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태양은 가득히

2010.12.01장우철

첫 정규 앨범 <Solar>, 그리고 이어진 무대. 과연 태양으로 가득했던 순간들. 아이돌이라는 말은 어쩌면 우스개거니 지나친다.

재킷은 YSL by 분 더 숍 맨, 셔츠는 줄리아노 후지와라 by 10 꼬르소 꼬모, 타이는 디올, 목걸이는 샤넬

재킷은 YSL by 분 더 숍 맨, 셔츠는 줄리아노 후지와라 by 10 꼬르소 꼬모, 타이는 디올, 목걸이는 샤넬

티셔츠는 릭 오웬스, 누빔 재킷은 크롬 하츠, 재킷은 레 옴므 by 10꼬르소 꼬모, 털달린 후디는 샤넬, 바지는 태양의 것, 벨트와 반지는 크롬하츠, 신발은 베스 by 10 꼬르소 꼬모

티셔츠는 릭 오웬스, 누빔 재킷은 크롬 하츠, 재킷은 레 옴므 by 10꼬르소 꼬모, 털달린 후디는 샤넬, 바지는 태양의 것, 벨트와 반지는 크롬하츠, 신발은 베스 by 10 꼬르소 꼬모.

촬영 직후의 이완. 푸짐한 털코트를 벗은 태양이 슬렁슬렁 이쪽으로 걸어온다. 에디터와 사진가는 11월 11일 아침의 국가 행사로 빚어진 택배 해프닝을 얘기하던 중이었다. 사연인 즉 촬영소품으로 쓸 소나무 분재가 아예 배달되지 못할 뻔한 십년감수. 가만히 듣더니 그가 중얼거리며 돌아선다. “왜 그렇게 난리일까요.” 툭 내뱉고 돌아서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찧고 까부는 폼생폼사는 당초에 없었으니, 대한민국 주류 음악판에서, 아이돌인지 아이들인지 내내 그게 그것인지도 모르겠는 그 판에서, 태양은 굳이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우기고 보는 콘셉트가 아니라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믿음, 이 바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타박이 아니라 부족하다면 이겨내겠다는 각오, 꾸역꾸역 뽐내기보다 어떨 땐 차라리 입을 다무는 가수이고자 하는 어른스러움.

그런데, 올해 참 잘했다고 칭찬하고 축하하러 만난 자리에서 그는 하필 한숨을 쉬었다. “흐음…. 글쎄요, 돌이켜보면 시원섭섭하죠. 우선은 참 좋았어요. 긴 시간 동안 만든 앨범도 드디어 나왔고, 그 앨범을 알아봐주고 좋아한 사람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고, 해외에서의 반응도 많은 힘이 됐고, 그렇게 하고 싶었던 콘서트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막을 내리면 누구나 그럴 것 같아요. 기쁘면서도 아쉽고, 잔상이 많아요. 이렇게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요. 공허하달까요? 어딘지 좀 빈 것 같기도 하고. 제가 좀 애매한 포지션이잖아요.” 말끝이 무르게 번진다. “정규 앨범 내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소극장이든 길거리든 큰 무대든 공연을 많이 하는 거였어요. 항상 제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교류하는 걸 꿈꿨고, 지금도 꾸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소극장 공연만 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니지요. 그렇다고 매체 중심으로만 달리고 싶진 않았고요. 그렇다고 둘을 다양하게 섞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애매한 거죠.” 그러니 아쉬움은 언제나 각자의 일일까?

태양은 올해 ‘아이 니드 어 걸’과 ‘아일 비 데어’로 무대에 섰다. 두 노래의 대조는 바삭한 흰 셔츠와 묵직한 가죽재킷의 대조로도 요약할 수 있다. 한쪽은 튕길 듯 유연했고, 한쪽은 어둡고 끈적했다. 그리고 무대 자체의 완성도만을 위한 집중이 있었다. ‘무슨무슨 춤’이라느니 이름짓고 민망한 동작을 반복하는 류의 유아용 이벤트는 아예 삭제된 채였다. 그 또한 주류 음악 판에서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다. 나왔다 하면 무조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자, 곧 이름이면서도 그는 뭔가를 지우려는 활력으로 밀어붙였다. 세간의 관심이 ‘빅뱅의 태양’에서 출발한다 할지라도, 솔로가 달리 솔로인가? 홀로 우뚝한 무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태양이 극복해야 할 최선의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적입네 하는 프로그램에서조차 기껏 그를 초대해놓고 빅뱅 숙소에서 생긴 일 같은, 웃자는 얘기나 했으니, 어쩌면 그는 조금 외롭지 않았을까?“ 제가 빅뱅의 멤버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박수 속에서 시작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고맙고 감사하죠. 동시에 솔로 무대에서는 혼자서 이겨내야 할 것들이 훨씬 많죠. 결국 무대에서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노래하는 것 밖엔 없는 것 같아요. 존경하는 많은 아티스트의 무대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바로 그거예요.”

