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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 드라마 결산

2020.12.02GQ

한류 스타의 컴백, 스타 작가와 신진 작가의 엇갈린 성적표, 용맹하기 이를 데 없는 넷플릭스. 어느 때보다 야단스러웠던 올해 어떤 드라마를 보셨나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우리 일상을 집어삼킨 올해, 문화계 역시 사정은 좋지 못했다. 공연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얼어붙었고, 영화는 개봉작 연쇄 이탈로 신음했다. 드라마도 상황은 복잡했다. 뒤숭숭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넷플릭스가 업계 판도를 연신 흔들었다.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에 현실 드라마를 이기는 작품이 있었던가.

언제나 그렇듯,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다. 올해 드라마 최고의 소문난 잔치는 SBS <더 킹: 영원의 군주>였다. 김은숙이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올해의 기대작’을 논할 때 앞 다투어 언급됐다. 그러나 <더 킹> 잔칫상에서 가장 많이 차려진 건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도 캐릭터 맛도 아닌, PPL의 맛이었다. PPL과 김은숙의 조합 자체가 낯선 건 아니다. 그녀가 누구인가.  <시크릿 가든>의 카페베네 거품 키스 신, 파리바게뜨를 변형한 <미스터 션샤인>의 불란셔제빵소 등 제품을 개연성 있게 녹여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PPL의 여왕 아니었나. 그러니까 <더 킹>의 경우 PPL의 ‘사용 문제’ 였다기보다, ‘응용 문제’ 였다. 극이 재미있으면 공해 수준의 PPL도 참고 보는 게 시청자지만, 또 김은숙은 그렇게 시청자를 달래왔지만, 이번엔 이야기가 받쳐주지 못했다. <시크릿 가든>, <도깨비> 등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한 판타지 설정도 <더 킹>에선 장점이 되지 못하고 난해함만 낳았다.

<더 킹>으로 손실된 SBS 드라마 전력을 보강한 건, 신인 작가의 작품 <스토브리그>다. 프로야구 프런트라는 소재는 신선했고, 언더독 서사는 적절했고, 디테일에선 발로 뛴 취재력이 엿보였는데, 남궁민의 연기는 물오른 4번 타자 같았다. 조직의 적폐를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청산해 나가는 모습에선 시대정신도 엿보였다. 드라마는 시청률과 작품성 모두에서 예상치 못한 안타를 쳤다. 드라마의 진정한 성패는 포장지가 아닌 콘텐츠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인 사례로 남았다.

<스토브리그>에서 시작된 신진 작가들의 활약은 올해 드라마계가 얻은 쾌거다. SBS <하이에나>, <아무도 모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tvN <블랙독>, <머니게임>, MBC <꼰대인턴> 등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드라마 운신의 폭을 넓혔다. 젊은 감각의 신인을 기용해 제작비를 절감하려는 제작자의 니즈와 해외 드라마를 보고 자란 시청자들의 장르물에 대한 수요 증가 등이 맞물린 결과다. 감독의 예술로 불리는 영화와 달리, 작가의 예술로 평가 받는 드라마에서 ‘스타 작가’는 곧 권력으로 통한다. 스타 작가를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들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곪을 대로 곪아온 문제. 그 누구도 풀어내지 못했던 문제의 열쇠가 결국 작가들에게서 나오는 분위기다.

신진 드라마 작가들의 활약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17년이다. 그 중심에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가 있었다. <비밀의 숲>은 가장 돋보이는 데뷔작이었을 뿐 아니라, 그 해의 드라마였다. 3년 만에 돌아온 <비밀의 숲 2>에 기대가 모인 건 당연하다. 결과적으로 호불호가 갈렸다. 기선 제압이 아쉬웠다. 대사 완급과 사건 진도가 태클을 걸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명성을 회복하긴 했으나, 이탈자도 많았고 “정 때문에 본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1편의 충격을 아직 간직한 팬’으로서 3편이 나온다면 또 보겠지만, 조금 더 차가워진 눈으로 TV 앞에 앉을 것 같다.

