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왕을 따른다. 트래비스 스콧은 예측 불가능한 비전으로 유스 컬처를 펄떡이게 만들며 성대하고 쿨한 대관식을 치렀다.
트래비스 스콧의 광활한 인기 비결을 이해하려 한다면 온라인 게임 <포트나이트>에서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다. 매일 수억 명의 플레이어가 <포트나이트>에 접속해 총격전을 벌이고 건물을 짓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10대 청소년과 영 어덜트는 자신의 집보다 <포트나이트>의 맵 구석구석을 더 친밀하게 여긴다. 스콧은 일상에서 가상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장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그는 가상 세계에 모여든 젊은 친구들이 열광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전례 없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뮤지션들의 공연이 연달아 취소되는 와중에 스콧은 지난 4월 <포트나이트>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열었다. 거대한 3D 캐릭터로 등장해 랩을 하며 마음대로 맵을 재구성하는 그의 모습은 절대적인 신의 형상과 다름없었다. 호주 인구수보다 많은 2천8백만 명의 플레이어가 무기를 내려놓은 채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공연을 즐겼다. 혼돈과 혼란의 가상 세계에 유토피아가 펼쳐졌다.
코로나19 팬데믹 발생 후 수많은 셀럽이 다양하고 엉성한 방식으로 스트리밍을 시도했다. 스콧은 그들과 달랐다. 혁신을 보여줬다. 판을 뒤흔들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스콧은 <포트나이트> 콘서트를 통해 자신의 비전을 드러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환각적인 판타지 세계를 구현했다. 그를 대표하는 어지럽고 흐물거리며 왜곡되고 찌그러진 디지털 사운드는 힙합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스콧의 비전은 음악에 그치지 않는다. 데이비드 라샤펠, 닉 나이트, KAWS 등 유명 작가를 섭외해 앨범 커버를 제작했다. 그런지와 하이패션이 뒤섞인 자신만의 스타일을 바탕으로 패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도 했다. 리세일 플랫폼 스톡엑스에서 트래비스 스콧 × 나이키 SB 덩크는 2천 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된다.
스콧은 대중문화계에서 유니콘의 존재처럼 비현실적인 인물로 여겨진다. 그의 이름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젊은 세대의 언어와 문법에 능통하면서도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낀다. 흔히 아는 셀럽의 성향과는 다른 면이다. 카메라를 마주하면 스콧은 얼굴을 가리 고개를 돌린다. 수줍음이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꺼린다. 카일리 제너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 있다는 사실 외에 알려진 사생활은 거의 없다. 그런 신비로움이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콧은 요란한 소리 없이 큼지막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7월 초 웨스트 할리우드에 위치한 캑터스 잭의 사무실에서 스콧을 만났다. 캑터스 잭은 그가 이끄는 레이블이다. 락다운 기간 동안 작업한 곡들을 들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를 보자마자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미완성 트랙들을 듣기 시작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수수께끼 같은 영화 <테넷>에 쓰일 곡도 있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처럼 몽환적인 사운드였다. OST 작업은 처음이었다. 놀런 감독은 스콧의 참여가 작품에 결정적이었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의 목소리는 수년간 준비해온 프로젝트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되었어요.” 놀런 감독은 이메일을 통해 이렇게 전했다. “스콧은 <테넷>의 내러티브와 음악 감독 루드비히 고란손이 구축한 음악적 메커니즘을 즉각적으로 이해했고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어요.” 이후 영화 개봉에 맞춰 ‘The Plan’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된 곡은 그때만 해도 ‘트래비스 믹스 16’으로 불렸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기본적인 정보조차 공개하지 않은 영화와 어울리는 코드명이었다. <테넷>에 대해 약간의 정보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스콧은 딱 잘라 말했다. “직접 봐야 해요. 진짜 죽여주는 작품이거든요.”
스콧은 스스로를 ‘라 플레임 La Flame’이라 부른다. 그는 난장판을 부추기고 자신을 충실히 따르는 팬들을 위해 사운드를 갈고 닦았다. ‘Antidote’, ‘Goosebumps’, ‘Sicko Mode’가 그 결과물이다. 라이브 콘서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에너지다. 스콧은 신체와 사운드를 통해 압도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강력한 무의식적 충동을 일깨우는 것이 진정한 천재성일지도 모른다.
