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러 가지 하는 유지태

2008.07.30GQ

인터뷰 중에 유지태는 여러 번 크게 웃었고, 촬영 중에 한 번 무심히 빗을 던졌다. 그게, 두루 확장된 그 삶의 면적을 ‘경영’하는 방식인 것처럼.

커프&허릿단 밴딩 디테일 베이지색 셔츠, 크림베이지색 팬츠 모두 로버트 겔러by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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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촬영은 언제 끝났나? 작년이다. 5회차 촬영이라 언제 찍었는지 가물가물하다.처음에 8회차로 잡았는데 5회차로 줄였다. 길게 찍어봐야 돈만 더 드니까.

단편이긴 해도 세 번째 연출이다. 예전에 당신이 박찬욱 감독은 실용적이고 홍상수 감독은미학적이라고 말한 걸 봤는데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 홍상수 감독님은 미학적이라기보다 괴기적이다. 거쳤던 감독들에게 영향을 받은 건 분명하지만 딱히 누구하고 비슷한 것 같지않다. 이번에 연출하면서 간단한 경리업무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 좀 귀찮아하지 않나? 경리를 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스스로 하려 했더니 마찰이많이 생겨서 다음부터는 단기간이라도 경리를 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사까지 직접 만든 걸 보면 연출가로서의 미래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은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멀리 보게 되고, 점점 이성적으로 대처하게 되는 것 같다. 연출은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 해 나가는 거지.

일상에서 당신 이미지는 올바른 청년이다. 그런데 <올드 보이>이후의 캐릭터들이나 당신이만든 영화의 느낌은 반대다. 일하다 생긴 버릇인지, 일과 감정과 생각을 분리하는 편이다.

연기나 연출에서는 그 부분이 힘들지 않나? 이번 작품 경우에도 실제 경험이 영화에 많이투영된 것 같았다. 투영되어 있겠지만 다는 아닌 것 같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건 별로 재미가없다. 홍상수 감독처럼. 이제 별로 기대도 안돼(웃음).

홍상수의 스타일이 별로인가? 저예산으로 찍더라도 좀 발전하거나 다른 형태의 접근을했으면 좋겠는데, 왜 같은 이야기를 장소만 바꿔서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소설가는 예술가는 평생 동안 한 가지 테마를 변주한다고 말했다. 변주를 해야지. 변주를 안 하면서 계속 똑같으니까.

그럼 당신의 테마는 뭔가? 글쎄, 나는 아직 아마추어 감독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할 처지가아닌 것 같다. 아마추어인데 뭘.

아마추어라는 건 겸손인가? 아니면 스스로 정한 경계인가? 돈 받고 일 하는 거냐 돈 안 받고일하냐 그 차이다(웃음).

그럼 누군가 당신의 영화에 투자를 한다면 프로라고 말할 건가? 그렇다.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 아마추어는 찍기 자유로우니까 재밌다.

연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어떤 결핍 때문인가? 연기는 창작이 될 수 없나?수동형의 인간에서 능동형의 인간으로 변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어서다. 배우는 선택 받는직업이니까. 내가 선택을 하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거다.

얼마 전 개봉한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관객을 압도하는 연기를하지만, 인터뷰 준비를 하다 당신은 데뷔작 <바이 준>부터 지금까지 그런 연기를 한 적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르는 연기는 별로 재미없는 것 같다. 나는 아사노 타다노부처럼연기 아닌 연기를 하고 싶다. 뭔가 많이 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다.

연기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왜 재미가 없다는 건가? 너무 촌스러워. 물론 기술적인 부분에서 그런 연기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연기자가 너무 강하면 관객이 감정을 둘 곳이 없어진다. 공간이 없어. 여유가 없어. 나는 정말똑똑한 연기자라면 관객들을 안으로 포용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렇게 생각했나? 하다 보니 계속 구체화됐는데 영화 데뷔 이전에 연극을 할 때도 연극적인 연기들이이상하더라. 뮤지컬적인 연기들. 연기자들은 다 그런 연기 좋아한다. <스카 페이스>의 알파치노 같은 연기. 나는 촌스럽게 느껴지던데.

그러나 사람들은 당신이 말하는 ‘포용하는’ 연기들은 잘 몰라준다. <올드 보이> 때도 최민식의 연기를 더 많이 기억한다. 별로 잘한 것 같지도 않다. 내가 그때 부담만 안 느꼈다면훨씬 더 잘 했을 텐데. 외부적인 부담. 쓸데없는 부담. 혼자 민식이 형과 비교한다거나.