화제성 면에서는 <부부의 세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방영 전에는 또 하나의 막장 불륜 드라마일 줄 알았다. 틀린 건 아니었다. 다만 좀 남달랐다. 치고 빠지는 속도가 LTE급이었다. <SKY 캐슬>이 사교육 광풍을 들여다보게 했다면, <부부의 세계>는 함께 이불 덮고 자는 사람의 코트에 묻은 머리카락을 주목하게 했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 전 국민이 이토록 머리 맞대고 각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컴백’ 중 남자 연예인들이 가장 오매불망하는 컴백은 ‘전역 후 컴백’일 것이다. 올해는 한류 스타 김수현과 이민호가 있었다. 그러나 송중기가 <태양의 후예>에서 보여준 극적인 복귀식은 없었다. 먼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최대 수혜자는 김수현이 아니라 서예지였고, 서예지를 빼고 생각한다 해도 김수현이 아니라 오정세였다. <별에서 온 그대>를 생각하면 도민준이 바로 튀어나오고, <해를 품은 달>을 그리면 이훤이 떠오르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막혀서 찾아보니 문강태다. 역설적으로 그래서 그의 선택이 주목받은 면도 있다. 캐릭터의 매력보다 작품이 지닌 전체 메시지를 보고 선택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신뢰는 쌓인다. 이민호의 컴백작 <더 킹>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다. 하지만 그의 차기작이 애플TV플러스에서 제작하는 현지 드라마 <파친코>라는 점은 <더 킹>의 흥행 실패가 이 배우에게 별다른 타격을 준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가 쓴 소설이 원작인 <파친코>는 한국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찍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스타’ 이민호가 ‘배우’가 될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소설 <연금술사>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료의 SNS에 <나의 아저씨>가 올라왔다. <사랑의 불시착> 관련 일본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게 다 넷플릭스 때문이다. 2016년 진출 초기만 해도 각종 저작권 문제로 콘텐츠 수급에 어려움을 겪은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를 직접 제작, 유통하면서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뒤흔드는 키맨으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모두에게 위기인 코로나19 시대를 기회로 삼은 넷플릭스의 확장세는 더욱 매섭다. 올해는 <킹덤 시즌2>, <인간수업>, <보건교사 안은영>을 제작했고, 모두 이슈 몰이에 성공했다.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슬기로운 의사생활>, <더 킹>, <하이에나>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지적재산권(IP)도 확보했다. 한국 콘텐츠들의 외연 확장에 넷플릭스가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건 기정사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드라마 제작사나 감독이나 배우들 입장에선 넷플릭스를 거부할 이유가 딱히 없다. 공중파 드라마보다 소재 선택이 자유롭고, 촬영 기간도 넉넉하고, 흥행에서도 여유롭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으려는 제작자가 줄을 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진행 중인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는 공유와 배두나의 <고요의 바다>, 유아인과 박정민의 <지옥>, 정해인과 구교환의 <D.P.>, 이정재의 <오징어 게임>, 이제훈의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등이다. 넷플릭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넷플릭스의 빠른 확장 속에 국내 후발주자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TV 드라마 시청자 수가 떨어지고 있는 건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신원호 감독이 말했다. “이 치열한 경쟁에서 치솟는 제작비 상황, 바뀌어가는 근로 환경을 고려했을 때 주 2회 드라마 제작이 계속 가능할까 싶었다.” 드라마 업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건 OTT만이 아니다. 52시간 근무제 도입은 근 1~3년 동안 한국 드라마계가 맞닥뜨린 최대 이슈 중 하나였다. 회차를 축소하고 시즌제를 도입하는 드라마가 늘어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원호 감독의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한발 더 나아가 주 1회 편성이란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는데, 그 드라마가 사랑까지 받았다. 이것은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일까.

    에디터
    김영재
    정시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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