무대 위의 모습처럼 스콧은 에너지와 본능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그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비트에 맞춰 온몸을 들썩이며 스튜디오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보라색 스투시 크루넥의 옷깃이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검은색 카고 쇼츠 차림이었고 직접 디자인한 로톱 에어 조던을 신고 있었다. 어느새 비트가 멈췄고 정적이 흘렀다. 현실로 돌아온 스콧은 머리에 쓴 듀렉을 벗어 던지며 카우치에 몸을 내던졌다. 그는 가만히 있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머릿속에서 비트가 끊임없이 울리는지 오른발 뒤꿈치로 바닥을 찍으며 박자를 탔다. 발밑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 있었다.
캑터스 잭의 사무실은 세련되고 미니멀하다. 흰색 벽을 배경으로 낮은 카우치가 놓여 있다. 유리문이 달린 냉장고의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됐다. 숟가락을 쥔 트래비스 스콧의 피규어가 인쇄된 리즈 퍼프 시리얼 상자가 늘어선 광경은 여느 밀레니얼 스타트업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자신을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로 만들어준 세 번째 정규 앨범 <Astroworld>를 발표한 뒤 이 사무실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에게 <Astroworld> 다음 행보에 대해 물었다. “유토피아로 향해요.”, “어떤 모습이죠?”, “구글에서 검색해본 적 있나요?”, “있긴 하지만 저마다의 유토피아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제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한번 상상해보세요”라고 운을 뗀 뒤 그는 방 안을 배회하며 이상적인 미래에 대해 여러 생각을 늘어놓았다. 요점은 이렇다. 스콧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다 같이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채 편을 가르지 않고 인간으로서 모두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곳”이다. 그곳은 끝내주게 쿨해 보이기도 한다. “멋진 빌딩이 모여 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있어요. 모든 게 생동감 있게 활발히 움직여요. 그리고 우리는 그저 서로가 행복하기를 원해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언젠가 그곳에도 디스토피아가 닥치겠죠.”
오늘날 미국에서 흑인이나 라틴계로 살아간다는 건 디스토피아를 겪는 것과 비슷하다. 전 지구적 보건 위기 속에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은 중대한 순간에 직면했다. 연방 정부에서 내려보낸 스톰트루퍼가 미국 전역에 깔렸다. 인종 차별 반대 시위 참가자들은 그들을 적으로 간주한 지도자의 명령에 공격을 받고 있다. 스콧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경찰 폭력과 인종 차별을 향한 절규에 동의하고 깊이 공감한다고 했다.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되풀이되어 왔는지 아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투쟁했어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원하는 결과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의지가 확실하게 전달되어야 해요.”
스콧은 말로 그치지 않고 보다 큰 관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모색했다. 단순한 기부를 넘어 공동체 사회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고향인 휴스턴의 시장과 면담했다. 그의 큰 그림은 아스트로월드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2005년 폐장한 아스트로월드는 40년 가까이 휴스턴을 대표하는 테마파크였다. 스콧의 유년기를 함께 보낸 곳이기도 했다.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은 그에게 늘 우선순위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내며 어떻게 헤쳐 나갈지 고민하고 있어요.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자극을 받고 동기 부여가 돼요. 음악이든 도심 지역의 환경 개선을 통해서든 제 역량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싶어요.”