유난했던 여름을 꺾으며 전력질주한 활동은 두 차례 콘서트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두 번째 콘서트 때는 기타 가방에 기타 넣어 공연장을 나서려는 세션을 다시 무대로 불러 올리는, 뜻밖의 앙코르 무대가 즉석에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글썽거렸고, 객석은 누군가의 마지막 무대를 보는 것 같은 기운에 휩싸여서는 자욱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가 이렇게 음악을 하고 무대에 서는 게 제 운명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서는 무대와 음악이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음악이 꼭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음악을 하는 이유고 무대에 서는 이유니까, 정말 여러분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고조된 분위기는 ‘테이크 잇 슬로’를 부르다 가사를 잃어버리고 웃는 실수로 겨우 수습되었다. “이상하게 그 노랜 특히 더 잘 까먹더라고요.”

콘서트를 마친 태양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는 처음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풍경을 볼 줄은 몰랐어요. 한라산이 기억에 남아요. 마라도로 가려다 잘못 가서 우도로 갔는데 우도 바다의 투명함도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제주도는 다 좋았어요. 그러면서도 ‘리셋’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완벽하게 쉬는 기분이지는 못했어요.

2박 3일로 짧게 갔지만, 거기서 생각한 건, 내 안의 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해야겠다는 거였어요. 최근에 면허도 따고 차도 사서 여행을 많이 다녀요. 날씨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시간 나는 대로 날씨를 즐기고 있어요. 멀리는 못 가지만, 인천공항까지 ‘밟은’ 적은 있어요. 차를 사고 나서 특별히 뭐가 좋다고 느끼진 못했는데, 운전하면서 듣는 음악이라는 게 굉장히 새롭더라고요. 걸어 다니면서 들을 때랑, 차 안에서 들을 때랑 너무 달라요.”

혹시 너무 이른 후일담은 아닐까? 그는 들판의 저녁처럼 내내 차분했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 건 더, 더, 더 큰 갈채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박수 한번 치고 다시. “칭찬도 많이 들었죠. 무슨 노래를 그렇게 미친 듯이 불렀냐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좋았고요. 그런데 종종 그런 생각을 해요. 혹시 오늘 무대에 올랐는데, 조명이 딱 켜졌는데 관객이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나, 정말 아무도 없는 거. 있다 해도 내 음악에 집중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 와도 열심히 노래할 수 있을까? 난 가수니까 그런 상황에서도 열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긴 하는데, 의심이 생겨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넘칠 것 같은 그의 무대를 보는 동안, 정작 그가 무대에 서서 체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태양의 음악에 대한 비평은 어떤 믿음 위에 구축되었고, 무대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는 그 흔한 안티 하나 없을 만큼인데(박진영은 태양이 박자를 갖고 노는 수준이 되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되레 두려움을 말했다. 간단한 처방전. 계속 보여주면 되지 않나? 극복하고 증명하면 되지 않나? 가끔은 머리 좋게 원하는 걸 공급하면 되지 않나? 예를 들어 이런 노래도 기막히게 할 줄 안다는‘레전드 영상’ 같은 걸 좀 흘리는, 요즘이라면 흔한 얘기들. “음,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었으면 했을 거예요.”

그가 좀 더듬는다. “그게…. 그러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 아티스트를 정말 좋아하면, 그 노랠 진심으로 좋아하면, 부를 수 있어요. 그런데 순전히 기예를 보여주기 위해 레벨이 높은 노래라서 부르는 건…. 저는 언제나 노래의 본연은 진심과 감동을 전해줘야 옳다고 보거든요. 기예나 레벨을 보여주자고 하는 노래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가차없다. 주저할 말도 아니지만, 좀처럼 듣지 못한 말이라 진동이 생긴다.

