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까.
DMZ
“한국에 골프장을 만들고 싶은 단 한 곳요? 생각해둔 곳이 있지요. 저만의 비밀이었는데, 처음 공개합니다. DMZ 지역이에요. 지역 자체의 특수성도 독특하지만, 한국에 이곳만큼 자연이 훼손되지 않은 지역은 아마 없을 거예요. 철새가 가득하고, 사슴이 뛰노는 들판 근처에서 라운딩을 한다고 상상해보세요. 낭만적이죠? 그런데 실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기린, 거북이, 뱀, 새가 서식하는 골프장이 있어요. 물론 공이 날아다니는 코스 밖의 이야기지만.” 미국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 오상준이 건넨 힌트를 바탕으로, 아티스트 노상호가 상상을 덧대었다. “미래엔 가상 공간 속 골프가 더 활성화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도 DMZ에 사는 동식물을 학습하며,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가상 환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 DMZ의 자연과, 가상 공간의 동식물이 한 풍경으로 겹쳐지는 거죠.”
ABONDONED
생을 다한 공간, 이를테면 쓰레기 매립지나 채석장 등을 골프장으로 새롭게 활용하는 일은 세계적인 추세이자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시도다. 한데 이 땅을 그린으로 뒤덮는 대신, 버려진 땅의 특성 그대로를 골프의 재미로 끌어들여본다면 어떨까? “가령 버려진 공장 기계를 그대로 둔 상태로 공원을 조성한 독일 인더스트리얼 파크나, 물탱크를 그대로 둔 호주 목장 등을 떠올려볼 수 있겠죠. 예전의 쓰임을 동시대의 가능성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요.” 오상준의 상상에 일러스트레이터 유승보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덧칠했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공사현장에 몰래 들어가 이미 망가진 이것저것을 한 번 더 망가뜨리며 우리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던 추억이 떠올랐어요. 더 이상 망가질 것도 없는 엉망진창의 미학이란!” 무쓸모의 쓸모. 디스토피아적 골프장에서 문득 지속 가능한 골프장의 가능성이 비친다.
METABUS
“메타버스 세상에서 나의 캐릭터가 골프를 한다면? 이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기하학적 요소로 구성된 공간을 이동하며,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공간적 상상을 표현해보았죠. 순환하는 원의 의미를 골프공이 여러 차원에서 이동하는 것으로 구현해보았어요. 시공간의 흐름이 자유로운 골프장 곳곳에 전설의 골퍼를 캐릭터화해 곳곳에 심어둘 거예요. 전자 음악과 함께 파티를 여는 느낌으로 골프 페스티벌! 상상만 해도 즐겁죠?” 빠키의 상상 속에서 골프장의 온-오프라인은 뒤범벅된다. “골프의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그린위에 서서 자연을 즐기는 것이지만, 미래에는 가상 골프장을 자신의 공간으로 들일 가능성도 커요. 거실에서 그립을 들고 고글만 쓰면 어디든 골프장이 될 수 있죠. 버추얼과 리얼의 구분이 힘들어질 거예요.” 골프 코스 설계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빠키의 발칙한 상상이 어쩌면 현실로 훅 다가올 것만 같다.
MARS
1971년 1월 31일. 아폴로 14호가 달에 갔을 때, 선장 셰퍼드는 접이식으로 특별히 제작한 6번 아이언을 챙겨가 달에서 스윙을 했다. 당시엔 깜짝쇼를 위한 퍼포먼스였지만, 대체 행성을 찾는 동시대의 우리에게는 진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구와는 중력이 다르니 골프의 기본부터 역사를 아예 새로 쓰게 될지도. 사막에서 골프를 하는 듯한 신비한 체험은 덤이 될 것이다. “화성 정착을 위한 기지 건설 중 무료한 일상을 골프로 달래고 있는 우주인을 그려보았어요. 캐디는 없지만, 이제는 낡아서 쓸모없는 큐리오시티 같은 로버를 고쳐 데리고 다니면 어떨까요? 여기는 아르카디아 평원으로 정착지에 최적이 포트이고, 지형이 험하지 않고 물을 확보하기에도 비교적 쉽다고 합니다. 저 멀리 태양계에서 가장 높은 산, 올림푸스가 어렴풋이 보이네요. 지구에 있었다면 성층권을 뚫고 올라갈 정도의 높이랍니다.” 조성흠의 말이다.
- 피처 에디터
- 전희란
- 코멘터
- 오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