스콧을 만나기 3일 전 그는 자신의 멘토라 할 수 있는 카니예 웨스트와 새 싱글 ‘Wash Us In The Blood’을 발표했다. 어두운 분위기를 잔뜩 풍기며 거칠고 정치색이 짙은 곡이다. 웨스트의 커리어에서 가장 도발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앨범<Yeezus>로 회귀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스콧이 참여한 효과는 강력했다. 특유의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산하고 난해한 사운드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들은 와이오밍주 코디에 자리한 웨스트의 목장에서 레코딩을 진행했다. 뮤직 비디오는 비주얼 아티스트 아서 자파가 연출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 장면, 호흡 곤란을 겪는 흑인 환자들, 경찰의 총탄에 사망한 브리오나 테일러가 생전에 춤을 추는 모습, 웨스트의 선데이 서비스 합창단의 영상으로 짜인 뮤직비디오는 곡의 격렬한 분위기에 힘을 더했다. 곡을 발표한 뒤 웨스트는 인종 차별 항의 시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수많은 흑인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스콧은 웨스트의 음악적 자장 속에서 성장했다. 큰 차이라면 그가 팬으로 시작해 후계자 자리를 거쳐 웨스트와 동서지간이 됐다는 것이다. 웨스트의 오락가락하는 정치적인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자 스콧은 “그의 자유 의지예요. 다만 제가 그 발언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얘기해요.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어쨌든 우리 형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자크 웹스터가 본명인 트래비스 스콧은 열세 살 무렵부터 직접 비트를 만들고 랩을 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로서 그는 휴스턴 힙합에 기반을 둔 촙트 앤드 스크루드 Chopped and Screwed 장르의 쿨한 앰비언트 비트에 펑크 에너지를 혼합하고 래퍼 키드 커디의 로파이한 느낌과 카니예 웨스트식의 세련된 웅장함을 가미한 스타일을 만들었다. 휴스턴 남부의 서니사이드라는 동네에서 할머니 손에 자란 스콧은 미주리 시티로 옮겨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집 안에는 늘 음악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에게 드럼을 가르쳤고 삼촌 트래비스는 베이스를 연주했다. 활동명도 삼촌의 이름에서 따서 지었다.
스콧은 고등학생 시절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친구들이 조던 운동화를 구입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동안 용돈을 몽땅 투자해 방을 스튜디오 장비로 채웠다. “생생하게 기억해요. 스콧이 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언젠가 제이지와 같이 작업할 거야’라고 말했죠.” 스콧의 고등학교 친구이며 리스본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 도지 카누가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학교 대항 풋볼 경기에서 스콧을 처음 알게 됐다. 한 살 위였던 스콧의 건방지고 으스대는 태도가 썩 좋지 않은 첫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그랬지만 가정 수업에서 서로 짝으로 묶여 친구가 되었어요”라고 카누가 웃으며 말했다. “스콧의 방은 구덩이라고 불렀어요.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엄청 더웠거든요. 구덩이에 처음 갔던 날,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어요. 누구든 방에 차린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드는 스콧을 봤다면 저처럼 틀림없이 성공할 거란 생각을 했을 거예요.”
카누와 스콧은 랩 관련 블로그와 음반사를 수소문해 무작정 이메일을 뿌렸다. “우리는 휴스턴 외각에 사는 평범한 아이들이었고, 동네에서 신인 뮤지션을 발굴하려는 사람은 전혀 없었어요.” 스콧은 텍사스 대학교 샌안토니오에서 2학년을 마친 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자퇴를 결심했고 학비로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 사건 때문에 분노한 어머니는 몇 달이나 아들과 말을 섞지 않았다고 한다. 학교를 떠난 데다 경제적인 지원마저 끊긴 스콧은 휴스턴에 사는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거나 차 안에서 쪽잠을 자는 동안에도 자신의 음악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2011년 마침내 스콧에게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카니예 웨스트의 엔지니어인 앤서니 킬호퍼에게 보낸 메일이 웨스트의 눈에 띈 것이다. 이를 계기로 스콧은 웨스트의 레이블인 굿 뮤직에서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 <Cruel Summer>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에픽 레코즈와 앨범 계약을 맺었다. 이후 일이 술술 풀렸다. 웨스트와 제작 계약을 한 뒤 레이블 그랜드 허슬 임프린트에 들어갔다. 2015년 데뷔 앨범 <Rodeo>를 발표하기 전까지 웨스트, 빅 션 그리고 그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제이지의 곡을 프로듀싱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초창기에는 스콧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독학으로 익힌 프로듀싱 실력은 기대주로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일부 평론가들과 힙합 팬들은 독자적인 스타일의 부재를 꼬집었다. 평론가들은 스콧을 래퍼보다 일종의 지휘자로 여겼고 그의 음악을 문화적 표절로 치부했다. 그들이 보기에 스콧은 그가 존경하는 영웅들의 아류에 불과했다. 카니예 웨스트, 키드 커디와 지나치게 비슷하고 협업 뮤지션들에게 의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스콧은 2018년 발매된 세 번째 정규 앨범 <AstroWorld>를 통해 이런 세간의 평가를 보란 듯이 전복시켰다. 야심 찬 콘셉트를 바탕으로 난해하고 복잡한 사운드가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이 앨범은 기존의 음악적 서사를 완전히 뒤바꿨다는 평가를 비롯해 그해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갈고 닦은 스콧은 아티스트로서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꿈의 무대라 불리는 슈퍼볼 하프타임 공연, 그래미상 후보 지명, 아레나 투어가 보상처럼 이어졌다. 구덩이 같은 방구석에서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마음에 품었던 꿈을 이루기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실제로 일어나니 믿기지 않더군요. 한 장의 앨범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었죠.