그런 게 없지는 않은가 보다. 없지 않다. 나도 사람인데.

영화 끝나고 나서 어땠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게 내 자신을 경영했다는 게 안타깝지.

그런 말을 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초연한 줄 알았다. 아니 뭐 그렇게 큰 게 아니니까. 말해봐야 인생이 크게 좌지우지되는 건 아니니까.

호기심이 많은 것 같진 않다. 혼자 생각해서 스스로 깨닫는 스타일 아닌가? 그렇다. 남이 가르쳐주질 않더라. 멘토도 없다. 해달라고 해도 잘 안 해주고.

배우들 중에서도? 배우들도 다 자기 이기주의가 강해서. 선배들도 다양한 쪽으로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다 자기 살기 바쁘다.

최근 배우들 인터뷰를 보면 당신을 롤모델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러는지모르겠는데(웃음). 내가 한국에서는 좀 독특한 길을 걸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괜히 좋아보이는 거 아닐까. 연극하고, 영화 만들고.

지금 나이에 벌써 그런 대상이 된다는 게 불편하지 않나? 내가 신경을 안 쓰는데 뭐.

당신 표정, 부드럽다. 그래서 누군가를 실망시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탄받는다.

당신은 웃음 뒤의 주름살에 스며 있는 비열함을 잘 표현한다. 두 가지 모습이 다 가능한얼굴이다. 후자의 연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대본에 쓰여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웃음).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피터 오툴 인터뷰에서 기자가 “좋은 연기자의 길은무엇입니까”라고 물으니까 “그냥 시나리오를 잘 보고 고른다”고 하더라(웃음).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감독이 하라면 하는 거지. “느낌 좀 채워주세요”해서 “무슨 느낌이요”하고물으면“몰라도 돼”, “ 알겠어요”이런 식. 그래서 이제 감독들이 나한테 이야기를 잘 안 한다.“알면서 뭘”하는데 솔직히 모를 때가 많다. 그냥 아는 척하고 해야 된다(웃음). 너무 힘들면이야기를 한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라고.

촬영장에서 말이 많은 편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실수를 하니까 안 하려고 노력한다. 전에는말을 더 안 했는데 말을 안 하니까 소통하기 힘들더라. 오해하더라고. 그래서 말을 좀 하려고했더니 말을 하는 순간부터 더 나를 잘못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시 줄이려고 한다.

소통’이란 낱말을 자주 이야기한다. 단편이라선지 이번 영화를 많은 대중들이 좋아할 것같지 않다.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웃음). 단편이라 좀 아쉬운 점이 많다.

인생에 계획을 세우는 편인가? 계획을 세우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하느님한테 맡기고.

종교가 있나? 기독교다. 맹신론자다.(웃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누구 전도에 의해 간 건아니었다. 그런데 종교하고 예술은 좀 별개라고 생각한다. 처음 교회에 갔을 때를 기억한다.오락실에 있다가(웃음), 오락실에 들른 친구들의 성경책을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아서 나도 모르게 교회 앞에 서 있었고 나도 모르게 계단을 올라갔는데 거기서 감동 감화를 받았다.

분위기 때문이었나? 그런 건 아니고. 난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눈물을 흘렸고 그 후로 맹신론자가 됐다. 잘 안 믿길 거다.무용담처럼 느껴지고. 특히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들이 이율 배반적일 때가 많기 때문에 말 하는 걸 꺼려하는 편이다.

기부를 많이 하는데 그렇지 않기 위한 노력인가?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영화인으로서 사회에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지에 처음 관심 갖게 된 것도 영화 스태프복지에 관심이 많이 가서 시작하게 된 거다.

매체 속 당신의 모습은 지나치게 겸손해서 재미가 없다. 그렇지. 너무 겸손하면 재미가 없지.자학주의. 내가 자학을 많이 한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안 좋은 방법이지.

좀 더 오만해지고 싶진 않나? 어머니가 너무 겸손하지 말라고, 그게 너의 아킬레스건이라고하셨다. 그런 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도 많고. 그렇다고 오만해지기까지 할 필요는없다고 생각한다. 경영을 해야 된다. 올바른 경영.

대학원도 다녔고, 복지 행사에도 참석하고, 연극도 하고, 영화도 한다. 젊을 때 이것저것경험해 보려고. 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앞으로도 영화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에디터
    문성원
    포토그래퍼
    김지양
    스탭
    Stylist| 정윤기(Y.K. Jung, 인트렌드), 헤어/김성학, 메이크업/진수아
    브랜드
    쿤, 로버트 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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