일부 소절의 접목이 아닌 랩만으로 구성된 랩 음원들이 음원 사이트를 점령하고 일리네어 같은 힙합 전문 레이블이 힙합 팬이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한편 활동이 뜸했던 14년 차 래퍼가 데뷔도 하지 않은 어린 지원자와 벌이는 생존경쟁은 사회 각 분야에서 ‘시간’이 만들어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른’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주는 계기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통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등장했다. 그가 출연한 이후 한국 음식 방송의 흐름이 바뀌었다. 음식 방송이 TV의 고정 코너가 된 건 하루이틀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동안 대부분의 음식 방송은 ‘음식을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은 다르다’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풍겼을지 모른다. 유명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갈고닦았거나 유학을 통해 전문 지식을 습득한 이들이 선보이는 고차원 음식들은 보기는 좋지만 만들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더욱이 그런 음식들은 평소 즐겨 먹는 것도 아니다. 백종원은 한국인 대부분이 오랫동안 즐겨 온 음식을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해 따라 하기 쉽게 가르쳐줌으로써 ‘백주부’라는 친근한 호칭을 얻으며, 특히 주부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받고 있다. 백종원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지만,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일상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이 되었다. 관련자 일부가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뉴스에 나오는 ‘세월호 특별법’은 실체가 없고 탑승해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처리 또한 마무리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사건은 ‘사고’라고 규정한다. 원칙을 엄정하게 지켰더라면 벌어지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선진사회에서도 도로, 해상, 항공상의 사고는 언제나 유발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과 방식을 통해 선진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사건보다 ‘세월호 1주기’를 더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로에서 벌어진 사고를 급히 수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고자 처리는 물론 뒤에 오는 차량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는 이 불의의 사고를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이후 국정에 극심한 정체를 스스로 야기시켰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한국 사회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냈다.

 

김인섭, 황은민, 김선홍 서프코드 대표, 쉐이퍼, 매니저

메르스 때문에 서울 시내를 활보하던 마스크 군단을 봤다. 두려웠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접촉한다는 자체가 무서운 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온전치 않은 사실들이 난무하는 SNS에 노출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크고 작은 메시지에 민감해졌다. 매일같이 보고, 듣는 사실이 온전하게 믿을 수 있는 사실인지 구분하기 힘든 세상에 사는 것이 심히 불편하다.

죽도해수욕장에 찜질방처럼 떠 있는 서퍼들을 봤다. 서핑 ‘판’이 바뀌었다. 바다가에 많은 서퍼가 떠 있고, 관련 브랜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오고 있다. 시장이 형성되고, 기존의 없던 문화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제시해야 하는 답은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서핑, 그리고 바다뿐이다. 서퍼들이 그토록 바라던 순간 아닌가. 근데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티셔츠에나 SURF라는 단어가 써있다. 우리 동네 아저씨도 입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특집을 한 다음 날 서프코드 안에서 대화를 했다. 우리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만나 시작되는 이야기는 보통 “<그것이 알고 싶다> 봤어?”로 시작된다. 이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한 1000회 특집은 씁쓸함과 동시에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떤 제보자는 “이렇게 한다고 달라질까요..?” 라는 말을 했다. 우리에게 하는 질문같았다. 때로는 달걀이 바위를 부술 수 있다고 한 번 더 다짐한다..

 

장영철 와이즈 건축 건축가

중국 증시가 폭락했고, 그리스가 디폴트 선언을 했다. 2001년과, 2008년에 세계 경제 위기가 있었다. 2008년의 경제 위기는 위기의 당사자였던 미국에 엄청난 양의 달러를 뿌리면서 진정되는 듯 보였는데, 지난 7월 그리스가 채무 불이행 선언을 했고, 8월부터 중국의 증시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고, 계절에도 주기가 있는데, 한없이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경제의 우산 역할을 해주던 중국 경제가 냉각되고 있다. 날씨가 차가워지는 가을에 바다 위의 수증기가 물이 되면 내뿜는 응축열이 어마어마한 힘의 태풍이 되어 바다 위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리듯이, 그동안 대가 없이 뿌려진 통화의 힘이 조만간 세상을 한번 힘껏 흔들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쩌면 이 태풍은 1997년과 2008년에 우리가 겪은 위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전세계를 집어삼킬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우리 집은 부채만 는다.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다. 정치가 ‘정의’ 실현이 아닌 ‘내 식구 먹여 살리기’라고 곡해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가. 원칙이 있는 정부라면서, 일 처리한 것을 보니 팔이 안으로 굽어도 너무 굽었다. 그 팔이 내 식구 감싸기를 넘어 자기 뺨을 때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낯짝이 두꺼우니 아픈 줄도 모르겠네.

#1 2015년의 순간들

#2 2015년의 순간들

#4 2015년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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