<AstroWorld>는 여러 가지를 실험해보려는 성격의 앨범이었어요.”
스콧과 같은 세대의 팬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그의 콘서트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로 이글거린다. 속된 말로 관객이 미쳐 날뛴다. “맞아요. 스콧은 과격 사태를 부르는 존재예요. 타고났어요”라고 말하는 카누에게 스콧이 한 세대 전체를 사로잡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그는 굉장한 직감을 지녔어요. 비트를 듣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마음에 들면 몸짓이 완전히 달라져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거죠. 멜로디와 라임을 짤 때도 몸이 먼저 반응하곤 해요. 그리고 스콧은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원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그의 공연이나 뮤직비디오를 보면 팬들의 반응에 꽤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스콧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치 그의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다. 178센티미터 키, 늘씬한 비율, 탄탄한 근육으로 이뤄진 몸 전체를 사용해 대화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스콧은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말을 쏟아낸다. 흥분에 휩싸인 그를 보면 공연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스콧이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일을 벌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크게 놀랍지 않았다. “음, 그냥 하는 거죠. 되는 대로 하는 편이에요.” 팬데믹이 계속되면서 스콧은 딸 스토미와 함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한 곳에 이렇게 오래 머무르는 것도 활동 후 처음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워요. 아직 어리지만 세상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어요.”
스튜디오의 카우치에는 ‘스토미 아빠(Stormi’s Dad)’라는 글씨가 등에 새겨진 저지가 걸려 있다. 상판이 유리로 된 책상 앞에서 농구공으로 드리블을 하던 스콧은 “진열장에 넣어둬야 해요”라며 자랑하듯 그 공을 보여줬다. 금색 샤피 마카로 휘갈긴 마이클 조던의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 옆에 세워둔 실물 크기의 검은색 금속 선인장 모형과 마찬가지로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다. 바닥에는 그와 카일리 제너가 상의를 벗은 채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놓여 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따로 있다. 스콧의 할머니를 찍은 아름다운 흑백 사진이 책상 뒤 벽면을 채울 정도의 커다란 크기로 걸려 있다. “할아버지는 여기 벤치에 앉아 계시곤 했어요.” 사진 속 평범한 단층 주택 앞에 놓인 나무 의자를 가리키며 그가 설명했다.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요.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여기에 앉아 계셨어요.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여기 마당의 잔디도 제가 깎았어요. 유년기의 많은 시간이 이 사진에 담겨 있죠. 할머니는 제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해주신 분이에요. 항상 할머니가 저를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스콧이 어릴 적부터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머니 덕분이었다. 집 안에 놓인 <보그>와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를 뒤적이던 그는 아직도 경이롭다는 듯이 어머니의 패션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입혀주는 대로 입었어요.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노티카, RRL, 랄프 로렌 퍼플 라벨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맞춰 주셨어요. 어머니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주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셨어요.” 스콧은 팬들이 자신의 스타일을 의식하기 시작한 시점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SNS에 특정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를 착용한 사진만 올려도 협업 루머가 도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2017년부터 이어온 나이키와 스콧의 협업 모델들은 구하기 어려운 나머지 일부 나이키 매장에서 그의 팬들에게 재고 문의를 멈춰 달라고 공개적으로 부탁했을 정도다. 스톡엑스의 공동 설립자 조시 루버는 스콧의 영향력에 대해 “그는 카니예 웨스트, 퍼렐 윌리엄스, 드레이크와 같은 반열에 속해요. 패션과 음악 그리고 스포츠의 경계를 허무는 슈퍼스타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반면 스콧은 자신의 스타일을 둘러싼 요란한 관심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른다는 기색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제가 뭐라고 얘기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저 뭔가를 계속 만들 뿐이에요. ‘다음에는 뭘 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요.” 그는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에 적지 않은 고민을 담는다.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신발이나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 같은 게 있어요. 분야를 막론하고 스포츠 경기처럼 최고 기록의 퍼포먼스를 펼친다는 건 끝내주는 일이에요.” 그의 설명은 계속됐다. “덩치가 커진 기업들은 가끔 세상을 굴러가게 만드는 평범한 사람들을 잊곤 해요. 그런 이들을 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어요.”
