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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삶, 그 사이의 기쁨과 슬픔

2021.06.13GQ

문학 잡지 편집장, <82년생 김지영> 편집자, 대형 출판사 직원. 이런저런 이름표를 떼고 새날 앞에 선 서효인 시인에게 물었다. 안온한 날들이십니까?

사람이 일의 기쁨과 슬픔에 치어 살다 보면, 그 기쁨과 슬픔에 종속되어 일이 곧 사람이 되고 사람이 마치 일인 것처럼 되어버리는 수가 많다. 그 일이라는 게 대부분은 회사에서 이뤄지는 것이라서 그런 사람이 회사를 오래 다니면 내가 곧 회사고 회사가 나라는 환상에 휩싸이게 된다. 회사의 고통이 그의 고통이 되고 회사의 환희가 그의 환희가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충실하고 숙련된 노동자이겠으나 곁의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황당한 게, 완전한 착각이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와 계약 관계에 불과하며, 그가 스스로 이뤘다고 여기는 거의 모든 것은 회사의 시스템 안에 있음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의 성취와 실패 모두 결과적으로는 회사의 것이다. 이뤄냈는가? (좋은 회사라면) 인센티브를 줄 것이다. 실수했는가? (대부분의 회사가) 어떤 형태든 징계를 줄 것이다. 이것은 그러니까 엄연히 ‘일’의 기쁨과 슬픔인 것이다.

그 기쁨과 슬픔이 내게 너무 컸던 탓일까? ‘일’과 ‘삶’을 필요 이상으로 등치시켜 지내왔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막상 퇴사하는 날이 되자 후련함은 온데간데없고 섭섭함과 쓸쓸함만이 넘실거린 게다. 기뻤던 순간이 꽤 있었고 슬펐던 날은 그보다 많았다. 매달 밀리지 않고 월급을 받았고 동종 업계 내에서 높은 수준에 있는 동료들과 일할 수 있었다. 매일 끝없는 불평과 불만이 생겼다. 보스나 선배의 흉을 보았고 가끔 후배의 눈치도 살폈다.

집에서보다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지냈다. 숨 막히고 기막히게 늘 막히는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서 보낸 시간을 합치면 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다.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름을 나의 이름 앞에 붙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디 어디 편집부 누구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면 일단 수월했다. 회사의 이름이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사이에 존재한 무수한 글자의 조합이었던 셈이다. 수년 동안 이런저런 조합을 시도했고, 몇몇은 성공했으며 몇몇은 실패했고 많은 경우 그럭저럭 지나갔다.

책상을 정리하자 그럭저럭 지나간 시간이 우르르 다시 지나갔다. 기쁨도 슬픔도 저마다 윤색된 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어떤 것은 버리고 어떤 것은 챙기는 게 그것들의 마지막 지나감이 될 것이었다. 책 만드는 일을 한 터라 역시 책이 많았다. 만든 책을 쓰다듬어본다. 본디 내 것이 아니었던 빛들이 조금 반짝하는 착각이 들었다. 책과 문학은 그렇게 세상으로 나아갔다. 나의 이름이 아닌, 회사의 이름으로. 1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읽은 책도 있고, 1천 명도 읽지 않은 책이 있다. 그것으로 기쁨과 슬픔을 분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가 손에 쥐어지지 않는 빛이었다. 내일은 이 빛의 소굴을 떠난다. 이것이 내 것이었다는 착각의 대가를 치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뜬금없는 센티멘털을 비웃듯이 마지막 날까지 우여곡절은 많았다. 이례적으로 그만두는 날까지 한 종의 책을 마무리하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작이 조금 미뤄진 것이다. 이른 오전에는 보도 자료를 완성했다. 늦은 오전은 릴리스 명단을 확정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동료들에게 인사를 돌았다. 결국 실물 책은 받아보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많았으나 대부분을 다음 날 출근해 세상에 나온 책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경우가 다르다. 남은 동료들에게 책의 뒷일을 부탁했다. 송별회는 하지 못했다. 코로나 시국이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은 금지되었고 나의 퇴사를 기념하는 자리는 어디까지나 사적이기에, 많아야 4명이 모여서 간단히 밥을 먹으며 지난날과 앞날을 이야기했다. 식사 전후로 마스크를 썼다. 표정을 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필시 아쉬운 표정으로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들었을 테다.

