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사회 이슈로 직격탄을 맞은 위기의 식당들

2019.11.08GQ

음식으로 먹고사는 일이 이토록 험난할 줄이야. 외식업계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온갖 사회 이슈로 인한 직격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지난 7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강제 징용한 일본 기업에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은 반도체 소재 3종의 수출을 규제했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분노한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펼치며 맞불을 놨다. 한국인 특유의 냄비근성 탓에 불매 운동은 금세 불씨가 꺼질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100일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지며 장기전으로 들어섰다. 지난 9월 일본 맥주의 수입율은 작년 대비 0.1퍼센트에 그쳤다. 사실 맥주는 재고를 터는 일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다. 또 일본행 항공기의 승객수는 28퍼센트 감소했으며, 신규 등록한 일본 승용차의 수도 60퍼센트 급감했다. 일본 불매 운동의 불씨는 가전, 자동차, 맥주 등을 포함한 유형의 상품과 관광 등의 서비스에서 국내에 소재한 일식 전문점까지 일본 문화 전반으로 번져갔다.

지난 8월 3일, 인터넷 매체 더 팩트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셨다고 대서특필했다. 뒤이어 숱한 언론이 이 기사를 퍼 날랐다. 다음 날 이 대표가 마신 술이 롯데주류가 생산한 청주로 밝혀지자 한국일보는, 이것을 국내에서 생산하나 일본식 누룩인 ‘입국’을 사용하는 만큼 일본식 청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반박 기사를 냈다. 우스운 이야기다. 입국을 사용한 청주를 마셨다는 이유로 비난하려고 치면 막걸리를 마시는 일 또한 결코 안전하지 않다. 식당이나 마트에서 흔히 보는 막걸리 대부분이 발효제로 입국을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전통주 업계에서 입국을 사용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강요당한 일이 아니다. 대량 생산하는 데 더 용이하며 누룩 향을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의 기호를 반영하여 국내 양조자들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이 대표를 둘러싼 사케 논란은 먹고사는 일에 정치 프레임을 씌우려는 정치권의 무모함에 우매함이 더해져 국민들에게 괜한 자괴감을 안겼다

정치인이 일본식 청주를 마셨다고 언론의 뭇매를 맞는 광경을 보며 소비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당장 예약한 일식집에 취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일식집들은 비수기인 여름휴가와 맞물려 매출이 뚝 떨어졌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발표에 따르면 일식집 중 82퍼센트가 불매 운동 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한다. 일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식재료가 국내산임을 크게 써 붙이는가 하면, 메뉴에서 일본 주류를 삭제했다. 동시에 자신들 또한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한국민임을 강조하며 소비자와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던 중 동업자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는 사건을 맞닥뜨렸다. 한국식 횟집을 표방하는 한 외식업체 대표가 일식집에서 스시, 사시미를 먹는 일은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지적하며 자신의 횟집을 홍보하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것. 업계에서 성공한 CEO로 이름 높으며 소셜 미디어 팔로워 수가 많은 그의 게시글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공감을 샀을지 모르겠으나 많은 업계 사람들로부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일식집 관계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언행이라며 공분을 샀다.

서교동에서 일본식 꼬치튀김 전문점 ‘쿠시카츠쿠시엔’을 운영하는 김상호 대표는 불매 운동 후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여전히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저희 가게가 속한 홍대 상권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상호명을 영어식으로 변경한 일식집들이 적지 않게 보입니다.” 김 대표는 홍대 상권에 속한 일식집들이 매출에 직격타를 입은 원인으로 소셜 미디어를 꼽는다. “홍대와 연남동 일대의 소비층은 연령대가 낮은 만큼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일식집에 대한 여론이 채 회복되기 전에 관련 사진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을지 모르니 아예 일식집을 찾지 않는 겁니다. 왜 찍기 위해 먹는다고 하잖아요.”