그의 노래는 소위 몇 옥타브까지 올라가는지, ‘Nothing Better’ 절정부를 얼마나 더 그럴싸하게 부를 수 있는지, 누구와 겨룰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아마도 태양은 그런 경합에서 이길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태양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것은 음색과 표현의 탄력 때문이다. 이럴 땐 이렇게라는 식으로 습득된 테크닉이 아니라 온전히 자기답게 부르려는 지순한 노력으로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무려면 ‘크립’이나 ‘쉬즈 곤’을 부르면 전설행 특급열차 아니겠냐고 농담을 건넸더니, 눈부터 웃는다. 금세 애기 얼굴. 실컷 어른스런 얘길 해놓고 그런 얼굴이라니.

“어렸을 땐 별명이 똥배 아니면 똥. 그래도 똥배가 제일 많았어요. 그땐 ‘영배’보다는 ‘동’이 싫었어요. 무조건 놀리니까요. 아직도 친척 외엔 동씨인 분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반에서 아무리 특이한 성이라도 주변에 한 명은 더 있기 마련인데, 저는 그래서 좀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기도 했죠. 그런데 나이 먹고 나서 이제는 뭐, 그냥 희귀하다, 특별하다, 그런 느낌 정도예요.”

스물세 살. 알 건 알고 모르는 건 모른다. 누구라도 그렇다지만 아무나 고민하진 않는다. “제 약점을 잘 알아요. 예전엔 그런 걸 들킬까 봐 굉장히 두려워했어요. 그런데 올 초에 한번 크게 마음을 열었던 일이 있었고, 또 앨범 나오고 활동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아직 난 충분히 어리고, 뭔가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응석받이가 되면 안 되겠지만요.” 무슨 소리, 응석받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 응석받이의 몫이 아닌가. 그는 앞으로 걷는다. “다음 솔로 활동은 이번 앨범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저로서는 굉장히 빠듯하게 만든 앨범이 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또 생각을 달리해서 굳이 앨범을 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중간 중간 틈틈이 시간 날 때 싱글을 발표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활동할 수도 있을 거예요. 작년에 ‘웨딩드레스’로 활동했던 것처럼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땐 맘먹고 제대로 하지 않는 활동이 좀 걸렸지만, 지나고 보니 좋은 곡을 버리지 않고 괜찮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가 나올 때까지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두문불출, 오죽하면 소속사 대표가 사람 좀 만나라고 등 떠미는 일이 생겼던 그였기에, 또 한 번 그러라고 권할 일은 아니었다. 맘껏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상식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 “저는 어쨌든 프로듀서가 아니고 가수니까 무대에 서는 게 제일 좋아요. 어느 한쪽에 편중된다기보다, 무대에 서는 게 더 재밌어요. 어쩌면 무대에 선다는 생각으로 스튜디오에서의 시간을 버티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럴수록 스튜디오를 벗어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멜로디를 만들거나 가사를 쓰거나, 어떤 아이디어는 스튜디오 바깥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점점 여행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요. 틈틈이 아이폰에 메모도 해요. 제가 만약 외향적인 성격이면 곡을 더 많이 만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본성이 그러질 않으니까 한 곡이 나올 때까지 시간도 많이 들고 공도 많이 들죠.”

사방에서 날 좀 보라며 번쩍거리는 시대,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음악일 수도 없는 음악이 유명세 하나로 거들먹거리는 시대, 태양은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실, 제 성격이 요즘 시대나 트렌드에는 안 맞는 거 같아요. 빨리빨리 만들어야 하고, 뭔가를 해야 하고. 결국 어떤 것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경험에서 얻어야 할 것이 많고, 저는 누구보다 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싶어요.” 다시 나이를 물었다. 느닷없이 스물일곱의 태양이 궁금했다. “저도 궁금해요. 제가 어떨는지.”

두 말할 나위 없는 지금이면서, 한없이 지금으로부터 멀리 있는 듯한, 이 진지한 청년에게 마지막으로 제법 유치한 질문 두 개를 건네주었다. 둘 다 ‘언제’로 시작한다. 첫 번째, 언제 연애할 건지. 두 번째, 언제 군대 갈 건지. “연애는 일단 사람을 많이 만나보려고 해요. 주변 사람부터 챙기면서 많은 사람을 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군대는 당연히 가는데, 다만 하루빨리 통일이 되길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그 말을 하고 어떤 얼굴이 되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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