전화를 받기 위해 스콧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 전화는 전부터 끊임없이 울렸다. 그는 양해를 구한 뒤 통화를 했다. 휴스턴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한 달 전쯤 스콧은 브렌우드 지역에 위치한 대저택을 2천4백만 달러에 구입했다. 현대식 요트처럼 곡선형 철판으로 감싼 건물이라고 했다. 문제는 릭 오웬스에게 특별 주문한 침대가 방에 못 들어갈 정도로 크다는 것이었다. 담당 디자이너는 제작을 계속 진행해야 할지 알고 싶어 했다.
스콧은 “새로운 걸 보여줄 건데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요”라며 그날의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위층 라운지에는 셰프가 만든 치즈 버거가 준비되어 있었고 캑터스 잭의 직원들이 주방에 모여 TV를 보고 있었다. 훌루에서 제작한 <우-탱: 아메리칸 사가>가 나오자 스콧은 치즈 버거를 내려두고 “원래 여기 출연하기로 했었는데!”라고 외치며 화면 앞으로 달려갔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그는 에픽 레코즈에 전화를 걸어 우탱 클랜의 리더 RZA와의 미팅 상황을 확인했다.
통화를 마친 뒤 비밀리에 진행한 협업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줬다.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진작에 성사됐어야 할 것만 같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물이자 트래비스 스콧이라는 브랜드가 음악, 패션, 아트를 넘어 영역을 더 확장하는 현명한 방식이었다. 스콧은 내 표정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반응을 기다리다 한 번 더 물었다. “끝내주지 않아요?”
그는 사방에 흩어진 것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빠르게 포착하는 감각을 지녔다. <테넷>의 음악 감독 루드비히 고란손은 “스콧은 다양한 차원의 예술을 동시에 두드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예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아요. 무수한 촉수를 거느리고 있고, 하나하나가 마치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요. 그와 함께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 후 각자의 감상을 공유했을 때 그는 다양한 분야를 끌어와 자신의 생각을 시각화했어요. 마치 마술 같았죠. 그런 스콧의 능력은 아주 특별해요.”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온 스콧은 최근 작업한 곡들을 더 들려주겠다며 흥분한 기색을 내비쳤다. 물론 그의 목소리도 빨라졌다. “락다운 기간 동안 작업에 몰두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다음 앨범에는 지금껏 얻은 지식을 모두 담을까 해요. 물론 최대한 멋진 형태로 다듬어서요.” <포트나이트> 안에서 진행한 공연에서 그는 신곡 ‘The Scotts’를 공개한 바 있다. 래퍼 키드 커디가 피처링에 참여해 공개 직후 1위에 올랐다.
스콧은 최근에도 커디와 공동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녹음을 마친 곡도 꽤 되는 것 같았다. 자세한 내용을 묻자 스콧은 “끝내주는 것이 많아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하면서 트랙 하나를 골라 재생했다. 솔직히 그날 들려준 곡들 중 가장 좋았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어. 그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어.(I know where I’m going. I know when it’s time.)” 부드러운 비트에 맞춰 노래하는 커디의 음색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기에 맞춰 스콧은 투스텝을 추기 시작했다. 그루브감 있는 비트가 점차 탄력의 기운을 띠더니 어느새 날뛰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도 격하게 돌변했다. 무대 위의 모습처럼 레이지 모드가 된 것 같았다. 유토피아를 부유하듯 스콧의 두 눈은 질끈 감겨 있었다.
- 글
- Gerrick D. Kennedy
- 포토그래퍼
- Adrienne Raquel
- 스타일리스트
- Mobolaji Dawo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