최근 외식업계에 불매 운동을 뛰어넘는 악재가 드리웠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한반도를 덮쳤다. 확산을 막기 위해 돼지 수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돼지의 일시 이동 중지를 명령하며 돼지고기 가격은 연일 고공 행진했다. 그런데 지난 10월 8일 뜻밖의 소식이 보도됐다. 날로 치솟던 돼지고기 가격이 급락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돼지의 일시 이동 중지를 해제하며 출하 물량이 늘어 공급은 원활해진 반면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음데도 소비 심리가 위축된 탓이었다. 양돈 농가는 물론 돼지고기 전문점을 돕기 위해 생산자 단체와 농협 등은 소비를 촉진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외교 문제로 인한 불매 운동, 가축 전염병에 오너리스크까지 위험 요소를 떠안아야 한다. 지난 8월 국대떡볶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해 논란을 낳았다. 누구나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낼 자유는 있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대중을 선동하는 유언비어에 가까웠던 만큼 불매 조짐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반면 일베 회원들은 국대떡복이를 지원 사격하는가 하면,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국대떡볶이 인증샷과 함께 응원하는 글을 올렸다. 또 조선일보는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이 원내에 입점한 국대떡볶이 매장에 위생상의 문제로 이의를 제기하자 이를 현 정권을 비판한 이유로 민노총이 압박한 결과라고 왜곡 보도했다. 대표가 극우세력을 대상으로 모금 운동까지 벌이자 가맹점주들은 그의 지나친 언행이 매출에 영향을 미칠까 노심초사하는 눈치다. 실제로 2017년 미스터피자 회장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이 불거진 후 가맹점 매출은 1년 전과 비교해 30~60퍼센트 감소했으며, 60여 곳이 문을 닫았다.

이쯤 되니 의문이 든다. 왜 여러 업계 중 유독 외식업계가 사회 전반의 이슈에 직격탄을 입는 걸까. 외식업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조리복 브랜드 ‘븟’ 배건웅 대표는 그 원인을 과열된 외식업 시장에서 찾는다. “국내 외식업체 수는 65만 개에 달합니다. 인구 79명당 음식점 1개가 있는 격입니다.” 단순히 계산하자면 식당 한 곳당 79명의 손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인구 대비 식당 수가 많으니 일부가 도태되는 일은 불가피합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창업 생존율이 거의 꼴찌 수준입니다. 식당은 특히 대체제가 많으니 여러 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여론을 반영하기에도 좋은 모델입니다.” 식당이 워낙 많으니 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은 면이 있을 시 얼마든지 외면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상호 대표는 사회 이슈에 따라 특정 식당을 거르는 현상이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며 더 심화됐다고 한다. “특정 사진을 올렸을 때 문제 삼을 소지가 있는 일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시도하지 않습니다. 애석하게도 애초에 사진을 올려 자랑할 수 없다면 선택하지 않는 게 요즘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인 듯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 식당 수가 유독 많은 데는 아픈 역사가 있다. 1997년 IMF 이후 고용안정성이 무너지며 많은 직장인이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사회로 내몰렸다.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그들에게 식당만큼 문턱이 낮은 산업이 없어 보였고,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그들을 더욱 부추겼다. 김 대표는 우리만큼 다양한 프랜차이즈 모델을 가진 나라가 없다고 한다. “대부분 피자, 햄버거, 빵집 정도에 그치는데 우리나라는 커피 전문점부터 술집까지 모든 외식사업에 프랜차이즈가 진출했습니다. 원한다면 24시간 내내 프랜차이즈만 이용할 수 있는 구조이죠.” 프랜차이즈 사업은 아무래도 가맹점주들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뛰어들다 보니 위험 요소에 더 취약하다.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아니 3년 내 열 곳 중 여섯 곳이 폐업하는 심각한 시장이라면 애초에 진입장벽을 높이는 것도 방법일 듯싶다. 물론 그 방법론은 더 고민해야겠지만. 올해 1월 일명 ‘호식이방지법’이라 불리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실행됐다. 가맹본부의 사회상규에 반하는 행위로 가맹점 사업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시 이를 배상하는 의무를 지우는 법이다. 그 덕에 가수 승리가 운영하던 라멘집의 가맹점주들이 소송에 나설 수 있었다. 현재 시장 상황을 보면 특정 문화권이나 세력, 조직에 치우친 사업은 그만큼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식문화가 곧 정치라고 하지만, 최대한 정치로부터 멀어지는 게 자영업자들이 위험 요소를 피해 살아갈 길이다. 글 / 이주연(미식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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