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자인 한글

2014.10.08정우영

한국에서 “디자인하다”라는 동사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그것은 현실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마술 지팡이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독자적인 이론과 문자 중심의 혁신적인 책 디자인을 이어온 디자이너 정병규는 한글이 처한 현실도 담아내지 못하는 디자인에 관해 말했다.

Culture판형

많은 디자이너가 한글 서체 디자인에 관해 앓는 소리를 한다. 서양 서체에 비해 요소가 복잡해서 응용할 여지가 적다는 식이다. 한글은 15세기에 만든 최신 문자다. 알파벳이 마차라면 한글은 자동차다. 부속도 많고 내연기관도 복잡하다. 근 대의 지식이 담겼는데, 그걸 무시하고 선험적인 알파벳을 기준으로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니 어렵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경험적인 걸 선험적으로 다룰 때의 위험을 말한 적이 있다. 구두와 고무신이 같은 신이라는 이유로, 각각의 특징을 따로 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와 ‘종’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한글 서체 디자인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가 한글을 보는 관점이 너무 좁다. 한글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말하는 과학성, 독창성은 국어학에서 귀납적으로 나온 것이다. 한글의 철학성이 빠져 있다. <훈민정음> 제 자해 약 1950자 중에서 음운론을 다룬 부분은 500자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가 전부 한글에 담긴 철학 얘기다.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된 중국 음운론과 동양철학이 녹아 있다. 한글을 문자로만 보면 재미없다. 문자의 배경과 원리가 담겨 있기에 근대적인 문화 창조의 모델로 볼 수 있다. 지금 한글에 관한 이데올로기는 나머지 1500자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알파벳이나 한문의 보편성 차원으로 옮겨놓으니 그 특성이 다 죽었다.

한글의 특수성 중 하나는 음소 단위의 문자이지만 음절 단위로 쓴다는 점이다. 한자의 영향이 분명한 네모꼴로 만들어서 적어야 하고. 한글 서체 디자인에 끼치는 어떤 영향이 있겠다. 이익섭 선생은 “한글의 존재 이유는 모아쓰기”라고 말했다.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은 이 부분이 걸림돌 이라고 했다. 세종대왕이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글자를 만들었다고 칭찬하면서도 풀어쓰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하지만 한글을 풀어쓰는 게 간단치 않다. 문자를 더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 어 ‘깎고’를 풀어쓸 때 ‘ㄱ’이 몇 번이나 나오는 지 따져보면 쉽다. 문자는 절대로 보편적이지 않다. 모아쓰기의 장점이 뭔지 파악하지 않으면 그것의 디자인적인 표현은 불가능하다. 지적한 대로 한글은 모아쓰는 바탕에 네모꼴을 둔다. 네모 안에 모은다는 게 뭔가. 그리는 것이다. 한글과 한자의 서예성과 미학성이 거기에서 나온 다. 이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까.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무가 있다.

한글에는 ‘받침’이라고 불리는, 병렬 배열을 방해하는 음소도 있다. 이 역시 디자인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힐 것 같다. 호’ 자와 ‘홍’ 자를 함께 놓고 비교하면 받침이 있을 때는 ‘흥’인지 ‘홍’인지 구 분이 잘 안 된다. 활자 크기가 작아지면 본문에 서의 변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옳’ 을 디자인으로 푸는 상황이 닥치면 미학이 이렇고 저렇고 따질 여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는 알파벳이 부럽다. 한글에서는 ‘ㅇ’을 처리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외국어와 달리 초성에 쓰이 는 ‘ㅇ’은 음가가 없어도 써줘야 하기에 사용빈도가 높은 데다 동그라미에 꼭지가 있는 놈, 꼭 지 사이에 숨통을 튼 놈, 납작한 놈, 길쭉한 놈, 중심이 있는 놈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영웅’ 이라는 단어를 디자이너는 어떻게 시각적으로 풀 것인가? 해결하기 너무나 어려운 문제지만, 다양성의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서체의 종류가 충분히 많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빨리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이 한글 서체가 적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덜 발달되고 미성숙한 문자라고 생각한다. 왜 모든 문자의 서체가 많아야 하는지, 그것이 과연 선인지, 문자의 서체가 많고 적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각 문화의 특징이 서체의 종류와 한계를 만든다. 아랍문자처럼 서체가 많으면 안 되는 문자도 있다. 서체가 많다, 적다는 판단에 대한 배경지식 또한 우려된다. 활자는 크게 표현성이 강한 제목체와 본문체 로 나눈다. 알파벳도 본문체는 크게 말하면 서너 가지밖에 안 된다. 서너 가지를 아주 미세하게 글리프와 비례만 바꾼 게 많아서 다양해 보인다. 저작권을 벗어나기 위한 꼼수로 만든 서체도 많다. 상업의 탈을 쓴 수많은 서체를 보고 다양하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는지. 근본적으로 서체는 시대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 그것 의 많고 적음을 따질 대상이 아니다.