유난한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쉬는 기간 없이 새로운 사무실로 바로 출근했다. 동업자가 구해 놓은 조그마한 공유 오피스다. 회사의 일이 아닌 내 일을 찾고 싶었다. 책을 만들어 생기는 자본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고 싶었다. 책을 마음껏 만들고 싶었다. 결국 모든 게 내 것이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가진 것은 집에서 급히 가지고 나온 컴퓨터가 다다. 사무실도 책상도 의자도 모두 빌린 것이고, 복사기는 복도에 있고 에어컨은 중앙 제어 시스템이라 마음껏 온도 조절을 할 수 없다. 건물에 주차가 불가해 걸어서 5분 거리 건물 지하에 월정기권을 끊었다. 말하자면 몸뚱어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을 빌린 셈이다. 가만, 사는 집도 대출이 남아 있고 자동차도 할부금을 치러야 하고, 거의 모든 소비는 카드로 이뤄지니…, 회사를 다녀서 내 것이 없고 내 것이 없어서 공허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본주의에서의 삶 자체가 공허의 바다에서 개헤엄을 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회사 대표가 되려는 사람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니지만.

출판등록과 사업자등록을 위해 구청과 세무서를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다. 책 만드는 일에 자신이 있어 독립했는데, 반대로 책 만드는 일 제외하고 나머진 다 젬병이었다. 과세와 비과세를 구분해야 했고 개인사업자와 법인의 차이를 잘 알아야 했다. 모두 잘 몰랐다. 신입사원의 자세로 친절한 공무원들의 설명을 듣고 떠듬떠듬 따라갔다. 결론적으로는 과세/비과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법인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창업 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선배들은 법인 설립을 말렸다. 너무 귀찮은 일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사업의 규모에 비해 불필요하고 허세 있어 보이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진짜 정말로 내 것이기에, 그래서 내 것이 아닌 상태로 출발하고 싶었다. 내가 대표이자 창립자이니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것이기에, 회사라는 다른 인격체를 만들어 나와의 거리를 만들고 싶었던 듯도 하다. 이왕 시작하는 것, 법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작고 소소한 마음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단단하고 유능하며 선량하고 규모 있는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

그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원고가 필요하다. 대형 출판사라는 알파와 오메가가 사라진 상태에서 작가에게 믿음을 주고 원고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당장은 ‘우정의 공동체’에 조금 기대보기로 했다. 출판과 문학 안팎에서 관계를 형성한 작가들에게 글을 부탁하는 것이다. 그들이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소형 공유 오피스의 작은 책상에 작품을 가져다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기대하면서 두 번째로는 어디까지나 발굴이다. 아직 책이 되지 못한 문장들, 아직 저서를 쓰지 못한 작가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사실 책상에 앉아 무언가 골똘하고 골몰할 시간이 부족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매주 책이 나오던 회사에 있었다. 손에 물리적인 실체가 잡히고 그걸 보고 일을 했었다. 이젠 아니다. 머릿속 추상이 구상이 되어야 할 텐데 이 과정을 관장할 시스템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사실은 이 시스템이 궁금하고 욕심나 회사를 차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더위가 오고 있다. 이 여름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첫 번째 결과물을 낼 수 있을 듯하다. 온전히 내 것이어서 더더욱 내 것이 아닌 기쁨과 슬픔이, 그것의 구체와 물리가, 손에 잡히는 책과 저자와 독자가, 아직 안 온 그 무언가를 향해 뚜벅뚜벅 간다.

    서효인(시인, 안온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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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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