애초에 한글과 서체 디자인은, 캔버스에 동양화를 그리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닐까? 소프트웨어 ‘한글’에 오만 가지 이름이 붙은 컴퓨터 활자가 있지만 전부 제목체, 즉 장식체다. 본문체는 산돌체, 윤체처럼 조금씩 바꿨을 뿐이다. 시각적인 개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시도이긴 하지만 한글 서체의 근본은 하나다. 고딕체, 정음체다. 왜 세종대왕이 고딕체, 정음체로 표현했을까? 이것이 한글의 시각성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의 우리는 대답을 할 수 없다. 또 하나 걸리는 건 ‘ㄱ’에 이름을 안 붙인 것이다. 나중에 어문학자 최세진이 교육적인 차원에서 붙인 이름이 ‘기역’이지 훈민정음에는 이름이 없었다. 문자를 공표하던 당시의 지식과 안목에 비춰 이름을 붙이지 않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문자인 한글 에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할 텐데 아직 우리의 연구가 너무나 부족하다.

한글 서체 디자인은, 서예 같은 표현의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글 문자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알파벳의 재미있는 부분은 하나의 문자를 여러 가지 언어로 바꿔서 사용한다는 점이다. 각각 자신들 의 문자를 대표하는 서체를 갖고 있다. 이탈리아는 보도니, 독일은 블랙 레터, 프랑스는 디도 혹은 가라몽 계열. 알파벳을 언어의 다름으로 나누면 그게 과연 다양한 활자일까? 한글 서체 디자인의 어려움이 한글의 장점이다. 서양 알파벳은 차이를 만들기 쉽다. 시각적으로 말하면 도구성이 강하다. 동양의 문자는 음성의 변별성을 구분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문자의 특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한글에는 근대에 이르러 알게 된 정보까지 어우러져 있다. 문자에 미학적인 걸 요구한다. 추위를 가리는 옷과 신분과 미학까지 표현하는 옷이 어떻게 같은가.

한글 서체 디자인에서 유례없이 주목받은 건 캘리그래피였다. 이 현상은 어떻게 지켜봤나? 현대 한국 시각문화의 가장 큰 실패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특징은 이미지성이다. 한글과 한자에는 서예 미학의 관점이 있다. 이것이 근대를 지나며 억눌려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서체 디자인의 변혁 이 2, 3년 사이에 일어났다. 붓이 있는 자는 다 썼다. 대중이 한글의 이미지성에 식상해져버리면, 정작 그게 제대로 드러났을 땐 외면할 수 있다. 한글의 특징과 패러다임을 살펴보면 서체는 거의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형태면에서 그렇고, 주어진 원재료까지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걸 뒤집어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시작한 게 테이프 타이포그래피다. 붓이라는 도구에 의지하는 전통적인 태도에서 벗어나고, 주어진 것을 활용하는 게 활자라는 의식의 패러다임을 바꿔보려고 했다.

서체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뭐였나? 93년에, ‘일책일자’라는 주장을 폈다. 문자의 이상은 텍스트마다 다른 글자꼴을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시를 베껴 적는 걸 창작이라고 부르지 않듯이. 대중문화, 복제문화가 발달하면서 전달이 강조되다 보니 내용에 알맞은 글자꼴을 선택해서 쓰면 된다는 생각이 나왔다. 활자를 기능적으로 본 것으로, 서양 타이포그래피 책에 나오는 얘기다. 제복을 입어야 살아남는 현대 타이포그래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문법 규칙은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나? 디자인으로서 관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주어진 텍스트로 한글을 운용한다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문법을 전제로 한 의미 생산 현장에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니까. 문법을 임의로 어기는 것은 월권이다. 단, 서예나 작품의 차원 이라면 벗어날 수도 있겠다.

한글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기도 전에 ‘디자인’으로 넘어간 측면이 있다. 디자이너는 아주 적은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야 하는 한계를 만날 것 같다. 한글 서체 디자이너가 제일 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한글 팬시 현상. 지금까지 내가 말한 이상한 짓들이 다 그걸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시각디자인과 2학년 교과목에 훈민정음 강독을 필수로 넣어야 한다.

    에디터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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